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39화 (39/204)
  • 39화. 관계 정립

    * * *

    지금까지 가늘고 길게 살고자 한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출세하고 신분 상승을 하다 보니 딴 세상이 열린다.

    “어이구, 국대 백업 님. 물 좀 떠 와봐.”

    “국가 대표면 목이 뻣뻣해져서 형한테 먼저 인사 안 하는 거야?”

    “국대야~ 매니저 형이 부르신다. 아니다, 매니저 형 오라고 할게. 어디서 국대를 오라 가라 해.”

    “국대야~ 국대야~ 국대야~”

    나를 이름 대신 국대로 불러주는 동료 선수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팀 관중들도 내 플레이 하나하나에 관심을 둔다.

    “저게 국가 대표라고, 바깥으로 흘러만 나가면 삼진이네.”

    “때리지도 못하는 게 에러는… 에라. 쪽팔리니까 국대 반납해라!”

    “XX야. 넘어갔잖아! 수비로 뽑힌 국대면 펜스 밟고 두 바퀴 회전해서 홈런 타구를 잡아야지!”

    “저딴 것도 국대라고. 쓰레기 같은 안타나 치고 웃냐? 지금 웃음이 나오냐?”

    여태 살면서 이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팬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내 얼굴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쟤 미쳤나 봐. 팀이 지는데 처웃고 있어.”

    “쟤, 요즘 국대 달고 미쳤어. 시도 때도 없이 랩터스 유니폼만 보이면 사인하고 도망가.”

    “어머나. 쟤 구단주 닮아서 랩터스 공식 혐인데… 사인받은 사람 불쌍해서 어째…….”

    내가 부끄럼이 많아 말과 행동이 다른 팬들과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이, 구단에서 조용히 오피셜이 하나 뜬다.

    [최강훈 타이탄스 이적]

    [랩터스 최강훈 1라운드 지명권 2장과 교환]

    [랩터스―타이탄스―재규어스 삼각 트레이드]

    결국 최강훈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딱 별의 순간을 잡은 타자를 딸랑 1라운드 지명권 두 장과 바꿨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 커쇼라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1라운드 뽑아서 10년 넘게 2군에서 숙성시키는 선수가 한가득한데 구단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우린 수비 되는 외야가 필요하다고요. 외야수를 사주셔야지, 신인 지명권이라니요…….

    결국… 난 시즌 끝날 때까지… 뺑뺑이다.

    * * *

    - 타이탄스와 랩터스가 고척에서 맞붙습니다. 오늘 경기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바로 이 선수 때문이죠. 지난 주말 야구계 관련 뉴스를 핫하게 만든 트레이드의 장본인 최강훈 선수가 타이탄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 등장합니다.

    - 한두 달 쉬었죠. 한창 좋은 순간에 랩터스에서 구단주와 사이가 안 좋아 경기에 못 나왔습니다. 새 팀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됩니다.

    더운 날 돔구장에 들어오니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여름에 홈경기만이라도 여기서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지금까지 중견수로 나가 있는 저 XXX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부러워진다.

    - 이제 타선은 1번에 고정이 되는 모습입니다. 1번 타자 유격수 김소전 타석에 들어섭니다.

    - 타순은 고정이 되고 있는데 수비 위치는 고정이 안 되어 있어요. 수비도 고정을 해줬으면 좋겠고 타순도 2번이나 5번쯤으로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전 선구가 안 좋아서 출루율이 좋지 않았거든요. 1번 타자는 우선 출루가 되어야 합니다. 출루 되는 날과 안되는 날의 차이가 너무 커요.

    누가 내 욕을 하는지 타석에 들어서면서부터 귀가 간지럽다. 하지만 국대라면 이런 사소한 불편함쯤은 웃으며 넘겨야 하는 법. 시합만 나가도 웃음이 나온다.

    “이젠 인사도 안 하네.”

    “아닙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포수가 먼저 시비를 걸지만 공손하게 포수와 주심을 향해 인사를 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최강훈이 왜 내보낸 거냐? 야구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데. 너랑 사이가 왜 안 좋은 거냐?”

    그걸 말이라고. 야구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니까 야구 못하고 성격 드러운 나하고 사이가 안 좋겠지.

    “저희 사이좋습니다.”

    “좋기는. 너 때문에 내보냈다고 기사가 다 떴는데 딴소리는. 나야 우리 팀에 잘하는 후배 들어와서 좋은데, 왜 내보내는지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 됐다, 너랑 얘기하면 뭐 하냐, 이따 영근이 형한테나 물어봐야지.”

    “그만들 떠들고… 플레이볼!”

    - 권대운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들어갑니다.

    - 이번 시즌 5선발로 나오고 있는 선수죠. 군대 다녀와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기대됩니다.

    우이 씨… 들어오는 초구를 쳤어야 하는데 멍청하게 놓쳤다. 기껏해야 한 타석에 공 네댓 개도 채 못 보는데, 초구 좋은 공을 못 치면 더 칠 게 없어지는데…….

    아쉬운 마음에 배트를 더 꽉 쥐어 본다.

    - 빠지는 공 헛스윙. 저 공이 김소전 선수의 약점입니다.

    - 이제 다 파악되었죠. 김소전 선수에 대해 각 팀의 분석이 끝났을 겁니다. 타격 메커니즘상 흘러나가는 공에 대해 약점이 있거든요. 긴 배트로 커버를 하려고 해보기만 쉽지가 않죠.

    - 해결을 해야할 텐데요.

    - 근본적으로 저 공에 대처하는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저걸 참으면 볼인데 김소전 선수, 어지간한 공은 참지를 않아요. 선구가 부족합니다.

    될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더 빠져나가네. 실투만 던져라. 실투. 그러면 넘겨준다.

    - 김소전 퍼 올렸습니다. 센터 높이 뜨는 공. 중견수, 중견수 달려갑니다. 최강훈 워닝트렉에서 잡아냅니다.

    - 최강훈 선수, 경기를 못 나와서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좋은 수비를 보여줬어요. 쉬면서 스피드가 더 좋아진 거 같아요. 저 먼 거리를 뒤로 뛰어가서 잡아냈어요. 운동 능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아… 마지막에 힘이 덜 실렸다. 조금 더 끝까지 밀어냈어야 하는데…….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빠져나가는 공을 생각하다 마지막이 부족했다.

    끝나고 특타 1,000개다. 우이 씨.

    - 양 팀 득점 없는 가운데 3회 말 7번 최강훈부터 시작되는 타이탄스의 타선입니다.

    - 수비에서는 공백기의 우려를 전혀 보여 주지 않거든요. 타격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발이 빠르지만, 세이프티 번트 같은 건 기술이 없어 못 대는 놈이니 수비 위치를 조금 깊게 가져 간다.

    너무 깊게 가져가기는 내야 안타의 위험이 있으니 뒤로 두 발만 물러난다.

    - 3구 밀어친 타구 삼유 간을… 잡았습니다. 유격수 김소전 잡아서 1루 송구……. 세잎. 세잎입니다. 깊은 타구 세잎. 최강훈 정말 빠릅니다.

    - 빠릅니다. 정말 빨라요. 유격수도 깊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잘 던졌거든요. 그런데 살았어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빠르네요.

    깊었다. 타구가 잘 맞은 것도 아니고 밀려 맞은 타구라 아주 빠르지도 않았다. 그래도 잘 잡아서 자세 잡고 1루로 뿌렸는데 살았다고? 이걸 살았다고?

    이 타이밍에 잡아서 못 죽일 타구가 아니었는데 이걸 산다고?

    이걸 살았다는 건 저놈 발이 내가 봤을 때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건데…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 타이탄스 선두 타자가 출루하면서 기회를 잡습니다. 번트. 초구 번트. 3회 보내기 번트를 시도하는 타이탄스.

    - 경기 초반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의도 같아요.

    아웃카운트를 공짜로 늘려주니 좋긴 한데 3회부터 번트를 대다니 무슨 생각인 거지…….

    “얼굴이 좋아졌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도 얼굴 맞대고 같이 경기하던 사인데 2루에서 만나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겠냐? 너 때문에 거지 팀으로 팔려 갔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선배님.”

    거지 팀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뛰는 팀을 거지 팀이라니……. 나도 그 팀 뛰어 봐서 아는데, 그래도 월급 안 밀리고 꼬박꼬박 주거든. 프런트도 일 잘하고 치어리더도 이쁘고…… 아…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놀리냐?”

    “아닙니다.”

    “조심해라. 이제 같은 팀도 아니니까 봐주는 거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개XX. 지가 언제 봐줬다고 헛소리를……. 여태 내가 봐줬으면 봐줬지. 아, 안 봐줘 볼까?

    - 원 아웃 주자 2루. 2루 주자 리드가 깁니다.

    - 경기 초반 희생 번트까지 대면서 주자를 보냈단 말이죠. 타이탄스 입장에서는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 2루 견제. 세잎. 2루 세잎입니다.

    - 걸릴 뻔했어요. 최강훈 선수, 리드 조심해야겠습니다.

    타석엔 잡아당기는 좌타자. 2루 커버는 유격수가 들어간다.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나와 눈을 맞추고는 2루로 던지는 견제. 타이밍은 좋았는데 저놈의 반응 속도가 미쳤다. 볼 것도 없는 세잎.

    아쉬운 마음에 베이스를 밟고 일어선 주자를 툭 한 번 더 쳐보고는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기 위해 마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 주자 아웃! 주자 아웃 됐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 허허허. 최강훈 선수 당했네요. 김소전… 허허. 이런 상황이 나와요. 허허!

    - 느린 화면 다시 나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놈은 한번 크게 배울 필요가 있다. 2루에서 태그를 한 뒤 마운드 쪽으로 걸으며 글러브에서 손을 꺼내 투수에게 팔을 돌렸다.

    유격수가 공을 던졌는데 허공에 아무것도 안 날아오자 얼굴에 당황함이 한가득한 투수. 최선영 선배… 야구만 합시다. 연기는 재능이 없네.

    투수의 얼굴을 보며 글러 먹었다 생각을 했는데 트레이드된 팀에서 첫 경기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주자님이 마운드의 투수는 보지도 않고 베이스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훌륭한 주연 배우라면 허접한 조연을 데리고도 클레멘타인을 찍어야 하는 법. 아무렇지도 않은 척 2루 베이스를 넘어 수비 위치를 찾아 들어간다.

    한 발. 두 발. 주자가 나는 신경도 안 쓰고 3루로 가는 주루 라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재빨리 옆으로 달려들면서 글러브를 주자에게 가져다 댔다.

    벙쪄서 나에게 화를 내려는 주자를 지나 2루심에게 달려가며 글러브를 보여준다.

    “아웃!”

    - 메이저에서 가끔 나오는 장면이에요. 히든 볼 트릭이라고 하는 거거든요. 다시 보시면 유격수가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척만 하고 안 빼고 있어요. 그러고는 투수에게 공을 던지는 척을 하거든요.

    - 다시 한번 보실까요?

    - 보이시죠? 지금! 지금 이 장면인데 주자가 공을 안 보고 있어요. 그라운드의 선수는 항상 공을 보고 있어야 하거든요.

    - 이게 인 플레이 상황인 거죠?

    - 그렇죠. 이 부분이 야구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볼 데드 상황이 아니고 인 플레이 상황이에요.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고 다시 투수판에 올라가지 않았거든요.

    - 그러네요. 투수가 분명 마운드 밑에 내려와 있습니다.

    - 공이 아직 내야에서 정상적으로 플레이가 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죠. 전혀 볼 데드 상황이 아닌데 주자가 공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고 베이스에 떨어졌단 말이에요. 인 플레이 상황 중에 베이스에서 떨어진 주자를 태그하면 아웃이죠.

    - 선수의 연기가 중요한 포인트겠네요.

    - 김소전 선수, 야구 선수가 아니라 배우를 해야 했어요. 허허.

    1루 측 관중만큼 많이 들어찬 3루 측 관중석에서 내 이름을 연호해 주는 가운데 영화배우에게 사기를 당한 주자가 조용히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2루심하고 옥신각신 이야기가 길어진다.

    급기야 타이탄스 감독까지 그라운드에 올라와 2루심이 타임을 불렀느니 안 불렀느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까지 하고 난 뒤에 선수를 달래서 들어간다.

    눈치를 보아하니 감독도 주자가 삽질한 걸 알고 있는데 저기서 저렇게 뻗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와서 편들어 주고 가는 거로 보인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아까 1회에 너도 내 것 잡았으니까 나도 너한테 답례해 주는 거다.

    어떤 후배가 선배한테 선물 받았다고 똑같이 답례해 주냐? 좋은 후배 만났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 만나면 조용히 아웃당하고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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