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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58화 (58/204)
  • 58화. 스프링캠프의 시작

    * * *

    루다를 갈구니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들린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약이 리그를 돌아다닌다.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물질은 기본, 약물을 안 걸리게 해주는 물질과 마약까지 섞어 정신력도 올려주는 기능을 한단다.

    그것도 도핑에도 안 걸리게. 빨간약 파란약도 아니고 이게 무슨 신세계야?

    “그런 게 어떻게 걸린 거야?”

    “저런 게 무지 비싸대. 그래서 안영진이 빚을 좀 졌는데 그걸 못 갚아서 협박을 당했나 봐. 그러다가 조폭들이 구단 와서 돈 달라고 행패 부리고 그러다 알려졌대.”

    아니, 안영진 선배가 연봉 얼마나 된다고 별 이상한 짓을 하고 그래?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야.

    “박정환 선배는 뭐야? 그 사람이 왜 내 락커에다 약을 놓고 가?”

    “그건 지금 말이 좀 많더라고. 박정환은 CCTV에 얼굴이 나오는데도 너한테 안 갔다고 하고 있고 CCTV도 락커에 있는 게 아니라 복도에서 살짝 찍힌 거라 너 자리에 쇼핑백을 두고 나오는지도 확실치는 않아. 그저 쇼핑백을 들고 간 박정환이 네 자리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나오는데 쇼핑백이 없어졌다는 게 다야. …너 정말 뭐 받은 거 없어?”

    홍지 누나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왜 다들 나한테 저런 X 소리를 할까.

    “난 팬들이 주는 것도 안 먹어. 처음부터 그렇게 배웠고, 내 돈 주고 먹을 거 사서 포장부터 뜯지 않으면 안 먹어. 더군다나 약이라며? 난 기본적으로 약 안 좋아해. 비타민도 안 먹는데 내가 뭘 먹어?”

    루다가 말을 안 하고 한참 동안 가만히만 있는다.

    “뭐야? 너도 나 안 믿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흠……. 네가 야구를 왜 못하나 했더니 몸이 허해서네. 무슨 약을 사다 먹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약 안 먹는다고!”

    “비타민하고 유산균은 먹어야 하고 밀크시슬 루테인은 챙기고. 남자는 아르가닌하고 마카인데……. 음… 필요할까? 음…….”

    미치겠네.

    “뭐 하냐?”

    “기다려 봐봐. 종합 비타민 비교하고 있잖아. 아연이 더 필요할까? 아… 이게 좋은데 아연이 없네. 아연을 더하고…….”

    “뭐 하냐고.”

    “이런 건 한 번만 디자인 잘하면 10년이 편해요. 너 아직 전립선이나 탈모는 괜찮지? 아니면 지금 말해. 약 바꿔야 하니까.”

    최강훈이 문제가 아니었어. 불법 약물 제조로 잡아가야 할 건 얘였어.

    “너나 많이 드세요. 난 구단에서 나오는 밥이랑 프로틴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운동 밥심으로 하는 거지, 뭔 이상한 걸 먹으려고 그래.”

    “야! 너 아직 어려서 몰라. 나이 먹어봐. 비타민 하나가 소중하다.”

    “남들이 들으면 40~50은 된 줄 알겠네.”

    “그때 되면 늦어요.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이따 헛짓거리를 못 하게 하려면 다른 걸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왜 내 기사는 안 뜨냐? 이 정도 되면 뉴스에 내 이름이 도배돼야 하는 거 아니야?”

    “어, 그거. 구단에서 막고 있어.”

    “어?”

    “너뿐만 아니라 최강훈, 박정환 이름도 안 나오잖아. 랩터스에서 다 막고 있어.”

    “언제까지 막을 수도 없을 텐데.”

    “삼촌 말은 다르던데. 사실 확인 안 된 상태에서 랩터스 선수 이름 뜨면 광고 싹 다 빼버리겠다던데? 혐의 확인 안 되면 안영진만 나오고 끝날 거야.”

    “그게 가능해? 대한 그룹 광고 안 받는 데도 있지 않아?”

    “아 작은 데는 여홍지가 돌아다니면서 기자들 불륜, 횡령, 날조 뭐 이런 거로 목 조르고 있대. 하여간 그 사람 해도 참… 치사하게…….”

    확실히 이놈의 팀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그러니까 너는 그냥 훈련이나 잘하고 있어. 새로운 소식 생기면 누나가 알려줄게. 아…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게 문제네. 어렵네…….”

    “뭔데?”

    “마카가 참 좋거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넌 쓸 일이 없잖아.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 건데 운동에도 필요한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안 되겠다. 이건 보류. 이건 내가 학교 가서 애들한테 실험해 보고 결정하자.”

    뭐, 뭔진 모르지만 어쩐지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 *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KBO판에 랩터스 구단주와 단장의 비밀 회동이 열렸다.

    “결론은?”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수사 기관이 알아서 하겠지.”

    구단주가 앞뒤 잘라먹고 결론을 요구하는데 단장은 성실히 응할 생각이 없다.

    “그룹 감사팀까지 끌고 갔으면 성과가 있어야지.”

    “성과는 무슨 성과. 안영진 하나 잡고 끝나는 거지.”

    여전히 냉랭한 단장. 구단주의 질문이 이어진다.

    “최강훈은?”

    “걔는 합법이잖아요.”

    “그놈 의사도 잡혀갔잖아.”

    “풀려날 거예요.”

    “왜?”

    “의사니까.”

    “그러니까 왜! 의료법, 약사법, 마약류 관리, 영업 방해! 다 걸었는데 왜 풀려나냐고!”

    “풀어준다잖아. 왜 나한테 그래요. 검찰에 아는 사람 많다며. 가서 풀어주지 말라고 하든가!”

    “벌써 했지. 했는데 내가 아는 애들은 다 경제 사범 전문이야. 이쪽은 잘 모른다고.”

    단장이 구단주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단장의 눈초리를 본 구단주가 오히려 뻔뻔하게 단장을 몰아세운다.

    “안영진은 이대로 자격 정지만 받으면 끝? 드래곤스는 뭐래?”

    “의사 놈 나오는 거 봐서 안영진이 구속될 수도 있어요. 의사가 안영진한테 다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어서 상황 봐야 하고 드래곤스는 자꾸 우리 팀 있을 때부터 하던 거라고 물타기 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야. 우리 팀 있을 때 안영진이 얼마나 못했는데. 약 빨고도 그 성적이면 진작 야구 때려치웠어야지.”

    구단주를 여전히 한심하게 바라보는 단장이 이미 다 아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꺼낸다.

    “안영진이야 드래곤스에서 알아서 할 거고 문제는 이게 아니에요.”

    “어? 이거 말고 뭐가 있는데?”

    “박라빈.”

    “박라빈은 왜.”

    “드래곤스에서 박라빈을 데려갈 거예요.”

    그제야 현재 말고 미래를 걱정할 시기임을 깨달은 구단주의 표정이 싹 바뀐다.

    “우리가 못 데려와?”

    “사치세가 빡빡합니다.”

    “넘자.”

    “올해 살자고 내년을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럼 내년은 어떻게 버텨?”

    “김민중 감독이 스프링캠프에서 중견수 만들어 주기로 했어요.”

    “선수가 만들고 싶다 그러면 만들어져?”

    “없으면 만들어야지 별수 있나요?”

    “외국인은?”

    “1루.”

    “중견수 없어?”

    “타격을 포기하면 구할 수는 있는데, 그럴 거면 그냥 박동수 쓰지.”

    답답함을 느끼는 구단주가 힐난을 퍼붓는다.

    “운영을 어떻게 하는 거야! 팀이 왜 이래! 뭐 하나 잘 굴러가는 게 없어!”

    “이번에 우승했는데?”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과정이 완벽해야지!”

    “언제는 결과로 말하라며?”

    “결과도 좋고 과정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지! 이래서야 원…….”

    “어쨌든 그런 줄 알고 있으시라고요. 그리고 최강훈이 이제 그 의사 XX한테 처방전 못 받을 거라 맘 놓고 약 쓰기 힘들 테니까 잘 좀 지켜봐 주시고요. 이미 홍지가 애들 붙여 놓긴 했는데 따로 부탁 좀 드릴게요.”

    그제야 단장이 찾아온 이유를 안 구단주가 길길이 날뛴다.

    “야! 너 이거 때문이지? 나 일 시키려고 온 거지? 어쩐지 오늘 좀 고분고분하다 했어. 나 안 해! 몰라! 구단 일은 구단이 구단주는 숙청만 있을 뿐!”

    “그래? 그럼 홍지가 책임지라고 해야지 뭐. 꼬리 자르기. 몰라?”

    “거기서 홍지가 왜 나와!”

    “나갑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구단주님. 홍지가 힘들어요.”

    나가는 단장 뒤로 구단주가 고함을 질러대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소전, 내일 가지? 조금 더 같이했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

    뭘요. 이제는 작년엔 주지도 않던 연습장 열쇠까지 주면서 내가 알아서 운동하고 알아서 가라면서요.

    하나도 안 아쉬워하는 거 안다고요.

    “올해는 스프링캠프 참가해야 하니까요. 저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요. 더 훈련해야 하는데 아쉽네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라타 코치.

    “지금도 우리가 하고자 했던 건 충분히 다 했어. 충분해. 이렇게 이번 시즌 보내고 보자고. 그러면 자네가 얼마나 좋은 선순지 기록이 알려줄 테니까.”

    전 지금도 충분히 좋은 선순데요. 잠실에서 홈런 19개를 때린 홈런 타자라고요!

    “연습에 충분함이 있겠어요? 아직 코치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내 머릿속과는 상관없는 말을 내뱉는 혓바닥이 라타 코치의 얼굴을 미소 짓게 만든다.

    “무슨. 선수가 좋은 선수라 그렇지. 이번 시즌 잘 보내고 내년에 보자고. 이번에 하는 거 보니까 내년엔 내가 꿈에 그리던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시즌 잘하게. 난 소전을 믿네.”

    내년에 꿈에 그리던 것? 그게 뭔데? 지금은 타격 폼을 세 개로 쪼갰으니 7개, 10개로 더 세분화하려나?

    코치님 지금도 충분히 괴롭거든요. 적당히 해주세요.

    마지막 날까지 훈련장 문 닫을 때까지 연습하고는 랩터스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애리조나로 출발했다.

    그 유명한 랩터스의 스프링캠프. 돈이 남아서 썩어나는 랩터스의 스프링캠프를 드디어 경험해 본다.

    스프링캠프지에 도착해 오랜만에 만난 감독님과 코치님들께 인사드리고 선수들을 만나 인사했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전하지 못 하는 말들. 감독님과 내일 따로 면담하기로 약속을 잡고 매니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번 시즌부터 함께 하게 된 신인 선수들과 같이 묶여 훈련장을 견학한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지난 시즌 훈련장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나만 신인들과 함께 여기저기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풀사이즈 연습장만 8면, 간이라고 하기엔 리틀 구장만한 연습장이 4면, 불펜 따로 배팅 연습장 따로 실내 연습장도 축구장만 한 게 두 개. 그 옆으로 우리가 전세 내고 쓰는 건 아니지만 실내 육상장과 수영장, 그 옆으로 각종 테라피 시설…….

    미쳤다 미쳤다,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보니… 생각보다 더 미쳤다.

    “형. 이거 구단 거예요?”

    “아니, 예전에 메이저팀이 쓰던 건데 겨울에만 빌려 써. 소문에는 우리가 주는 스프링캠프 임대료로 1년 먹고 산다는 말도 있더라고. 지금 구단주님이 단장하실 때 리모델링까지 싹 해줬다는 말도 있어. 우리 구단 대단하지 않냐?”

    이게 대단하냐? 내 연봉은 깎고 꼴랑 한 달 쓰는 데다 돈을 쏟아붓는데?

    “자, 이제 투수조와 야수조 그리고 포수조 나눠서 훈련하러 갈 거다. 여기는 투수, 여기는 야수, 여기는 포수. 나눠서 서봐.”

    이번 시즌 신인 1번 지명권을 3장 확보한 랩터스가 13명이나 되는 신인들을 포지션별로 나눈다.

    앞에 나서고 싶지는 않은데 제일 고참이라는 이유로 야수조 애들이 내 뒤에 늘어선다. 투수는 6명, 야수 5명, 포수 2명. 많이도 뽑아놨다.

    “야, 너는 거기 왜 있어? 이리 안 와!”

    “저요? 저는 투수입니다.”

    “너 외야수야! 외야수로 뽑았다고! 자기 포지션도 몰라.”

    “저 고등학교 때 투수했습니다.”

    “됐고, 이리 와!”

    투수 쪽에서 한 명이 뚱한 표정으로 내 앞으로 선다.

    뭐, 뭐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투수조와 포수조 매니저 형들이 각자 자기 조를 데려가고 홀로 남은 야수 조 매니저 형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노경준. 보통 이럴 땐 뒤에 가서 서지 않냐?”

    “김소전 선배를 좋아해서 가까운 데 섰습니다.”

    어금니 깨물고 미소를 짓는 매니저 형이 어금니를 깨문 채로 나에게 지시한다.

    “신인왕 선배님. 후배가 신인왕 선배님을 좋아한다네요. 알아서 얘 잘 가르쳐라…….”

    운동하는 시간이 달라서 그랬는지 신인들을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처음 봤는데 처음부터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특히나 팀에 이런 똘아이가 나타나면 높은 확률로 팀 분위기가 꼬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건 누가 뽑아왔는지…….

    “형. 저 그냥 혼자 운동하면 안 될까요?”

    “애들 잘 챙겨서 따라와.”

    하…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느낌이 안 좋다.

    이놈의 훈련장, 커도 너무 크다. 야수 조가 모여 있는 타격 훈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앞에서 뒤로 걷는 이상한 놈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선배님.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선배 형. 형도 투수했었다면서요?”

    “삼진은 왜 그렇게 많이 당해요?”

    “150은 치는데 130은 일부러 안치는 거죠? 자존심 상해서?”

    “인터뷰 스킬은 연습하는 거 맞죠? 제가 형 인터뷰 보고 반해서 랩터스 오고 싶었거든요…….”

    “형… 형… 형…….”

    여기 매점에 귀마개를 팔까? 무조건 사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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