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73화 (73/204)

73화. 전반기 끝

- 스코어 5:1. 9회 말 투 아웃. 주자 2루에 타이탄스의 최강훈 타석에 들어옵니다.

- 지금 대타가 나오면 어떨까 생각은 드는데 타이탄스 좌타자 자원이 없지요? 지난 이닝 좌타자를 다 썼어요. 투수 김지명에게는 우타자보다는 좌타 최강훈이 낫다는 판단이에요.

- 오늘 4타수 무안타. 최강훈, 타이탄스의 희망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3연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저 싸가지 폼이 완전히 무너졌다. 단순히 체력 문제만이 아니라 꽉 조여저 있던 준비 자세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저런 애들 숱하게 봐왔다. 너… 오래 못 간다.

- 최강훈 파울. 낮게 떨어지는 공을 잘 커트해 냈습니다.

- 최강훈 선수가 컨택이 안 좋은 선수는 아니거든요. 오늘도 안타는 못 쳐냈지만 전 타석에서 전부 인플레이 타구는 만들어 냈어요. 김지명 선수, 조금 더 정교한 제구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타석이라 그런가. 싸가지의 집중력이 조금은 올라간 듯하다. 긴장 좀 해볼까.

- 4구 타격. 잘 맞은 타구, 유격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갑니다. 타이탄스의 마지막 공격, 유격수 직선타로 마무리되며 타이탄스와 랩터스의 3연전이 끝났습니다. 오늘 경기와 이번 시리즈 평가해 주시죠.

- 오늘 경기, 양 팀 선발 투수들이 제 몫을 해주는 가운데 불펜에서 승부가 갈렸어요. 랩터스의 불펜이 제 역할을 해주면서 승리를 가져왔고 이번 시리즈에서 타이탄스 선수들의 체력 문제가 좀 보입니다. 올스타전까지 6경기씩 남았는데 그때까지 잘 버텨야 할 것 같아요.

오늘 내가 싸가지 네 번 중 세 번을 잡은 것 같은데… 좀… 미안하네.

경기가 끝나고 서둘러 경기장을 나왔다. 고척에서 마지막 경기를 했던지라 다들 자가 퇴근을 하는 가운데 구단 버스를 타고 잠실로 이동한다.

“소전아. 넌 차 안 사냐? 구단 버스 타는 거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장비 다 실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그래.”

같이 잠실로 가는 버스를 탄 매니저 형이 차를 사라고 종용한다.

“어휴, 차 사면 다 돈이에요. 기름값에 보험료에 엄청 나간다면서요. 구단에서 공짜로 차 태워주는데 전 버스가 좋아요.”

“기다리니까 그러지. 너 퇴근도 지하철로 하지? 팬들이 알아보지 않냐?”

“제가 좀 잘생겼잖아요. 몸에서 아우라가 피어오르니 팬들이 다가오질 않네요. 저 쉬운 남잔데 부담스러운가 봐요. 하하하.”

평범한 사람들이 존잘남의 생활을 어찌 알겠어. 평범한 사람에게 너무 귀티가 흘러 잘 다가오지 못하는 지하철에서의 생활을 알려주자 매니저 형이 정신을 못 차린다.

“가는 동안 자자. 너랑 야구 말고 다른 얘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

칫, 질투하기는… 미안해요, 형. 형은 내 마음 몰라요~

조용한 버스에서 오늘 계속 농락당한 몸쪽 높은 공을 생각하며 잠에 빠져든다. 훈련장 가서 딱 한 박스만 치고 집에 가자.

“소전아. 전화, 전화 좀 받아.”

머릿속에서 다운 스윙과 어퍼 스윙의 계도를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계산을 해주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매니저 형이 깨운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상대성 원리를 뛰어넘는 수학 공식이 나오는 순간이었는데… 저 눈치 없는 형 같으니라고…….

“여보세요.”

잠에 가득 차 심드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이 XX. 선배가 전화하면 공손하게 받을 것이지, 싸가지하고는.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더럽네. 3연전 하는 동안 공으로만 대화를 했지,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나 너랑 얘기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전화를 하는 이유는 뭐냐…….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 XX. 너 때문에 X된 건 알고 있냐?

“그저 열심히 했습니다.”

지가 궁뎅이 빠지면 유땅만 쳐놓고는 왜 나한테 XX이야.

- 어디냐?

“훈련장 가고 있습니다.”

- 어디? 잠실?

“네.”

- 하여간 이 꼴통 XX. 원정 끝나고 훈련장으로 가는 미친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너야 타고난 재능으로 야구 하니까 나 같은 선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거다.

“전 실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죽어라 해도 선배님 반도 못 따라갑니다.”

내가 너무 기름칠을 해줬나. 전화 건너편에서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 하여간 뭘 해도 재수 없는 XX. 잠실 오면 학동으로 넘어와. 주소 찍어 줄 테니까 택시 타고 와.

학동? 학동에 내가 모르는 연습장이라도 생긴 건가?

“선배님. 저 오늘 안타를 못 쳐서 특타를 하고 가야 하는데요.”

갑자기 싸가지의 목소리가 커진다.

- 선배가 오라면 그냥 올 것이지 말이 길어. 그냥 와 XX야.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한 박스 치고 가야 한다고! 내 루틴이 그렇다고 멍청아!

“선배님, 한 박스는 치고 가야 하는데 끝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 이 꼴통 XX. 정을 주고 싶어도 안 돼. 됐어. 닭장에서 늙어 뒈져라, XX야.

일방적으로 전화해 놓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차단을 걸까. 그래도 오늘 전화라고는 엄마하고 루다 밖에 한사람이 없는데… 차단 걸기는 좀 아쉽기는 한데…….

“누구냐? 누군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아, 형… 왜 남의 전화를 엿듣고 그러세요.

“강훈 선배요.”

“최강훈? 그 XX가 너한테 왜 전화를 해?”

“만나자고요.

“미친 XX. 왜 만나자고 그래?”

“그건 안 물어봤는데요. 학동으로 오라는데 학동에 연습장 생겼어요?”

학동 얘기에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매니저 형.

왜! 왜! 왜 또 나른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건데!

“구단에서 아무리 선수들 사생활에 터치하지는 않지만 가만있어도 들리는 게 있다. 넌 아직까지는 야구만 하니까 괜찮겠지만 구단에서 걱정할 짓은 만들지 말아라. 그러다 훅 간 애들 많이 봤다.”

구단에 걱정할 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긴 하지만 야구도 못하는 게 아직은 다른 짓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디로 오래냐?”

그러게 어디지?

핸드폰을 꺼내 매니저 형한테 위치를 보여줬다.

주소를 보고 폭풍 검색에 들어간 매니저 형.

갑자기 눈이 커진다.

“소, 소전아. 강훈이한테 전화 다시 해볼까? 가끔은 이런 데 가보는 것도 기분 전환 삼아 괜찮지 않겠어? 너 길 잘 모르니까 나, 나랑 같이 가자.”

“형, 아까는 훅 간다고…….”

“얌마. 그러니까 형이랑 같이 가야지. 가자. 가자~”

“형 다 왔어요. 우선 특타 한 박스만 치고요. 그러고 생각하시죠.”

“얌마, 거기 가려면 일분일초가 아까운 데… 이 멍청한 XX……. 넌 그냥 야구나 해라. 너랑 가봐야 화만 날 것 같아.”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언제나처럼 훈련장에서 초고속으로 한 박스를 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타격. 내 타격 폼에 높은 공을 치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칠 건 아닌데 계속 정타가 안 나온다.

방법은 뭐…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지…….

지하철 끊기기 전, 서둘러 연습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인다. 특타를 쳐도 안타 못 친 날의 경기는 잠자기 직전까지 괴롭다.

하여간 제구 안 잡히는 XX들은 마운드에 못 올리게 해야 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울리는 전화기.

오늘 내 전화기 열일하는구나.

“여보세요.”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상대방이 소리를 친다.

- 손가락이 부러졌지? 넌 내가 연락 안 하면 그냥 디비 자는 거지!

“머리가 복잡하다. 고민이 많다.”

- 문제가 그거네. 멍청한 게 고민을 왜 해? 넌 고민한다고 해결할 머리가 아니야!

화를 내야 하는데… 반발해 봐야 전화만 길어질 뿐이다.

“넌 점점 전화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나야 야간 경기하니까 그렇지만 넌 학생이 일찍 자야지.”

- 누나는 조기 졸업하셔야 해서 바쁘다고, 반 학기도 아니고 1년을 당기는 게 쉬운 줄 아냐. 논문도 써야 돼. 너한테 전화해 주는 것만 해도 기적이야.

그럼 안 해도 되는데… 이 얘기하면 또 피곤하겠지?

“오늘은 목소리가 피곤해 보인다. 무슨 일 있냐?”

- 그렇지? 나 피곤해 보이지? 내가 오늘…….

안 혼나려고 던진 말이 이런 결과가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끊기지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랩. 얘는 학교에서 공부한다더니 쇼미더머니 준비를 하고 있었어…….

-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야! 자냐? 왜 반응이 없어!

“어… 아니. 안 자. 안 자.”

- 잤는데? 내가 방금 무슨 얘기했어?

“어? 방금… 어… 커피… 어. 자판기 커피를 뽑았어.”

- 야! 자판기 커피 쏟은 건 20분 전에 얘기한 거고, 지금은 조교가 교수님 생일 케이크를 사오라고 했다고, 그 얘기하는데… 야! 또 자냐!

“어… 어… 케이크. 케이크 좋지. 민초 케이크 좋지.”

- 민초 케이크? 어? 그거 좋네. 아니, 그게 좋은 건 좋은 거고, 너 왜 이렇게 집중 안 해? 나한테 집중 안 할 거냐고!”

어지럽다. 잠이 올 듯 말 듯 한데 얘는 왜 자꾸 깨우는 거야. 그래도 네 덕분에 높은 공 타격은 좀 지워져 가네.

- 재미없다. 자라, 자. 6경기 남았으니까 그냥 자라. 지금은 자고 올스타전 브레이크에 얼굴 보고 얘기하자 할 말이 많다.

할 말이 많… 밤마다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전화로도 이 정도인데 만나면… 무섭다.

“나 올스타전 준비도 해야 하는데…….”

- 후… 올스타전을 뭘 준비해! 이런 게 올스타라니… KBO에 망조가 들었어.

“나 경기도 해야 하고, 이벤트 두 개나 나가야 한다고. 힘들다.”

- 야구도 못하는 게 뭘 이것저것 다하려고 그래. 벌써부터 이러면 버릇 나빠지는데…….

“나도 안 한다고 했는데 선배들이 귀찮다고 나하고 경준이 시켰어. 나도 싫다고.”

- 그럼 올스타전 끝나고 봐. 누나가 요즘 학업 때문에 너무 메말라져서 너무 힘들다. 너라도 만나서 촉촉하게 젖어야겠어.

촉촉… 젖어… 내 머릿속에 아인슈타인은 어디 가고 동엽신이 씩 웃으면서 나타난다…….

안 돼. 이제 무슨…… 어휴. 형, 아니야. 돌아가.

“나 피곤하다 자야겠다. 너도 어여 자라.”

급하게 전화를 끊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밤새 술에 젖은 루다를 피해 다니느라 밤잠을 설쳤다.

* * *

남은 경기 6경기. 3승 3패로 버텨낸 랩터스가 전반기를 1위로 마친다. 전반기를 잘 마무리하고 선수단이 짧은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랩터스의 두 멍청이만 빼고…….

“형. 올스타전은 어떻게 해야 해요? 팬들 많이 오는데 죽어라 해야겠죠?”

“야! 올스타전은 그냥 편하게 즐겁게 하는 거야. 너무 진지하게 경기하면 팬들이 좋아하겠냐? 좀 망가지면서 보여주는 경기를 해야지.”

“역시 형~ 형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워요.”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팬 투표로 올스타에 뽑힌 선수를 3년 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힌 선수가 아는 척을 하면서 알려준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매니저가 두 멍청이에게 현실을 보여준다.

“얘들아. 너희 이벤트 경기 준비 안 하냐? 소전이는 퍼펙트 피칭도 해야 하는데?”

“맞다, 형! 우리 팬들하고 같이 달리기해야 하는데 팬은 언제 만나요? 미리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거기 아빠가 당일에나 현장 도착한단다. 우리는 연습도 없이 바로 실전이야. 그러니까 너희가 잘해야 한다고!”

매니저의 말에 전의를 불태우는 두 멍청이.

“소전이 형! 같이 달릴 팬이 못 달릴 수도 있으니 우리가 빨리 뛰어야겠어요. 트렉 나가서 준비할까요?”

“그래, 나가자. 스타트 연습부터 해보자.”

멍청이들의 쓸데없는 의욕에 머리를 쥐어뜯는 매니저.

“얘들아, 올스타전 슈퍼 레이스는… 장애물 경기야…….”

장애물이라는 이야기에 눈이 커지는 두 멍청이

“소전이 형, 장애물이래요. 제가 육상부 출신이잖아요. 허들부터 준비하시죠.”

“허들 넘는 법은 특별하지? 그것부터 좀 배우자.”

그 꼴을 눈 뜨고 볼 수 없던 매니저가 고개를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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