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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51화 (51/204)
  • 51화. 신인상

    우승을 하고 파티를 하고 다음 날 훈련장으로 출근을 했다.

    밤새 선배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예쁜 여자들과 춤추는 걸 바라보다 침을 너무 많이 흘렸는지 계속 입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정수기부터 찾아 물을 들이켜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오늘은 정말 무리 안 하고 몸만 풀고 집에 돌아갈 거다.

    어제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휴식이 필요하다. 진짜 조금. 조금만 하다 들어간다.

    “어이, 누구야?”

    조금만 몸 풀다 집에 간다는 게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어제의 헐벗은 누나들을 생각하다 집에 안 가고 미친 듯이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땀을 쭉쭉 빼며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자 익숙한 실루엣의 남자가 보인다.

    “구단주 형? 형이 여기 어쩐 일이세요? 어, 현민이 형도 오셨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형님 두 분이 우승한 다음 날 훈련장을 찾았다.

    “어… 흠… 흠……. 나야 구단주니까 내 물건들 잘 있나 감시하러…….”

    “뭔 X 소리야. 이 XX. 어제 우승 축하연 할 때 조수아한테 자기 130 던진다고 X구라 쳐서 내년 개막전 시구해야 돼. 그래서 오늘부터 준비한다고 술도 안 깬 나 끌고 왔다. 이 XX가. 소전아. 이거 갑질 아니냐? 구단주가 에이전트 불러다 과외 시키는 거 갑질 아니야?”

    이 형님들의 우정을 나누는 방식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서로 저렇게들 좋아하고 있으니 응원해 줘야지.

    “어제 초반에 잠깐 인사만 하시고는 안 보이셨는데 시구 때문에 그러셨던가 봐요. 형님들, 시구에도 최선을 다하시려는 모습 정말 존경합니다.”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내 기름칠한 헛소리를 듣고 형님들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뭔 소리야. 시구 준비는 오늘부터고 어제는 우리끼리 따로 놀았지. 우승했는데 놀아야지. 너도 어제 라정안이랑 놀았을 거 아니야? 너네 또 R 호텔 갔지? 안 봐도 뻔해. 라정안이 야구나 할 줄 알지, 놀 줄을 몰라. 우리는 김민중 감독이랑 기인환 전 감독이랑 진짜 선수들만 모아서…….”

    “조용히 해. 애한테 뭘 가르치려고!”

    “야! 얘가 성인인데 너 같을까 봐. 아무리 못생겨도 너처럼 여자랑 뽀뽀도 못 해본 머저리일까 봐!”

    “내가 뭐! 나도 뽀뽀도 해보고 뭐. 뭐.”

    “뭐? 뭐 더 해봐? 뭐? 뭐?”

    “흠… 흠……. 애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해보라고! 우리 모쏠님이 뽀뽀뽀 이후에 뭘 봤는지 들어나 보게.”

    이 형님들이 나한테 잘해주는 건 참 좋은데 같이 있으면 기 빨리는 기분이다. 그냥 선물이나 받고 까똑으로 안부나 묻는 그런 사이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에효…….

    그나저나 나도… 뽀뽀뽀 이후에는… 하……. XX.

    한참을 서로 웃는 얼굴로 쌍욕을 내뱉던 아저씨들이 잊고 있던 나를 생각하고는 끊어졌던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얘가 모쏠인 건 모쏠인 거고 넌 왜 나왔어? 어제 라정안이가 술 모자라게 시켜줬어? 어제는 필름 끊길 때까지 먹고 택시비 받아서 집에 가는 날인데 어떻게 기어 나온 거야?”

    이 사람들이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저 술 안 합니다. 어제도 선배님들 드시는 거 따라만 드렸어요.”

    내 대답에 형님들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라정안은 에이전트가 너 아니지?”

    “걔는 나 아니지.”

    “그 XX 연봉이 4억8천 아니냐?”

    “액면가만 그렇지. 우승 보너스 S급으로 챙겨줄 거잖아.”

    “내가 우승 보너스를 적게 주던가?”

    “그럴 리가 주장은 우승 후에 팀원들 챙기라고 따로 더 챙겨주잖아.”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지?”

    “글쎄다. 강정상이 우승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 알려준 게 아닐까?”

    “그렇군. 범인은 강정상이었군. 내 이 XX를 요절을 내놓겠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형님들과 주장과의 뭔가 오해가 생긴 듯하다.

    “어제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어제 선수단 다 즐거웠는데요?”

    내가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한마디 하자 랩터스 구단주님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잘못했지! 이건 주장이 잘못한 거야! 랩터스 우승 뒤풀이에 어떻게! 선수들끼리만 놀 수가 있어!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그렇지. 말이 안 되지.”

    뭐… 뭐지…….

    “아니… 선수들끼리만 논 건 아니고……. 시… 실은……. 주장이 아는 여자분들도 같이…….”

    “그렇지! 여자분들도 같이… 응? 여자들도 왔는데 술을 네가 왜 따라?”

    “네?”

    “여자랑 노는데 술을 네가 왜 따르냐고?”

    “아… 다들 쌍쌍으로 노느라 술 안 마신 제가 커플들 술 좀 따라드리고…….”

    “네 파트너는?”

    “네? 아… 그분도 술 안 좋아하시고 속이 별로 안 좋으셔서 먼저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들 노는 거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둘 사이의 눈빛이 현란하게 오간다. 말을 안 해서 뭔지 모르겠지만 둘은 의사소통이 되는 듯하다.

    “너 혹시 포수 했냐?”

    “포수요? 포수는 안 했는데요.”

    “아니면… 혹시… 그래……. 말 못 할 비밀이라든가……. 아니, 괜히 무지개가 좋다든가. 뭐 그런……. 괜찮아. 형은 다 이해해.”

    “네? 그게 무슨 말씀…….”

    “그게 아니면 뭐야! 포수 하다 얘처럼 메추리알이 터지기라도 한 게 아니면 랩터스 우승 뒤풀이에서 멀뚱멀뚱 있는 게 말이 되는 거냐! 랩터스가 왜 우승을 해야 하는지 알아! 우승 뒤풀이! 그거 하려고 1년을 고생하는 건데! 넌 지금 랩터스 명예에 먹칠을 한 거야!”

    “잠깐, 얘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나처럼 뭐가 터져? 미쳤어? 미쳤냐고! 내가 보여줘! 터졌나 안 터졌나 보여줘? 엉! 엉!”

    어지럽다. 술도 안 먹었는데 토할 거 같다. 여기 더 있다간 내 명이 줄겠으니 도망가야겠다.

    급기야 서로를 노려보며 이크 에크를 외치는 형님들께 하직 인사를 올린다.

    “형님들. 전 오늘 운동 끝났으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던 거 마저 하시고 들어가…….”

    내가 인사를 하자 날카로운 로우킥을 날리던 구단주 형이 헛발질을 하고 혼자 자빠지면서 나를 멈춰 세운다.

    “기다려. 나랑 같이 갈 데가 있다. 따라와.”

    무서운데……. 저 형들 따라가기 너무 무서운데…….

    * * *

    구단주 형이 직접 모는 차를 타고 청담동 어디 구석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3층 건물. 겉보기에 그저 평범한 건물 앞 이면도로에 삐까뻔쩍한 외제 차들이 나란히 평행 주차되어 있다.

    저거 차 빼다가 긁으면… 보험 처리는 되는 거겠지?

    형님들을 따라서 들어간 건물. 분명 문 앞까지는 평범했던 건물이 속은 무슨… 죄다 금칠이다.

    돈이 썩어난다는 걸 절로 느끼게 해주는 위압감. 이런 집에서 살라고 해도 못 살겠다.

    “저… 여기는 왜 온…….”

    “기다려봐. 피터~ 나왔어.”

    구단주 형이 여기 주인으로 보이는 느끼하다 못해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문어에게 알은척을 한다.

    “회장님 오셨구나~ 준비해 놨어~”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느글거리는데 이 문어가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스캔한다.

    “아~ 이 선수구나~ 몸은 좋네~ 얼굴은… 음… 모델이 옷걸이만 좋은 됐지 뭐~”

    이게 미쳤나. 어디 다리 8개 달린 해산물 따위가 얼굴을 평가하고 있어?

    “그치? 피터가 봐도 얼굴은 좀… 그치? 그러니까 잘 좀 해줘 봐. 임팩트 있고 시선을 확 끌 수 있는 그런 거. 내가 믿을 데가 없다.”

    “내가 준비했지. 오늘 입어보고 조금만 잡으면 되겠어. 못생긴 선수. 아니… 키 큰 선수 이리 좀 와봐요. 옷 입어보자.”

    문어가 헛소리를 지껄이며 나를 작은방으로 부른다.

    벙쪄서 눈만 껌뻑거리는 나를 문어가 가는 방으로 밀어 넣는 형님들…….

    저 문어, 사람 물 거나 하는 건 아니죠?

    “어때? 괜찮지? 몸이 좋네.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고. 그리고 은근 몸이 다 근육이다. 핏 좀 더 딱 맞춰 주면 더 태가 나겠는데. 몸은 정말 모델 해도 될 몸이네. 얼굴이 아쉽다. 너~무 아쉽다.”

    “야구 선수가 운동만 하면 되지, 어디 얼굴 먹고 사나. 괜찮네. 시선도 확 끌리고. 피터가 고생했겠어. 역시 피터밖에 없다니까.”

    “그럼 대한패션에 좀 넣어줘~”

    “말 나온 김에 같이 한번 볼까? 시간 언제 돼?”

    “나야 언제든지 되지~”

    저들이 뭐라고 하든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무너졌고 나는 죽을 것이다.

    거울로 둘러싸인 작은방.

    그 한가운데 문어와 문어 친구들에게 붙잡혀 꼴뚜기로 변신하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딱 붙는 상의에 밑단이 갈가리 찢긴 재킷. 펑퍼짐한 바지에 좌우 짝짝이 구두…….

    “소전아 어때? 괜찮지. 너 신인상 받을 때 입으라고 형이 특별히 부탁한 거야.”

    “이, 이걸 입고 상을 받으라고요?”

    입고 나가는 순간 100만 년짜리 짤 탄생이다.

    “신인상이라고 해서 강하면서 풋풋한 하면서도 레거시를 이어 가는 모습을 센서티브하게 담아 프록코트와 재킷을 연결…….”

    “브라보~ 역시 피~터~ 나 설명 듣다 눈물 날뻔했어. 들으면서 옷을 보니까 소전이가 신인상부터 리그 MVP 타는 것까지 한눈에 다 들어오네. 어때 소전아 너무 감동적이지 않냐? 너 이런 디자이너 없다. 시상식 가서 옷으로 다 눌러버려.”

    이, 이걸……. 입고 시상식을 가라고? TV로 생중계되는 시상식을 이걸 입고 꼴뚜기가 돼서 카메라 앞에 서라고?

    눈물이 뚝 떨어지려고 하네.

    “피터, 옷 너무 예쁘다. 진짜 얼굴이 쪼금 아쉽네. 얼굴이 서강준이였으면 그냥 바로 백상예술대상인데.”

    “어휴~ 말해 뭐 해.”

    XXX야! 서강준이면 이거 보자마자 도망갔어! 나니까 버티고 서있는 거야!

    * * *

    대한 호텔에서 열리는 KBO 2026시즌 시상식.

    다행히 날이 겁나 춥다.

    날이 춥다는 핑계로 발목까지 오는 롱코트 단추를 꼭꼭 다 잠그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부터 기자들이 다가오고 사진도 찍고 하지만 사람들의 요청에도 절대 코트를 벗지 않고 자리를 찾아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신인상 후보라 오기도 했고 사실 성적으로 봐도 나밖에 없기도 한지라 오긴 와야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나 짱구를 굴리고 있는 가운데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상식이 시작된다.

    “안 덥냐? 여기 히터도 틀었는데 뭘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어?”

    이번 시즌 타격왕인 명정욱 선배가 슬쩍 뒤로 와서 툭 치며 아는 체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가 추위를 많이 탑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너 땀나는 거 같은데?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니냐? 안 괜찮아 보여.”

    괜찮겠어요? 이 속에 넝마를 입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선배님, 이번에 청약 당첨되셨다고 들었는데요?”

    “하하. 그게 벌써 소문이 났어?”

    “로또 축하드립니다.”

    타이탄스 명정욱 선배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속속 선수들이 식장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를 보고 자연스럽게 내 주위로 몰려드는 랩터스 선수단. 그리고 명정욱 선배가 이쪽에서 머무르니 한명 두명 타이탄스 선수들이 이쪽으로 인사차 넘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한 놈만 빼고.

    “2026 KBO 시상식을 시작합니다. 오늘 시상식은 포털사이트와 유튜브…….”

    신인 드래프트 때도 안 가봐서 그런가, 이런 자리가 너무 어색하다.

    한 달 전만 해도 같이 운동복 입고 흙범벅 돼서 뒹굴던 선수들이 다들 정장 빼입고 와서 점잖은 척하는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코트 속에 땀이 점점 차서, 이제…….

    얼굴에 열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 상만 받고 빨리 도망가야지.

    “우선 퓨처스 리그 시상부터 있겠습니다. 퓨처스 리그는…….”

    길다. 그냥 상은 택배로 보내주지 뭘 이런 걸 하시겠다고. 그리고 상 받는 퓨처스 리그 선수들. 소감 적당히 하셔도 되는데…….

    2군에서 야구 안 하고 스피치 연습만 하셨는지 감사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얘들아 적당히 해. 나 힘들어…….

    “다음으로 이번 시즌을 가장 먼저 피어난 새싹. 신인상을 수상하는 시간이 있겠습니다. 신인상은 최근 5년간…….”

    때가 왔다. 어차피 수상자는 나다. 화면에 여러 명의 후보들이 지나가지만, 그냥 성적만 봐도… 나다. 올해 KBO 신인 농사는 나 빼고는 망했으니까.

    “신인상 발표는 기자단 대표 박필모 기자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스포츠전일 박필모입니다. 이번 시즌 재능있고 능력 있는 신인이… 앞으로 20년 야구를 이끌어갈… 오버핸드와 언더핸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향후 국가 대표 주전 유격수가 될 자원인… 40홈런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아저씨… 기자잖아요. 삭제 기자가 간결하게 하고 가야지 무슨 수상자 발표를 10분째 하고 있나요?

    나 단추 다 풀었단 말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자꾸 마음 약해진단 말이에요.

    “…이런 쟁쟁한 선수들 가운데 정말 간발의 차이. 아주 조금 미세하게 이번 시즌 최고의 신인으로 선정된 선수는… 축하합니다. 랩터스의 김.소.전!”

    방금까지만 해도 나가서 준비한 말 다 하고 와야지, 하면서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스쿼트 하면서, 벤치프레스 들면서, 배트 돌리면서 심지어 차 타고 오는 동안에도 수백 번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등 토닥거리며 응원해 주는 랩터스 선수들, 국가 대표 기간에 같이 땀 흘렸던 국대 멤버들이 박수 쳐 주며 응원해 준다.

    누군가가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눈 주위를 찍으며 스르륵 일어났다.

    멀지도 않은 단상으로 걸어가는 길. 그 길이 꽃가루가 뿌려진 듯 환하게 빛난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가는 나로부터 누군가가 겉옷을 벗겨 챙겨준다.

    쏟아지는 조명이 숨겨왔던 내 진짜 모습이 확 드러난다.

    여기저기 쏟아져나오는 감탄사.

    오늘의 주인공은 나다. 이 자리 모든 사람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다.

    “축하합니다.”

    “으… 감사합니다.”

    시상자에게서 트로피를 건네받자 무대 밑에서 단장님이 올라와 웃으며 꽃다발을 건네면서 복화술로 말을 건넨다.

    “울지마라. 어디서 넝마 떼기 주워 입고 와서 울고 있어. 너 이따 보자.”

    “가… 감사합니다.”

    단장님이 뭐라고 한 거 같은데 안 들린다. 그냥 눈물만 난다.

    “김소전 선수. 수상 소감… 아이고, 눈물 좀 닦고 하세요. 괜찮습니다. 이번 시즌 아시안 게임, 한국 시리즈를 거치면서 이미 팬들로부터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김소전 선수에게 큰 박수 보내주십시오.”

    눈물이 너무 나와 등을 돌리고 호흡을 하는데 누가 내 앞으로 다가와 눈물을 닦아준다.

    “소전아. 조금만 숙여봐. 팔이 안 닿아.”

    “누… 누나…….”

    “어, 괜찮아. 오늘 소전이가 제일 멋있어. 울어도 돼. 괜찮아. 이걸로 눈물 닦고 이야기 잘하고 내려와. 누나가 밑에서 기다릴게.”

    이래서 구단주 형이 홍시, 홍시 하는구나. 홍시 누나가 토닥거려주니까 터져 나오던 감정도 싹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홍시 누나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고 마이크 앞에 선다.

    “김소전 선수. 오늘 가장 이상한… 아니…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오셨습니다. 신인상 소감 말씀해 주세요.”

    “야구 하면서 상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팀에 감사하고 구단주 형에게 감사하고 단장님 감사하고 우리 홍지 누나 감사하고 스토커 루다도 감사하고 또 누구 있죠?”

    준비한 말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드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보인다.

    “아, 팀 떠난 최강훈 선배도 감사합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소감을 이야기하자마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진다.

    뭔가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도망치듯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트로피를 들고 자리에 앉으니 앞이 좀 보이고 살 것 같다. 특히나 코트를 벗어놓으니 시원하고 바람도 부는 것 같고 여기가 신세계다. 진작 벗을걸…….

    “미쳤냐?”

    “김소전. 밖에서는 조심하랬잖아.”

    “너 단장님 눈 보이냐? 너 이따 죽을 수도 있어.”

    “정안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훈이가 이제 우리 팀인데 너무 한 거 아니냐?”

    “형, 미안해요. 내가 애 교육을 잘못시켰네. 미안해요.”

    “너 조심해라. 내가 강훈이 안 좋아해도 같은 팀인데 우리 팀 선수가 쩌리 취급받으면 안 되잖아.”

    “형, 얘가 정말 뭘 몰라서 그래요. 형도 알잖아. 얘 눈치 없는 거.”

    “알긴 아는데… 얘를 어째야 하냐?”

    “형, 나도 힘들어요. 얘 데리고 야구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나 봐서 좀 봐줘요.”

    신인상 하나 받고 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의 타이탄스 선배들한테 사과의 시간을 가졌다.

    “제가 그러려는 게 아니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가까운 데를 다 돌고 스르륵 움직여 당사자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다.

    “선배님, 제 의도가 그런 게…….”

    “알아, 괜찮아. 어. 다음 차례 나네. 다음에 보자.”

    괜찮다고 하지만 눈은 전혀 그게 아니다. 웃고 있는 입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눈. 앞으로 귀찮겠구나……. 그나마 다른 팀이니 다행인가…….

    “이번 시즌 도루 타이틀 수상자인 최강훈 선수입니다. 소감 발표해 주시죠.”

    “전 소속 팀에서 저보다 성적이 안 좋은 후배에게 밀려난 최강훈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나 때보다 더 많이 터져 나온다.

    “전 소속팀에도 절 밀어낸 선수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내년엔 타이탄스가 랩터스에 단 한 경기도 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단상 위에서 선전 포고를 날리는 놈과 밑에서 넝마떼기를 입고 있는 놈에게 플래시 세례가 퍼부어진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아까 선배들이 한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나 시상식 끝나면 단장님한테 끌려가서 죽겠구나.

    “이제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번 시즌 최고의 선수를 발표하는 순간입니다. 이번 시즌 MVP는 KBO 총재이신…….”

    이거야 뭐. 올해는 이시윤이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따 단장님한테 털릴 걸 준비해야 해.

    “이시윤 선수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진짜 투수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시윤이 시크하게 트로피를 받아들고는 단상 밑에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그러다 단 한 사람. 랩터스 선수단에서 가장 먼 쪽에 있는 타이탄스의 한 선수를 보면서 또박또박 MVP 소감을 발표한다.

    “다음 시즌 마치면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습니다. 조건은 랩터스의 우승. 다음 시즌은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 시즌을 보낼 생각이니 합법이든 불법이든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도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살았다.

    난 랩터스가 참 좋다.

    세상에 미친놈이 많다지만 진짜배기 미친놈들은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날 잡으려고 기다렸다 이시윤에게 달려가는 단장님과 홍시 누나를 뒤로하고 유유히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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