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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88화 (88/204)
  • 88화. 무서운 선배

    나를 보고 사색이 돼서 벌벌 떨며 운전한 매니저 형을 이천 훈련장 문앞에서 돌려보내고 2군 감독님께 인사를 했다.

    분명 알고 있는 표정이지만 내색하지 않는 2군 감독과 나를 보며 너 답지 않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 코치들. 그리고 나 온다는 얘기 듣고는 한걸음에 뛰어온 경준이.

    폭행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에게 뛰어와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미안하다고 하자 뭐라고 하던 코치들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감독님에게 나와 경준이는 기자들 눈 피해 조용히 숙소에서 생활하며 개인 훈련만 하겠다고 이야기하자 1군과 얘기가 끝났는지 바로 동의를 해준다.

    그동안 시즌 뛰느라고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는데 차라리 잘됐다. 1주일. 1주일 동안 훈련장에 처박혀서 재조정이다.

    오늘 경기, 내일 경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몸에 있는 에너지를 전부 끌어다 웨이트에 퍼붓는다. 야구라는 운동이 한 방향으로 회전을 하는 운동이라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이번 1주일 동안 밸런스를 맞춘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내가 죽으래도 죽을 것 같은 똘마니와 수련에 들어간다.

    그 소식을 듣고는 전지 훈련 후 얼굴 보기도 힘든 빡빡이 샘과 상담 샘까지 와서 도와주니 운동 효과가 확확 는다.

    “혀, 형……. 저 괴물들은 뭐예요?”

    “마… 말 시키지 마…….”

    철밥통 랩무원들 아니랄까 봐, 6시 땡과 동시에 선생님들이 퇴근을 하자 똘마니가 말할 시간이라도 생겼다. 물론 시간이 생겼다고 말할 기운이 있는 건 아니지만…….

    10분을 그대로 누워 있다가 일어나 밥을 먹고 선생님들 없이 둘만의 훈련을 하고 훈련장에 있는 숙소에 들어가 루다에게 세 시간을 내리 욕 먹고 잠에 빠진다. 아니… 통화하면서 잤는데, 어쨌든 전화가 꺼진 시간은 세시간…….

    간만에 이틀 연속 경기를 안 하는 아침. 2군 선수들 보다 빠르게 일어나 웨이트장에서 어제 놀란 근육들을 달래주고 경준이 오는 걸 기다렸다 밥 먹여서 또다시 훈련하고… 상대 투수 생각도 상대 타자 타구 방향도 생각 안 하고 그저 내 몸 하나만 생각하면서 하는 훈련…….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짜릿한 게 기분이 좋아진다.

    3일째 경준이와의 훈련이 시작되자 어제까지는 없었던 갤러리가 늘어서기 시작한다. 항상 얘기하지만 웨이트할 때 제일 나쁜 게 남 훈련하는 거 느끼한 시선으로 훑는 건데, 저 2군 선수들… 나와 경준이를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스캔을 한다.

    “저… 저게 사람이야?”

    “지금 저거 650이지? 레그프레스로 650…….”

    “방금 전까지 200 들고 스쿼트 25개씩 3세트 하지 안았어?”

    “와… 쉬지를 않아. 레그 끝나고 바로 턱걸이…….”

    “진짜 팔로만 올라간다. 사람이 저게 되네.”

    나는 지들 생각해서 밥 시간도 따로 가고, 너희 웨이트할 때 운동장 나가서 러닝 하는데 이것들이 자꾸 귀찮게 하네.

    하던 세트를 마저 끝내고 훈련장 밖에서 침 흘리면서 나를 기분 나쁘게 보고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물 마시러 가는 줄 알았지, 자기들에게 올 줄은 몰랐던 선수들이 도망가려고 해 불러 세웠다.

    “거기 정지. 이리와.”

    그래도 선배들은 나 훈련하는 걸 몇 번 봐서인지 이곳엔 없었고, 나한테 잡힌 선수들은 죄다 신인들이다. 어린놈의 자슥들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네… 네…….”

    쭈뼛거리면서 내게 다가오는 녀석들.

    “인사 안 하냐?”

    “네?”

    “인사 안 하냐고.”

    “아, 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선배를 보면 인사를 하고 해야지.”

    엎드려 절받기지만 너희가 먼저 날 기분 나쁘게 했으니 나도 갚아줘야지.

    내가 신입들을 한창 갈구고 있는데 뒤따라 나오는 경준이가 그들을 보며 아는 척을 한다.

    “규환이 안녕? 종오도 안녕? 너희 왜 그러고 있어?”

    “김소전 선배가 부르셔서…….”

    “잘해라. 소전이 형 무서운 형이다.”

    이 XX가. 나를 졸로 보는 놈이 갑자기 뭔 헛소리야.

    안 그래도 잘 못 보던 선배를 오랜만에 봐서인지 잔뜩 긴장했던 신인들이 날 보는 눈빛이 싹 바뀐다.

    “야… 폭행.”

    “경준이가 맞았다며? 피해자랑 가해자가 같이 있어. 전학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가 학교냐. 경준이도 깡 좋은데 눈 까는 거 봐. XX 무섭다.”

    “생긴 것부터 성격 더럽게 생겼잖아.”

    이 XX들이 사람 앞에 두고 다 들리게 저희끼리 떠들고 있어.

    “됐고. 너희 왜 그렇게 뒤에서 쳐다보고 있어? 운동하는 거 처음 봐?”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어보자 이것들이 선뜻 말을 못 꺼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똘마니가 친구들한테 대신 내 뜻을 통역하기 시작한다.

    “규환아. 너 소전이 형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거 있다고 그랬잖아. 지금 물어봐. 종오도 레그킥할 때 테이크백 안 된다고 그랬잖아. 지금 물어봐.”

    음… 뭐 이 XX야. 애들 떨구라니까 내 뜻을 이딴 식으로 해석하고 있어!

    지랄 맞은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어야 할 자리가 경준이의 한마디로 김소전의 야구 교실로 바꼈다.

    “선배님, 레그킥할 때요…….”

    “선배님, 공을 보는데요…….”

    “선배님, 팔이 안 빠질 때 있잖아요…….”

    아… 이게 무슨……. 여기 코치가 몇 명인데 이런 걸 나한테 물어보고 있어. 나 일주일 동안 밸런스운동 해야 한다고!

    화가 나서 경준이를 째려보자 눈치 빠른 경준이가 바로 알아들었다.

    “얘들아, 선배님이 뭐냐? 형이라고. 소전이 형, 형이라고 해야 좋아하신다. 알지? 소전이 형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 멍청한 놈이 지금 무슨 얘기를…….

    “형, 스트라이드가요…….”

    “형, 경준이가 마트를 보고 치라는데요.”

    “형, 배트 길이를 바꾸는 거가요…….”

    어지럽다. 내가 지금 경기를 못 뛰는 것도 억울해서 미치겠는데 이것들까지 진짜.

    “너희 3대 5백은 치면서 기술 얘기를 하는 거냐? 빡빡이 샘이 안 알려줬어? 기초 체력이 안 되면 테크닉은 써먹지도 못한다고 얘기 안 해줬어?”

    더 듣고 있다가는 코 꿰일 거 같아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이번에 신인들 잘 들어왔다더니 너희 몸이 프로 수준이냐? 딴 생각하지 말고 시즌 버틸 체력부터 만들 생각이나 해.”

    저놈들 몸을 본 적이 없지만 우선 떨궈놓기 위해 아무 말 대잔치를 열었다.

    그런데…….

    “친구들. 소전이 형 말 들었지? 소전이 형이랑 저녁 먹고도 쇠질하고 있을 거니까 훈련들 하고 저녁에 와. 소전이 형이 운동하는 것부터 알려줄 거야. 나 봐. 소전이 형한테 배우니까 몸도 좋아지고 부상도 안 당하잖아.”

    야, 이 미친놈아.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형, 이따 오겠습니다.”

    “이따 오겠습니다.”

    “형, 감사합니다.”

    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신인 선수들. 내가 어이가 없어 미친놈을 바라보자.

    “형. 안 그래도 애들이 스프링 캠프 때도 형은 보기 힘들다고 보고 싶어 했는데. 일이 이렇게 엮이네요. 살다 보면 다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슬픈 일이다, 이 XX야. 나 일주일 동안 계획이 다 있는데 너 때문에 이 지경이다.

    일이 이렇게 커진 거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고 어금니 깨물고 웃으면서 경준이에게 다음 세트를 이야기해 줬다.

    “다 쉬었지? 너 오늘 경기도 안 하니 쌩쌩해 보이네. 스쿼트 무게 5킬로만 올리자.”

    “형… 그건 좀…….”

    “아니야. 너 힘이 남아서 그러는 거 같아. 이리와.”

    “형, 그게 아니고…….”

    “왜? 덤벨도 1킬로씩 올려줘? 빨리 와.”

    “형… 이거 학대에요.”

    “학대라니, 교육이지. 패고 싶은데 패면 또 출장 정지 당할 테니까 이것밖에 답이 없다. 빨리 와.”

    “형…….”

    그렇게 시작된 중량 올리기. 처음엔 힘들어하던 둘이 나중엔 악에 받쳐 서로를 잡아 먹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 안에 모든 힘을 끌어낸다.

    그렇게 악마가 되어 있을 때 아까 헤어졌던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더 이상 서로를 잡아먹을 기운이 없던 악마들. 눈빛으로 서로 간의 정전 협정을 맺은 악마 둘이 순진무구한 어린애를 상대로 지옥문을 열어젖힌다.

    “으으악~”

    “통나무냐? 몸이 왜 이리 뻣뻣해?”

    “헉. 안… 안 들려…요…….”

    “어? 그거 못 들면 바벨 목에 떨어지는데? 못 들면 너 숨 막혀 죽어.”

    “악~ 탭… 탭… 탭!”

    “무슨 격투기 대회 하냐? 근육 한번 찢어놓으면 편해. 편하게~ 편하게 있어.”

    이날부터 이천에 괴소문이 하나 떠다니기 시작했다. 랩터스 훈련장이 있는 방향에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야수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야수는 대한 그룹의 연구소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백두산 호랑이를 복원시킨다나 뭐라나…….

    2군 훈련장에 온 지 3일째. 해만 지면 스트레칭을 핑계로 신인들 근육을 찢어놓는 것도 다해서 다른 신박한 고문법을 생각하려던 그때 전화기가 울린다.

    “돈 준비됐어요?”

    - 이 XX가. 전화를 받자마자 돈 얘기야.

    하늘 높이 뜬 보름달을 보며 운동장으로 걸어나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땀도 싹 날아가고 기분이 좋네.

    “아니면 연락하지 마세요.”

    - 만나자. 할 말이 있다.

    “그냥 해요. 이천이에요. 차도 없고 보는 눈 많아서 안 돼요.”

    - 그냥 택시 타고 와. 내가 한두 번 왔다 갔다 했냐? 콜택시 전화해. 금방이야.

    “됐고. 할 말 있으면 돈 보내고 하시고, 아니면 끊고.”

    - 이 XX. 너 말이 점점 짧아진다?

    “끊습니다.”

    그리고 끊어버렸다. 너랑 말 섞기도 싫은데 섞어야 하니까 섞어주는 거야. 본론만 간단히 해야지.

    끊자마자 다시 울리는 전화.

    “돈 준비 됐나요?”

    - 야 이 XXX야.

    또 끊었다. 욕하지 마라니까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그렇게 세 번을 끊자 드디어 말이 통한다.

    - 거래하자.

    “조건은요?”

    - 이 꼴통 XX. 넌 내 눈에 띄면 죽어.

    “또 끊을까요?”

    - 아, 아니.

    “용건만 말하세요.”

    한마디만 더 했으면 진짜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이번엔 아니네. 자, 이제 녹음 버튼을 눌러볼까.

    - 다음 주 목요일, 너 콜업되면서 잠실에서 폭스하고 경기다. 1번에 중견수.

    “콜업이야 그렇다고 치고, 중견수는 어찌 아셨어요?”

    - 우리 아마추어 아니다. 김민중 감독도 같이한다.

    “헐. 감독님까지 섭외하셨어요? 대단하네.”

    - 그러니까 잘해야 한다. 서로 모르는 척 확실히 하고.

    도대체 한 경기로 얼마를 벌길래 일을 이렇게 키우지?

    “그래서 뭘 해야 합니까?”

    - 1선발 이시윤이 1회부터 2타자 연속 볼넷을 낼 거야. 그리고 연속 3안타 이상을 맞고 1회에만 5실점 이상을 한다.

    “그게 말이 돼요?”

    - 들어, XX야.

    시나리오가 할리우드네.

    - 그리고 2회까지 두 자리 이상 실점을 해야 해. 투수하고 감독 다 얘기가 돼 있다.

    얘기야 되겠지. 감사실하고 검찰에서 네 말 다 들어주라고 했으니까.

    “그러면 난 뭘 할까요?”

    - 너도 알잖아. 폭스놈들 방망이가 썩어도 너무 썩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못 잡아줘.

    “아~ 안타를 만들어 줘라?”

    - 그렇지.

    “그게 끝?”

    - 아니지.

    얼마나 급한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럼 뭐 할까요?”

    - 수비는 그렇게 하고, 공격에서 첫 타석에 투수가 볼질할 거니까 괜히 치지 말고 보다가 걸어나가.

    “투수가 누군데요?”

    - 용병 갠딜.

    헐… 스케일이 진짜 남다르시구나……. 용병도 판에 끌어들였어?

    “그게 끝?”

    - 아니지. 첫 타석만 볼넷으로 나가고 나머지는 범타로 나와. 4타수 무안타여야만 한다.

    디테일 하네.

    “4타수가 넘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 걱정 마. 4타수 이후에 감독이 너 교체해 줄 거다.

    그렇구나. 감독이 나를 4타석만 쓸 거구나. 접수했다.

    “알겠고. 이제 돈 얘기 해야죠.”

    - 이 XX. 또 돈돈 거리네.

    “나 지금 고생하는 거 안 보여요? 많이 받아야 합니다.”

    - 천.

    “공 하나에?”

    - 이 XX가 미쳤나.

    미치긴. 네가 후려쳐도 너무 후려치는 거지.

    “내가 삼천 밑으로는 전화하지 말라고 안 했어요? 말 못 알아듣네.”

    - 이천 줄게.

    “타석당?”

    - 야!

    아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귀 안 떨어졌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요.”

    전화 반대쪽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 소전아. 우리 오래 봐야지. 처음부터 힘 빼지 말자.

    “타석당 천씩, 4천 합시다. 첫 거래니까 내가 수비는 서비스. 이 정도면 내가 많이 봐주는 거예요.”

    - 야. 우리 작업비 많이 들어갔어. 적당히 해.

    “이 정도 아니면 없던 일로 할 거니까 잘 결정해서 전화줘요.”

    4천… 내 연봉이 9천9백인데. 하루에 4천. 이렇게 몇 번 하면 진짜 집사겠네. 확 땡기네.

    머릿속에 잠실의 아파트를 떠올리며 방금 녹음한 파일을 구단주 형과 단장님한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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