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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56화 (56/204)
  • 56화. 타격 폼 조정

    훈련. 그리고 훈련. 진짜 미친 듯이 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너만 미국 가냐? 나도 미국 간다. 작년에 구단주 형이 10년 치 라타 코치 아카데미 등록해 줘서 다음 달 훈련 금지 기간 시작에 맞춰서 미국 간다.

    미국 가기 전 벌크업을 위해 당긴다.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아 힘들면 뛴다. 그러다 손발의 떨림이 줄어들면 또다시 쇠를 당긴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혹사시키니 시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 * *

    루다가 미국 간 지 일주일. 내가 미국으로 가야 할 날이 이 주쯤 남았을 때 알람 시계 말고는 딱히 쓸모가 없던 전화기가 울린다.

    “뭐 하냐? 술 먹자.”

    “넌 뭔데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 받아? 미국 갔으면 잘 갔다고 연락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오~ 김소전~ 나 걱정한 거야?”

    “됐다. 살아 있으니까. 끊어라.”

    “얼~ 제법 귀엽네.”

    이, 이것이 일주일 만에 연락이 돼서 한다는 소리가 이딴 소리를…….

    “살았으니 됐다. 나도 2주 후에 미국 가니까 휴식일에 맞춰서 보자.”

    “뭔 소리야. 내가 너를 미국에서 왜 봐?.”

    뭐야? 이건?

    “야, 나 지금 랩터스 훈련장 앞이니까 나와. 밥 사줘. 배고파.”

    이번 기회에 연을 끊었어야 했는데… 그 쉬운 걸 못해서 머리가 아프다.

    운동하다 말고 대충 씻은 듯 만 듯 머리도 안 말리고 밖에 나가자 큰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온 루다가 서 있었다.

    “생긴 건 멀쩡하네. 생긴 건 멀쩡하니까 이제부터 좀 맞자.”

    일주일 동안 맘고생 한 거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올라 오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으려 잡으러 다가가자 저 고양이 같은 것이 슬쩍 피하며 떼를 쓴다.

    “자, 잠깐. 우선 밥 먹고. 죽을 때 죽더라도 밥 한 끼 정도는 괜찮잖아.”

    우선 저 입부터 꿰매버려야겠다.

    그래도 배고프다니까 우선 먹여는 놓고.

    “너무한 거 아니냐?”

    “뭐가?”

    “너 연봉이 1억인데…….”

    “9천 9백이지.”

    “그런데 밥 사준다면서 여길 데려와?”

    “왜? 김밥헤븐이 어때서? 배고프다며? 이 동네에서 음식 제일 빨리 나오는 집이야. 왜 이래.”

    내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자리 앉아 몇 마디 나눴는데 김밥부터 도착한다.

    “빠르긴 빠르네.”

    빠르다고 하고는 앞에 놓인 김밥을 한 개씩 깨작거리면서 오물오물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다.

    “배고프다며?”

    “배… 고프지……. 비행기에서 스테이크를 먹긴 했지만 배는 고프지.”

    요즘 들어 저것이 자꾸 날 보고 눈을 찡긋거린다. 그런 것도 이쁜 애들이 해야 넘어가 주지. 넌… 어휴…….

    “미국 간다더니 일주일 만에 온 건 무슨 경우냐? 공부 못 해서 잘렸냐?”

    “잘리긴 나 공부 잘한다니까.”

    “그럼 왜 왔어?”

    “시험 봤으니까 왔지.”

    “무슨 시험을 미국서 봐? 그리고 시험 봤으면 거기서 학교 다녀야지.”

    “어휴, 네가 뭘 알겠냐. 잘 들어…….”

    그게 뭐지? 뭘 했다고?

    “그러니까 미국에서 회계사 시험을 봤다? 한국 사람이 미국 회계사가 되겠다고 시험을 봤다. 그거 보는데 1주일 동안 미국을 다녀왔다? 그런 거냐?”

    “오~ 김소전 이제 머리가 뭔가 추론이라는 걸 하는구나. 대견해. 많이 발전했어.”

    “이게 진짜. 아후……. 그럼 그렇다고 얘길 해야지! 그리고 가서 전화 한 통. 아니 까똑 한 번 못해?”

    “미국 회계사가 쉽다고 해도 나 딱 3개월 준비했다고. 그것도 절반은 너 경기 분석하면서 하느라 벼락치기로 시험 본 거란 말이야.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책 보느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음… 이래서 내가 용인에 정신병원 위치를 찾아놨었다. 조만간 시간 내서 입원 수속 밟는다.

    “다 먹었으면 가. 공항에서 이리로 바로 왔으면 회장님 기다리시겠다.”

    “기다리긴. 아빠 미국에서 보고 내가 먼저 들어왔는데. 어?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비네~ 으흐흐. 김소전, 나랑 술 한잔할까? 집에서 라면 좀 끓여줘?”

    접시에 있는 단무지를 앞에 있는 정신 나간 것 입에 집어넣으며 확실한 의사를 알려 주었다.

    “너랑 나랑 여기서 먹은 게 라면이다. 여기서 먹고 라면을 왜 또 먹어! 조용히 집에 가라.”

    “흥, 칫. 재미없는 놈. 나간다. 시험 끝나서 며칠 친구들이랑 놀 거니까 괜히 한밤중에 전화하고 그러지 마라. 나 클럽에선 전화 안 받는다.”

    또 제 할 말만 하고 쌩하고 나가는 루다. 잠깐 한밤중에 어딜 간다고? 저거 또 술 먹고 어디서 막 쓰러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 몰라. 떡대 아저씨들이 알아서 하겠지. 몰라.

    * * *

    루다에게서 까똑이 다시 날아오기 시작하자 내가 웨이트 하면서 드는 무게가 줄어든다.

    이거 뭐가 잘못됐다. 보통은 운동을 하면 할수록 중량은 늘어나기 마련인데 무게가 지난 일주일보다 확 줄어들었다.

    미국 가서 기술하기 전에 벌크업 좀 하고 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훈련 시간을 늘려야지. 오늘부턴 하루 운동 세 탕이다!

    밥을 더 많이 먹고 운동을 늘려가는데 체중이 늘기는커녕 점점 더 빠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은 밤마다 오는 까똑.

    밤 11시만 되면 이 추운 겨울에 헐벗은 루다가 어두컴컴한 클럽에서 술병을 들고 사진을 찍어 보낸다.

    신경 안 쓰고 자려고 하는데 꼭 나 잠이 오려는 순간 날아오는 까똑에 오려던 잠이 어디로 도망가고,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로 매일 아침을 맞는다.

    아무래도 내가 얘 때문에 내 명에 못 죽는다. 왜 나 자려고 누울 때 까똑을 보내. 뭐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데…….

    그런데 어제 루다 뒤에 느끼하게 생긴 문신한 놈 있던데… 그놈이랑 놀진 않았겠지? 문신은 극혐인데…….

    * * *

    이 주 만에 좀비가 된 랩터스의 선수 하나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식당에 나가지 말라고 해도 여전히 바쁜 식당에 나가는 엄마도 배웅하지 않는 쓸쓸한 인천공항.

    나 홀로 비행기 타고 해외 나가는 건 처음이라 좀 그렇지만 어차피 LA 공항에 내리기만 하면 통역 겸 가이드가 나와 있을 거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 최근 내 주변의 문제는 이분이 다 만드신다. 비행기 시간은 착착 다가오는데 출국장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명령을 내린 그 사람. 그 사람이 무서워 출국장 앞에서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본다.

    더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여권을 꺼내 출국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성난 황소가 우당탕탕 나를 향해 돌진한다.

    “헥, 헥, 헥. 이, 이거… 헥, 헥.”

    “야! 지금이 몇 시야! 비행기 놓치면 책임질 거야?”

    “헥… 헥… 헥… 아휴… 자, 이거나 받아. 헥…….”

    “뭔데 이걸 받으래?”

    “휴, 휴… 너, 너 미국에서 한국 들어올 때 사. 어휴… 사 올 거. 여기다 적어줬으니까… 휴, 휴… 잃어버리지… 켁… 쿠엑… 잃어버리지 말고 사와.”

    “이게 뭔데? 뭔 다 영어야.”

    “후, 후… 술하고 담배하고… 후… 화장품……. 후… LA 공항 면세점에서 종이 보여주면 챙겨줄 거야. 후… 후… 그럼 올 때 까먹지 말고 잘 사와.”

    이, 이거 준다고 비행기 시간 다 될 때까지 날 붙잡고 있었어. 아… 진짜 이걸… 하…….

    - 111가1234, 111가1234 람보르기니 차주는 속히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 주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방송…….

    “야! 내 차 빼래! 잘 갔다 와.”

    “뭐? 차를 어디다 댔길래?”

    “몰라. 늦어서 그냥 횡단보도 위에 댔는데. 가서 까똑해.”

    미친 듯이 달려왔던 황소가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내 앞가림도 힘든데 얘를 어째야 하나 머리가 아프다. 야구보다 얘가 100만 배는 더 어렵다.

    * * *

    비행기를 타는 것까지가 어려웠지, 비행기를 타고 라타 코치를 만나는 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그래. 내가 야구나 해야지, 다른데 신경 쓸 시간이 아니다.

    1년 만에 만난 라타 코치와 인사를 하자마자 내 타격과 관련해 심도 깊은 토론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타이밍이 좀 빠르다는 거야?”

    “네. 150부터는 타이밍이 좀 잡히는데 140 이하의 직구가 타이밍 잡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타석 앞까지 나가서 타격하고 있다는 거군.”

    “네. 간접적으로 투구 속도를 늘리고 있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지?”

    “리그에 직구 평균 구속이 130도 안 되는 투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공은 타이밍 잡기 너무 힘듭니다.”

    내 말을 듣던 라타 코치가 손뼉까지 쳐가며 크게 웃는다.

    “작년엔 몰랐는데 유머도 하는 친구였어. 웃겼어. 하하.”

    “네? 전 진지한데요?”

    “하하! 그만, 그만해. 충분히 웃겼어.”

    “코치님, 어떤 부분이 웃기세요?”

    “리틀 야구도 아니고 패스트볼이 130이 안 나온다고 하니까 웃기잖아. 얼마나 웃길 얘기가 없으면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그래.”

    “진짠데요.”

    “이 사람. 그만 하라니까.”

    “제가 직구 130까지는 어떻게든 쳐보겠는데 124짜리 직구는 정말 못 치겠더라고요. 직구 타이밍에는 절대 못 치고 체인지업이다 생각하고 들어가는데, 그럴 때 진짜 체인지업이 들어오면 몸이 3단 분리되면서 타격이 안 됩니다.”

    “진짜라고?”

    “네.”

    “패스트볼이 130이 안 된다고? 체인지업이 아니고?”

    “체인지업은 110이에요.”

    “브레이킹볼은?”

    “75짜리 커브도 봤습니다.”

    “프로 정규 리그에서?”

    “네.”

    내가 KBO 리그의 흑마구 투수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라타 코치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우리 14살 조카 놈도 프로 데뷔시켜줄 수 있겠나.”

    하…….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 주변은 왜 다 이러냐.

    라타 코치의 조카의 영상을 스카우트팀으로 보내고 나서 라타 코치와의 타격 폼 교정에 들어갔다.

    “소전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충분히 알겠네. 우리가 만든 타격 자세를 그대로 지키고 있네. 자네가 자랑스러워.”

    뭐. 자랑스러워하실 거까지야. 그저 매일 배트를 천 번씩 돌렸을 뿐입니다.

    “여기서 타이밍을 맞추려니까 힘듭니다. 투구와 동시에 중심을 이동시켜야 하니까 느린 공에 대처하려면 배트를 최대한 뒤에 머물게 하면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중심 이동으로 만든 힘도 충분히 못 살리고 몸의 꼬임을 풀어주는 과정이 너무 뒤에 남습니다.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보던 코치가 공을 몇 개 더 쳐보기를 권한다.

    배팅 머신의 속도를 130 정도로 맞추고 진행하는 타격 연습. 실전에서 뭘 던질지 모르고 때릴 때나 타이밍 못 맞추는 것이지, 배팅 기계는 공을 쪼개 버릴 듯 연신 연습장 천장으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바라보던 라타 코치.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는 나를 바라본다.

    “소전. 우리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대가 된다. 기대가. 느린 공도 치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코치님 바로 시작합시다.

    “다리를 더 들라고요?”

    “그래, 다리 드는 높이를 올려보자.”

    “얼마나요.”

    “가슴까지.”

    “다리를 가슴까지 들어 올리라고요?”

    “그래. 그렇게 투수가 하이키킹하듯 높이 들어보면 어때?”

    “그랬다간 빠른 공은 못 칩니다.”

    선수가 반발하는데도 코치가 선수를 사랑에 가득 찬 모습으로 바라보며 코칭을 시도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늘 소전의 타격을 눈으로 보니 가능할 수도 있겠어. 사람들이 레그킥이 타이밍 잡기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달라. 선수에 따라서는 레그킥을 해서 스트라이드 하는 거리로 타이밍을 잡는 경우도 있어. 더군다나 소전처럼 똑같은 자세를 꾸준히 만들어 낼 수 있는 타자라면 상황에 맞는 타격 자세를 필요할 때마다 골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때? 나랑 같이 패스트볼 구속에 따른 레그킥 변화를 한번 해보는 거 말이야.”

    잠깐, 결론은 투수에 따라서 타격 폼을 바꿔라? 지금 이 말 하는 거야?

    “코치님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타격 폼은 항상 똑같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야구에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나. 나도 시도해 본 적은 없는데 소전 선수를 보니 꼭 시켜보고 싶네. 이번 겨울 120부터 160까지 패스트볼을 칠 수 있는 타격 폼을 완성해 보세나.”

    실수다. 미친X은 미국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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