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일희일비 (2)
* * *
랩터스 대회의실.
그 큰 공간에 다섯 명이 모였다.
좌장 석에 구단주 형. 왼쪽에 단장과 운영팀장. 맞은편엔 선수와 선수 친구가 자리했다.
“선수 연봉 협상은 단장 소관인데 왜 부르신 거죠?”
시작부터 살기 가득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듣고만 있어도 오금이 저려 온다.
“단장이 일을 너무 막 한다는 민원을 받아서 그래.”
“민원을 누가 넣었나요? 김소전 선수, 김소전 선수가 민원 넣었어?”
살을 도려내는 듯한 단장의 공격. 잔뜩 쫄아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저, 전… 아… 아닙니다.”
“그럼… 너야?”
어버버한 나를 지나 바로 옆의 친구에게 날아간 화살.
“언제 봤다고 너라고 해요?”
저 공격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받아치는 루다. 이럴 때 끼는 거 아닌데……. 난 여기 왜 온 거야.
“봤지. 전에 전일 신문이랑 김소전 담그려고 했잖아. 이래서 개념 없는 애들은 봐주면 안 되는데 내가 실수했어.”
“뭐? 개념? 지금 말 다 했어요?”
“아니.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해. 같잖게 어른들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뭐? 같잖아? 사과해요! 당장 해요!”
루다를 쓱 쳐다보고는 피식 비웃어 주는 조수아 단장. 웃음에서도 칼날이 나오는 건 처음 봤다.
“불렀으면 얘기해요. 헛소리하면 다음부턴 불러도 안 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요.”
구단주 형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협박을 하는 단장.
구단주가 랩터스 주인인데… 무슨 머슴이 저렇게 당당해.
“조 단장. 김소전 선수한테 연봉 4천 제시했다며?”
“4천6백입니다. 구단주님.”
단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여홍지 운영팀장이 대답을 한다. 언제 들어도 홍시 누나의 목소리는 참… 따뜻하다.
“홍시야~ 아니… 여홍지 팀장. 너무 적지 않아? 고과로 팀 내 5등 하는 선수가 4천6백이면 너무 적은데?”
“적습니다.”
“그럼 올려줘야지.”
“그럴 수 없습니다.”
순간 구단주 형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홍시 누나가 눈을 씽긋거리자 확 펴진다.
“홍시야, 올려주자. 이런 거로 홍시 욕먹는 거 오빠는 볼 수가 없다.”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 돈이 왜 없어? 내가 주는 지원금이 얼만데 돈이 없어? 야 조수아! 돈 다 어쨌어! 1년에 5백억을 쓰는데 연봉 줄 돈이 없는 게 말이 돼!”
홍시 누나랑 대화하다 엉뚱하게 단장님에게 불똥이 튄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타격이 없는 단장이 대답은 안 하고 홍시 누나를 손가락을 가리킨다.
“예산은 충분합니다만 페이롤이 부족합니다. 사치세 기준 이하로 맞추려면 연봉을 줄여야 합니다.”
“올해부터 사치세 안 내잖아. 올해 은퇴하는 선수도 있으니까 페이롤 여유 있지 않아?”
“단장님하고 계획 중인 게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홍시가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말을 멈춘다. 그러고는 루다를 바라보더니 강하게 요구한다.
“저것 좀 치우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
홍시 누나의 말고 함께 루다가 벌떡 일어난다.
“뭐? 저거? 내가 물건이야! 왜 그래요! 단장이고 운영팀장이고 다들 왜 그래요!”
양손으로 턱받침을 하고는 밑에서 위로 루다를 올려다보는 홍시 누나.
“혹시 하시는 일이? 소전이 에이전트? 아니면 신문사 기자? 그거 두 개는 다 아니고 우리 소전이 여자 친구라도 돼?”
뭐, 뭐, 뭐라는 거야. 누나 왜 이래요.
“그래! 내가 얘 마누라다! 어쩔래! 왜 자꾸 소전이, 소전이 그래! 운영팀장이면 그렇게 선수 이름 막 불러도 돼!”
XX. 망했다…….
“죄송합니다. 얘가 미쳤나 봐요. 죄송합니다. 나와.”
“왜! 놔봐! 왜 자꾸 소전이, 소전이 하냐고! 놔! 놔봐!”
“죄송합니다. 누나 제가 전화드릴게요. 나와!”
“안 놔? 놔봐! 왜 나만 보면 그래? 내가 그쪽보다 예뻐서 질투해? 왜 그래!”
“나오라고! 나와!”
“야! 안 놔? 놔! 아! 아파! 놔.”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렇게 센지 낑낑거리며 건물 밖까지 끌고 나오는 데 힘만 잔뜩 썼다.
건물 밖에 나오고 나서야 진정이 된 미친X.
어제 얘 아빠가 얘 잘 봐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잘 봐줄 수가 있는 건지.
“미쳤냐?”
“미치다니? 저 여시꼬빼기 같은 게 일부러 막 저러는 거 못 봤어? 오늘 내가 결판낸다.”
“미쳤냐고. 우리 팀 운영팀장한테 행패 부리면 난 야구 어떻게 하냐?”
“선수가 야구만 잘하면 되지 뭘 그렇게 눈치를 봐? 그리고 저러는 거 갑질이야. 희승이 삼촌이 저것들에 놀아나서 미적거리면 청와대 청원 넣을 거야. 봐. 나 진짜 한다.”
“내 앞길 막으려고 작정했냐?”
“야, 야구팀이 여기 하나야? 그리고 야구 한국에서만 하냐? 너 여기서 잘리면 내가 미국 보내 줄게! 저런 것들은 혼구녕을 내놔야 해!”
기상청에서 이번 겨울 춥다고 했는데 정말 춥다. 그리고 얘 때문에 더 추워질 것 같다.
“우선 가라. 나는 좀 이따가 사무실 들어갔다가 갈 거니까.”
“왜. 같이 가! 넌 어리바리해서 안 돼. 내가 가서 싹 다 정리를…….”
“가라고! 내 앞길 막지 말고 좀 가라고! 적당히 해야 놀아주지. 당분간 연락하지 마라.”
잠실야구장 중앙 게이트 앞에 루다를 혼자 버려두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민원인 둘이 떠난 랩터스 대회의실에 남은 사람들끼리 모자란 회의를 이어 간다.
“쟤네 사귀나?”
“어린애들이 사귀다 헤어졌다 하는 거지, 어른이 뭘 그런 거에 관심을 가져요.”
“홍시야. 너는 애들한테 왜 그래?”
“쟤가 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쟤 소전이 옆에 못 있게 해야 해요.”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니고? 소전이 왜 연봉을 4천만 준다는 거야?”
구단주의 물음에 단장과 운영팀장이 동시에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는 단장이 상황을 브리핑한다.
“우리 페이롤이 이번 시즌까지 빡빡해요. 거기다 이번에 우승하면서 인상 요인도 많고요. 그래도 올해 최선영 FA 끝이니까 최선영 FA 금액 조정하고 여기저기 조금씩 인상액 줄이면 9억까진 만들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소전 연봉을 4천6백으로 맞추면 소닉스 중견수 박라빈을 6년 60억에 지를 수 있어요. 시뮬레이션 다 해봤는데 중견수를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이번엔 구단주의 한숨이 길어진다.
“박라빈이 필요해?”
“필요해요.”
“감독이랑은 얘기했고?”
“감독 요청이에요.”
“감독이 중견수가 필요하대? 왜.”
“내년에 박재호 2루로 돌리고 숏에 김소전 넣을 거예요. 올해 박재호 수비 범위가 반으로 줄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3루수 라정안이 범위를 넓게 가져가는 데 부담이 너무 커요. 중견수는 구할 수 있어도 유격수는 트레이드도 불가능해요. 유격수 김소전이 필요합니다.”
구단주의 한숨이 깊어만 간다.
“아니, 어떻게 중견수가 없어서 이 상황을 만들어! 단장이 뭐 하는 거야!”
“최강훈이라고 리그 최고 중견수가 있었는데 누가 팔아먹었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그래서 우리 선수 운영 계획이 다 망가졌어요.”
“어떤 놈이… 아, 나구나. 큼… 큼…….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어쩔 건데?”
“어쩌긴요. 김소전 연봉 깎아서 박라빈 잡아 와야지. 그게 김소전한테도 좋아요. 박라빈 못 잡으면 김소전 올해처럼 여기저기 또 떠돌아다녀야 해요. 아직 어려서 모르지만 자리 못 잡고 떠돌면 부상 위험도 높고 성장도 더뎌져요. 중견수가 필요합니다.”
머리를 쥐어뜯던 구단주. 빠진 머리카락만큼 좋은 생각이 든다.
“사치세 낼까?”
“아니.”
“왜? 지금까지 내면서 잘 해왔잖아. 더구나 올해 사치세 안 내서 내년에 사치세 내도 신인 지명권도 안 없어져.”
“내년엔 진짜 FA 싹 쓸어와야 하거든요. 그때 한번 사치세 기준 넘어갔다 와야 해요. 다 시뮬레이션했다고! 내가 얼마나 빡빡하게 예산 관리하는 줄 알아요? 난 누구처럼 대충대충 사치세 내면서 구단 운영 안 한다고!”
단장의 막말에 구단주가 급발진한다.
“야!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 팀이 이 정도 기틀이 잡힌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게! 네가 그렇게 나오니까 우리 홍시가 중간에 얼마나 고생했어. 얘 봐. 얼굴이 반쪽이 돼서 폭삭 말랐네.”
“홍지는 원래 말랐거든요. 그리고 이번엔 홍지가 실수한 거라고요. 그냥 솔직히 털고 설득했어야 했는데 김소전이 어버버해서 그냥 흔들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실수했어요.”
“이게 또 홍시 구박하고 있어. 홍시가 어디 그럴 애야! 단장이 몰아붙이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냐고! 홍시야… 나는 너 끝까지 믿는다. 괜찮아. 내가 다 해결해 줄게.”
구단주의 사랑스러운 눈빛을 받은 여홍지 팀장이 미안한 마음 가득 담아 잘못을 고한다.
“아니에요. 제가 소전이한테 너무했어요. 홍지는 연봉 계약하고 시즌 중에 상금 받는 거 소전이한테 몰아줘서 보전해 주려고 했는데. 소전이가 홍지 마음을 몰라 주네요. 홍지가 소전이한테 따로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홍지가 잘못했어요.”
팀장의 솔직한 고해성사를 옆에 있는 단장이 못마땅해한다.
“여홍지. 너 기술 쓰지 말라고 했지.”
“헤헤, 언니. 구단주 오빠한테는 좀 해도 되지 않을까요?”
홍지의 힘든 사정을 들은 구단주의 머리가 팽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상금… 보전… 따로… 별도… 안 걸리는 계약……. 그렇다면. 할 수도… 있지……. 잠깐, 조수아. 김소전 연봉 얼마 주려고 했어?”
단장 대신 대답을 하는 운영팀장.
“고과는 1억 5천. 협상가는 9천 9백. 목표액은 1억 2천이었습니다.”
“그걸 4천6백에 하자고 한 거야?”
“헤헷. 5천은 맞춰 주려고 했어요.”
“그건 무조건 맞춰지는 거잖아.”
“그거 이상은 예산이 안 돼요. 시즌 중에 상금으로만 5천 이상은 몰아주려고 했어요, 소전이한테.”
생글생글 웃으면 말하는 여홍지 팀장에게 마음을 뺏겨버린 구단주가 정신을 못 차리고 헤헤거리다 머릿속에 정리한 생각들을 풀어 놓기 시작한다.
“올해 최선영은 계약할 거지?”
“해야죠.”
“4년?”
“2+1+1년.”
“하여간 조수아 빡빡하게 구네.”
“내년에 FA 지르려면 여유가 있어야 해요. 난 누구처럼 무지성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총액은?”
“총액 36억.”
“계약금은?”
“8억.”
“픽스된 거야?”
“에이전트랑 얘기 끝냈어요.”
“FA 협상 시작도 안 했는데 빨라.”
“난 숙제를 미루는 성격이 아니어서요.”
불법을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단장에게 구단주가 양손을 들며 졌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계약금에서 내가 5천 빼줄게.”
“무슨 수로?”
“어쨌든 빼주면 김소전 연봉 1억 맞춰 줘.”
“9천 9백. 1억은 안 돼.”
“왜 안 돼?”
“구단이 자존심이 있지, 민원 들어 왔다고 막 퍼주면 안 돼.”
“거참. 쪼잔하게.”
회의실 탁자 위에서 두 남녀의 신경전이 펼쳐진다.
치열한 눈싸움 남자의 눈이 뻘게지고 눈물이 살짝 비추려는 순간.
“구단주님. 최선영 계약금은 어떻게 빼주시려고요? 홍지한테는 살짝 알려주시면 안 돼요?”
남자가 패배를 선언하려던 순간 남자의 비타민인 그녀가 남자를 구해 주었다.
“흠… 흠……. 내가 아무한테 알려주는 게 아닌데. 그게 말이야…….”
…
…
“그러니까 결론은 세계 그룹에서 수입해 파는 차를 반값에 주겠다?”
“아니, 그게 끝이 아니고. 반값에 1호 차 빼주는 건 기본이고 그러면서 광고 모델로 자연스럽게 밀어준다고. 그러면 최선영 입장에서는 대충 1억 5천은 세이브되는 거야.”
“최선영이 차 산대?”
“사겠지.”
“안 사면?”
“야! 슈퍼카를 반값에 주는데 왜 안 사?”
“최선영이 지금 뭐 타고 다니는 줄은 알고?”
“넌 선수가 무슨 차 타는지도 아냐?”
“최선영 애가 셋이다. 그래서 큰 차 타고 다니는데 문짝 두 개짜리를 사라고? 제정신이야?”
“뭐, 뭐……. 안 사면 내가 인수라도 하지 뭐! 물어나 봐봐. 무조건 산다고 그러지! FA 계약하고 차 바꿔야 하는데 슈퍼카 반값에 주면 얼른 사야지. 나 믿어.”
“약속한 거야. 안 산다 그러면 새 차 가격 주고 중고 인수하는 거야. 나, 이대로 진행해.”
“해… 해……. 아… 잠깐, 나 최선영한테 전화 좀 해보고.”
“홍지야. 에이전트 전화해서 계약서 다시 쓰자고 그래. 말 안 통하면 들어오라고 하고. 바쁘다. 가자.”
두 여자가 떠난 후 홀로 남은 남자가 자기 입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 * *
“소전아, 미안해.”
“아니요. 구단에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니야. 그래도 내가 처음부터 잘 설명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서 그렇게 못했어. 내가 너무 미안해, 소전아.”
사무실에서 루다가 진상을 부린 지 1주일 후, 홍시 누나에게 연락을 받고 연봉 계약을 마쳤다.
보수 총액 9천 9백만 원.
연봉 인상해야 할 선수들이 많은 관계로 상징적으로라도 내 연봉을 1억 밑으로 맞추고 싶었을 것이다.
야구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서로 간에 진을 이 정도 뺐으면 됐다. 홍시 누나에게 FA 영입 계획부터 앞으로 내 포지션 고정 방안까지 설명을 듣고는 도장을 찍었다.
“소전아, 그날 못 먹은 밥 먹자. 누나가 사줄게.”
으… 이건 무조건 가야 하는데……. 선약이 있다. 내가 나랑 약속한 선약. 눈물을 머금고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누나. 저 누나가 사주는 밥 꼭 먹고 싶었는데 오늘 절대 빠질 수 없는 선약이 있어서요. 누나 죄송해요. 다음에 제가 정말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진짜 죄송해요.”
“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계약해 줘서 고맙고, 누나가 밥 한 번 산 거다? 운동하러 왔다 갔다 하면서 사무실도 들리고 그래~ 누나가 소전이 보고 싶어서 눈물 나지 않게 해줘~”
윽… 홍시 누나 눈에 눈물 나면 안 되지. 암, 안 되지…….
“누나, 물 먹을 때마다 올라올게요. 그럼 내일 오겠습니다. 누나, 감사합니다.”
사무실을 나와 계약서를 챙겨 들고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한남동. 큰길에서 내려 기억에 의존해 골목을 헤매고 보니 한밤중에 본 큰집이 나타난다.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바라보지만 눌러 볼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는다.
현관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초인종 앞에 섰다가 다시 심호흡하길 여러 번. 쌀쌀한 날씨에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하는데…….
“뭐 하냐?”
“어… 어헛……. 아니, 너. 왜 걸어와?”
“나 도서관 다닐 땐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데?”
“아, 운동. 운동해야지, 운동.”
“뭐 하냐고. 남의 집 앞에서.”
“아. 뭐… 그게 뭐 하냐면… 아!”
뭐라 말을 해줘야 할까 어버버 하고 있는 내게 루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쪼아댄다.
“계약했네. 내놔봐, 계약서.”
“여, 여기…….”
내게서 서류 봉투를 강탈하듯 가져간 루다가 순식간에 쓱 하고 훑어본다.
“아. 치사하게 9백으로 끊네. 됐네. 자, 가져가.”
1억 못 받았다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별말 없이 그냥 계약서를 돌려준다.
얘가 왜 이렇게 차분하지.
“괜찮은 거지?”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전화도 안 받고 그러던데.”
집 앞에서 근황을 묻는 내게 루다가 눈을 감았다 뜨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낸다.
“내일 비행기 타고 미국 가. 당분간 못 보겠다.”
이 말만 남기고 거대한 철문 안으로 사라진 루다.
왜인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