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98화 (98/204)
  • 98화. 오지랖

    “본인 자료를 꼼꼼히 보네. 어때? 쓸 만하지?”

    쓸 만하기는! 누가 소심해!

    “감독님이 이렇게 보셨다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대답은 하지만 목소리에 날이 선다. 소심하다니. 나 같은 대인배에게 소심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

    “아쉬워. 내가 감독할 때 같이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전 안 아쉽습니다만…….

    “다른 친구들 것도 보면 느낌이 좀 올 거야.”

    그래. 다른 놈들 것도 좀 보자. 이 사람이 인성이 쓰레기인지 나만 미워하는 것인지 좀 보자.

    [노경준(랩터스 NO. 28)]

    KBO SCALE

    HIT(타격) : 50(55)

    POWER(파워) : 70(75)

    RUN(주루) : 60(70)

    ARM(송구) : 55(75)

    FIELD(수비) : 50(75)

    OVERRALL : 57(75)

    총평

    독보적인 운동 능력. 그에 비해 야구 센스가 현저히 부족함. 같은 팀 김소전과 함께 경기 시엔 단점이 부각되지 않으나 김소전이 없을 시 공수주 모든 부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임.

    컨텍은 부족하나 노림수가 좋음. 배팅 시 중심이 뒤에 남아 있으나 변화구 대처 능력이 부족하고 타격 시 머리의 움직임이 큼.

    타구를 예측하기보다는 눈으로 공을 보고 쫓아가는 수비를 함. 앞뒤로 움직이는 수비에는 강점을 보이나 좌우로 흐르는 타구에 적응을 못하고 있음. 첫발 떼는 능력이 부족하며 개선에 회의적임.

    경기 내·외적으로 같은 팀 김소전을 절대적으로 의지함. 김소전이 없을 시 홀로서기가 불가능할 수 있음.

    이, 이 아저씨 진짜 제 맘대로 써놨네.

    경준이가 멍청해서 야구를 못하는 건 인정. 그런데… 왜 얘가 나보다 타격 점수가 더 좋은 건데?!

    후반기엔 내가 더 잘 치고 있다고!

    “경준이 보는 눈으로 다른 친구들도 좀 봐줘. 그러면 너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다.”

    뒤에 붙은 총평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앞에 있는 부분별 분석 내용은 확실히 참고할 만하다. 나나 경준이의 약점을 구종별, 상황별로 나누고, 수비 시 움직임의 경향까지 분석한 자료는 어디서 구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자료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각 팀의 주전이 될 저 선수들의 진짜 모습을 미리 확인할 필요도 있다.

    “가서 선수들 잘 다독여보겠습니다. 2주 동안 한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날 보고 씩 웃는 감독. 시킬 땐 언제고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다.

    선배들이 기인환 감독이 여우 같은 감독이라고 그러더니……. 이쪽도 꼬리가 9개는 달린 듯한 느낌이다.

    아저씨, 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빼먹을 것만 쏙쏙 빼먹을 거라고요.

    감독실에서 나와 선수들이 있는 훈련장으로 간다. 첫날인지라 상태를 관찰하는 코치들 앞에서 슬슬 몸만 풀고 있는 선수들. 서로의 스트레칭을 도와주며 접점이 없던 선수들끼리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형, 왔어요?”

    눈에 안 띄게 은폐 엄폐하면서 접근했음에도 내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내가 오는 걸 아는 경준이 아는 척을 한다.

    “잘하고 있어? 뻥파워 선풍기야.”

    “네? 뻥 뭐요?”

    아… 미안……. 속마음이 그냥 입 밖으로 나왔네.

    “가, 감독실에 선풍기가 좋더라고. 덥다.”

    “그렇죠. 돔구장 히터 트니까 더운 거 같아요. 잠실도 히터 틀어줬으면 좋겠어요.”

    얘도 돔이 좋다네……. 구단주 형한테 진지하게 돔구장 사달라고 물어봐야겠다.

    코치님들하고 간단하게 훈련 스케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캐치볼을 시작한다. 이미 훈련 파트너가 있는 경준이 대신 타이탄스의 내야 백업 정인준과 짝을 맞춘다.

    “형. 공회전 진짜 좋으시네요.”

    잠깐 우리 말 트기로 했던가?

    “너도 몸 관리 잘하고 있네. 너 어느 학교 나왔냐?”

    “네?”

    “고등학교 어디 나왔냐고.”

    “백두고 나왔습니다.”

    “백두고? 우리 팀 양규환이 나온 그 학교?”

    “네. 규환이 1년 선뱁니다.”

    “그렇구나. 규환이도 공 대충 던지더니 너도 공 마지막에 풀리네. 공 눌러 던져봐.”

    크게 생각해서 던진 말은 아니고 캐치볼을 대충하는 것 같길래 한마디 해줬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네.”

    좀 풀려 있던 내 훈련 파트너가 갑자기 기합이 쫙 들어가더니 목소리가 커진다.

    “밀지 말고 때려봐.”

    “네. 선배님.”

    어? 갑자기 호칭이 바뀌는데? 그건 그렇고 공 몇 개 받아보는데 훈련을 어디서 배웠는지 어딘지 모르게 설설 하는 기분이 들어 몇 마디 더 붙여 본다.

    “투수 출신이야? 어디 부상 있어?”

    “투수가 모자라서 3학년 때 마운드에 좀 올랐습니다. 어깨는 특별히 부상 없습니다.”

    “그런데 왜 공을 그렇게 던져? 어깨가 아니면 팔꿈치가 아파?”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자꾸 저 친구의 얼굴이 빨개져 간다.

    “팔꿈치 수술은 했는데 괜찮습니다.”

    “괜찮은데 왜 그렇게 던지지? 거리 좀 늘려보자. 너 롱토스 어디까지 해?”

    “저 롱토스 안 하는데요.”

    “왜?”

    “선배님. 롱토스 몸에 안 좋습니다. 롱토스는 어깨 망가트리는 주범입니다.”

    오호. 신기한 이론을 설파하는군.

    “해봤냐?”

    “네?”

    “해봤냐고.”

    “뭘요?”

    “어깨 다칠 때까지 롱토스 해보기는 했냐고.”

    나를 미친놈 쳐다보는 타 팀의 2년 차 내야수. 뭔가 할 말은 많아 보이는데 처음 같이 훈련하는 다른 팀 1년 선배한테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모습이다.

    “너희 팀 유격수가 박명철 선배지? 2루는 서준성 선배가 주전이고, 김소형 선배가 백업이고, 맞지?”

    내가 물어보는데 대답도 안 하는 후배 놈. 현실을 보여줘야겠다.

    “그것도 모자라서 내야 백업으로 주세찬 선배가 있고, 3루에 박기석, 이병환 선배 있지, 넌 몇 번째냐?”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서 터질 것 같은 롱토스 안 하시는 후배님. 터질지 안 터질지 궁금하니까 조금 더 이야기해 준다.

    “나야 너 송구 거리 짧은 게 좋다. 타이탄스 외야들이 죄다 어깨가 소녀 어깨인데 중개해 줄 내야수가 송구 못 하면 나야 땡큐지.”

    이제는 눈까지 시뻘게지네.

    “너 경기장에서 나랑 몇 번 봤지? 너 숏에 있을 때 하나도 안 무서워. 솔직히 너 글러브 질도 별론데 어깨도 약하잖아. 난 너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면 아예 노력을 안 한 거지.”

    뭐라고 항변을 해보려 꿈틀거리는 입술. 그 입을 막아버린다.

    “롱토스를 안 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지금 짧은 거리도 몇 개가 튀냐? 이건 성의가 없는 거야.”

    억울함이 한가득한 훈련 대충하려고 하는 타이탄스 내야수를 앞에 두고 경준이를 불렀다.

    “경준아, 바꾸자. 얘랑 거리 안 나와서 못하겠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얼떨떨해하면서 쪼르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경준이. 경준이와 두어 개 가볍게 던지고는 슬슬 거리를 늘린다.

    40미터, 50미터, 60미터, 70미터…….

    “저거 뭐냐?”

    “70미터쯤 되지?”

    “70미터를 저렇게 던진다고?”

    “가만있어 봐. 더 늘어난다.”

    훈련을 할 때는 진심으로 해야 하는 법인지라 짧은 거리에서도 캐치볼을 제대로 못 하는 다른 팀 쩌리를 버리고 내 훈련 노예를 불러와 공을 던지자 관중이 늘어난다. 프로 선수가 관중이 생기면 좀 더 열심히 해야 하기에 조금 더 볼거리를 만들어 본다.

    “100미터도 넘는 거 아니냐?”

    “거리도 거린데 탄도가 저게 말이 되냐?”

    “경준이 던지는 것도 미쳤는데 김소전 선배 탄도 보면 쟤는 인간적이다.”

    “저런 어깨면 투수를 해야지, 왜 야수를 하냐?”

    “XX. 노경준 XXX. 자기는 재능이 없다더니 어깨만 봐도 재능충이네.”

    100미터에서 30개를 던지고 슬슬 거리를 좁혀간다. 거리를 줄이면서 스텝을 밟으니 공이 더 강하게 뿌려진다.

    “미친놈들이다.”

    “저 정도면 타석에서 치래도 못 치겠다.”

    “일부러 기죽이려고 저러는 거지?”

    20미터에서 마지막으로 10개 정도를 주고받은 뒤, 주위를 살피자 주변에 모였던 관중들이 고개를 돌리고 흩어진다.

    봤으면 따라서 할 것이지 낯가리기는…….

    선수들이 알아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첫째 날 단체 훈련을 마무리하고 언제나처럼 경준이를 붙잡아다 트레이닝실에 박힌다.

    언제나처럼 쇠질을 하기 전 거울을 보면서 내 아름다운 몸 구석구석을 눌러주고 있는데 어디서 하나둘 선수들이 내게 다가온다.

    “선배님,. 내일 뵙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뭐, 뭐지.

    “그, 그래. 안녕.”

    이제 거울을 떠나야 하는데 계속 들어오는 선수들. 너희 좀 귀찮다.

    “선배님, 안녕…….”

    “야! 그냥 가! 훈련 끝났으면 그냥 가! 퇴근할 때 그냥 가는 거지, 뭘 인사를 하고 그래.”

    “아니, 그래도 선배님께 인사는 드리고…….”

    “너 타이탄스지? 누구냐? 누가 퇴근할 때 인사하고 가라고 시키냐?”

    “저, 저희 최강훈 선배 밑으로는 다 그렇게 하는데요…….”

    하여간 관종 XX. 집에 가는 것도 허락 맡고 가라고 해……. 에효.

    “너 여기서 더 있다 갈 거면 오고 아니면 그냥 집에 가. 내가 너 연봉 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고 있어. 가. 다른 애들한테도 그냥 가라고 해.”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타이탄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퇴근 인사 오는 선수 하나를 돌려보냈는데 또 한 놈이 들어온다.

    “가! 그냥 가라고! 나 괜찮으니까 가! 가버려!”

    “저… 그게 아니고…….”

    “뭐! 그게 아니고 뭐!”

    “저… 창원에서 와서 그런데 웨이트 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서울에 일주일만 있으면 되는데 연습장 아는 데가 없어서요.”

    “뭐?”

    “진짜! 진짜 조용히 선배님 방해 안 되게 운동하겠습니다. 안 될까요?”

    미치겠네. 이게 뭔 헛소리야

    “경준아, 내가 지금 뭐 잘못 들었냐?”

    “형. 저도 한국말을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하도 어이가 없어 헛소리하는 어린애에게 다가간다. 폭스의 이번 신인 주상훈. 시즌을 막장으로 보낸 폭스에서 팀 TO로 밀어 넣은 우타 좌익수. 1군에는 몇 번 나오지 않았지만 2군에서는 30도루를 할 만큼 발 하나는 발군인 선수.

    그리고 얘를 뽑은 대표팀 감독의 리포트에 따르면 순수 파워는 없어도 컨택과 선구안을 타고난 1번 타자감. 다만 고등학교 때 팀에서 4번을 치면서 뽀록으로 넘어가 홈런이 몇 개 있어서 호타준족으로 키우려고 노력 중인 선수다.

    “주상훈. 다시 얘기 좀 해보자.”

    얘보다 키가 20센티미터 가까이 큰 나와 경준이가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그치자 폭스의 차세대 쌕쌕이가 잔뜩 쪼그라든다.

    “죄, 죄송합니다. 서울은 정말 몰라서 그랬습니다. 숙소 근처에서 훈련장 찾아보겠습니다.”

    조만간 울 듯한 상훈이. 이 패기 넘치는 어린양을 붙잡아서 거울 앞에 세웠다.

    “웨이트를 하면서 조용히 하겠다고? 경준아, 그게 말이 돼?”

    “상훈이가 겸손해서 무게도 겸손하게 드나 봐요. 형, 오늘 상훈이에게 무게를 드는 용기를 알려줘야겠어요.”

    “상훈아, 너 데드 얼마 치냐?”

    “네?”

    “데드 얼마 치냐고”

    “데드리프트요? 120 정도 드는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준이가 가져온 빈 봉에 50킬로 원판을 끼운다.

    “120. 몸풀기 딱 좋은 무게네. 상훈이 그렇게 안 봤는데 쓸 만한 몸을 가졌구나. 몸 푸는 거니까 20개씩 3세트만 먼저 시작해 볼까? 오늘 깔끔하게 200까지만 올라가 보자.”

    “네?”

    “경준아, 뭐 하냐? 그쪽도 끼워야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쪽에 50킬로 원판을 끼우는 경준이.

    “형. 얘 사기 치는 거 같은데요. 더 들 수 있는데 사기 치는 거 같아요.”

    “폭스는 포스트 시즌도 안 하고 운동하는 첫날이잖아. 슬슬 시동을 걸려고 하는 거겠지. 몸은 이렇게 천천히 끌어올려야 부상 안 당해.”

    나와 경준이가 진지하게 상훈이의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당사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선배님……. 120 스무 개요? 그걸 세 세트?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이런… 내가 큰 실수를 했다.

    “그렇지? 이건 아니지? 내가 정말 미안하다. 상훈이가 폭스 최대 유망준데 내가 너무 경준이처럼 생각했다. 진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훈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상훈아. 그래도 첫날이니까 무리는 하지 말고 20개씩 5세트만 하자. 처음부터 무리하면 다쳐.”

    “서, 선배님…….”

    “선배는 무슨. 같이 땀 흘리는 사이에. 형이라고 불러. 120 정도면 진짜 조용히 들 수 있겠네. 노래도 시끄러운 거 말고 발라드 틀어줄까? 경준이가 운동은 못 해도 플레이리스트는 좋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흘러나오는 발라드. 처절한 이별 노래와 함께 고척의 지하에서는 폭스 유망주의 눈물 섞인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얘가 실연이라도 당했나. 무슨 쇠질을 하면서 울고 그래. 에잇, 다른 생각 못 하게 무게를 올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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