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93화 (93/204)
  • 93화. 두 번째 우승

    저놈들은 확실히 시리즈 작전을 잘못 들고나왔다. 동네에서 발바리들끼리 쌈박질을 할 때도 먼저 꼬리 내리는 멍멍이가 지는 법인데 왕좌를 놓고 붙었을 때 첫 경기를 버리고 가는 건 이길 생각이 없는 거지.

    한국 시리즈 1차전을 103구 완봉을 해버린 다음 시즌 메이저리거의 활약으로 첫 경기를 0:5로 셧아웃시킨 랩터스가 여세를 몰아 다음 경기마저 난타전 끝에 9:11 승리를 챙겨온다.

    계획이 틀어지자 휴일에도 모두 나와 특타를 하면서 급하게 총력전은 준비하는 소닉스. 그와는 대비적으로 두 경기에 몰아 쓴 힘을 비축하려고 이동 일에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에 들어가는 랩터스. 극단적 다른 행보를 취하는 양 팀의 3차전이 다시 잠실에서 열린다.

    “소전아. 쉬어, 좀 쉬어. 네가 자꾸 뛰어다니니까 내가 맘 편히 쉴 수가 없잖아.”

    “소전아! 무슨 훈련을 1년 365일 내내 하고 있어. 가을 야구는 즐기는 거야. 쉬엄쉬엄해.”

    “야! 정신 사나워. 형 좀 자자. 그만 싸돌아다녀.”

    어째 점점 팀 훈련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훈련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알차게 쓰고 있는데 덕아웃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선배들의 구박이 늘어난다.

    “형. 우리 어디 숨어서 훈련해야 할까 봐요.”

    “숨긴 어딜 숨어. 캐치볼 짧게 하는 거 의미 없다니까. 시합 전에 최대한 길게 길게 뽑아줘야 해.”

    “형. 저기~ 박재호 선배가 인상 써요.”

    “너 지금 공 길어서 그래. 너 똑바로 안 던져?!”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덕아웃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전아~ 요즘은 가슴으로 안 던져도 공 받아주냐? 형이 막내들 공 던지는 것도 신경 써야 해?”

    훈련을 할 거면 훈련을 하든지 그냥 누워 잘 거면 누워 자든지, 왜 남 훈련하는 것도 못마땅해하고 그래.

    “신경 써서 하겠습니다!”

    “그래~ 잘 좀 해봐 봐. 형 이제 나이 먹어서 수비하기도 힘들어.”

    덕아웃에서 소리를 질렀던 박재호 선배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눕는다.

    아오, 맘에 안 들면 와서 나랑 캐치볼을 해주던지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나도 잘하는 사람이랑 훈련하고 싶다고.

    “형. 박재호 선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어. 나 신인 때는 캐치볼 할 때 글러브 대고 있는 데로 공 안 들어오면 선배들이 공 안 잡았어.”

    “힉. 그러면 공 뒤로 빠지잖아요?”

    “어. 그러면 던진 놈이 가서 잡아 와야 했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니까 캐치볼부터 신경 써서 잘하라고!”

    저 할배들이 진짜 야구를 그만두려고 그러나 점점 자기들이 코치인 줄 알고 움직이지는 않고 입만 바쁘게 떠든다.

    시합 시작 언제 하냐. 그냥 시합이나 하고 싶다.

    - 2루수 직선타! 2루수 직선타로 아웃되는 김소전.

    - 잘 맞은 타구를 잘 잡았어요. 오늘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소닉스 수비에요.

    훈련 시간부터 선배들의 구박을 너무 많이 들어서 공도 화가 났는지 수비수 정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덕아웃에 들어가자 선배들의 구박이 또 시작된다.

    “소전아. 밥상을 차리랬더니 걷어차고 오면 어쩌냐?”

    “형 무릎 아프다고 몇 번 얘기해? 똑바로 안 해?”

    “어라. 소전아, 막내 관리 안 해? 초구치고 죽으면 뒤에 현기는 뭐 하라고?”

    나이 먹으면 빨리 은퇴시켜야 해. 저 아저씨들 힘없다고 누워 있더니 원기가 충전되긴 한 것 같은데 충전된 기운이 죄다 입으로 몰렸네.

    - 투 아웃. 타석에 1루수 정현기 들어옵니다.

    - 앞선 두 경기에서 브라운 선수의 타격감이 안 좋다고 판단한 김민중 감독이 전격적으로 정현기를 3번으로 올렸어요.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요.

    1, 2차전은 전부 1회부터 점수를 내면서 쉽게 갔는데 저 선배들의 견제에 오늘은 쉽지 않네. 그렇게 잘할 거 같으면 자기들이 더 잘하든가. 나하고 경준이가 열심히 출루해서 베이스 채워놓으면 희생타나 치면서 타점 쌓은 사람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 파울. 뒷그물 넘어가는 파울. 정현기 빠른 공에 밀리는 모습입니다.

    - 소닉스 배터리도 그걸 알고 계속 직구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초구에 유땅을 치고 덕아웃에 들어온 경준이와 같이 조리돌림을 당하는 동안 3번 타자로 올라간 정현기 선배가 끈질기게 공을 커트해 낸다.

    3번 타자가 빨리 죽고 수비를 나가야 이 시간이 끝날 텐데……. 저 눈치 없는 할배가 왜 뚝딱질을 하고 있어.

    - 8구 볼. 승부가 길어집니다.

    - 1, 2차전 랩터스가 선취점을 내면서 쉽게 쉽게 가져갔거든요. 오늘 경기도 소닉스가 1회에 실점을 하게 되면 힘들어질 수 있어요.

    1회가 길어지자 덕아웃 한가운데 멍청이 둘을 놓고 선배들의 야구학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 싸움을 할 때 눈을 투수를 향하지 말고 뒤통수로 돌려서 포수를 봐야 한다는 둥, 지금처럼 투수가 직구 위주로 공을 던질 때는 직구에 더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둥. 어디 SF에도 안 나올 그런 헛소리를…….

    “선배님. 지금은 타자가 구위에 눌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로 이 시간을 넘기고 있는데 삶에 필요한 스킬이라고는 숨쉬기밖에 없는 경준이가 참지 못하고 헛소리를 한마디 한다.

    “우와~ 요즘 애들이 이렇게 무서워요. 선배가 얘기하는데 말대답하는 거 봐. 소전아, 얘는 너보다 더 무섭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선배들이 너무 갈구니까 그렇지요.

    “얘가 야구를 모르니 고명하신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지요.”

    놀리려고 한 말인데 고명하신 선배님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을 늘어놓는다.

    “봐라. 현기가 최대로 칠 수 있는 공은 아마 140 후반이 한계일 거다. 나라면 150까지는 치겠지만 쟤는 148도 못 따라갈 거야.”

    너 님이나 저 님이나 둘 다 배트 스피드가 150은 턱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그런 말을…….

    “보이지? 현기 또 커트하는 거. 커트는 몰라도 150 정도 되는 공은 앞으로는 못 쳐.”

    앞으로 못 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런데 말이지, 제구되는 직구는 몰라도 한가운데 들어올 직구를 알고 친다면 타이밍 잡아서 때릴 수는 있지.”

    투수가 바보요? 한가운데 들어오는 직구를 던져주게?

    - 10구! 정현기의 배트가 불을 뿜습니다! 쭉쭉 날아가는 타구, 좌측 담장을 넘깁니다! 한국 시리즈 3차전 3번 타자로 나온 정현기의 솔로 홈런! 승부의 추를 랩터스로 끌어오는 선제 홈런입니다!

    -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는 홈런이었어요. 김민중 감독이 3번으로 올린 이유를 증명하네요.

    미쳤다. 나이 먹어서 이제는 두 자릿수 홈런도 못 치는 할배가 잠실에서 150짜리 공을 받아쳐서 담장을 넘겼다. 이게 말이 돼?

    “저 배트 스피드로 150을 어떻게 치는 겁니까?”

    이번 시즌 우승을 확신하는 선수단이 미쳐 날뛰는 가운데 앞을 미리 본 예언자에게 비밀을 물었다.

    “저게 짬에서 나오는 타격이다. 야구를 이쯤 하면 정말 필요할 때 투수에게 뭘 던지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내가 야구를 10년 넘게 해도 그딴 일은 일어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처구니없어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멍청이가 썩은 동태눈을 하고는 주문을 외운다.

    “짬에서… 짬에서 나오는 타격……. 짬에서… 짬…….”

    글렀다. 머리에 한번 사파의 이론이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데……. 이놈도 이제 야구 지 X대로 하겠구나.

    * * *

    매 경기 홈런을 치면서 선취점을 절대 내주지 않은 랩터스가 소닉스를 시리즈 전적 4:0으로 지우면서 또다시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이번 시즌 우승 후 미국 진출을 선언한 에이스가 1차전과 4차전 18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MVP를 차지하고는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30대에 들어갔음에도 치어리더들보다 우월한 미모를 뽐내는 단장이 우승 트로피를 번쩍 치켜들면서 2027시즌이 끝났다.

    팬들이 떠나고 하나둘씩 불이 꺼져가는 경기장.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 계약이 끝나는 선배들이 우승 행사가 끝난 후에도 좀처럼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배회한다.

    내년 시즌에 또 야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선수들이지만 지금은 당당한 챔피언의 모습으로 경기장을 눈에 담는다.

    “아이고, 저 아재들 저러고 있네. 소전아, 가서 아저씨들 그만 나오라고 해.”

    은퇴를 앞두고 그라운드에 나란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선배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내 뒤로 주장이 와서 한마디 한다.

    “선배님들, 그냥 조금 더 두죠. 선배님들 은퇴 경기였을지도 모르는데요.”

    그저 선배들의 저 순간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어서 뱉은 말인데 주장이 정색한다.

    “소전아. 은퇴는 김민중 정도 되는 선수들이 하는 거야. 나나 저 형들은 은퇴가 아니라 방출이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선수 생활은 끝이야.”

    숨이 턱 막힌다. 그랬다. 은퇴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실력도 있고 인기도 있는 슈퍼스타들이나 결정하는 거였어.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실력이 떨어져서, 팀 구상에 밀려서, 그것도 아니면 입 잘못 털어서 방출당하는 거였어.

    “소전아. 그런데 넌 은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야구 하면 넌 은퇴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은퇴 걱정은 네가 하고 가서 저 아저씨들 데려와!”

    30초 전까지 이 사람이 참 멋있어 보였는데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는 주장은 참… 별로다. 자기가 가도 되는데 꼭 날 시켜. 이제 밑에 경준이도 있는데……. 아오.

    주장의 명령에 못 이겨 내야 잔디에 누워 취침을 하시려던 할배들을 끌어내서 대한 호텔 연회장으로 끌고 갔다. 작년에 한 번 해봤다고 호텔에서 절제에 절제를 하면서 분위기만 맞춘다.

    구단주 형은 뭐가 좋은지 마이크를 잡고 82년 선수단부터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아무도 듣지 않고 정신은 다 딴 데 가 있다.

    구단주가 속사포 랩을 하고 있거나 말거나 남은 사람들이 적당히 샴페인을 홀짝이면서 인사치레를 끝내고는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진다.

    “야, 따라 나와.”

    “형. 구단주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원년부터 선수단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요. 살다 살다 저런 미친 XX는 처음 봐요.”

    야! 구단주한테 미친 XX라고 하는 놈이 어딨냐.

    “됐고 빨리 나와.”

    “어디 가요? 고기가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고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빨리 나와.”

    순간 그냥 버리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작년에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나를 챙겨준 선배들 생각을 하면서 멍청이를 챙겨서 나간다.

    어디서 왔는지 호텔 지하로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타고 간 거대한 클럽. 작년에 갔던 곳보다 훨씬 삐까뻔쩍하다.

    “와~ 우와~ 와~ 와~”

    확실히 주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공간은 어디서 찾아냈는지 볼수록 신기하다. 대기업 망나니들 생일 파티하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선수들이 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어지는 신기한 구조. 그리고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델 같은 여자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간다.

    “형… 나 뺨 한 대만 쳐주세요.”

    “싫어. 너 때리면 나 또 징계다.”

    “와~ 우와~ 와~ 와~”

    와~만 하는 멍청이를 두고 잠깐 찬 공기 좀 맡아보려 문밖으로 나왔다.

    찬바람 좀 맡으니 술이 좀 깬다. 저 안에서 술을 얼마나 들이붓는지 술은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지금 음주 측정하면 면허 취소는 나올 거다.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아까 그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데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이 너무 많다. 번쩍번쩍 돌아가는 조명들. 심장을 쿵쿵 울려대는 음악들. 그리고 너무나 예쁜 누나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침을 소매로 닦으면서 느린 발걸음을 옮기는데 누가 내 귀에 속삭인다.

    “너 여기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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