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38화 (38/204)

38화. 희소식

* * *

타이탄스와의 3연전 중 1차전. 연장 10회까지 가서 결국 4번 타자 조영근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승리를 가져온다.

한 경기 잡겠다고 주중 첫 경기부터 투수를 8명이나 써버린 랩터스의 3연전이 정신없이 꼬였다.

1루 외국인 타자가 수비에 이어 타격도 못 하겠다고 나가떨어지자 엔트리가 매일매일 바뀐다.

그 와중에 우익수도 발목 부상으로 수비 불가 판정. 2군에서 올라오는 백업 선수들도 1군에서 쓸 수 있는 수준이랑은 거리가 있다.

결국 감독의 선택은 만능 백업의 뺑뺑이.

- 우익수였던 김소전 2루로 들어갑니다. 지난 이닝에 민수경 선수 자리에 대타로 들어왔던 황경철이 우익수로 가고 김소전이 2루수로 자리를 옮깁니다.

- 김민중 감독,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에요. 랩터스 선수가 너무 부족하거든요. 어린 선수들이 빨리 올라와 줘야 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포지션 이동이 잦다. 아무리 내가 여기저기 땜빵이 가능하다지만 이건 좀 아닌데.

수비가 그냥 글러브 하나 끼고 뛰어다니는 게 다가 아닌데. 내야와 외야가 준비하는 것부터 경기에서 하는 게 다 다른데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하다.

- 타구, 우익수 키를 넘겼습니다. 원바운드 펜스 맞은 타구. 공이 튀었습니다. 아, 우익수 황경철. 공을 쫓아갑니다. 타자 주자 2루 밟고 3루로. 공 이제야 중계됩니다.

황경철 선배. 빠따는 터질 듯 말 듯이지만 수비는 확실히 터졌다. 경기 나올 때마다 확실히 터트리는 수비……. 누가 뭐래도 지명 타자감. 수비를 보고만 있어도 갑갑하다.

- 8회, 2사 주자 3루. 동점 주자를 3루까지 보낸 타이탄스. 타석에 명정욱 들어섭니다.

- 오늘도 국가 대표 허철우 감독이 나와 있죠. 어제 아쉽게 패전 투수가 됐지만 9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은 현장인 선수와 어제오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명정욱 선수를 관찰하기 위해 나와 있어요.

- 그러고 보니 위원님, 허철우 감독님을 만나보셨죠?

- 어제 직접 만나 뵙고 얘기를 좀 나눠봤는데, 선수단 구상은 거의 끝난 듯합니다. 마지막 한두 자리 정도만 결정이 남은 것 같아요.

스코어 8 대 9. 어제 이어 우리 팀 벌 떼가 나와서 1점 차 승부 중인데 2사에 3루. 여기서 동점이 되면 골치 아프다. 나올 투수도 없는데 오늘도 연장 가면 이번 주는 계산이 안 나온다.

- 배터리 간의 사인이 길어지네요. 투수 김호영, 발을 풀어봅니다.

-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거거든요. 명정욱 상대로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겠어요.

어제 한 점 차로 진 타이탄스의 기세도 꺾일 줄 모른다. 타자에 완전히 압도돼 버린 투수.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면 답이 없는데…….

- 3구, 잘 맞은 타구. 2루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갑니다. 1루 송구, 아웃. 잔루 3루. 타이탄스의 8회 초 공격이 마무리됩니다.

- 저걸 잡네요. 빠진다고 봤거든요. 타구 속도도 빨랐단 말이죠. 내일 김민중 감독을 만나서 한마디 해야겠어요. 저 선수 포지션 만들어 줘야 해요. 없는 자리라도 만들어서 줘야 합니다. 잘하네요.

좌타자의 1-2루 간을 뚫고 나가는 타구.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더니 글러브에 공이 들어왔다. 확신을 가지고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공이 들어왔으니 1루 송구. 전광판에 리플레이가 나오는 걸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샘솟는다.

이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중앙 지정석이 신경이 쓰인다. 눈을 찌푸리며 초점을 맞춰 보니 저 비싼 중앙 지정석에 오늘 하루 종일 안 보였던 여우가 보인다.

순식간에 더러워진 기분. 두 손가락으로 내 눈을 찍고 나서 여우를 가리키며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를 해줬다.

- 8회 초 이닝을 마치고 김소전 선수의 당돌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 광고가 나가는 사이에 사건이 있었죠.

- 국가 대표 허철우 감독을 가리키면서 본인을 잘 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국가 대표에 뽑아달라는 의미일까요?

- 선수가 영광스러운 국가 대표에 뽑히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허철우 감독에게 이게 통할까는 모르겠어요. 허철우 감독, 굉장히 무서운 감독님이시거든요. 선수들 예의 없는 걸 그냥 넘기시는 분이 아닌데 이걸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8 대 9로 이기고 랩터스가 타이탄스와 주중 3연전의 위닝 시리즈를 완성하자 마지막 경기에 마음 편하게 5선발로 땜빵 선발 투수를 올린다.

승패와 상관없이 맘껏 던지라고 올린 유망주가 정말 승패와 상관없이 뻥뻥 얻어터진다.

- 크다, 크다, 크다! 넘어갔습니다. 6 대 0. 1회 초부터 빅 이닝을 만들어 내는 타이탄스. 지난 두 경기를 분풀이하는 듯한 타격입니다.

- 제가 누누이 말하지만, 투수가 도망 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승부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자신 있는 공을 먼저 던져서 카운트를 잡아놓고 승부를 해야 해요. 이러면 힘들죠.

- 결국, 투수 코치가 공을 들고 올라옵니다. 교체되겠네요.

- 아직 2군에서 조율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터졌네. 오늘은 조용히 내 것만 하자.

- 오늘도 허철우 감독이 나와 있습니다. 경기 전 위원님이 만나보셨죠?

- 오늘 경기 전에 허철우 감독님을 만나봤는데요. 선수단 구성에 대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 어떤 말씀을 하셨죠?

- 내야 백업으로 김소전 선수도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이번 3연전 내내 김소전 선수의 움직임을 보고 계셨다고 하시네요.

- 김소전 선수요? 이번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국가 대표팀 기조가 경험과 안정 아니었습니까? 김소전 선수의 경험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 그렇죠. 김소전 선수를 보면 고등학교 때도 국가 대표 경험이 없어요. 한창 좋을 때 부상 기간이 길어 국가 대표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기회를 잡을지 궁금하네요.

끝도 없이 맞아 나가는 타구. 이런 날은 공 하나를 잡으려고 악쓰기보다 기본에 충실하고 착실히 아웃 카운트를 늘리고 하나 더 가는 베이스 러닝을 막는 게 중요하다.

1회부터 30분도 더하는 경기. 더 늘어지면 야수들의 집중력도 바닥을 친다.

- 유격수 1루 송구, 아웃. 그사이 3루 주자, 홈으로 들어갑니다. 한 점과 아웃 카운트를 바꿉니다. 6회 초에 스코어 9 대 2. 7점 차로 벌어집니다.

- 홈에서 승부가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유격수 김소전 선수. 뛰는 주자를 보고는 모험보다 착실한 아웃 카운트를 선택했어요. 지금 한 점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죠. 벤치의 의도인지, 선수의 의도인지 궁금하네요. 2년 차 선수가 직접 선택한 것이라면… 졌다는 생각만 드네요. 허허.

* * *

홈에서 대패한 경기를 보면서 맥주를 털어 넣던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조 단장이 오늘 경기 졌다고 전화할 사람은 아니고, 무슨 일이시오?”

- 국대 명단 나왔어요.

“왜? 또 우리 팀 무더기로 뽑아가?”

- 그럴 리가요. 우리 노장들 뽑아가면 다 뒤집어버린다고 그 난리를 쳐놨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죠.

“누구 뽑혔어?”

- 조영근, 라정안, 이시윤, 박요훈, 그리고…….

“그리고? 4명이면 됐지, 또 누구?”

- 김소전.

전화기 건너 화가 난 착잡한 목소리의 여자와는 다르게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흠, 흠. 김소전. 흠, 흠. 이번에 미필 쿼터 없다고 얘기하더니, 그래도 우리 팀 미필 하나 챙겨 줬네.”

- 휴. 내가 미필 쿼터 필요 없다고 안 쓸 거면 우리 선수들 뽑아가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얘를 꼭 집어서 데려갈 수가 있어요? 최강훈 대신이라는데 내가 뚜껑 열려서 진짜…….

“워, 워. 왜 그래, 최강훈은 군 면제잖아. 남들은 미필 국가 대표로 데려가면 고마워하는데, 조 단장은 왜 그래?”

- 고맙긴! 군대 갈 때 되면 가야지! 내가 내년에 김소전 현역으로 군대 보내려고 보직이랑 부대까지 다 사전 작업하고 있었는데, 다 망했다고요. 김소전 우투좌타인데 왼쪽 근력이 오른쪽하고 밸런스가 안 맞아 군대 보내서 그쪽만 확 고치려고 했는데 망했다고요!

여자가 군대를 무슨 헬스장쯤으로 생각하는 바람에 남자가 발끈한다.

- 어디서 군대 보직을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거 범죄야, 범죄!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 아. 그래서 일빵빵이 계룡대에서 커피 타셨어? 자기는 백으로 군 생활 편하게 해놓고, 어디 포병 장교한테 지적질이야!

어우 야… 누가 장교 아니랄까 봐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 내가 알아서 안 걸리게 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너처럼 후방으로 빼니까 문제 되는 거지, 메이커 부대 전방에서 눈에 잘 안 띄는 데로 빼면 안 걸려! 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까불어!

대한 그룹 3세 중에 정상적으로 현역으로 군대 다녀온 남자는 여대 ROTC로 포병 장교를 마친 여자가 군에 대해서 얘기하자 더 까불면 죽겠다는 생각에 말을 돌린다.

“어허. 나라에 봉사하는 게 어디 군대만 있었어? 국가를 대표해서 야구로 봉사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 큰일을 하는 거야. 너무 그렇게 화를 내지 말라고. 이 기쁜 소식을 들려준 루다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으니 이만 끊어. 내가 전화 돌릴 데가 많네.”

- 잠깐. 뭐라고? 누구? 루다? 내가 들어본 이름인데? 이루다? 맞아? 세계 그룹 외동딸 이루다? 걔 맞지? 이거 또 뭐 있지? 어쩐지 이게 말이 안 된다 싶었어. 김소전이 허철우 감독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런데 뽑았단 말이야. 이거 뭐 있지? 뭐야! 빨리 말 안 해!

“미안. 전화 들어온다. 끊어.”

여자와 대화가 부담스러워진 남자가 얼레벌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 * *

국가 대표.

내 생전 머리털 나고 반 대표로 달리기는 나간 적이 있어도 시 대표 한 번 나간 적이 없는데… 국가 대표…….

국가 대표 선발 명단이 나온 신문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돌아와서 성적이 좋긴 하지만 3할도 못 치고 출루율도 별로고 삼진이 볼보다 2배가 넘어 3배를 바라보고 있는 리그의 평범한 타자인데… 만능 백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국가 대표에 뽑히다니…….

뽑혔다는 기쁨이 올라오기도 전에 못 하면 길거리에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평소 엄마 말고는 울릴 일이 없던 전화기가 오랜만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뽐낸다. 학창 시절 감독님, 코치님부터 같이 운동했던 선후배.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이곳저곳에서 온갖 전화가 다 온다.

“네… 아니요……. 구단에 물어보고요.”

“인터뷰는 저희 구단 매니저 형한테 먼저 말씀 좀…….”

“코치님, 감사합니다. 네네… 그럼요. 코치님 덕분입니다.”

“보험? 그럼 들어줘야지. 신분증? 내가 찍어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아니요,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하도 많이 오다 보니 이제는 그냥 번호도 안 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야! XXX야! 고맙다고 연락을 해야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누구?”

- 진짜 내 번호 저장도 안 해놨네? 내가 번호 적어 주면서 연락하랬지! 왜 전화 안 해! 왜 안 하냐고!

“누, 누구신지…….”

- 너 때문에 인턴 잘린 이루다다! 후… 어쨌든 내 덕에 국가 대표 됐으니까 빨리 고맙다고 해!

어질어질하다. 안 그래도 안 받던 전화를 계속 받으니 전자파 때문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 거 같은데, 이런 X소리를…….

“제가 그쪽에 왜 고맙다고 합니까! 그리고 왜 자꾸 반말합니까! 번호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 내가 철우 삼촌 데리고 경기장 와서 너 보라고 계속 꼬셨으니까! 나 때문에 뽑힌 거라고! 철우 삼촌 너 뽑을 생각 별로 없었는데 내가 너 뽑으라고 계속 얘기했다고! 빨리 고맙다고 해!

확실히 미친 것들은 답이 없다. 헛소리도 정도껏이지, 저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감독님이 왜 삼촌인진 모르겠지만 그건 감독님하고 말씀하시고 왜 자꾸 반말이냐고. 나이도 몇 살 안 먹은 게 꼬박꼬박 반말이야!”

- 너랑 동갑이니까 반말하지. 억울하면 한번 만나던가. 나 너한테 물어볼 게 산더미니까.

기가 빨리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더 이상 말을 섞다간 오늘 경기도 못 나갈 거 같다.

“우리 만날 일 없으니까 기대 접으시고요. 쓸데없이 경기장에서 노려보고 그러지 맙시다. 전화 끊습니다.”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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