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1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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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나고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타율 0.292, 출루율 0.326, 장타율 0.493, OPS 0.819.
홈런은 19개를 때렸고 도루도 19개를 했다.
아무리 야구를 X같이 한다고 그래도 그렇지 성적이 괴랄해도 너무 괴랄하다.
호타준족의 상징이라는 20-20을 실패한 건 누적 기록이니 한 달 빠져서 그랬다고 치고, 타율도 2할 9푼 장타율도 4할 9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의 신이 나를 놀리는 게 틀림없다.
진짜 감독님 말대로 몰아칠 때 안타 한두 개. 홈런 한두 개만 더 쳤으면 이런 굴욕은 없을 것인데…….
이 더러운 기본 훈련으로 푼다. 오늘도 스윙 백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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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이 1등으로 한국 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벌었다. 보통의 1위 팀들은 이 기간 동안 적당히 휴식하고 컨디션을 관리하면서 올라오는 팀들의 기운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이게 정상인데 주축 선수가 30대 중반인 랩터스는 휴식이 아니라 치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코치들은 할 일이 없고, 가만히 월급 받기 미안해진 코치들은 남은 먹잇감 중 가장 싱싱한 놈을 골라 일하는 티를 내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소전아! 그렇게 쳐서 담장이 부서지겠냐! 오늘도 특타다.”
“소전아! 외야에 너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잡겠다는 각오로 달려야지! 다시!”
“소전아! 숏에서 발을 구르지 말고 노스텝으로 1루까지! 40미터가 뭐가 멀어! 노스텝으로.”
“소전아!”
“소전아!”
“소전아!”
시즌 성적도 마음에 안 드는데 한국 시리즈도 대비해야 하니 맘먹고 훈련에 들어왔지만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코치들과 하루를 보내니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야구 한 달 쉴 동안은 야구가 하고 싶어서 근질거렸는데 지금은……. 그냥 죽을 거 같다.
2군도 아니고 1군을 이렇게 굴리다니! 코치님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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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선수들이 많이 안 보이네요.”
“준플레이오프까지는 푹 쉬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라고 해도 선수들이 정상이 아니어서 병원 다녀야 합니다. 그냥 쉬는 게 나아요.”
“그래도 저 선수는 열심히네요.”
“소전이는 한 달 쉬지 않았습니까. 아직 어린애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어요. 더 크게 될 겁니다.”
“내년엔 자기 자리 찾아줘야 할 텐데요.”
“그거야 단장님이 선수 수급해 주시는 거에 따라 달라지겠죠.”
“FA는 없어요.”
“그러면 내년에도 자리 고정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선수보단 팀이 먼저니까요.”
고민도 하지 않고 답하는 감독의 대답에 단장이 입술을 꽉 깨문다. 성적과 팀 리빌딩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랩터스 입장에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유격수 박재호를 2루로 돌리고 그 자릴 주면요?”
“정현기는 1루 보내고 용병을 중견수로 뽑으시게요?”
“네.”
“뽑을 선수는 있고요?”
“리스트는 항상 공유하잖아요.”
“그럼 그 선수들이 안 통할 거는 더 잘 아시겠네요.”
여기저기 찔러 봐도 빈틈없는 감독의 대답에 단장이 반박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밀린다.
할 말이 없어진 단장이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조영근도 점점 장타 능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다음 시즌부터는 확실히 체감할 거예요. 중심에 세울 선수가 필요해요.”
“감독은 단장님이 만들어 준 선수단을 운영하는 사람이에요. 선수는 단장님이 만들어 주셔야죠.”
“김소전 어때요?”
“김소전은 1번이죠.”
“1번 타자 중견수를 구해 드릴게요.”
“김소전만 한 1번이 없습니다.”
감독이 미끼를 무는 걸 확인한 단장이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감독을 몰아세운다.
“이번 시즌 우리가 고전한 게 김소전이 1번에서 출루가 안 돼서 고전했어요. 김소전의 출루율이 타율과 3푼 4리밖에 차이가 안 나요. 올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래서는 곤란해요.”
단장이 스탯을 들이밀며 하는 공격에도 감독은 눈도 깜짝 안 하고 훈련하는 김소전을 응시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건 지난겨울 저와 함께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내년엔 달라져요. 내년엔 확실히 출루율 바꿔줄 수 있습니다.”
“김소전의 삼진이 볼보다 3배가 넘어요. 이 정도로 벌어지는 건 그냥 타고나길 선구안 없이 태어난 거예요. 거기다 BABIP도 타구 속도에 비하면 낮은 축에 속하고요. 이건 배드 볼 히터가 그저 정직하게 빠른 타구만 날린다는 얘기에요. 1번 타자 감은 아니에요.”
단장의 항변에도 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확언한다.
“내년에도 1번은 김소전입니다. 단장님 생각하시는 똑딱이 중견수 말고 어느 포지션이라도 좋으니 건강한 파워 히터를 구해 주세요. 올해처럼 아파서 지명 타자도 못 나오는 타자는 곤란합니다.”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다음 시즌까지 준비해야 하는 단장의 머리가 한없이 복잡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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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시즌 한국 시리즈 1차전이 잠실에서 시작됩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위를 확정 지은 랩터스가 3위에서부터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온 타이탄스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 타이탄스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스윕으로 제압하고 올라왔어요. 그러면서도 불펜의 소모가 크지 않았단 말이죠. 포스트 시즌을 쉬면서 기다린 랩터스가 크게 우위를 가져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팀이 강할지 궁금합니다.
멍청한 썬더스 놈들. 2등 팀이 3등 팀한테 발악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스윕을 당했다.
아무리 타이탄스 1, 2, 3선발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세 경기 중 한 경기는 이겨야지, 멍청한 것들.
덕분에 우리도 타이탄스 1선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 한숨만 나오네.
- 랩터스의 이시윤과 타이탄스의 와이든이 맞붙습니다.
- 이시윤, 이번 시즌 18승 3패. 평균 자책점 2.33을 기록했어요. 그러면서 중간에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도 따냈지요. 랩터스의 든든한 1선발입니다.
안 그래도 마운드에 올라가면 없던 기운도 끌어올리는 이시윤인데 오늘은 경기가 경기인지라 기운이 더 펄펄 나는 것처럼 보인다.
연습 투구인데도 포수 미트를 찍어버릴 듯이 던지는 투구.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런 투수와 한팀이어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 이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신 KBO 총재님의 시구가 있었습니다.
- 물심양면은 모르겠고 총재님의 시구가 있었습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 선수 차출 문제로 아직까지 잡음이 있거든요. 이거 협회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합니다. 금메달을 따오고도 미필자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고 국가 대표 감독이 비난을 받고 있어요. 이래서 다음부터 누가 국가 대표 지휘봉을 잡으려고 하겠습니까. 투명한 선수 선발과 든든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합니다.
-…지금까지 해설 위원의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셨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자, 이제 타이탄스 선두 타자,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즌 타이탄스를 3위까지 하드캐리한 타이탄스의 돌격대장 최강훈 선수입니다.
전반기 때도 잘했지만, 후반기 한정. 역대급 경기력을 선보인 최강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후반기에만 타율 3할 9푼에 홈런 13개를 터트린 최강훈이 시즌 중반까지 중하위권에 머물던 타이탄스를 멱살 잡고 끌어올려 3위까지 안착을 시켰다.
그리고는 준플레이오프 MVP, 플레이오프 3경기에 홈런 4방. 이번 한국 시리즈 랩터스의 골칫거리가 될 최강훈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투수를 바라본다.
- 이번 시즌 랩터스에서 1번 타자를 맡고 있다가 시즌 중반 타이탄스로 트레이드된 최강훈입니다. 시즌 초반 벌어진 트레이드인데 아직까지 팬들 사이에서 랩터스가 잘못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거든요. 랩터스가 1위를 기록했지만, 최강훈까지 있었으면 더 완벽한 전력을 구축했을 거란 말이죠. 랩터스 팬들은 아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외야에서 바라봐도 타석에 들어온 싸가지의 몸에서 불길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랩터스를 씹어먹어 버리려는 모습. 진짜 이번 시리즈에서 저놈 못 잡으면 우리는 답이 없다.
- 스트라이크! 볼카운트 2-2. 지금 공 슬라이더로 보이는데요.
- 슬라이더죠. 이시윤의 빠르고 짧게 떨어지는 슬라이더. 잡는 그립이 슬라이더여서 그렇지, 궤적만 보면 커터랑 거의 비슷해요. 최강훈 선수, 이 공을 직구랑 헷갈리면 이시윤을 공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 최강훈, 타석을 벗어나 배트를 고쳐 쥐고 있습니다.
- 그렇죠. 이럴 땐 한번 호흡을 고를 필요도 있어요. 오늘 투수의 공도 좋단 말이죠. 한번 숨을 쉬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저 XX, 진짜 화난 거 같은데? 설마 직구를 3개 연달아 던져줄 줄 알았던 거야? 진짜로 직구 3개를 바랐다면 그건 도둑이지.
- 최강훈, 중심이 무너지면서 걷어 올렸습니다. 파울 라인 따라 날아가는 공. 날아갑니다! 날아갑니다. 안쪽이냐! 안쪽이냐! 안쪽! 넘어갔습니다. 1회 초 최강훈의 선두 타자 홈런! 타이탄스! 한국 시리즈 1차전,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 지금 중심이 완전히 무너졌거든요. 보시면 중심이 무너지면서 무릎이 땅에 닿았어요. 저 상태에서 팔로만 잡아당겼는데 저게 넘어가네요. 이번 가을, 타이탄스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말이 안 나온다. 저 싸가지, 체중도 못 싣고는 그냥 팔로만 잡아당긴 것 같은데 저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아무리 오른쪽 끝에 100미터 펜스를 기스 내면서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팔로만 쳐서 담장을 넘긴다고?
임팩트도 정확한 것 같지 않았는데? 바람이 부나? 왜 저 XX한테는 야구의 신이 붙어서 도와주지. 평소에 부처님한테 시주를 많이 하나?
그나저나 마운드에 이시윤 선배… 화났네……. 너흰 큰일 났다.
- 156! 156킬로짜리 직구로 하영호를 돌려세우는 이시윤. 타이탄스의 1회 초 공격 마무리됩니다. 1회 초, 최강훈의 솔로 홈런으로 1점 앞서가는 타이탄스. 잠시 후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시즌 190이닝 동안 피홈런이 9개였던 선발 투수가 가을에 시즌 10번째 홈런을 맞고는 덕아웃 뒤 복도로 사라졌다.
1회 말 공격을 위해 장비를 챙기면서 복도 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서우니까 애써 모른 척하고 열심히 보호대를 착용했다.
아무래도 화 풀리는 데 시간 좀 걸리겠지? 괜히 공격 빨리하지 말고 공 오래 보고 시간 좀 벌어줘야겠다.
- 랩터스의 1번, 김소전입니다. 이번 시즌 랩터스의 최고 수확이라면 이 선수를 말하는 것일 텐데요.
- 그렇죠. 랩터스가 최강훈 선수를 트레이드 시키고도 1위를 할 수 있었던 건 김소전 선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즌 2할 9푼에 19홈런 19도루를 기록했는데 이 선수의 진짜 가치는 기록보다 더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시즌 109경기를 나오면서 외야로 63경기, 내야로 57경기를 나왔어요.
- 합하면 출전 경기보다 많은데요.
- 그렇죠. 경기 중에 내야와 외야를 오간 경기도 있거든요. 말이 쉽지, 시즌 내내 수비 전 포지션을 오가면서 에러를 단 8개만 기록했어요. 전 이번 시즌 랩터스뿐만 아니라 리그 MVP가 이 선수라고 생각해요.
- 이번 시즌 신인상 후보에도 올라있습니다. 이미 투표는 끝났지만 신인상이 유력하다고 예상들을 하고 있습니다.
- 신인상이 아니고 MVP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승 투수 이시윤보다 대단한 시즌을 보낸 김소전이에요.
타이탄스의 투수, 와이든.
주로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지고 경기당 두어 개씩 커브도 보여주는 전형적인 미국놈 투 피치 투수인데 시즌 중반 어디서 괴상망측한 그립의 싱커를 배우고 나서는 리그 톱급 선발로 재탄생하였다.
직구와 같은 폼, 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나오는 싱커. 거기다 야잘잘을 몸소 실천하는 와이든 형님은 싱커의 속도를 두 단계로 나눠서 던져주신다.
결론은… 직구 노리다 싱커가 나오면 답이 없다. 그냥 잘 찍어야지.
그래도 그냥 찍을 순 없으니 눈을 크게 뜨고 찍어야지.
- 투 볼. 김소전 잘 골라내고 있습니다.
- 김소전 선수, 볼넷이 적고 출루율이 낮다 보니까 야구 팬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거든요. 김소전 선수 선구안이 안 좋다고들 알고 계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 그렇습니까? 김소전 선수, 삼진은 많고 볼넷이 적어서 리그 내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알려져 있는데요?
- 김소전 선수의 삼진 당하는 과정을 보면 대부분 바깥쪽 흘러나가는 공에 헛스윙해서 당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몸쪽에 붙이는 공은 잘 참아내거든요. 상대는 이 점을 머릿속에 새기고 승부에 들어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되지도 않는 밋밋한 똥볼을 몸쪽에 붙이고 있어. 어차피 내가 타석에서 홈 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는 스타일도 아니고 최소 30센티미터 이상 떨어져서 자세를 잡는데, 쓸데없이 힘쓰기는…….
이런 거 말고 그거 던져 봐요, 와이든 형님.
- 걸렸습니다. 높이 떴습니다! 센터 방향으로 높이 뜬 공. 중견수!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120미터 펜스를 넘어 전광판 하단을 때리는 큰 홈런이 나왔습니다.
-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였죠. 이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몸쪽으로 깊게 찔러 넣고 바깥쪽에 낮게 떨어지는 공을 던졌는데, 그걸 기다렸다 받아쳤어요. 양 팀의 어린 선수 둘이 오늘 경기 재미있게 하네요.
눈 빠질 뻔했네. 나도 내 사생 스토커에게 듣고 동영상으로 확인한 거라 긴가민가했는데 눈 크게 뜨고 보니까 진짜 보였다.
와이든 형님. 형님은 왜 느린 싱커 잡을 때 글러브가 눈곱만큼 더 오므려져요? 보통은 빠른 공 잡을 때 힘을 더 주는 게 정상인데.
하여간 형님 쿠세 덕분에 하나 쳤어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공 많이 보기로 했는데 딸랑 3개 봤네. 우리 성격 있는 선발 투수님 기분 좀 풀리셨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