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66화 (66/204)
  • 66화. 선수 성장

    테이블 세터. 야구에서 1번과 2번을 묶어서 이야기할 때 쓰이는 말이다.

    야구가 계속되면서 테이블 세터의 덕목도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예전에는 그저 공 오래 보고 번트 잘 대고 도루 잘하는 선수들이 각광을 받았었지만, 현대 야구에선 조금 달라졌다.

    야구에 과학이 들어오면서 생산성이라는 말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번 타자는 출루, 2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가 들어와야 한다는 결과까지 도출하였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느린 1번 타자, 병살이 많은 2번 타자 같은 선수들도 탄생하게 되고 지난 시즌 4번을 치던 타자가 2번에 전진 배치되는 상황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 랩터스의 테이블 세터는 1번 타자가 자기 컨디션을 찾으면서 야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시작한다.

    - 잠실에서 소닉스와 랩터스의 전통의 어린이날 시리즈를 보내드립니다.

    - 이번 시즌 10개 구단 순위 싸움이 치열합니다. 이번 잠실 3연전에서 두 팀 다 1위 자리까지 노려볼 수 있어요.

    - 시즌 초반 주춤했던 랩터스의 성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선수 때문일 것 같은데요.

    - 그렇죠. 김소전이죠. 시즌 초 2년 차 징크스 때문인지 4월 내내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완전히 회복하는 모습이에요. 5월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 타석에 김소전 들어옵니다.

    4월 마지막 3연전을 치르며 어딘지 모르게 느슨했던 나사들이 완전히 맞춰진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잊지 않으려 휴식일에도 계속 조이고 조이고 또 조여서 마지막 감각을 최대한 살려놓고 타석에 들어선다.

    - 소닉스의 선발 브릿지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도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제는 장수 용병이지요.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직구가 주무기인데 이번 시즌 커터의 움직임도 한층 좋아졌어요. 4월 한 달 동안 벌써 3승을 챙겼으니 이번 시즌엔 승수에 욕심을 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 키 큰 놈, 외국에서 들어와서 5년을 해 먹었으면 일본으로 가든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부대찌개에 미쳐서 한국에 말뚝을 박았다.

    그렇게 부대찌개가 좋으면 미련 없이 음식점 차릴 수 있도록 오늘 널 박살 내준다.

    - 149. 초구 149의 빠른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가는 소닉스의 브릿지 선수입니다.

    - 공 좋네요. 저 각도에서 내리꽂으면 반응하기 쉽지 않아요.

    역시 여지없네. 부대찌개 생각하다 순간 공 놓는 걸 놓쳤더니 쑥 들어오네.

    - 2구. 중견수 옆을 뚫어냅니다. 펜스까지 흐르는 공. 타자 주자 김소전 2루에 들어갑니다. 2루타. 경기 시작부터 스코어링 포지션에 들어가는 랩터스. 5월의 첫 3연전 기분 좋은 시작을 알립니다.

    - 낮게 들어오는 직구였는데 그대로 걷어 올리네요. 시프트로 중견수가 우측으로 쏠려있었거든요. 정위치에 있었으면 단타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결과론이죠.

    - 타구가 떨어진 지점은 센터 한가운데 방향이었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중견수와 좌익수 중간을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소닉스로서는 아쉬울 만도 합니다.

    홍삼의 영향인지 요새 입맛이 돌아 머릿속에서 부대찌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임팩트 때 조금 더 들어 올려서 넘겼어야 했는데 그걸 못하다니……. 역시 난 아직 멀었다.

    - 랩터스의 2번 노경준입니다. 이번 시즌 랩터스의 히든 카드입니다.

    - 독특한 선수죠. 타율은 2할 3푼인데 2루타 10개 3루타 2개 홈런 3개 장타율이 4할 5푼이에요. 안타가 28갠데 장타가 15개를 치고 있어요. 그러면서 발도 빠르고요. 확실히 컨택에는 아직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일단 배트에 맞추기만 하면 확실히 멀리 보내거든요. 미래가 아주 기대가 되는 선수예요.

    - 노경준 선수 삼진이 좀 많은데요. 특히나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을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신인이거든요. 신인이 프로 수준의 떨어지는 변화구에 적응하는 건 시간이 필요해요. 더군다나 이 선수는 2군도 안 거치고 바로 1군에 들어왔거든요. 지금은 자기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도 벅찰 겁니다.

    2루에서 보면 많은 게 보인다. 투수의 쿠세, 포수의 움직임. 그리고 타자의 의도까지 보인다. 저 멍청이 주자 2루에 나가 있다고 탐욕에 눈이 멀어 배트를 잡은 손이 평소보다 위로 들린다.

    안 그래도 컨택 능력 따윈 없는데 저런 폼이면 떨어지는 공에 무조건 삼진이다.

    - 스윙! 노경준 크게 휘둘렀습니다만 공과의 거리가 상당합니다.

    - 지금 욕심이에요. 공을 봐야죠. 적극적인 거랑 무모한 거랑은 다르거든요. 떨어지는 공인데 보지도 않고 휘둘렀어요. 이런 모습이면 상대 투수들이 공략하기 쉬워집니다.

    볼 것도 없다. 저놈 지금 머릿속엔 타점밖에 들어 있지 않다. 1회부터 2루까지 나와 그냥 들어갈 순 없으니 여기서 할 수 있는 뭔가라도 해야겠다.

    지금 스윙을 보니 부대찌개 좋아하는 투수 놈은 분명 커브를 위주로 볼 배합을 가져갈 거다. 그렇다면 커브를 못 던지게 해야 하는데 방법은… 뭐 내가 고생해야지.

    - 2루 주자 김소전, 리드가 커집니다. 1회부터 적극적인데요.

    - 김소전 선수가 도루는 많지 않지만, 성공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지난 시즌 21번 뛰어서 19개를 성공시켰고 이번 시즌도 2번 뛰어서 2번 다 성공시켰어요. 배터리 긴장되지요.

    - 2구 높습니다. 볼, 높게 들어가는 공.

    - 하나 뺐어요. 그럴 상황은 아닌데 뺐어요. 배터리가 지금 2루 주자의 움직임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그럴 필요 없어요. 1회거든요.

    차라리 뛰는 게 편하지 뛸 듯 말듯 연기하는 게 더 힘들다.

    - 또 하나 뺍니다. 2볼 1스트라이크. 경기 초반부터 양 팀의 신경전이 대단합니다.

    - 브릿지 선수 이렇게 반응할 필요 없거든요. 그냥 타자와 상대하는 게 좋아요. 경기 한참 남았습니다.

    2루를 떠나는 순간 2루수와 유격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킨다. 관중들의 웅성거림에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상황이 발생할 때는 분명 느낌 같은 소리가 난다. 집중해야 한다.

    - 2루 주자 스타트. 공 하나 더 빼보는 브릿지. 2루 주자 다시 돌아갑니다. 뛰는 줄 알았습니다.

    - 제가 본 선수 중에 도루 스타트와 귀루는 김소전 선수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투수가 공을 뺐어도 지금 스타트면 3루에 살았을 것 같아요. 스타트 너무 좋았거든요. 차라리 뛰는 게 낫지, 배터리 너무 괴롭네요.

    아, 그냥 뛸걸. 리드를 너무 길게 잡다 보니까 돌아갈 생각에 가득 차 스타트만 하고 뛰지를 못했다. 아깝네

    - 3볼 1스트라이크. 투수가 좀처럼 마운드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 머리가 복잡한 거죠. 주자가 나가서 저 정도로 요란하게 행동하면 투수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무사 주자 2루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네요.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투수판에 발을 올려놓는다.

    다시 슬금슬금 리드를 늘려나간다. 2루수와 유격수와의 거리를 보면서 만들어나가는 리드. 여차하면 뛰겠다고 투수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 2루 주자 스타트. 잘 맞은 타구. 원 바운드로 좌측담장을 때립니다. 2루 주자 3루 돌아서 홈인. 타자 주자 2루 돌아 3루. 3루는 가지 않습니다. 1타점 2루타 노경준. 랩터스 1회 초부터 연속 2루타를 때려내며 앞서나갑니다.

    - 직구죠. 148 빠른 직구를 놓치지 않고 때려냈어요. 노경준 선수, 직구에는 굉장한 강점이 있는 선수거든요. 지금도 보시는 것처럼 빠른 공을 중심에다 세워놓고 쳤어요.

    - 노경준 때렸다 하면 장탑니다. 신인인데 굉장한 기록을 내고 있습니다.

    - 작년엔 김소전, 올해는 노경준. 랩터스에 대형 신인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특히나 지금처럼 김소전이랑 노경준의 테이블 세터 궁합이 좋아요. 일반적이진 않지만 좋은 조합으로 보여집니다.

    - 사실 랩터스의 1, 2번 타선을 가지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은데요. 김소전과 노경준 두 선수의 조합이 괜찮다고 보시는 건가요?

    - 제가 야구 했던 때라면 김소전 선수는 2번 정도? 노경준이라면 잘해야 6번에 올라갔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거든요.

    -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두 선수 다 타율과 출루율이 테이블 세터를 맞기에는 낮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 저도 두 선수의 출루율이 상당히 아쉽기는 합니다. 분명히 개선을 해야 할 필요도 있고요. 하지만 타자가 득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두 선수는 타율 같은 클래식 스탯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수입니다.

    - 세이버메트릭스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 야구가 숫자가 다가 아니지만, 숫자가 지금까지 못 본 걸 보여줄 때가 있는데, 지금 같은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요. 노경준 선수가 만들어 내는 WRC나 WRAA 같은 수치들, 그러니까 노경준 선수로 인해서 만들어 내는 득점이 다른 팀 1, 2번 타자들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떨어지는 공에 그렇게 심한 약점이 있는데도 말이죠.

    - 그게 김소전 선수가 1번에 들어가면서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시려는 거겠죠?

    - 그렇습니다. 방금 장면은 두 선수가 만들어 낸 정말 좋은 장면인데 주자인 김소전 선수가 상대 투수로 하여금 직구에 강한 노경준에게 직구를 던질 수밖에 없도록 강요를 했어요. 이런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면 노경준 선수 성적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 상대 팀들 머리가 아프겠네요. 위원님 말씀하시는 사이 라정안 기습 번트로 1루까지 살아나갑니다. 지난 시즌까지 2번이던 라정안의 3번 기용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저건 김민중 감독의 실책이죠. 몇 번 얘기했는데 아직도 감독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감독 말로는 브라운 선수까지 3번으로 올려서 선풍기 3대를 돌리는 건 못 할 짓이라고는 하는데 통계가 보여주잖아요. 안타는 쓰레기예요. 홈런을 쳐야 합니다.

    꼬꼬마들한테 연속 2루타를 맞고 기습 번트까지 당하면서 능욕을 당한 소닉스의 외국인 투수가 와르르 무너진다. 잠실 라이벌전 1차전을 일방적으로 가져온 랩터스가 내친김에 두 경기를 다 쓸어오면서 어린이날 시리즈 스윕을 완성한다.

    다른 건 몰라도 어린이날은 질 수 없지. 랩린이들은 사랑이니까.

    오월의 첫 단추를 잘 끼워내자 랩터스의 성적이 서서히 올라간다. 그리고 올라가는 성적에 맞추어 코치진의 잔소리가 늘어난다.

    “소전아. 출루가 필요할 때 출루를 해줘야 할 거 아니냐. 1번인데 1번답게 쳐야지.”

    나도 출루를 하고 싶지요.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요?

    “저는 이렇게 치는 거밖에 모르는데요. 지금도 투수 쪽으로 던지는 게 잘 안 되는데 밀어치는 건 무립니다.”

    “아니면 3루수 빠졌을 때 기습 번트라도 대보는 건 어떠냐?”

    “코치님, 요즘 저 감이 좋습니다. 맞아 나갈 때는 그냥 스윙 돌리고 싶습니다.”

    “야! 그래 봐야 2할 5푼이야. 내가 너 타율 걱정에 밤에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와.”

    “그래도 이제 홈런도 나오고 장타도 좀 나오고 있으니까 점점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좋아져야지. 너 좋아져야 한다. 내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관리하는데 좋아져야지. 그러니까 우리 3할만 찍어보자. 3할만 찍으면 너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는 거야.”

    3할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 팀이 타율에 목매는 팀이 아닌데 코치님이 요즘 왜 저러시지?

    난 하나를 치더라도 멀리 치고 싶은데… 흠…….

    똑같은 말 계속 들으니 지친다…….

    * * *

    “조수아, 소문 들었어?”

    “뭐? 구단주님 사촌 형이 불법 대선 자금 준 거? 아니면 대한건설이 특혜로 고속 도로 사업권 딴 거? 어떤 거?”

    “야! 그거 말고.”

    오랜만에 남들 눈에 안 띄게 자주 가던 커피숍에서 만난 남녀가 커피 한 잔씩을 놓고 애틋한 대화를 시작한다.

    “그럼 뭐? 김소전 소송은 잘 진행 중이고, 홍시가 미친놈한테 삥은 잘 뜯고 있고, 뭐가 있을까? 아… 강우혁이 여자 친구한테 차이고 인별에다 감성 글 적은 거? 그거 걱정 마요. 둘이 다시 만나기로 했어.”

    “뭔 소리야! 강우혁 여자 친구는 언제 생겼길래 나도 모르게 헤어졌다 다시 만나?”

    “원래 연애는 다 그렇게 해요. 뭐 해봤어야 알지.”

    오랜만에 온 진상 손님이 소리를 지르자 알바가 얼굴을 찡그린다. 또 무슨 이상한 짓을 벌일지 몰라 CCTV 녹화가 잘되나 확인을 하며 빗자루와 쓰레기통을 챙겨본다.

    “그거 말고. 박수훈.”

    “박수훈? 타격 코치 박수훈? 타격 코치님은 왜요?”

    “폭스 감독으로 작업 중이야!”

    “시즌 중에 그게 무슨 X소리야!”

    “폭스 이번 시즌 초반부터 망가졌잖아. 7월이나 8월이야. 바꿔.”

    “올해 뽑은 감독을 무슨 반 시즌도 안 돼서 바꿔?”

    “어차피 시즌은 망했고 리빌딩할 건데, 성적도 안 나오는 감독이 베테랑 써야 한다고 말을 안 듣는다네. 그래서 신인 잘 키우는 감독으로 바꿀 거야.”

    “박수훈 코치가 신인을 잘 키워요? 아니잖아. 분석을 잘하는 거지. 어린 선수들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하여간 가장 유력한가 봐. 준비해.”

    “준비는 무슨. 폭스 XXX들 가서 뒤집어야지. 어디 시즌 중에 우리 코치를 빼가.”

    “마음 떴을 거야. 준비해.”

    “필요 없어. 갈 테면 가라지. 나도 싫다는 사람 안 잡아!”

    얼굴이 빨개져서 화를 내는 여자를 남자가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갑자기 궁금했던 걸 물어본다.

    “근데 조수아도 연애 안 해봤잖아. 왜 연애해 본 척해?”

    구석 자리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커피숍 알바가 한숨을 내쉬며 빗자루를 챙겨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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