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84화 (84/204)
  • 84화. 폭풍 전야

    - 스미스! 잘 맞은 타구 높이 뜹니다! 중견수! 쫓아갑니다!

    반성해야 한다. 내가 외국인에 대해 너무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어. 문제가 있는 건 외국인이 아니었어. 바로 저 XX였어…….

    - 중견수 뒤로 흘립니다! 장타 코스! 2루 주자 홈인~ 타자 주자 2루 돌아 3루까지~ 가지 않습니다.

    - 노경준 선수, 무모했어요. 잡을 수 없는 타구였거든요. 저걸 다이빙을 하네요. 어림없었거든요.

    - 오늘 노경준 수비에서 계속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 신인 선수가 이번 시즌 내내 출장을 하다 보니 이제 집중력이 떨어지나요. 평소 같지 않습니다.

    저 멍청이. 이게 다 첫발이다. 첫발을 반대쪽으로 떼고 나서 공을 보고 빙 돌아서 공을 쫓았다. 첫발만 잘 뗐으면 이지 플라이가 될 걸 이 모양을 만들었다.

    차라리 원 바운드로 잡든지. 되지도 않는 걸 잡겠다고 저 똥차한테 2루타를 만들어줬어. 아니지, 똥차가 아니었으면 2루가 아니라 3루타다.

    - 쓰리 볼. 투수 급격히 흔들립니다.

    - 투수들이 말이죠. 참 예민해요. 경기 상황에 따라서 제구가 잡혔다 안 잡혔다고 하거든요. 오스틴 입장에서는 연속으로 2루타를 맞았는데 둘 다 찜찜하거든요. 이러면 투수가 흔들릴 수 있어요.

    아니다. 내 선입견은 맞는 거였어. KBO에서 던지는 외국인이라면 완벽할 리가 없지. 구위가 쩔면 멘탈이 쓰레기여야지…….

    - 볼넷. 폭스 주자 1, 2루. 역전 주자가 나갑니다.

    - 투수 코치 나오죠. 잘 나왔어요. 잠깐 끊어주고 가는 게 좋아요.

    투수 코치가 웃는 얼굴로 마운드에 오르지만, 어깨가 산처럼 올라간 게 화난 게 틀림없다. 답답한 마음에 외야를 바라보니 우리 팀 멍청이가 고개를 떨구고 자책을 하고 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그래도 이쯤 했으면 술 깼을 테니 이제부터라도 잘하자.

    - 오스틴, 원 아웃 주자 1, 2루에서 김인경을 상대합니다.

    - 차분히 해야 해요. 공 좋거든요. 가지고 있는 공을 욕심부리지 않고 크게 보고 던지면 돼요.

    오늘 날이다. 뭔 놈의 공이 죄다 센터로 뜨냐.

    - 김인경이 친 타구, 높이 떴습니다. 중견수 뒤로, 뒤로 물러나면서 낙구 위치를 잡습니다.

    저, 저… 너 뭐 하냐?

    - 뒤로… 어… 어디로 가나요! 옆으로 뒤로… 중견수 키 넘어갑니다. 주자들 이제야 뛰기 시작합니다.

    - 노경준 선수, 정신 차려야 해요. 아직도 공을 못 찾고 있어요.

    이건 뭐… 놓칠 걸 놓쳐야지. 슬라이스 걸려서 날아가는 코너 쪽 뜬 타구도 아니고 센터로 높이 뜬 타구에 만세를 부르면 어쩌라는 거야.

    - 노경준 선수, 아직도 공을 못 찾습니다.

    - 다른 선수들이 알려줘야 해요. 좌우에서 뛰어오기도 너무 멀거든요.

    “오른쪽! 오른쪽 뒤! 뒤라고!”

    중견수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면서 소리를 치지만 저 멍청이는 완전히 멘탈이 붕괴됐다. 전혀 듣고 잊지를 않고 자기 발밑만 찾아 헤맨다.

    - 2루 주자, 1루 주자 홈으로 들어오고 타자 2루 지나 3루~ 3루까지!

    - 노경준 선수, 공이 햇빛에 들어갔나요? 놓칠 수가 없는 공인데 놓쳤어요.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가 나왔어요.

    김인경 선배가 홈으로 안 들어와 준 게 다행이다. 들어갔어도 살았을 것 같은데. 아, 열 받네.

    여전히 정줄 놓고 있는 경준이를 보니 또다시 화가 끓어오른다.

    “뭐 하냐? 집중 안 해?”

    “네… 형.”

    “대답만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리라고!”

    “네…….”

    하, 완전히 갔네.

    나도 모르게 덕아웃을 바라봤다. 당황한 내 얼굴이 덕아웃에서도 보였는지 감독이 운동장으로 걸어 나온다.

    - 랩터스 수비 교체 있습니다. 노경준 나오고 박동수 들어갑니다.

    - 김민중 감독이 에러를 해도 이닝을 마치고 바꿔주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바로 바꾸네요.

    - 문책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문책도 있고 어린 선수가 더 무너지기 전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바꾸는 의미도 있을 거예요.

    고개를 푹 숙이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경준이를 보는 마음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닝도 다 못 마치고 쫓겨나는 수비수의 마음만 할까. 들어가는 경준이의 엉덩이를 툭 쳐주고 다시 수비 위치를 잡으러 내야로 돌아간다.

    - 다시 한번 잘 맞은 타구!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 펜스를 직접 맞춥니다.

    - 볼넷! 또다시 베이스가 채워집니다.

    - 안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 볼넷! 볼넷입니다.

    - 투수 바뀝니다. 선발 오스틴 내려가고 김이문 올라옵니다.

    1회인데 공도 안 오고 이닝이 끝나지도 않는다. 어떻게 공이 내야보다 외야에 많이 떨어지냐고!

    - 2:13 최하위 폭스가 랩터스를 잡으면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

    - 소닉스가 오늘 경기 이겼죠. 순위가 바꿨어요. 내일부터 확장 엔트리인데 랩터스, 준비 잘해야겠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락커 분위기가 엉망이다. 시즌이 막판으로 가고 있는데 1위에서 쫓겨났다. 락커의 분위기가 서울로 향하는 버스까지 이어진다. 다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선수들 버스가 적막하다.

    한 번 기세가 꺾인 랩터스가 서울에 올라와서도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한다. 시즌 막바지로 가면서 성적이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간신히 5할 승부를 붙들고 있다.

    - 1위를 탈환해야 하는 랩터스와 한 계단이라도 순위를 올려야 하는 드래곤스와의 경기가 잠실에서 펼쳐집니다.

    - 랩터스. 소닉스와 자리바꿈을 하자 순식간에 2경기 차이가 났어요. 더 벌어지면 쫓아가기 힘들 수도 있어요.

    - 1위를 되찾아야 하는 사명을 띠고 최선영이 랩터스의 마운드를 지킵니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 9등 팀이랑 경기하는데 질 수는 없다. 무조건 이긴다. 무조건.

    - 1:3 박요훈이 마지막을 잘 막아내면서 승리를 지켜냅니다.

    - 오늘 랩터스, 이겼지만 경기 내용은 좋지 않았어요. 이제 시즌 마지막이거든요.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누가 뭐래도 이겼다. 어쨌든 이겼으면 됐지. 이긴 게 어디냐. 항상 얘기하지만 이기면 안 힘들다.

    언제나처럼 경기 후 훈련장으로 내려가는데 누가 부른다.

    “코치님.”

    “잠깐 얘기 좀 하자.”

    수비 코치가 왜…….

    경준이랑 같이 훈련장으로 내려가다가 경준이만 먼저 보내고 코치님을 따라 복도 한쪽으로 나선다.

    “소전아. 아까 6회에 불규칙 바운드 아니었냐?”

    “좀 튀긴 했는데 잡을 만했습니다.”

    “좀 튀긴. 너니까 잡았지.”

    뭐… 맞는 말 하시기는 하는데 갑자기 이러니까 민망하잖아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요즘은 원정 갈 때 외야 글러브는 안 가지고 다니지?”

    외야 글러브… 그걸 왜……. 나 올해는 내야로만, 그것도 유격수로만 나오고 있는데…….

    “만져줘야 하니까 가지고는 다니는데……. 저 외야로 나가나요?”

    “지독한 놈. 이번 시즌에 외야로 나간 적도 없는데 그걸 가지고 다녀?”

    “저 올스타전 때 외야 나갔잖아요. 전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를 기특하게 보는 수비 코치. 그런데 외야는 왜요?

    “수비도 가능하겠어?”

    가능하다 뿐이겠습니까? 내가 수비하고 주루로 프로에서 굴러먹던 놈인데요.

    “누가 아픈가요?”

    “아픈 건 아니고 경준이가 후반기 들어오면서 큰 실수가 너무 많이 나온다. 오늘도 이겼으니 망정이지, 선취점 줄 때도 집중 안 하다 놓쳤잖아.”

    하긴요. 얘 요즘 나사가 좀 빠졌어요…….

    “가능하면 제가 안 나가도록 경준이 나사 확실히 조여놓겠습니다.”

    “1년 차다. 이제 퍼질 때도 됐어. 살살 해라.”

    전 3년 차입니다만……. 그리고 저 1년 차 때는 개처럼 굴렀는데요. 살살 굴리는 건 억울해서 못 봅니다.

    코치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훈련장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찾는 그 아이가 없다. 이 XX, 어디 간 거야?

    화장실이라도 갔나? 우선 나부터 한 박스만 치자.

    이게 문제다. 아무 생각 없이 배팅 머신의 공을 치니까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도 모른다. 한 박스를 다치고 닭장에서 빠져나와 물을 마시고 습관처럼 옆방을 바라보는데… 비었다.

    아… 경준이 아까부터 없었지. 이 XX, 어디 간 거야.

    전화기를 찾아 들고 탈옥범에게 전화를 건다.

    - 네, 형.

    “어디냐?”

    - 훈련장이요.

    “야! 내가 지금 훈련장인데! 이게 구라를.”

    - 저 훈련장 맞는데요.

    이게 이제 나를 놀리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오늘 푸닥거리 한번 해야겠다.

    이놈을 잡으러 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데 이게 뭐야?

    “아오, 깜짝이야! 놀랐잖아. 왔으면 인기척을 해야지.”

    “저 계속 얘기하는데 형이 전화기에 대고 얘기하고 있었어요.”

    귀신 같은 놈. 소리도 없이 뒤에서 떠들다니.

    “어디 갔다 왔어?”

    “친구가 와서요. 좀 만나고 왔어요.”

    “지금 네가 친구를 만날 때냐? 정신이 없어?”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형한테 할 말이 있어요.”

    뭐야? 그렇게 진지한 표정까지 하고? 나 너한테 잘못한 거 없다.

    어이가 없고 참담하다. 이놈은 생각이 없는 걸까 멍청한 걸까? 아니면 설마… 알고 이러나? 알고 이러면 진짜 쓰레기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두 발짝만 가면 배트가 있는데 이럴 땐 패도 정상 참작되는 거 아닌가?

    언제부턴가 혼자 나가 친구를 만나고 오는 횟수가 늘어난 후배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밤에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 경기력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1년 차가 체력이 달려서 그럴 때 됐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소리. 나랑 같이 시즌을 준비하고 시즌 때도 계속 회복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럴 리가 없다.

    그렇게 두고 몰래 싸돌아다니던 후배가 갑자기 나타나 하는 얘기가 돈을 벌어야겠다였다.

    “다시 얘기해 보자. 돈이 왜 필요하다고?”

    “그때 같이 본 선원이요. 선원이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해요. 병원비도 없는데 전셋값도 올려달란다네요. 얘 불쌍해서 어쩌죠?”

    걔가 불쌍하냐? 네가 불쌍하지.

    “얼마가 필요하다고?”

    “우선 3천이요. 그리고 수술하는 거 봐서 병원비는 더 들어요.”

    “그래. 친구네가 힘든 건 알겠다. 그런데 너 연봉 3천 아니냐? 3천 버는 애한테 3천을 빌려달라고? 너 집에 돈 좀 있냐?”

    “형,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도 야구 열심히 해야 한다니까요.”

    “그런데 왜 야구를 안 해?”

    “친구가 힘들어해서 같이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우선 사람은 살려야지요.”

    그러다 너 먼저 죽는다.

    “그래서 방법은 찾았고?”

    “없어요. 아니, 하나 있기는 한데 그건 못하는 거라서요.”

    응? 할 수가 없다고?

    “멍청이 둘이서 무슨 생각을 했길래? 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했어?”

    “저는 못 하지만 얘는 토토를 할 수 있잖아요. 우리 팀 전력분석 자료를 가지고 얘를 주면 토토 맞출 확률이 높아지니까 토토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팀 자료가 경기 직전에도 바뀌고…….”

    뭔가를 더 얘기하려는 경준이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방심하다 한 방 맞은 경준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미쳤냐?”

    “형. 왜 때려요?”

    이 XX는 매가 약이다. 빳따로 패야 하는데.

    “넌 좀 맞자.”

    “형. 저도 처음엔 형처럼 그랬는데 이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하는 게 아니고 저는 그냥 자료만…….”

    내가 이 XX를 데리고 여태 개고생한 거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애가 멍청해도 속은 멀쩡한 줄 알았는데 속까지 곪았어…….

    “됐다. 여기까지 하자. 빨리 손절하게 해줘서 고맙다.”

    “형. 진짜 그런 게 아니고요. 제가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뭐 이득 보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얘는 어차피 해외 업체 이용할 거라고요. 형, 진짜 이상한 거 아니에요.”

    밤에 자꾸 쏘다니더니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왔어.

    “이상한 거 아니라고? 너 죽어라 야구해서 얼마 버냐? 그런데 뭐? 토토 해서 삼천을 벌어? 그것도 해외에서? 넌 구단에서 교육할 때 뭘 배운 거야!”

    이 XX를 그냥 손 절해야 하는데 하도 긁어대서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랑곳없이 제 할 말을 쏟아내는 쓰레기

    “형. 저도 처음엔 형처럼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아주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무슨 토토를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저는 친구 잘되라고 알려만 주는 거예요.”

    어떤 XX가 고린지 그놈을 잡아야 한다.

    “지금 불러. 네 친구 부르고 내가 관심 있다고, 사장 나오라 해. 사장 나오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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