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50화 (50/204)
  • 50화. 시즌 끝 (1)

    주자 1, 2루. 1회부터 조금 흔들었다고 마운드의 현정인 선배가 화가 많이 나셨다.

    말은 안 하지만 뒤통수로 나에게 욕을 하고 있다.

    아시안 게임에 같이 나갔을 때 나 야구 잘한다고 토닥토닥해 주더니 오늘은 영 나에게 호의적이지가 않다.

    그렇다면… 한 번 더 해볼까…….

    - 타석에 강정상. 1, 2차전 5번을 치고 있다고 3차전에 3번으로 타선을 바꿨습니다.

    - 3번을 치던 메이슨 선수가 전혀 대응을 못하다 보니까 김민중 감독이 타선을 조정했어요. 올 시즌 내내 부상을 달고 살던 강정상이지만 이제 마지막이거든요. 베테랑이 해줘야죠.

    2루에서 또다시 리드를 길게 잡자 타이탄스 유격수 서준성이 내 등 뒤로 바짝 붙어온다.

    어차피 투수 신경만 건드리려는 것일 뿐 진짜 뛸 생각은 없는지라, 무게 중심은 2루에 두고 괜히 땅만 차며 소리만 내어본다.

    - 김소전, 2루에서 또다시 리드를 크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 저러면 투수 괴롭죠.

    - 현정인, 마운드에서 발을 풀고 내려옵니다.

    - 신경 쓰인다는 거죠. 1회부터 양 팀의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내가 자꾸 건드리니까 타이탄스의 수비가 빡빡하게 달라붙는다. 하긴 나도 빠르지, 1루 주자 라정찬 선배도 빠르지, 빠른 애 둘이서 뛰겠다고 노려보면 정신없지 뭐.

    - 투수 코치 올라오네요.

    - 잘 올라왔어요. 마운드에서 투수가 생각이 많을 필요가 없거든요. 주자는 적당히 잡아두고 결국은 타자와 승부를 해야 해요. 너무 주자에게 끌려다니고 있어요.

    - 그러다 도루를 하지 않겠습니까?

    - 조금 전 라정안 안타 때 김소전이 3루를 못 가지 않았습니까. 리드가 너무 크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기 때문에 주루가 더 어려워요. 타이탄스가 어린 선수에게 너무 휘둘리고 있어요.

    마운드에서 투수가 코치한테 혼나고 있는데 국가 대표팀에서 안면을 튼 유격수 서준성이 다가와 말을 건다.

    “정신없어. 그만 좀 까불어.”

    “헤헷, 선배님. 할 줄 아는 게 뛰는 것밖에 없어서요. 헤헷.”

    “정인이 벌써 멘탈다 털렸네. 살살해. 쟤 아직 어리잖아.”

    “선배님. 제가 훨씬 어립니다.”

    “시끄러. 액면은 네가 10살은 많아.”

    치사하다. 얼굴로 공격하다니. 내가 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중후한 얼굴을 누나들이 더 좋아한다고. 저런 야리야리한 얼굴은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라고욧!

    다시 시작되는 경기 화가나 호흡이 거칠었던 투수가 다시 차분해졌다.

    그리고 코치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내가 2루에서 어깨춤을 추면서 시선을 끌어도 흘깃 쳐다만 볼뿐 포수와의 대화에 집중한다.

    이러면 곤란한데……. 현정인은 아직 좀 어린 선수라 내 도발에 좀 넘어가 주고 해야 하는데……. 곤란해.

    - 현정인 1구. 빠른 볼! 스트라이크. 강정상 바라만 봤습니다.

    - 이렇게 던지면 되거든요. 현정인 선수 공이 좋아요. 공을 믿고 던지면 돼요. 주자에 너무 매몰되어 있으면 자기 공을 뿌릴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XX. 내가 저걸 어떻게 쳤지. 아, 난 체인지업을 쳤지. 공을 보기만 해도 무섭네. 진짜. 강정상 선배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 4구. 빗맞은 공. 투수, 투수. 아~ 투수.

    1볼 2스트라이크. 투수가 안 보는 것 같지만 등 뒤에서 미친놈이 널뛰기하고 있으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법. 뒤에서 어깨춤과 개다리춤을 동시에 펼쳐 보이며 부산을 떨었다.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순간 3루로 페이크 스타트. 앞으로 중심만 확 넘겼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타자가 공을 툭 하고 건드렸다.

    XX. 무사 주자 1, 2루에서 투수 앞 땅볼. 일어나는 몸을 다시 3루로 날리며 이 꽉 깨물고 3루로 돌진을 시작한다.

    - 올 세잎. 주자와 타자 모두 살았습니다. 투수 공을 잡았다 놓쳤어요.

    - 시간 있었거든요. 화면 나오는데 보시면요. 강정상 선수의 타구 평범한 투수 앞 땅볼이거든요. 현정인 선수 잡는 것까지는 잘 잡았어요.

    - 투수가 공을 잡아 올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 아니네요. 잡을 때부터 급했네요. 글러브에서부터 공이 놀았네요. 3루 주자를 잡아야겠다는 욕심에 급해서 포구도 포켓에 정확히 넣지도 못했는데 꺼내 들 때도 공을 확실히 잡아채지 못하니까 3루를 바라보고 놓쳤어요.

    - 그렇게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글러브를 꽉 잡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 공을 놓치고 나서 다시 빨리 잡아들고 1루로 던져도 되는데 급하니까 또 놓치고. 큰 경기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 빠른 주자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 그렇죠. 이거 김소전이 만들었어요.

    3루에 철퍼덕 엎어져서 여기저기 눈치만 살폈다. 타이밍은 아웃 타이밍인데 태그가 안 들어오니 더 무섭다.

    고개를 빼꼼히 들자 주루 코치가 잘했다며 박수를 쳐준다.

    상황이 정리됐으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그머니 일어나 유니폼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다.

    내가 잘한 건 딱히 없지만 내가 잘해서 산 것처럼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마운트의 투수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본다.

    선배 열 받지요? 열 받아서 좀 망쳐주고 해야 저도 먹고살아요. 선배 공 그대로 던지면 칠 사람이…….

    XX. 미친… 저게 무슨…….

    - 조영근! 크다! 크다! 크다! 담장을~ 넘어갑니다~ 1회 초 랩터스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대형 만루 홈런! 조영근 타이탄스의 홈에서 상대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 149 빠른 직구였어요. 노리고 들어와서 좌측펜스를 넘겨버리는 홈런을 쳐냅니다. 타격 기술로는 역대급이네요. 정말 좋은 타격이었어요.

    참… 야구 쉽게 한다.

    누구는 안타 하나치고 1루부터 베이스 하나 갈 때마다 춤추고 노래하고 광대 짓 해가면서 가는데 저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늙은 아저씨는 쉽게 ‘쾅’ 하나 쳐서 한 바퀴 돌아온다.

    이래서 예전에 본즈신이 그 실력을 가지고 약을 드셨구나. 그 잘하던 사람이 왜 약을 먹었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오늘 이해가 확 되네.

    안타는 쓰레기라는 야구판의 절대 진리를 일깨워 준 4번 타자의 활약으로 1회부터 경기를 터트리면 3차전을 가져왔다.

    4차전에 랩터스의 60억 투수! 60억을 받고 시즌 8승이나 해준 최선형이 FA 계약 마지막 해 계약 연장을 위한 5이닝 3실점 랩리티 스타트를 해주면서 9 대 6 승리를 만들어 냈다.

    시리즈 전적 2 대 2. 한국 시리즈에서 4경기를 하면서 서로 간의 패는 다 꺼내 보였다.

    선발진은 1선발 박빙, 2선발은 타이탄스, 3선발은 타이탄스 현정인. 도발 스킬을 익힌 이상 랩터스 우위, 4선발은 최선형이 회춘 약으로 FA로이드를 들이킨 이상 랩터스 근소 우위.

    불펜은 말할 것도 없이 타이탄스 우위, 하지만 마무리까지만 가면 랩터스도 해볼 만하고.

    마지막으로 타선… 타선… 타선…….

    1번 김소전이 꾸준히 1인분 이상을 해주는 가운데 랩터스 노인정 할배들이 그래도 돌아가면서 딱 자기 역할을 해주면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점수는 뽑아내 준다.

    문제는 타이탄스. 타이탄스의 1번을 막을 방법이 도저히 안 나온다.

    승부를 하면 장타, 피해 가면 도루. 대놓고 언론에다 친정팀에 한을 품었다고 얘기해 가면서 피하지도 못하게 프레임을 짜놓아 버리니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특히나 선배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경기장에서 하는 만행은…….

    - 고척에서 열리는 한국 시리즈 5차전. 1차전의 선발 투수들이 다시 맞붙습니다.

    - 타이탄스 와이든과 랩터스 이시윤이죠. 두 선수 다 1차전에서 굉장한 호투를 했어요. 오늘 양 팀 타자들 선발 투수를 언제 내리느냐에 따라 경기가 판가름 나겠습니다.

    좋은 투수가 나오자 3, 4차전 타올랐던 랩터스의 타선이 차갑게 식었다. 그나마 나는 와이든의 쿠세를 알고 있으니 근근이 안타라도 치고 있지만, 속도를 조절하며 던지는 와이든의 싱커에 우리 타자들이 후속타를 전혀 못 친다.

    내 영업 비밀을 알려줄 수도 없고… 괴롭다.

    - 5회 말 0 대 0의 스코어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강훈 타석에 들어섭니다.

    - 랩터스는 이번 한국 시리즈에서 최강훈 선수를 전혀 못 막아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두 번째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려낸 최강훈입니다.

    최강훈이 나오는 걸 보면서 수비 위치를 뒤로 조정하며 전광판을 바라봤다.

    18타수 8안타 홈런 3개. 저기에 볼넷이 3개다. 이게 사람인가. 약이라도 먹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아… 저 XX 약쟁이지. 합법이… 아… 한국 시리즈 하면서 자꾸 약의 위대함만 머리에 새겨지네.

    - 공에 맞았어요. 최강훈 허벅지에 맞았습니다.

    - 실투죠. 공이 빠졌어요.

    - 어… 어…….

    살도 많은데 공에 맞은 최강훈이 잠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서 투수를 노려본다.

    지난 경기부터 싸가지에게 자꾸 맞아서 심기가 불편한 이시윤이 제구 불안으로 또다시 싸가지를 내보내자 마운드에서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혼자 욕을 내뱉는다.

    보호구를 풀어놓은 타자가 투수를 계속 응시하며 1루로 걸어간다. 여전히 마운드에서 혼잣말을 늘어놓고만 있는 투수. 그쪽으로 어린놈이 모자를 만지며 소리를 지른다.

    “사과 안 하냐!”

    순간 얼어붙은 경기장. 마운드에서 자기에게 욕을 쏟아내던 투수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타자를 바라본다.

    타자와 투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치고 타자 놈이 다시 투수에게 한마디를 더 쏘아붙인다.

    “사과 안 하냐고!”

    미친놈이다. 여기는 한국. 이시윤은 7년 차. 싸가지는 4년 차. 그것도 모자라 둘 다 랩터스 출신이고 1군에서 같이 생활도 했었다.

    거기다 대고 반말로 사과 안 하냐고?

    자기 잘난 맛에 마운드에서 정면 승부만 고집하던 이시윤이 특유의 개빡친 얼굴로 마운드에서 조용히 타자를 향해 걸어 내려간다.

    순식간에 급박해진 경기장 분위기. 투수의 몸 상태를 묻던 코치와 대화하느라 덕아웃을 바라보던 포수가 급히 몸을 돌려 뛰어나가고, 1루에서 주자를 맞이하려던 1루수가 황급히 투수에게 달려들면서 타자와 투수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라운드에 수비수가 훨씬 더 많은데도 타자가 전혀 쫄지 않고 마운드로 향한다.

    상황이 발생했으니 외야에서 슬슬슬 내야로 뛰어가고는 있지만 이럴 때 몸 사려야 한다. 마운드까지 거리도 머니까 뛰어가면서 바깥으로 돌아서 덕아웃에서 늦게 그라운드로 나오는 아는 선수들을 찾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게 생겼냐?”

    내야에서 양 팀의 싸움닭들이 고성을 치는 동안 대표팀에서 안면을 터놓았던 타이탄스 명정욱 선배를 찾아 인사를 건넸다.

    “강훈 선배, 많이 아팠나 봅니다. 화가 많이 나셨네요.”

    “아프기야 하지만… 큰일이다.”

    “큰일이요?”

    “저 XX. 성질 죽여야지, 너무 나댄다. 거기 있을 때도 그랬냐?”

    흠… 그랬긴 했지. 보면 알지 뭘 물어?

    “전… 선배님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따라 배우기만도 바쁩니다.”

    선배의 질문에 뇌에다 물어보지 않고 지 혼자 돌아다니는 혓바닥이 혼자 날뛴다.

    “아오. 이 얄미운 시키. 나도 들어서 알아, 인마. 저 XX 너희 팀에서 왜 버렸는지 요즘 확실히 알아가고 있다. 저 XX 언젠가 크게 다칠 거야.”

    흠… 이제 반 시즌쯤 됐는데 소문이 다 났군. 내가 사기 친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미안하네.

    “저희 팀 계시다 가신 선배님입니다. 잘 봐주십시오. 앞으로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오늘 빠다 바른 빵을 너무 먹어서 그런지 혓바닥이 술술 너무 잘 미끄러진다.

    내 혓바닥의 현란한 드리프트를 본 명정욱 선배가 주의를 준다.

    “너 쟤랑 친하냐? 내가 노파심에 얘기하는데 너는 엮이지 마라. 이상한 소문 계속 돈다. 조심해라.”

    나에게 확실히 싸가지와 역이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는 정리되는 그라운드 상황에 맞춰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이상한 소문……. 저 XX 이상한 소문이 한두 개여야지. 이번엔 또 뭔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

    아니다. 내가 관심 가질 게 아니지.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 게임 셋. 한국 시리즈 5차전 랩터스의 이시윤이 완투를 하며 4 대 1로 승리를 마무리 짓습니다.

    - 중간에 위기도 있었는데 이시윤 선수의 집중력이 대단한 경기였어요. 특히 5회 최강훈 선수와의 빈볼 시비 이후 한 단계 달라진 투구를 보여줬거든요. 오늘 대단한 투구를 보여줬습니다.

    제구가 지랄 맞아서 그렇지 구위만으로는 메이저 선발감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시윤이 각성하자 혼자 9이닝을 다 던져버리면서 승리를 챙겨온다.

    마운드의 우리 팀 에이스의 공을 보면서 요즘 야구 좀 된다고 까불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괜히 저런 괴물들한테 깝치지 말고 겸손하게 하루에 안타 하나만 쳐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첫 두 경기를 잠실서 내주고 고척에서 세 경기를 가져온 랩터스가 6차전 잠실 경기를 맞아 팀의 선발 투수 셋을 포함 투수 11명을 쏟아부으며 경기를 챙겼다.

    타이탄스도 마무리 차대영을 4회부터 끌어다 쓰는 강수를 뒀음에도 사냥감의 숨통을 끊을 기회를 포착한 늙은 사자들의 올인 러쉬에 초반 점수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를 선언한다.

    그 와중에도 타이탄스의 괴물은 홀로 홈런과 2루타를 쳐내며 분전했지만, 그놈한테 얻어맞아도 다른 선수들을 꽁꽁 틀어막는 전략을 구사한 랩터스가 끝끝내 추가 실점을 막아내며 6 대 3 승리를 지켜낸다.

    - 2026 프로 야구 우승팀은 2년 만에 돌아온 서울 랩터스입니다.

    - 대단한 시즌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5위를 하고도 특별한 전력 보강을 못한 랩터스가 김소전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 선수들과 조영근을 중심으로 하는 베테랑 선수들의 조화로 우승을 만들어 냈어요. KBO의 리빌딩은 이런 거라는 걸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 지금 한국 시리즈 MVP가 발표됩니다. 한국 시리즈 MVP 시리즈 내내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리그 최고의 타자 조영근 선수가 선정되었습니다.

    - 한국 시리즈에서 단 6경기 동안 단 6개의 안타만을 쳐낸 조영근 선수입니다만 그중 5개가 홈런이었어요. 그중 3차전 만루 홈런. 그 만루 홈런이 타이탄스로 넘어가는 시리즈를 랩터스로 가져오는 홈런이었거든요. 그것뿐만 아니라 4차전 5차전 6차전에도 계속해서 홈런포를 가동했어요. 이기는 경기에 모두 결승타를 홈런으로 장식했으니 충분히 받을 만합니다.

    얼떨떨하다. 아시안 게임 하면서 국제 대회 우승도 해봤지만, 프로에서 소속팀 우승을 하니 진짜 내 집이 우승한 것 같고 어깨에 뽕이 가득 차오른다.

    감독님을 헹가래 치고, 주장도 헹가래 치고, 기억도 안 나는 고등학교 때도 하긴 했었는데 그때랑은 뭔가 다른 거 같고 진짜 그냥 내가 우리나라 최고인 거 같고 정신이 몽롱하고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장내가 정리되고 선수단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다.

    랩터스의 절대자. 조수아 단장이 나타나 KBO 총재님으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아든다.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가녀린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트로피.

    나 혼자 받은 것도 아닌데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여태 괜찮았는데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

    나이 먹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아니, 나 이제 20살인데… 왜 이러지…….

    경기가 끝나고도 그라운드에서 샴페인을 부으며 한참을 머무르다 구단에서 준비한 우승 파티장으로 향했다.

    미친놈들. 구단주 형이 돈이 많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호텔 연회장에 진짜 소 한 마리를 그대로 통구이 해서 걸어놓고 호텔 주방장이 해체 쇼를 진행한다.

    익숙한 듯 파티를 즐기는 선배들.

    선수들뿐만 아니라 구단 직원 모두 모여 부어라 마셔라 즐기는 파티. 홍시 누나가 와서 나 울 때 같이 울었다며 토닥거려줄 때는 감정이 또 올라와서 누나를 안고 엉엉 울었다.

    랩터스 티비에서 카메라를 들이댄 거 같아 보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내 감정에만 충실할 뿐.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다.

    소 한 마리 아직 3분의 1도 해체하지 않았을 때 선수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나 혼자 눈이 빨개져 감상에 취해 있는데 민수경 선배가 슬쩍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끈다.

    “뭐 해. 빨리 가자.”

    “어딜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수경 선배.

    영문을 모르는 나도 수경 선배를 빤히 바라본다.

    “진짜 몰라?”

    “뭘요?”

    한숨을 푹 쉬는 수경 선배.

    “몰라도 따라와. 주장이 진짜 파티를 보여줄 거야?”

    “진짜 파티요?”

    주장이 잡아 놓은 강남의 한 호텔 지하에서 선수단 전원은 하늘 위에 천국을 만나고 왔다.

    ‘주장. 저 랩터스에 뼈를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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