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65화 (65/204)

65화. 늦은 출발

* * *

내가 그동안 너무 안일했다.

사람들이 뱀 잡아먹고 지네 잡아먹고 할 때 혐오스럽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반성한다.

누가 줬든 의도가 어땠든 아무튼, 그 홍삼. 그것도 어디 파치 나서 쪼개진 인삼으로 만든 것도 아닌 진짜배기 6년근 홍삼을 먹으니 그렇게 안 맞던 타이밍이 맞는다.

혹자는 타격은 사이클이라 올라올 때 돼서 맞는 거라고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달라진 거 하나도 없는데 백화점 비싼 홍삼을 먹으니 공이 배트에 달라붙는다.

역시… 비싼 건 돈값을 한다.

- 오늘 경기 다시 1번에 복귀한 김소전입니다. 시즌 개막 이후 한 달여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더니 폭스와의 경기 연속으로 몰아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 초반에 타격감도 그렇고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이 좀 떨어져 보였거든요. 그 와중에 상대 팀들이 김소전 시프트를 써가면서 강하게 압박했단 말이에요. 이제 3년 차 된 어린 선수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면서 2군 가서 조정이 필요하나 했었는데 지난 폭스와의 주중 3연전부터 이겨 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오늘 경기까지 좋은 모습 보여주면 그럴 필요 없어요.

그렇게 안 맞던 방망이가 맞아가는 느낌이 드니 슬슬 겨우내 연습했던 걸 제대로 해보고 싶어진다.

내 시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재규어스 데미안과 이번 시즌 첫 만남입니다. 빠른 공을 던지는 데미안과 빠른 볼 좋아하는 김소전의 대결 기대가 됩니다.

- 데미안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요. 데미안 공도 빠르지만, 영리한 피칭을 보여주거든요.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는 김소전과 정면 승부를 할 것인가가 기대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살살하자, 살살. 여태 못하다가 왜 우리 만나니까 컨디션이 좋아지냐?”

“제가 선배님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하. 한마디를 안 져요, 한마디를.”

타석에 들어서면서 포수에게 인사를 했더니 나를 살뜰히 살펴주는 재규어스의 포수. 이번 시즌 처음 만났는데 잘 좀 부탁합니다.

- 초구. 빠른 공에 헛스윙. 많이 빠졌습니다.

- 김소전, 컨디션이 진짜 좋은가요? 눈에 보이니까 무작정 휘두르는 거로 보입니다.

아… 치면 안 되는데 간만에 공 같은 공 들어오니까 너무 흥분했다. 조금만 더 집중하자.

- 2구, 멀리 빠집니다. 좋은 공을 안 주는 데미안입니다.

- 전승민의 리드가 좋아 보이네요. 지금도 멀리 빠져나가는데 타자가 일단 반응은 하거든요. 타자 비슷하면 다 치겠다는 거예요. 좋은 공 줄 이유가 없지요.

큰일이다. 내 몸 상태가 좋아도 너무 좋다. 공이 너무 또렷하게 잘 보인다. 회전하는 공에 KBO 마크까지 보이는 것 같다. 하나만 걸려라, 하나만.

- 3구, 잡아당겼습니다. 유격수가 잡아냅니다.

- 빠지는 공인데 억지로 잡아당겼어요. 아쉽네요.

- 유격수가 2루 베이스 뒤에서 잡아냅니다.

- 시프트가 걸렸죠. 유격수가 2루 베이스 뒤까지 이동해 있었어요. 이래서 시프트 하는 거예요.

- 다음 타자 노경준…….

아… 잘 맞았는데. 유격수가 왜 투수 뒤에 가 있어. 진짜 잘 맞았는데.

마지막에 살짝 들어서 띄워 줬어야 했나? 하…….

타격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자 타격 코치가 부른다. 왜?

“김소전. 방금 왜 잡아당긴 거냐?”

“네? 잡아당겼다기보다 보이는 공 풀스윙으로 때렸습니다.”

“3루 쪽이 비었는데 살짝 밀기만 해도 되잖아.”

그렇지. 그래도 되지. 나도 한참 안 맞을 때 그러려고 생각은 했었지. 그런데 그렇게 한번 타협하고 나면 시즌 내내 타협할 거 같았거든.

시즌도 길고 나도 야구 할 날이 긴데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공이 만만해 보여서 때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대답에 타격 코치가 허탈하게 웃는다.

“저 공이 칠 만하다고? 공 하나만 봐도 오늘 저 투수 베스튼데?”

베스트라고? 내 컨디션이 좋은 것 같긴 하지만 딱히 그 정도는 아닌데.

“타석에서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할 만했습니다.”

“그렇다고 빠지는 공까지 다 쫓아다니면 어쩌려는 거야?”

“보이길래 돌렸습니다.”

“소전아. 적극적으로 치는 건 좋은데 모든 공을 다 치려고 덤비진 말아야지. 방금 것도 빠졌잖아. 그걸 억지로 잡아당기니까 타이밍 잘 맞혀 놓고도 공이 안 뜨잖아.”

잡아당겼다고 생각 안 했는데 그렇게 보이나 보네. 투수 쪽으로 집어넣겠다고 때린 건데…….

“야구가 나갈 때마다 안타 치는 경기가 아니잖냐. 나쁜 공은 버리고 좋은 공만 쳐도 3할 치는 게 야구야. 모든 공에 아등바등하지 말고 좋은 공을 좀 더 기다려. 넌 그것만 돼도 3할은 친다.”

좋은 공… 좋은 공……. 좋은 공이 뭐지? 때려서 인플레이 타구 만들어 내면 좋은 거 아닌가? 인플레이 타구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볼이라고 기다리는 게 좋은 플레인가?

순간 코치님과 내가 다른 야구관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 칠 수 있는데 안 치고 기다리자고 연습한 게 아닙니다. 전 제가 칠 수 있는 공은 다 때려서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고 싶습니다. 타석에서 도망 다니는 건 더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야구 하면서 이제는 정말 지고 싶지 않아 마음에 있는 얘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는 코치.

“여유를 가져. 너 실패 좀 한다고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다. 여유를 가지고 야구를 크게 봐. 네 타격이면 좋은 공 골라 쳐도 충분해. 투수가 널 도망 다니게 만드는 거야. 네가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투수가 도망 다닌다고? 타자를? 야구는 투수가 훨씬 유리한 게임인데? 심지어 나 정도 타자를 에이스 투수들이 왜 도망 다녀?

나는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하는 그런 선순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타석에서 때려내기만도 벅찹니다. 우선 잘 때려보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코치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내 뒤 타자가 1회부터 안타를 치고 나간다.

보세요. 야구는 저렇게 멋모르고 할 때 안타도 치고 하는 겁니다. 기다리는 게임이 아니에요.

- 3회 초 1사 주자 없이 타석에 1번 타자 김소전 들어섭니다.

- 데미안 선수. 1회 잠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2회부터 좋아졌어요. 타순이 한 바퀴 돌았는데 레퍼토리를 어떻게 가져갈까 궁금하네요.

- 1구. 빠른 공. 스트라이크. 타자 바라만 봅니다.

- 몸쪽 높게 빠르게 붙였죠. 지금 김소전의 핫콜드존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시즌 김소전 선수의 타격 성적이 전체적으로 안 좋지만, 특히 이 코스 몸쪽 높은 공이 최대 약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좋은 공 던지네요.

타석에 들어서니 확신이 생긴다. 코치님, 이번엔 코치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야구란 말이죠. 투수가 타자를 공략하고 타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경기라고요.

- 2구. 강한 타구! 2루수 키를 넘깁니다.

- 저걸 치네요. 김소전 메커니즘상 저 코스는 대처하기 굉장히 까다롭거든요. 그걸 때려냅니다.

- 시프트가 안 걸렸으면 장타가 나올 뻔했습니다.

- 그렇죠. 외야까지 전부 우측으로 쏠려있어요. 김소전 이번 시즌 타격을 보면 몸쪽 바깥쪽 할 거 없이 전부 잡아당기거든요. 이번에도 시프트에 걸리나 했는데 그걸 뚫어냅니다. 컨디션 완전히 돌아왔다고 봐도 되겠어요.

내 뒤, 멍청이의 진루타와 주장의 번트 내야 안타. 그리고 우리 팀 4번 타자의 적시타로 홈을 밟았다.

한 점을 내려고 빡세게, 정말 빡세게 다들 노력해서 억지로 만들어내고 들어왔는데 코치님이 또다시 부른다.

“소전아. 정안이 봤지? 야구 힘들게 하는 거 아니거든. 시프트를 걸어줄 때는 코스 보고 밀어만 줘도 사는 거야. 그렇게 흔들어놔야 상대가 시프트를 못 걸어. 지금도 시프트 때문에 2루 갈 수 있는걸 못 갔잖아. 시즌 초반부터 저런 짓 못 하게 해야 한다.”

코치님이 걱정하시는 게 뭔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고 간신히 자리 잡혀가는 내 타격 폼에서 밀어 치고 당겨 치고를 할 수가 없잖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코치님. 좀 쳐보기나 하고요. 쳐본 다음에 해요.

“코치님. 지금 제가 밀어칠 기술이 없습니다. 기술이 없는데 3루로 보내자고 번트를 댈 수도 없잖아요.”

“아니지. 번트라도 대서 그쪽으로 다시 당겨와야지. 이번 시즌에 너 타구 방향하고 잡힌 거 보면 죄다 시프트야. 내가 분석팀이랑 얘기가 해봤는데 타구 방향을…….”

얼마 전까지 이놈을 2군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고 하더니 며칠 좀 친다고 이것저것 손대려고 하시네.

“코치님. 코치님 말씀이 다 맞는데요. 결론은 저 시프트를 깨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소전아. 그러기 위해서는 맞는 포인트를 조금 뒤로 당겨서…….”

과학이 이렇게 무섭다. 한평생 야구만 하신 분이 시즌 중에 통계니 확률이니를 얘기하고 있어. 그런 건 비시즌 때 하는 얘기지.

“코치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다음 타석엔 수비수 없는 곳으로 보내도록 쳐보겠습니다.”

“그래, 소전이. 이제 돌아왔구나. 인마. 코치님이 너 때문에 머리가 다 빠졌어. 넌 자질이 충분해. 코치님이랑 같이 큰 타자가 돼보자.”

저… 코치님이 저 지도해 주신 건 거의 없잖아요. 전 라타 코치님한테 과외받고 야구 했는데…….

- 1점 앞선 5회 초. 랩터스의 공격. 타순이 좋습니다. 1번 김소전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첫 타석 유격수 직선타. 두 번째 타석 우익수 앞 안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시즌 초와 비교해서 타구의 질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슬럼프가 길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빨리 털어내는 모습이에요.

이닝 첫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니 수비수들이 우측으로 쫙 이동한다. 3루수가 유격수 자리에 가 있고 내야수가 1, 2루 간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것도 모자라 외야도 좌익수가 좌중간에 자리하고 중견수와 우익수마저 우측으로 쏠려서 자리를 잡는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우측으로 자리 잡는 수비수들. 내가 시프트를 걸기만 했지, 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거 뿌듯한데.

- 1구 파울, 파울입니다. 그물망으로 강하게 날아갔습니다.

- 지금 위험했어요. 관중분들이 가까이서 보시려고 그물망에 가깝게 붙는데 조심하셔야 해요. 김소전 같은 선수는 타구 속도가 100마일이 넘거든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조금 빨랐다. 수비수 몰아넣고 자꾸 몸쪽에 붙이는데 한 번만 걸려라.

- 볼. 포수 전승민도 잡을 수 없는 볼이었습니다.

- 투수가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방금 김소전의 타구가 무시무시하긴 했거든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뭐야? 갑자기 왜 패대기를. 그딴 거 말고 던지던 거 던져봐. 내가 해볼 게 있어.

- 투수와 사인이 길어집니다. 타임. 포수 전승민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 지금 투수가 계속 기분이 안 좋아요. 잠깐 끊고 가는 거 좋은 선택이에요.

너희 던질 거 없잖아. 하던 대로 해. 이상한 거 할 생각하지 말고.

- 데미안, 김소전을 맞아 3구를 준비합니다. 투수 와인드업. 헛스윙. 타자 크게 휘두릅니다.

- 이 공 뭐죠? 체인지업인가요? 데미안 서클체인지업을 던졌어요. 던진 기록이 있나요? 데미안이 체인지업을 던지는 거 처음 봤습니다.

- 피디가 자료를 찾고 있는데……. 처음 던졌네요. 기록된 첫 공인 것 같습니다.

- 좌타자 상대로 저런 좋은 공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죠. 타자 바깥으로 도망가는 각도가 좋습니다.

XXX.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어.

저놈이 이제 직구 속도도 조절해서 던지나 깜짝 놀라 몸을 비틀면서 바깥쪽에 배트를 돌렸는데 공이 더 바깥으로 흘러나갔다.

속절없이 허공을 가르는 배트. 저 투수한테 이딴 공은 없다고 들었는데 난데없이 당하니까 기분이 더럽네.

- 4구. 빠집니다. 포수가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빠져나갔습니다.

- 갑자기 이렇게 흔들리네요. 변화구도 아니고 직구를 던지는 데 애를 먹고 있어요. 강하게 던지고 싶다고 힘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거든요. 투수는 항상 같은 리듬을 가지고 던져야 합니다.

포수가 일어나 투수에게 천천히 하라고 손짓을 한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저놈 나한테 빠른 직구를 몸쪽에 찔러넣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더 건드려줘야지.

- 김소전 타석에 바짝 붙어섭니다.

- 너무 바짝 붙었는데요. 이러면 김소전 메커니즘 상 몸쪽 공을 칠 수가 없어요.

타석에서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서 투수를 바라보고 싱긋 웃어줬다.

내가 아무한테나 웃음 팔고 그러는 사람 아니다. 너니까 귀여워서 해준 거야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투수가 내 미소를 보고는 와인드업을 크게 가져간다.

- 아, 위험했습니다. 맞을 뻔했어요.

-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위험했네요. 김소전 선수가 잘 피했어요.

XXX야. 몸쪽에 못 던지니까 붙어 들어갔더니 몸쪽에 던지면 어째. 내 환상적인 반사 신경이 아니었으면 맞을 뻔했잖아.

몸을 기가 막히게 비틀어 피하고는 포수를 바라봤다.

“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진짜 빠졌어.”

“한 번 더 들어오면 맞고 나갈까 치고 나갈까 생각하느라고요.”

“그냥 죽는 건 계산에 없냐?”

“저 2할이에요. 저도 먹고살아야지요.”

포수와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타석에 바짝 붙어섰다.

내 등 뒤 관중석에선 여전히 야유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투수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간다.

- 김소전! 잡아 당긴 타구! 중견수! 중견수! 따라가길 포기합니다! 솔로 홈런! 랩터스 도망가는 점수가 나옵니다.

-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체인지업이에요. 놔두면 볼이거든요. 저 먼 공을 잡아 당겨서 넘겼어요. 높은 쪽에서 움직이는 공인데 김소전 타격 메커니즘에서 때려내기 정말 어려운 공이거든요. 그것도 심지어 볼이란 말이에요. 이런 공을 치면 투수는 뭘 던져야 하나요? 지난 시즌 신인왕이 왕이 되어서 돌아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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