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전설의 완성
- 난타전이 벌어지는 2027 올스타전.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 드림 올스타는 타선이 골고루 터지면서 8득점. 나눔은 김소전의 홈런으로만 7점을 만들고 있죠.
- 드림 올스타의 점수가 더 날 수 있었는데 외야의 박성례와 김소전 2인 수비가 생각보다 견고했습니다.
- 보면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생각보다는 잘 막아주고 있어요. 그라운드볼 유도하는 투수들이 나왔을 때 제한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독 XXX. 올스타전에 쉬지도 못하고 나온 선수를 이렇게 막 굴리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 저 넓은 외야를 둘이서 해결하라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 박성례 좌중간 타구를 잡아내며 쓰리 아웃. 드림 올스타의 7회 초 공격이 마무리됩니다.
- 박성례의 재발견이네요. 박성례가 팀에서 수비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 오늘 경기로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쉬워 보이지만 뒤로 뛰면서 잡아내는 공이거든요. 안타 한두 개로 묻힐 수비가 아니네요.
외야수가 3명인 것에 너무 감사하다. 둘이서 해보니 진짜 죽을 맛이다. 공이 반대쪽으로 날아가도 백업하러 한 번에 5~60미터씩 뛰어가야 한다. 혹시라도 감독이 후반기에 이따위 짓 하자고 하면 배 째라고 버텨야겠다.
백업하러 간 김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박성례 선배와 같이 덕아웃으로 뛰어가면 칭찬을 건넨다.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나이스 캐치였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는 중견수 포지션을 달고 있는 좌중수.
“FA 돼도 랩터스는 가면 안 되겠다. 랩터스 잘못 갔다간 외야에 진짜 둘이 뛰겠다. 아휴. 숨차.”
“설마요. 저 유격숩니다. 외야수 아닙니다.”
“너 말고 걔도 있잖아. 노경준이. 아니면 어디서 유격수 사 오고 너랑 같이 세울 수도 있고. 아니다. 당장 후반기부터 너랑 노경준이랑 외야서는 거 아니냐? 팀에 가서 영상 좀 돌려봐야겠다.”
이, 이 사람이 어디서 그런 무서운 얘기를 하고 그래……. 그러지 마요. 우리 감독, 진짜 시킬지도 몰라요.
- 7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나눔 올스타의 7회 말 공격이 시작됩니다. 하위 타선부터 시작이죠. 대타 나옵니다. 재규어스의 강동혁입니다.
외야에서 죽어라 뛰다가 덕아웃에 들어와 물 한 잔 마시니 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여기 돔이지. 땡볕에서 이렇게 뛰었으면… 실신이다…….
- 강동혁 안타! 또다시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는 나눔 올스타입니다.
- 잘 치네요. 타격 폼이 너무 예뻐요. 못 칠 수가 없는 폼입니다.
- 나눔 올스타 또다시 대타를 냅니다. 워호스의 최창현 대타로 들어옵니다.
- 박성례 빠지죠. 오늘 박성례 외야에서 두 명으로 버티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좋은 모습 보여주고 나오네요.
- 박성례가 빠지면 외야에 김소전 혼자 남습니다.
- 설마 1인 외야는… 안 하겠죠?
감독이 대타를 내고는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나랑 같이 2인 외야를 하면서 개고생을 하던 박성례 선배가 빠지고 내야수 최창현 선배가 들어간다.
지금 타선에 외야수는 1루에 들어가 있는 오병식인데… 저기는 좌익수비도 만세 부르는 똥차고…….
수비는 누가? 감독은 왜 나를 보고 웃어?
에이… 아니지?
- 최창현 연속 안타! 무사 주자 1, 3루를 만드는 나눔 올스타! 또다시 기회가 이 선수에게 걸립니다.
- 김소전이죠.
- 김소전, 오늘 1회 솔로 홈런, 3회 투런 홈런, 5회 만루 홈런을 터트리면서 팀의 7점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 한 경기 3홈런도 대단한데 그걸 1점 홈런 2점 홈런 만루 홈런을 쳤어요. 더군다나 지금 무사 주자 1, 3루. 여기서 넘기면 쓰리런이에요.
- 이것도 기록이 있을까요? 역대 팀 싸이클링 홈런 기록은 있어도 개인이 기록한 건 없거든요.
- 홈런을 4개 친 기록도 얼마 없는데 싸이클링 홈런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이번에도 홈런을 칠 수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어떤 놈들이 야구가 배 나온 아저씨들이 하는 스포츠라고 입 털고 다녔냐. 이제 7회 말인데 다리가 풀리려고 한다. 오늘 뛰어다녀도 너무 많이 뛰었어. 요양… 요양이 필요하다.
- 타석에 들어서는 김소전. 드림 올스타 여기서 투수를 또 바꿉니다.
- 썬더스의 진승혁이네요. 오늘 김소전 KBO 대표 투수들 전부 상대하네요. 그러면서 3홈런을 쳤어요. 이런 경기를 봅니다.
어이구, 저 아저씨는 왜 연습 투구부터 돌뎅이를 집어던지는 거야. 무섭잖아요, 아저씨. 나 이제 기운도 없다고요.
- 진승혁. 진지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릅니다.
- 진승혁 선수, 대기록을 만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여요. 좋은 승부가 될 것 같습니다.
난 기운이 없는데 투수는 기운이 뻗친다. 살살해 줘요.
- 초구 155! 진승혁 초구부터 155짜리 빠른 공을 찔러넣습니다.
- 빠른 공 좋아하는 김소전도 깜짝 놀랄만한 공이었어요. 바라만 봤어요.
미친… 기운 없다니까 돌뎅이를 던지고 있어. 살살하자고요.
- 타자 타석을 벗어났다 들어옵니다.
- 타자가 해결해야 하죠. 지금 보면 작전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타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 2구. 또다시 스트라이크. 이번엔 크게 헛칩니다.
- 지금은 체인지업이었어요. 타자가 타이밍을 완벽히 뺏겼네요. 진승혁 진지하게 상대를 하고 있어요.
살살하자니까… 살살은커녕 죽자고 달려드네.
다시 한번 타석에서 나와 크게 숨을 쉬고 들어간다.
- 김소전의 배트가 또다시 공을 띄웠습니다.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공 우익수가~ 잡을 수가~ 없습니다~
- 넘어갔어요. 김소전 또 넘겼어요!
- 김소전의 역전 쓰리런! 나눔 올스타 8:7의 경기를 8:10으로 뒤집어 놓습니다.
- 김소전 오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네요.
- 김소전 오늘 경기 4홈런! 4홈런을 싸이클링 홈런으로 장식합니다! KBO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대기록이 오늘 경기에서 나옵니다.
- 한 경기에 홈런 4개 치기도 어려운데 그걸 솔로, 투런, 쓰리런, 그랜드슬램까지 쳤어요. 대단합니다. 김소전.
투수의 눈에 망설임도 없고 도망가겠다는 표정도 없다. 어차피 빠른 볼이 최고 장점인 투수. 진승혁이면 한국 시리즈 7차전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나랑 힘으로 붙을 것이다.
바깥쪽 낮게 깔려 들어오는 빠른 공. 우투수가 던진 타자에게 가장 먼 스트라이크. 이런 공은 어설프게 끌어당기면 충분히 힘을 못 실어서 뜬공으로 물러나기 마련.
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의심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풀스윙으로 부숴버릴 듯 쳐내야 한다.
- 그라운드를 돌아 들어오는 김소전. 나눔 올스타 선수들이 모두 나와 박수를 쳐주고 있습니다.
- 쉽게 볼 수 없는 대기록이 나왔거든요. 축하를 받을 만합니다. 대단한 기록이에요.
야구장에 모든 시간을 멈추고 한 바퀴 도는 기분. 그 기분은 안 느껴보면 모른다. 오늘 그 기분을 네 번이나 느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저들의 만행에 당하기 전까지는…….
- 김소전 선수. 선수단의 축하를 격하게 받습니다. 라정안 선수가 먼저 나서서 물을 뿌려대네요.
- 아직 경기 안 끝났는데 김소전 유니폼이 엉망이 됐어요. 그래도 좋을 거예요. 4홈런에 싸이클링 홈런. 부럽습니다.
이… XXX들아. 이거 올스타전 유니폼이라 여벌도 없는데 다 젖었잖아. 이러고 수비를 어떻게 나가!
- 8회 초, 나눔 올스타의 수비 교체가 많습니다. 외야수 세 명이 모두 바뀝니다.
- 김소전을 빼주네요. 오늘 올스타전인데 많이 뛰었어요.
- 마지막 타석, 5연타석 홈런에 도전을 해볼 만도 하지 않았습니까?
- 이대로 경기 끝나면 9회 말 공격은 없죠. 적당할 때 잘 빼준 것 같아요.
휴… 교체다.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녔더니 기운이 하나도 없다. 차라리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훈련을 하고 말지, 경기장에서 아침부터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하는 올스타전… 너무 힘들다.
- 경기 끝. 나눔 올스타가 드림 올스타를 8:10으로 꺾으며 승리를 가져갑니다.
- 오늘 볼거리가 많았던 경기죠. 폭스 박성례 선수의 엄청난 수비 범위도 볼 수 있었고 드래곤스 박라빈 선수의 2, 3루 연속 도루도 볼 수 있었어요.
-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경기 MVP 결과 아직 발표는 안 됐어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랩터스 김소전, 오늘 4타수 4안타 4홈런, 그 홈런을 싸이클링 홈런으로 만들었어요. 수비에서도 유격수로 선발 출장해서 2회부터는 박성례와 짝을 맞춰 2인 외야의 우익수로 경기를 치렀고요. 둘 중 하나만 해도 MVP 줘야 하는데 둘 다 해냈습니다.
- 바로 발표가 되네요. 2027 KBO 올스타전 MVP 나눔 올스타의 김소전 선수입니다.
하도 지쳐서 덕아웃 뒤에서 축 처져서 뻗어 있는데 경기가 끝났다. 보통은 덕아웃에서 소리도 지르고 응원도 하고 해야 하는데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어 구석에 짱박혀 숨었다.
올스타전은 처음이지만 경기 중에 짱박히는 건 남들은 잘 모르는 내 특수 기술이니만큼 있는 듯 없는 듯 경기 끝까지 잘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가 끝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매니저 형이 다급히 나를 찾는다.
“어디 있었어!”
“감독님 뒤에 있었는데요.”
“야! 선수가 감독님 뒤에 왜 있어!”
“거기가 제일 시원하더라고요.”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매니저 형이 내 손을 덥석 잡고 끌고 나간다.
“따라와.”
“어디요?”
“MVP 시상하고 인터뷰해야지!”
아… 나 오늘 좀 했지……. 하도 피곤해서 정줄 놓고 있었더니… 나 상 받아야 하는구나!
- 2027 올스타전 MVP 김소전 선수입니다. 총재님이 시상해 주고 계십니다.
- 오늘 상 세 번을 받네요. 처음 출전한 올스타전에서 트로피를 싹 쓸어가네요.
- 트로피뿐만 아니라 상금과 부상도 쏠쏠합니다. 벌써 상금으로 400만 원을 받았는데 이번에 부상으로 중형차가 주어집니다.
-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아까 퍼펙트 피처 수상 소감 때 상금으로 중고차 사고 싶다고 했거든요. 이제 그런 걱정 없겠네요. 부상으로 받은 차 타고 다니면 되겠어요.
총재님 얼굴 계속 보니 자꾸 정들 것 같다. 높은 분인데 친하게 지내면 좋을까? 나중에 번호라도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송국 놈들이 나타나 머리에 헤드폰을 씌우더니 다짜고짜 인터뷰를 시킨다.
이놈들아. 말이라도 하고 씌워라. 방송 시간 늦었다고 마구잡이로 머리에 끼워 넣지 말고
- 김소전 선수, 축하드립니다.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오늘 좋은 경기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팬분들 많이 오셨는데 즐겁게 해드린 것 같아서 기쁩니다.”
- 오늘 4홈런, 싸이클링 홈런을 치셨습니다. 타석에서 홈런을 노리셨나요?
“그저 정확히 치려고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운이 좋았습니다. 저도 홈런을 4개나 칠 줄 몰랐습니다.”
- 메이저 리그에서도 나오지 않은 기록입니다. 대기록을 세운 소감은요?
“정확히만 치려고 했습니다. 올스타전이라 투수들이 재미있게 하려고 쉽게 주신 것 같습니다. 팬 여러분이 재미있으셨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 본 경기에서도 활약이 뛰어나셨지만 사전 행사에서도 우승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열심히 했습니다. 노경준 선수랑 어제 같이 훈련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경준아, 고마워.”
- 노경준 선수랑 캐미가 좋아 보입니다. 팀에서는 1, 2번으로 붙어서 랩터스 타선을 이끌고 있는데 실제 관계는 어떠십니까?
“경준이랑 서로 배팅볼 던져주면서 훈련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둘 다 배팅이 약해서 매일 특타를 하는데, 서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300만 원짜리 중고차 사시겠다고 했는데 중형차가 생겼습니다. 차는 직접 운전하실 겁니까? 우선 면허는 있으십니까?
- 면허는 따야 하고, 차는……. 경기 끝나고 라정안 선배가 대한 자동차는 자율주행 안 된다고 팔아버리고 미국제 전기차 사라고 하셨거든요. 알아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올스타전 MVP의 마지막 답변과 함께 랩터스 단장실 TV가 이번 시즌 두 번째 박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