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67화 (67/204)
  • 67화. 덕아웃 빌런

    5월이 되면서 테이블 세터가 정상 가동되며 선두를 질주할 것만 같던 랩터스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시즌 초반과는 다르게 분명 승리도 늘어나고 타격 지표도 좋아지고 있는데 선수단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 * *

    경기전 미팅이 끝나고 그라운드에 나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훈련에 들어간다.

    경기전 훈련이라 크게 하는 건 없고 간단한 수비훈련과 배팅볼 치는 시간이 진행된다.

    어제 경기 짧은 타구 수비하다 험블하면서 1루에 악송구하는 바람에 에러를 기록했던지라 오늘 수비 코치에게 부탁해서 따로 짧은 타구 펑고를 시작한다.

    “핫!”

    수비 코치가 기합까지 넣어가며 강하고 짧게 날린 펑고. 뒤에서 뛰어들면서 숏바운드로 공을 건져내며 1루로 몸을 돌린다. 건져내면서 오른손으로 공을 옮기는 시간을 정확하게 그리고 빨리 가져가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빨리하면 공이 놀고 천천히 하면 수비 위치를 두 발 앞으로 당겨야 하고.

    어렵다.

    “소전아! 너무 멀어. 들어와. 2루도 아니고 잔디는 너무 멀어.”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간다! 핫!”

    짧은 타구를 잡아낼 수만 있으면 가능한 수비를 뒤에서 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 수비 범위도 크게 가져가면서 빠른 타구에 대처할 시간도 생긴다.

    한 발. 단 한 발이라도 뒤로 가야 한다.

    “핫! 핫! 핫!”

    팀의 유격수가 수비 코치를 전세 내고 숏바운드 연습을 하고 있자 주변에 관중들이 생긴다.

    “형, 유격수가 저 자리에 서 있어도 돼? 형도 저기서 수비 돼?”

    “야, 형이 국가 대표도 했어! 형을 뭐로 보고. 안 되지.”

    “그렇지? 유격수가 저기 서 있는 건 반칙이지?”

    “저기서 저런 숏바운드를 잡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저 깊은 데서 잡아도 1루까지 던지면 발 빠른 애들은 살지.”

    “그렇지. 그런데 쟤는 왜 저래?”

    “쟤는 저기서 1루를 던지니까.”

    “그러니까 그게 말이 돼?”

    “김소전은 되더라. 하… 은퇴할 때 됐나 봐.”

    “쟤랑 같은 팀이라 다행이야.”

    느낌은 오는데 조금, 진짜 조금 부족하다.

    겨울에 타격에만 빠져서 수비 훈련을 소홀히 한 게 이렇게 나타나다니. 이번 겨울엔 수비 훈련도 시간표에 넣는다.

    “김소전! 동작 확실히 해야지! 그러니까 송구 자세가 안 나오잖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큰 소리에 갤러리를 모아놓고 진행하던 공연이 잠깐 중단되었다.

    “예, 잘하겠습니다.”

    내가 큰소리로 대답을 하자 잠깐 멈췄던 펑고가 다시 시작된다.

    “그게 아니지! 그렇게 잡으면 공을 뺄 수가 없잖아! 다시!”

    그 순간 수비 코치의 펑고 배트가 멈췄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철엽아. 수비 코치가 펑고만 쳐주는 게 다가 아니잖아. 어린 선수는 동작 하나하나 꼼꼼히 봐줘야지.”

    “내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요.”

    “뭐하긴! 코치가 선수 지도를 잘못하니까 알려주고 있잖아.”

    경기장의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진다.

    “못해? 지금 내가 선수 지도를 잘못한다고 하는 겁니까?”

    “그래! 어린놈이 겉멋만 들어서 서커스 수비를 하는데 그걸 우쭈쭈 하는 게 코치가 할 짓이야! 야구는 기본이야! 기본! 기본에 충실해야지!”

    타격 코치가 수비 코치에게 야구의 기본에 관해 설명하자 10년 후배 수비 코치가 타격 코치에게 다가간다.

    “말 다 하셨습니까? 김소전이 기본이 부족해요? 기본 어느 부분이 부족합니까! 기본이 부족한 선수는 맞춰서 지도합니다. 선수에 맞춰서 지도하는 게 어느 부분이 잘못됐습니까!”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자 타격 코치가 더 소리를 높인다.

    “코치가 이러니까 선수들이 다 이렇잖아! 박철엽! 넌 생각이 틀렸어. 좋은 선수는 기본기 하나하나를 매일 똑같이 수행하는 게 좋은 선수야! 저런 요행수 하나 바라는 건 너처럼 백업하던 선수들이 감독 눈에 띄려고 할 때나 하는 짓이야!”

    타격 코치의 지적에 수비 코치가 같이 소리를 지른다.

    “요행? 백업? 그게 지금 말입니까! 프로에서 지명 타자만 뛰신 분이 무슨 수비 얘기를 하세요!”

    “야, 인마! 내가 써드 출신이야!”

    “써드고 뭐고, 제가 우리 팀 타격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한 적 있습니까! 수비는 제 관할입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감독님 통해서 저 자르세요.”

    “이거 싹수 있어 보여서 끌어주려고 했더니 영 안 되겠네. 됐어.”

    수비 코치에게 목소리를 높이던 타격 코치가 코치를 둘러싼 선수들을 보고 자신의 야구관을 밝힌다.

    “다들 잘 들어. 야구는 기본에 충실한 거야! 항상 기본. 기본 또 기본. 무식하고 미련하게 기본에 충실해야 좋은 선수가 되는 거야. 항상 명심해.”

    타격 코치의 연설에 선수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수비 코치가 말을 끊고 들어간다.

    “선배, 요즘 왜 그래요? 우리 최근 수비 지표 리그 1위예요. 그중에서도 내야 수비는 전부 국대 출신인데 무슨 수비 기본기를 얘기합니까!”

    선수를 바라보던 코치가 다시 수비 코치를 지긋이 깔아본다.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들으니까 네가 현역 때 백업만 한 거야. 지금처럼 가르치면 선수들 다 기본기 부족한 어정쩡한 선수 되는 거야! 알려줘도 모르니. 쯧쯧.”

    “선배, 지금 말 다 했습니까! 선배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코치 간의 신경전이 극에 달할 때쯤 절대자가 등장했다.

    “무슨 일입니까! 경기장에서 코치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게 말이 됩니까!”

    감독이 나타나 질책을 하자 감독보다 후배인 수비 코치가 바로 꼬리를 내린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수비 코치의 사죄와 함께 사람들의 눈이 타격 코치에게로 쏠린다.

    “감독님. 선배가 후배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끝나고 보시죠.”

    안 그래도 냉랭했던 주변에 얼음이 서리는듯하다.

    올 때부터 좋지 않았던 감독이 북극에서 불꽃을 내뿜는다

    “코치님! 오늘 시합입니다. 시합 날 선수들 앞에서 무슨 추태입니까! 두 분 다 들어오세요!”

    감독이 고함을 지르고는 덕아웃 뒤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뒤를 따르는 감독의 뒤를 따르는 수비 코치를 보면서도 타격 코치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주장에게 다가간다.

    “주장. 주장이 선수들 훈련 계속 진행시켜. 감독이 말이야, 진중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껴들고 말이야. 이래서야 되겠어. 나 올 때까지 단도리 잘해.”

    타격 코치가 뭐라 말도 못 하고 얼이 빠져 있는 주장을 남겨두고 덕아웃 뒤로 사라진다.

    “이게 뭔일이냐?”

    “그러게요.”

    “타격 코치님 요즘 왜 저래? 요즘 감독 같아.”

    “그러게요. 요즘 왜 저러신데요?”

    “내가 몰라서 물어보잖아.”

    선수들이 웅성거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장이 선수단을 진정시킨다.

    “훈련 끝. 개인 훈련하실 분들은 알아서들 하시고 철수합니다. 그리고 오늘일 기자들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겁니다. 걸리면 나랑 면담입니다. 이상.”

    늦게까지 자리를 비웠던 코치들이 경기 시작 전에야 굳은 얼굴로 경기장에 돌아왔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끔 무리를 지어 나누어진 코치진. 감독 옆에 한 무리, 타격 코치 옆에 한 무리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가운데 어정쩡하게 눈치만 보는 한 무리.

    그 모습을 보면서 선수들은 뭐라 말도 못 하고 쥐 죽은 듯이 경기를 준비한다.

    - 상위권으로 도약하려는 드래곤스와 1위를 굳히려는 랩터스와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 드래곤스에게 이번 3연전 중요하죠. 3등하고 반게임 2등하고 2게임 차거든요. 여기서 벌어지면 쫓아가기 힘들어질 수 있어요. 승리가 필요한 순간이에요.

    1번 타자라 차라리 다행인가. 숨 막힐 듯한 덕아웃에서 벗어나니 살 것 같다.

    - 1번 타자 김소전부터 시작됩니다. 김소전이 살아나면서 랩터스의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 지금의 랩터스는 김소전의 팀 같아 보이죠. 김민중 감독이 항상 이야기하는 멀리 치고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에 딱 맞는 선수예요.

    - 부족한 출루를 장타와 도루로 채우는 김소전, 이번 경기 첫 공을 맞겠습니다.

    덕아웃에 최대한 천천히 들어가야 하니 무조건 살아나가야 한다. 무조건.

    - 잡아당긴 타구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안타. 수비수가 몰려있는데도 그 사이로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 김소전 선수, 시프트가 걸려있는데도 줄곧 그쪽으로 타구를 만들어 냅니다. 5월 이후 김소전의 타구를 보면 잘 맞은 타구가 시프트에 걸려서 아웃되는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6월이 되면서부터는 타구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시프트를 뚫어내는 모습이 나와요. 무섭네요.

    이젠 투수들이 나만 보면 내 눈앞에다 공을 던져댄다. 내 타격 폼상 그쪽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해도 너무한다.

    수비수도 전부 오른쪽으로 몰아놓고 몸쪽 높은 공. 타석에서 조금 더 빠져서 쳐야 하나. 경기 끝나고 특타를 더해 보면서 연구를 해봐야겠다.

    1루에 나가 언제나처럼 리드를 길게 잡으려고 준비하는데 등 뒤에 1루 베이스 코치가 나를 부른다.

    “김소전.”

    “네?”

    나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베이스에 붙는다. 내게 바짝 붙은 주루 코치가 귓속말을 전한다.

    “나가면서 사인 잘 봐. 사인 나온다.”

    “네?”

    1회에 나한테 주루 사인이 나온다고? 나 이번 시즌 내내 그린라이트였는데. 홀딩 사인인가?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시즌 내내 별다른 작전을 안 거는 랩터스의 3루 코치가 오늘은 어쩐 일로 바쁘다. 덕아웃을 한참 바라보던 3루 코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사인을 낸다.

    히트 앤드 런? 지금? 초구부터? 어차피 나랑 경준이랑 히트 앤드 런에 가깝게 플레이를 하긴 하지만 이걸 굳이 사인을 낸다고? 왜?

    사인을 내면 경준이는 무조건 쳐야 하잖아.

    사인을 보고 리드를 잡으면 1루 코치를 바라봤다.

    1루 코치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이게 뭐야.

    - 노경준 잡아당긴 타구 6-4-3. 6-4-3으로 이어지는 더블 플레이. 무사 1루가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뀝니다.

    - 랩터스 비디오 판독 신청하죠. 2루에서 아웃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아요.

    아… 스타트가 나쁘지 않았는데도 죽었다. 차라리 맞추지나 못하지, 다른 땐 선풍기 돌리다가 이럴 땐 기가 막히게 때리네. 그것도 엄청 세게.

    - 결과가 빨리 나왔습니다. 아웃. 2루에서 아웃. 원심 그대로 유지됩니다.

    - 작전이 나온 것 같아요. 노경준 선수 나쁜 공을 건드렸어요. 작전 잘 안 거는 랩터스 오랜만에 1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였는데 결과가 안 좋네요.

    터덜터덜 덕아웃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더 살벌하다. 병살친 선수들이 들어오는데 그라운드만 응시하는 감독을 뒤로하고 수석 코치와 타격 코치 간의 말다툼이 벌어진다.

    “선배님, 나 좀 봅시다.”

    “경기 중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수석 코치가 타격 코치에게 얘기 좀 하자고 요구하자 타격 코치가 귀찮다는 듯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걸 알면서 그러세요!”

    “오죽하면 그러겠냐.”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세요.”

    “팀을 바로잡고자 하는 내 의지다.”

    대화로 풀어보려던 수석 코치의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선배님! 노망나셨어요? 뭐 하자는 거예요!”

    “감독이고 코치들이고 어린것들이 야구를 우습게 보고 있으니 어른이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수석 코치를 바라보던 타격 코치가 아웃을 당하고 들어오는 나를 노려본다.

    “김소전! 이리 와봐.”

    “네?”

    뭐야? 너희끼리 싸우는데 왜 나를 불러?

    “넌 생각을 하면서 야구를 하는거야? 생각이 없어? 너 혼자만 플레이하면 다야? 병살을 당할 거 같으면 팔을 들든지 하면서 송구를 방해할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방금도 2루수 발이 앞에 보이면 차고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아웃 카운트가 그렇게 우스워!”

    뭐지? 2루수 발을 차고 들어가라고? 베이스를 막은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베이스 밟고 던지는 퀵턴인데 축발을 차라는 건가?

    “제가 늦게 들어갔습니다. 수비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잘못한 게 없으면 잘못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이건 뭔 신박한 X소리지. 진짜 수비수를 차라는 얘긴가?

    “하지훈 선배 발을 보고 슬라이딩을 하라는 말씀이신 겁니까?”

    “그래! 그렇게 순둥이처럼 하니까 점수 낼 때 못 내고 한두 점 싸움하는 거 아니야! 상대를 밟을 때 밟아놔야 우리를 보고 못 기어오를 거 아니야!”

    미쳤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이러지? 타격할 때 타격 폼 분석하고 반복 훈련만 신경 쓰던 사람이 요즘 왜 이래?

    “코치님. 그러다 보복당합니다. 저도 내야수예요. 그러다 제 발목이 먼저 부러집니다.”

    못 알아듣는 멍청이한테 알아듣게 설명해 주는데도 들어먹을 생각을 안 한다.

    “김소전! 선수가 말이야! 투쟁심이 없어! 투쟁심! 플레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하냐!”

    덕아웃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타격 코치의 목소리. 옆에 있는 수석 코치가 기가 차 바라보다 타격 코치의 손을 잡는다.

    “선배님. 나가요. 나가서 얘기합시다.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 오구식! 놔! 코치고 선수고 하나같이 못 배워서! 어디 아무 데나 손을 대! 놔! 그리고 너 김소전! 너도 어디 꼬박꼬박 말대꾸야!”

    미치겠다. 타이탄스 간 미친놈 이후에 평화를 되찾은 구단이었는데 이번엔 코치가 미쳤다.

    덕아웃에 모든 사람이 경악으로 물들어갈 때쯤 타격 코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박수훈 코치님.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추하지 않습니까?”

    “추해? 감독이라고 말 막 하는 거야?”

    이쯤 되면 미친 게 틀림없다. 팀 안에서 감독한테 막말하는 코치? 이게 말이 돼?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단장님하고 얘기해서 정리해 드릴 테니까 여기까지 하시죠. 나가세요. 랩터스에서 보는 건 오늘까지입니다. 가세요.”

    감독에게 쫓겨나면서 얼굴에 미소를 짓는 타격 코치.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코치가 아니게 된 박수훈 씨.

    이게 뭔 일이야. 도대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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