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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78화 (78/204)
  • 78화. 약속

    * * *

    “조 단장. 문제해결 해야지?”

    “뭘요?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스폰서 등에 칼 꽂는 게 틀린 말 한 게 아니야?”

    “그럼 차를 잘 만들던가.”

    “회장님이 나 호적에서 파버리겠대! 어쩔 거야!”

    “다 큰 어른이 왜 집안일을 회사로 끌고 와요. 알아서 해요.”

    여자가 남자의 집안 문제에 대해 선을 긋자 남자가 방방 뛰기 시작한다.

    “재벌가에 집안일과 회사 일이 어딨어! 재벌가에 일어나는 일은 다 공적인 건 거 몰라? 모르겠고 책임져. 대한 자동차에서 스폰서 끊겠다니까 해결해.”

    “정말? 그래도 돼요?”

    “야! 자동차 스폰서가 1년에 30억이야! 이거 어디서 만들어올 거야!”

    남자가 치사하게 돈 문제를 꺼내 들자 능력 있는 여자가 콧방귀도 안 뀌고는 받아친다.

    “자동차가 대한 자동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러실까? 대한 자동차 스폰서 끊으면 바로 미국 전기차 회사들 알아보죠, 뭐. 스폰서비는 비트코인으로 받을까요? 얼마 받으면 되겠어요? 이건 구단주님 전문분야 아니에요?”

    “야! 지금 장난해! 대한 랩터스가 대한 자동차 말고 다른 회사 스폰을 받는 게 말이 돼!”

    “안 될 건 또 뭐야? 독립 법인인데 알아서 살아야지. 정부에서도 내부 거래하지 말라는데 얼마나 좋아요? 싫으면 계속 스폰하시든가. 맘대로 하라고 해요.”

    돈과 집안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남녀가 머리 아픈 이야기는 넘어가고 생산적인 이야기에 들어간다.

    “내년에 예산 줄면 줄어든 대로 운영할 생각하고, 내 뒤통수치고 폭스로 토낀 박수훈 감독, 계속 이대로 놔둘 거야?”

    “예산만 줄여봐, 2군 경기장부터 팔아버릴 거니까. 그리고 박수훈이는 언제라도 터질 거예요.”

    “그게 언젠데?”

    “나도 모르지요. 전일 신문에서 독점 잡고 정권에서 사고 쳤을 때 무마용으로 터트리겠대요.”

    “하여간 기레기 XX들, 하는 게 그따위지.”

    “그따위지. 근데 정권에서 뭐 터진대? 급한 거는 들은 게 없는데?”

    “나도 몰라요. 그냥 기다리래요.”

    “얘들 뭐 없는 것 같은데.”

    “어쩌겠어요. 기자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 * *

    이럴 줄 알았으면 올스타전 어떻게 해서든 빠지는 거였는데……. 괜히 이벤트 경기 나갔다가 올해 먹을 욕은 다 먹었다.

    인터뷰에서 내가 뭐 없는 얘기 한 것도 아닌데 훈련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미쳤냐고 한마디씩 한다.

    됐다. 차 안 탄다. 그냥 계속 버스 타고 다닐 거다.

    더러운 기분을 떨치려고 다시 닭장에 틀어박혔다. 기분이 풀릴 때까지 배트를 돌리고 또 돌린다.

    “김소전~”

    한참 배트를 돌리고 있는데 뒤에서 타격 코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시 배팅볼을 때린다.

    “소전아~ 점심 먹었어? 밥 먹자~”

    “먹었습니다.”

    경준이도 아니고 코치님이랑 밥 먹으면 체해요. 사실 경준이도 불편하다고요. 혼밥이 편해요.

    “언제 먹었어? 나 너 밥 먹여야 한다고 하고 집에서 도망 나왔는데. 에잇, 나도 햄버거나 시켜야겠다. 너도 먹을래?”

    “어… 어디서 시키실 건데요?”

    “엄마손길?”

    “거긴 치킨집이잖아요.”

    “치킨 먹을까?”

    “치킨은 두 마리 치킨이 진리 아닐까요?”

    “두 마리 시킬까?”

    “제가 시키겠습니다.”

    밥 생각은 없었는데 닭 생각은 간절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치맥인데……. 시즌 중엔 술을 못 먹으니까 치킨을 많이 먹으면 된다.

    “랩터스 훈련장으로 두 마리 치킨 두 개요. 네. 결제 카드요. 네.”

    내가 주문을 하는데 코치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스친다.

    “소전아. 두 마리 두 개? 그럼 네 마리 시킨 거니?”

    “일인 일 닭이니까요.”

    “두 마리 치킨이잖아.”

    “코치님! 두 명이니까 두 마리를 시켜야 하잖아요. 전 두 마리를 시켰는데 원 플러스 원으로 두 마리를 더 주는 거니까 두 마리만 시킨 게 맞아요.”

    이런 기본적인 걸 물어보는 코치가 어이없어 바라보다가 순간 왜 이런지 이유를 찾아냈다.

    “코치님, 혹시 남을까 봐 그러세요? 에이, 제가 더 먹을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치느님 앞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어.

    “소전아, 너 입 짧지 않았냐?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먹은 거야?”

    왜 자꾸 나 먹는 거에 태클을 걸려고 하지? 치느님을 향한 내 진심을 폄훼하려는 코치에게 화가 나려는데 내 신앙을 증명할 또 다른 치느님의 신도가 등장한다.

    “코치님. 소전이 형 요즘 엄청나게 먹어요. 벌크업 시작한다고 엄청나게 먹어요.”

    “넌 언제 왔어?”

    올스타전 다음날. 나만 있던 훈련장에 경준이까지 등장하자 타격 코치가 당황해한다.

    “지금 왔습니다. 코치님, 저는 치킨 안 사주시나요?”

    “너도 두 마리냐?”

    “저는 한 마리 먹는데 한 마리 더 주더라고요. 꼭 두 마리를 먹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내 것 나눠 먹자.”

    코치의 X수작에 경준이가 펄쩍 뛴다.

    “코치님! 사람이 어떻게 치킨을 나눠 먹습니까! 그런 건 치킨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저 아이를 예의 없이 키우지 않았어. 뿌듯하다.

    뿌듯한 마음에 전화를 다시 들었다.

    “랩터스 훈련장인데요. 두 마리 세트 하나 더 해주세요. 아이고, 서비스는 뭘… 치즈볼 대신 한 마리 안 되나요? 추가 요금? 드려야죠. 콜라? 저 탄산 안 먹어요. 그것도 치킨으로 안 돼요? 해주신다고요? 사장님! 사랑합니다!”

    내 주문 전화를 지켜보던 코치의 신앙이 부족한 듯하여 치느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지금 세 명이 7마리를 시킨 거냐?”

    “아니요. 치즈볼 대신 한 마리 콜라 대신 한 마리 그래서 여덟이요.”

    “그게 들어가?”

    “사람 입이 무서워요. 있으면 다 먹더라고요. 저 입 짧다고 욕먹을 때 토하면서 먹었더니 되더라고요. 다 들어갑니다.”

    “경준아, 너도 다 들어가냐?”

    “코치님! 치킨은 간식이잖아요. 간식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미친놈들이구나…….”

    3명이서 치킨 8마리. 딱 좋다. 간식으로 이 정도는 돼야지.

    “너희들 그걸 다 먹는다.”

    “저희 항상 이렇게 먹는데요.”

    “콜라도 없이 안 느끼하냐?”

    “느끼하면 초코맛 보충제랑 같이 먹으면 딱 맞습니다. 콜라 없어도 됩니다.”

    내가 숨겨왔던 비기를 얘기하자 다리를 입 안에서 해체하던 경준이가 맞장구를 쳐준다.

    “맞습니다. 단백질에 단백질이라 근육도 두 배로 더 붙고 좋습니다.”

    입에 닭 껍질을 덕지덕지 붙이고 얘기하는 경준이를 보며 코치가 화를 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치킨은 껍질 때문에 몸에 좋지도 않아!”

    이건 선 넘은 거지?

    “코치님! 닭고기는 다 똑같은 닭고깁니다. 가슴살도 껍데기도 다 똑같은 닭고기란 말입니다!”

    “이건 치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사과하십시오!”

    광신도들의 강압에 굴복한 어린양이 퍽퍽 살과 날개를 바꾸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한바탕 간식시간이 끝나고 슬슬 본론에 들어간다.

    “코치님, 쉬는 날 왜 자꾸 나오십니까?”

    “너도 애 낳고 살아봐. 내 마음 다 알게 된다.”

    “코치님. 애처가로 소문나있는데 아니었나요?”

    “이 XX야! 너도 살아보라고! 살아봐야 내 마음을 알아!”

    “그러니까 어떤 마음인데요?”

    “그냥 해보라고! 해봐야 안다고!”

    도무지 이해를 못 하는 연애 고X 둘을 놓고 화를 내던 코치가 얘들하고 이런 얘기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을 하고는 세상 쓸모없는 야구 얘기를 시작한다.

    “소전아. 너 올스타전에서 홈런 친 거 다 생각나냐?”

    “네. 올스타전이라 그런지 다 승부해 주더라고요.”

    “그중에 높은 건 몇 개냐?”

    “음… 가운데쯤 걸친 건 좀 있고…….”

    “높은 건 없지?”

    “아주 높은 건 없지만 그래도 애매한 건 있었어요.”

    “시즌 중엔 그런 공 던져줄 것 같냐? 안 던질 것 같냐?”

    “실투야 언제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린놈이 한마디도 안 지고 따박따박 말대답하자 코치가 점점 기가 빨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너 어제 꼬맹이가 인터뷰한 거 들었지?”

    “네.”

    “뭐라던?”

    “높은 거 치지 말라던데요.”

    “그래서 네 생각은?”

    응? 생각? 뭐 애들 생각까지 내가 생각해야 해. 그냥 어린애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었겠지.

    “제 타격 폼에서 높은 쪽에 힘을 주기 힘든 건 아는데, 그렇다고 보이는 걸 안 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 세게 치겠습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옆에 있던 경준이도 고개를 끄덕이면 동조를 한다.

    역시 사람 눈은 다 똑같다.

    “소전아. 너 지금까지 몸쪽 높은 거쳐서 결과가 좋았어?”

    “결과가 안 좋다고 보이는 걸 안 칠 순 없지 않습니까.”

    “안 쳐야지.”

    “네? 안 친다고요?”

    야구 선수가 공을 쳐야지, 왜 안 쳐?

    “소전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네가 높은 공은 버렸으면 좋겠다.”

    “코치님, 보이는 걸 어떻게 안쳐요. 강하게 때리지 못해서 문제인 건데 그건 연습해서 보완하겠습니다.”

    코치의 조언에 단호히 선수가 단호히 거부의 의사를 밝히자 코치가 재차 설득에 들어간다.

    “소전아. 전력팀에서 분석 자료 다 봤지? 네 폼으로 뽀록이 아니고는 몸쪽 높은 거 잘 치기 힘들어. 볼 카운트 몰렸을 때 들어오는 공은 커트해야겠지만 빠지는 건 버리는 게 결과가 훨씬 좋다.”

    그게 내 맘대로 됐으면 벌써 했지. 내가 중심 이동하면서 치는지라 눈에 보이면 몸이 출발한다고요. 배트가 발동이 걸리면 쳐야지 그걸 어찌 참나요?

    “코치님. 눈에 보이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그게 됐으면 제가 삼진을 볼넷보다 3배나 더 당하겠습니까?”

    “음… 참을 수가 없다……. 참을 수가…….”

    선수의 솔직한 대답에 코치가 방법을 고심하시기 시작한다. 그래 봐야 특별한 방법이 나오기는 힘들 터. 고민의 시간만 길어진다.

    “끝. 소전이 형! 형 목뼈까지 클리어했어요~”

    “야! 목은 내가 아껴둔 거야! 내 걸 네가 먹으면 반칙이지!”

    “형은 그게 문제에요. 맛있는 건 먼저 먹어야지, 왜 끝까지 남겨둬요? 여기 치울게요~”

    “치우긴 뭘 치워! 너 한 마리 더 시켜! 나 목 먹어야 닭 먹은 기분이 든다고!”

    닭에 미친 환자 둘이 티격태격하는 걸 본 코치가 눈을 번뜩인다.

    “소전아. 몸쪽 높은 공 하나 참을 때마다 닭 한 마리.”

    해체된 목뼈를 들고 쌈박질을 하던 치킨의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싸움을 멈추고 코치에게 다가선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소전이가 몸쪽 높은 공 참아서 볼넷을 하나 얻을 때마다 치킨 한 마리.”

    코치가 다시 한번 조건을 내걸자 치킨의 베드로가 광분하기 시작한다.

    “코치님! 아까는 볼 하나당 치킨 한 마리라고 했잖습니까!”

    “네가 잘못 들었다. 볼 하나가 볼넷이 되어 참을 때마다 한 마리다.”

    “치킨에 맹세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의심하지 마라.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볼넷 하나에 치킨입니다. 이런 약속은 신성한 것입니다.”

    “저 아이를 시켜 약속을 남기자꾸나.”

    치킨을 내리는 자와 치킨을 따르는 자의 약속을 치킨을 믿는 자가 핸드폰에 녹음하여 기록으로 남기니 이게 랩터스 최초의 복음서가 되었다.

    “경준아, 녹음 잘 됐지? 이제부터 훈련을 시작할까?”

    코치의 말에 녹음을 마친 경준이가 눈을 크게 뜨고 코치를 바라본다.

    “코치님. 소전이 형은 치킨으로 내기하시면서 저하고는 왜 안 하세요? 저도 야구 잘할 수 있습니다.! 저한테도 미션을 내주세요!”

    결국 랩터스의 타격 코치가 1번 타자와는 높은 공 볼넷, 2번 타자와는 낮은 공 볼넷에 대해 치킨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약속으로 타격 코치가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 자리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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