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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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 길 건너 카페. 맛있는 커피에 분위기도 좋아서 제법 장사가 되지만 사장님의 근심은 깊어져만 간다.
그건 바로… 다른 시간은 괜찮은데… 야간 알바들이 자꾸 나간다. 밤에만 출몰한다는 진상 손님. 경력직 일 잘한다는 알바를 데려와도 3개월을 채 못 버티고 나간다.
이번엔 노량진 출신의 삼고초려해서 데려온 알바가 나가자 멘붕에 빠진 사장님이 대체 알바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카페 창업 후 오픈만 하던 사장님이 마감 시간에도 출근해서 가게를 지킨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사장. 진상짓만 하면 입구 컷 해버릴 작정으로 가게 문을 바라본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 큰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야구 모자를 쓴 검은 기운을 풀풀 풍기는 남자가 조용히 들어온다. 그리고는 카드와 쿠폰을 내밀고는 ‘아아’를 외친다.
결제를 하고 진동벨을 돌려주는 시간도 못 참고 카운터 앞의 쿠키와 초콜릿을 끊임없이 조물락거린다.
눈치는 절대 살 것 같지 않은데 멀쩡한 초코쿠키의 초콜릿을 문지르고 있다.
확신이 든다. 저거… 정상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진동벨을 주자 구조상 가장 깊숙하게 들어가는 구석 자리에 착석한다. 보통 체구 작은 여자들이 들어가면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우리 카페의 히든 플레이스인데……. 저 머리 큰 아저씨의 모자가 가림막을 뚫고 슬쩍슬쩍 나온다.
의식적으로 눈길을 거둬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하게 까딱이며 시선을 잡아끈다.
정신이 사납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받으러 온 남자가 종이 슬리브를 두 개를 꼈다가 이슬에 젖은 슬리브를 다시 케이스에 넣는 걸 보면서 화가 났다가 두꺼운 빨대와 얇은 빨대 두 개를 집어넣고는 다시 얇은 빨대를 또 가지고 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저걸 보고 있다가는 화가나 죽을지도 몰라 고개를 돌리자 다시 문이 열린다.
큰 키에 조막만 한 머리.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의 90%를 가렸지만 못 가린 눈만 봐도 나는 연예인이다. 포스를 풍기는 여자가 사람 홀리게 하는 향수 향을 은은하게 퍼트리면 카운터로 들어온다.
말없이 들어온 여자가 카드와 쿠폰을 내밀며 ‘아아’를 외친다.
영수증과 진동벨을 받아들고 곧은 자세로 또각또각 또각또각 자리를 찾아가 가는 여자. 아까 그 진상처럼 뭘 건드리지도 정신 사납지도 않은데 어딘지 모르게 아까 그 진상과 비슷한 검은 기운이 떠다닌다. 분명 다른데……. 극과 극은 통해서인지 느낌이 비슷하다.
내가 사장인데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
“오늘은 왜요? 별거 없으면 전화로 합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남자를 만난 여자가 보자마자 투정을 늘어놓는다.
“팀을 저 꼴을 만들어놓고 별거 없으면? 그게 단장이 할 말이야?”
여자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가 거친 말을 내뱉는다.
“이겼잖아. 이겼으면 됐지.”
“이게 이긴 거야? 이김을 당한 거지? 그러고도 2등이다. 여름에 벌어놓은 거 순식간에 다 까먹고 2등이라고.”
남자가 계속해서 구박을 이어가자 여자의 기분이 상한다.
“어쩌라고요. 여름 나면서 나이 많은 선수들 경기력이 바닥났는데. 그러면 돔구장이라도 지어주든가.”
그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비업무용 부동산의 유지비에 좌절했던 남자가 돔구장 짓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을 해야 하나 잠깐 생각을 했다가 얼른 머릿속에서 지운다.
지금도 대형 토목 사업을 하나 해치워야 해서 들어갈 돈이 많은데 여기까진 여력이 부족하다. 지금은 참을 때다.
여자와 남자가 쓸데없이 랩터스 시즌 마무리 전략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을 때 키 큰 남자 둘이 들어온다.
“저기 김소전 아니야? 야! 김. 푸 풋 풋.”
“가만 좀 있어 봐요. 쟤들 저쪽으로 가는데?”
“푸 풋… 아… 짜잖아. 넌 손 안 씻냐?”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고 한 대 맞은 남자가 입을 삐쭉거리면서 여자랑 같이 다정하게 카페로 들어온 남자들을 바라본다.
“야. 쟤는 누구야? 쟤는 박정환이고, 그 옆에 쭈구리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악!”
“조용히 하라고.”
여자한테 발을 밟힌 남자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자를 째려보지만 한마디 더 하면 반대쪽 발도 밟힐 듯한 기운에 입을 다문다.
* * *
훈련장 가까이 있는 카페로 멍청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늦은 시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들어찬 카페. 저쪽 한구석에 시커먼 이상한 사람들이 잠깐 눈길을 뺏었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저쪽 구석에 앉아 있는 XXX 둘을 해치워야 한다.
“소전아, 자주 본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인사도 안 하고, 너 까칠해졌네.”
“난 너 보기 싫은데 왜 자꾸 엮이니. 사장을 데려오랬더니 양아치가 나왔어?”
서로 간의 마음에도 없는 인사치레는 걷어치우고 본론에 들어간다.
“얘한테 뭘 원하세요?”
“뭘 원하는 게 아니고요.”
“넌 조용히 좀 해봐.”
중간에 끼어들려는 친구인지 짐 덩이인지 모르겠는 놈을 박정환이 알아서 치워준다. 이건 고맙네.
“소전아. 나도 뭘 원하는 게 아니다. 나도 얘들 도와주려는 거야.”
“뭘 어떻게 도와주시는 건데요?”
“여기 선원이 어머니가 아프대. 당장 5천 정도가 필요한데 가진 게 2천밖에 없다지 않냐? 그래서 같이 머리를 좀 맞댄 거야. 다른 건 없어.”
랩터스 출신을 털어서 멍청하기로는 세 손가락에 들어가시는 분이 무슨 머리를 맞대.
“그래서요? 연봉 3천짜리에 3천이라도 달라는 거예요?”
마음이 급하다 보니 앞뒤 안 가리고 말이 막 나간다. 내가 계속 쏘아붙이자 기분이 상했는지 박정환의 목소리도 점차 사나워진다.
“너도 말 이상하게 한다. 지금 내가 돈을 받겠다고 하냐? 나 아니라고. 경준이 친구가 돈이 필요해서 돈을 구해야 한다잖아. 나는 도와준다고.”
“어떻게요?”
“해외 사이트 들어가서 야구에 배팅 좀 하면 돈이 돼. 더군다나 경준이는 내부 자료도 들고 있잖아. 얼마나 훌륭하냐? 선수들 컨디션만 알아도 승률이 두 배는 뛰는 거야.”
이 꼴통 XX. 이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는데.
“그거면 돼요? 랩터스 트레이닝팀 리포트가 필요한 거예요?”
딱 잘라서 들어가자 자신만만하던 박정환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쉽게 나올 줄 몰랐나 보다.
“트레이닝 리포트만 있으면 쟤가 3천 버냐고요? 확실히 벌어요?”
“그럼! 확실히 벌지. 확실하고말고.”
“줄게요.”
“줄게… 뭐? 준다고?”
“달라면서요.”
“정말?”
이 XX들, 준다 그래도 안 믿고 그래.
“그, 그래……. 소전이 화끈하네. 하하하. 성원아, 소전이가 이렇게 화끈하다. 형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라도 해! 멀뚱멀뚱 보고만 있지 말고.”
“혀, 형님 감사합니다.”
그 표정이 진짜 고맙긴 한 거냐? 난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지?
“고맙긴. 확실히 된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뭘. 아, 근데 3천을 벌려면 얼마나 투자해야 해?”
말을 하면서 슬쩍 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형님. 그게 그때그때 다릅니다. 저희가 배당을 조절하는데 이닝별, 상황별로 나눠서…….”
“그만해!”
갑자기 멍청이 친구의 입을 막는 양아치. 그래, 너희 느낌이 딱 왔어. 토토로 돈 벌었다는 XX는 내가 본 적이 없다.
“시간이 벌써 12시가 다 돼가는데? 선배님 제가 이렇게 통 크게 나오면 술이라도 한잔 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화기에서 녹음을 누르고 테이블에 엎어놓으면서 술을 사라고 꼬셨다.
“술? 너 술 안 먹잖아?”
“오늘은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준이도 마음의 짐을 덜고 여기 친구도 어머니 병원비 만들고 해야 하는데 기분 좋게 한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빤히 바라보는 박정환이 웃기 시작한다.
“흐흐흐. 너 이 XX. 이거 얌전한 줄 알았더니 뒤에서 호박씨는 다 까고 있었어. 기다려봐. 그때 못 논 거까지 오늘 다 놀자. 흐흐흐.”
그러더니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한다.
“선배님.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요. 그때처럼 모르는 사람 같이 마시는 거 부담스러워서요. 우리끼리만 조용히 마시죠.”
“사내 넷이 조용히는 무슨. 기다려. 내가 좋은 데 데려가 줄게.”
어디론가 정신없이 전화를 걸고 있는 양아치를 놔두고 옆에 어리버리 승리에 취해 있는 꼬맹이에게 말을 걸었다.
“확실한 거지?”
“형님, 확실합니다.”
“그럼 내 돈도 좀 더 넣어도 되겠냐?”
“네? 형님 돈도요?”
“왜? 안 돼?”
“아니. 그게 아니고… 그건 아닌데요.”
“확실하다며?”
“확실은 한데요…….”
이 XX, 연기력 꽝이네
데려온 엑스트라가 연기력 부족으로 탈탈 털리고 있자 전화를 걸고 있던 주연 배우가 급하게 끼어든다.
“무슨 일 얘기를 여기서 하고 그래. 가서 하자. 잠깐만 기다려봐. 차 올 거야.”
뭔 술을 얼마나 쳐드시려고 차까지 따라와.
“선배님. 그거 벤츠 키 아니에요? 차 아무 데나 두고 다니면 불안하지 않으세요?”
“하하하. 차야 또 사면 되지. 너 같은 동생하고 술 먹는 게 중요하지. 차 얼마나 한다고.”
“얼만데요?”
“그래 봐야 한 장이야. 나한텐 네가 그거보다 중요하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한 장보다 더 비싼 사람이라는 말이지?
“오… 그럼 얘는요? 경준이는요?”
“흐흐흐. 소전이, 이런 식으로 질투를 하는 줄은 몰랐네. 우리 경준이도 소전이 반만큼은 중요하지. 경준이도 몇 번 술같이 먹었더니 애가 진국이더라. 흐흐흐.”
이 XX. 밤마다 친구랑만 술 먹었다고 그러더니 이 XX랑 만나고 다녔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놓든가 해야지.
“선배님, 계산이 확실하신 분이었네요. 그럼 저 친구는요?”
“이 자식? 선원이는 경준이 반. 됐냐? 네가 최고다, 이 자식아. 너 보기보다 질투심 장난 아니네!”
그러게요. 나도 내가 질투심이 있는지 몰랐는데 오늘 좀 알게 되네요.
“그럼 대충 내가 1억보다 가치 있다는 거지요?”
“너는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으면 10억 아니 100억을 줘도 안 바꾸지. 하하하.”
저 단순한 XX. 표정을 보니 진짜 날 좋아하는 표정인데… 에효, 이젠 좀 무섭다.
“그럼 대충 경준이는 5천, 쟤는 2천5백은 된다는 얘기네요?”
“야!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는 거 아니야.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지. 너희 같은 동생들은 어디서 생기냐. 난 돈보다 너희가 중요하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지요. 저도 선배님 항상 색안경 끼고 봐서 죄송하네요. 이렇게 화끈한 선밴 줄 몰랐어요.”
“이 XX. 밥맛없고 재수 없는 XX줄 알았더니 아니네. 너 오늘 나랑 끝까지 가자. 하하하.”
그래, 끝까지 가보자.
“선배님.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쉽게 하면 안 됩니까? 저 돌아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그렇지. 소전이 직진이지. 뭘 쉽게 해줄까?”
“리포트 따위 필요 없잖아요. 제가 1번 타자예요. 뭘 하면 됩니까?”
내 한마디에 순간 두 쓰레기의 얼굴이 굳는다.
“돌아가려면 돌아서 가시고요. 그래 봐야 시간만 더 걸리니까 그러는 거예요. 쉽게 갑시다. 내가 1번 나가서 뭘 하면 됩니까?”
쫄따구의 입이 움찔움찔하지만 그런 건 무시하고 양아치의 입만 노려본다.
“소전아. 그거면 된다.”
“어차피 그런 거로 돈 안 되잖아요. 쉽게 해요. 나한테 뭘 바라는지. 그래 봐야 경기 수만 줄어들어요.”
앞에 있는 커피를 쪽 빨면서 등받이로 등을 눕히면서 얘기를 하자 이제는 저쪽이 내 쪽으로 끌려들어 온다.
아쉬운 쪽이 다가오는 거지. 칫, 꼭 이렇게 힘들게 해요.
“사실은…….”
너희들이 하는 게 그렇지 뭐. 개XX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