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30화 (30/204)
  • 30화. 라이벌전

    * * *

    - 소닉스와 랩터스, 랩터스와 소닉스와의 시즌 첫 맞대결을 잠실에서 보내드립니다.

    -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을 만들어 가고 있는 두 팀의 대결이죠. 오늘 대결에서 이번 시즌 초반 형세가 나타날 것 같아요.

    16승 4패의 1등 랩터스와 14승 6패의 2등 소닉스의 시즌 첫 만남.

    랩터스가 승률 8할로 미친 성적을 찍고 있어서 그렇지, 지난 시즌 우승 팀 소닉스도 7할 승률을 보여 주며 초반 질주를 이어 나가고 있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꾸역꾸역 어거지로 이기는 랩터스와는 반대로 끊임없는 화수분을 보여 주며 지치지도 않고, 큰돈 쓰지 않으며 상위권에 알박기를 하고 있는 소닉스.

    3경기 스윕 당하면 1위도 바뀌는 만큼 시즌 초반 중요한 3연전이 펼쳐진다.

    - 1번 타자 최강훈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시즌 랩터스 최고의 히트 상품입니다.

    - 그렇죠. 5년 차 선수인데 이번 시즌에 자신의 재능을 다 터트리고 있어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보이는데 그걸 타고난 재능으로 덮고 있어요. 이 선수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무섭습니다.

    - 타율 3할 8푼 8리, 안타 35개, 홈런 4개, 2루타 7개를 기록하고 있는데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저도 보면서 믿기지 않는데, 최강훈 선수 야구를 굉장히 투박하게 하고 있거든요. 선수 자질로만 보면 한국 야구사를 새로 쓸 만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됩니다.

    대기 타석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1번 타자의 타격을 지켜보았다. 벌써 한 달 가까이 보고 있는데 볼수록 신기하다.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고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넘는다.

    타격이 아무리 공보고 공치기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보고 공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힘 있는 빠른 공을 던지는 외국인 투수를 상대로는 직구 타이밍에 배트 시동을 걸어서 공 나오는 궤적을 확인하고 그대로 치든지, 변화구에 맞게 스윙 궤도를 수정하는 게 고작인 것이다.

    저놈처럼 공이 피치 터널을 다 지날 때까지 쳐다보다가 말도 안 되는 운동 능력으로 배트를 돌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 최강훈! 중견수 앞에 안타! 포수 미트로 들어가는 공을 끄집어내서 때렸습니다.

    - 공을 끝까지 보고 잘 걷어 올렸죠. 중심을 최대한 뒤에 두고 떨어지는 공에 배트를 잘 가져다 댔어요. 좋은 타격이 나왔습니다.

    미, 미친놈……. 타이밍도 늦었고 중심도 무너졌는데 그걸 억지로 끌어당겨서 센터로 밀어넣었다.

    사람이 아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내가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중심 이동해 날리는 배트 스피드보다 중심을 뒤에 놓고 허리 코어로만 돌려서 때리는 배트 스피드가 훨씬 빠르다는 게 납득할 수가 없다.

    세상에 진짜 천재들은 따로 있다지만… 부럽다. 나도 저렇게 쉽게 야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랩터스 1회부터 선두 타자가 출루합니다. 주자 1루. 타석에는 랩터스 또 하나의 히트 상품 김소전 선수가 들어옵니다.

    - 이번 시즌 랩터스 야구, 이 둘이 다 하고 있죠. 1번 타자 최강훈의 출루, 2번 타자 김소전의 장타. 오늘도 이 공식이 통할지 궁금하네요.

    난 닝겐 님의 1루 출루 후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가 먼저 미친놈의 안부를 묻는다.

    “저 XX 술 먹었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랩터스는 어린놈의 XX가 술 처먹고 시합에 나오는데 아무 말도 안 하냐?”

    “저는 술 안 먹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이따 영근이 형한테 한마디 해야겠다.”

    몰라서 그러나. 랩터스는 밤에 술을 먹든 게임 하다 밤을 새우든 개인 사생활에는 아무 얘기를 안 하는 팀인데. 조영근 선배한테 그런 얘기 해봐야 욕만 먹을 텐데……. 흠…….

    타석에 들어서서 투수를 바라보는데 1루 주자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투구 폼이 큰 소닉스의 외국인 투수를 상대로 노골적으로 뛰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다.

    시즌 내내 하는 고민의 순간이 또 다가왔다. 감독은 주자의 도루랑 상관없이 자기 스윙을 가져가라고 하지만 1루에 빠른 주자가 저렇게 뛰겠다고 날뛰는데 안 도와주기도 힘들다.

    변화구면 흘려보내고 빠른 공이면 커트한다.

    눈꼴신 싸가지에게 안타를 맞고 심기가 불편하신 투수님께서 애꿎은 나에게 전의를 불태우신다.

    정신 사납게 구는 1루에 견제구 하나를 던지고는 퀵 모션인지 정상 투구인지 모를 큰 모션으로 공을 던진다.

    이런… 멍청한…….

    아까부터 앞에 앞에를 머리에 새겨넣다가 아무 생각 없이 평소보다 훨씬 배터 박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느린 공 던지는 투수들을 상대로 준비한 무기였는데…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때려 낸다.

    - 우중간, 우중간~ 가릅니다. 장타 코스~ 주자 3루, 타자 주자 2루까지. 래터스 1회 초부터 무사 주자 2, 3루 좋은 찬스를 만듭니다.

    - 1루 주자 최강훈 선수 베이스 런닝이 아쉽네요. 소닉스의 중계 플레이가 좋았지만 지금 타구에는 홈에 들어 왔어야 하거든요. 2루에서도 멈칫하고 3루에서도 멈칫했어요. 아쉽네요.

    투수의 투구 동작에 맞춰서 타격에 시동을 걸었다. 릴리스 포인트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손가락. 이거 직구랑 살짝 느낌이 다른데…….

    직구인지 아닌지 애매하지만 존으로 들어오는 듯한 공에 배트가 딸려 나간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궤적과 비슷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조금 이질적인 움직임.

    이거 커터다.

    커터라 하면 직구와 비슷한 궤도,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살짝 꺾이면서 타자의 배트를 쪼개버리는 공.

    저 미국산 투수의 결정구 커터가 초구부터 나왔다.

    미국에서 연습할 때 봐왔던 진짜 정상급의 커터라면 이 정도에서는 직구와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 오는 투수들이 아무리 메이저 출신이라고 해도 정상급 투수들에 비해 두세 단계 떨어지는 투수가 오기 마련인지라 직구와 궤도가 약간 다른 공이 타자의 몸쪽을 향해 다가온다.

    내 타격의 절반 이상인 레그킥과 달려나갈 듯한 중심 이동까지 끝나고 앞 손 팔꿈치를 열어 주며 시작된 스윙.

    방법이 없다. 공을 따라 앞에 타격 포인트를 설정하고 그대로 후려친다.

    살짝 떨어지는 공. 조금 빗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돌려버린 배트에 밋밋하게 꺾인 공이 중심에 맞아 라이너성 타구로 뻗어 나간다.

    맞는 순간 장타. 타구가 나가는 모양이 이건 무조건 우중간을 꿰뚫는 타구다. 달린다.

    - 지금 느린 화면 보시면 컷패스트볼이거든요. 이 공이 타자에게 다가오면서 살짝 꺾여 들어가는 공인데 공이 충분히 꺾이기 전에 타자가 타격을 했거든요. 앞에서 잘 때려 냈어요.

    - 그러고 보니 김소전 선수, 배터 박스 앞에 바짝 붙어서 치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 방 위원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전에 김소전 선수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고 하더니 이런 모습이군요.

    - 패스트볼 타이밍에 대해서 조금 알려줬는데 바로 적응을 하네요. 어린 선수가 대단합니다.

    - 주자 2, 3루. 타석에 메이슨 들어섭니다. KBO 리그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만 기대를 해 봐야겠습니다.

    생긴 거로 보면 60홈런은 우습게 때려 내야 할 3번 타자가 중견수에게 짧은 외야 플라이를 띄운다.

    외야 플라이지만 애매하다. 어차피 무사 2, 3루. 다음 타자가 4번 조영근이니 기다리는 게 정석인데, 저 3루에 있는 야알못 XX. 3루에서 뛸 준비를 한다.

    - 타구 높이 뜹니다. 좌익수 김희순 내려와서 편안히 잡을 수 있습니다. 아, 3루 주자. 3루 주자 홈으로 달려들고 있습니다. 빽홈~ 빽홈~ 공 빠졌습니다. 세잎! 세잎입니다.

    - 무모하다고 봤거든요. 이걸 사네요. 최강훈 선수 대단합니다. 대단한 주루 플레이가 나왔어요.

    - 소닉스,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네요.

    미친놈이다. 진심으로 미친놈이다. 저게 말이 되나 싶다. 김희순 선배 어깨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대신 리그 최상급 정확함을 가진 좌익순데…….

    저 낮은 타구에 한국 시리즈 7차전처럼 뛰는 것도 제정신이 아닌데 포구 위치에 중무장하고 자세를 잡고 있는 포수를 밀쳐내 가면서 들어가는 건 진짜……. 야수의 심장이다.

    그냥 피지컬이 다르다. 야구 선수의 몸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가 없다. 저놈은 자기 몸 다치는 거 생각을 안 하는 건가?

    이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졌다……. 졌다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 비디오 판독. 세잎. 원심 유지됩니다. 아, 김을배 감독 나오고 있어요. 이러면 퇴장입니다.

    - 김을배 감독은 지금 포수를 밀쳤다는 거예요. 느린 화면 보시면 장현표 선수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강훈 선수도 보면 3루에서 라인 안쪽으로 뛰었단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주자들이 라인 바깥쪽으로 뛰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포수와 충돌이 있었고 포수가 밀리면서 공을 놓쳤어요.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뒤에서 소닉스 선수들이 쌍욕을 내뱉고 있는데도 유니폼에 묻은 흙만 툭툭 털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랩터스의 1번 타자. 2루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나만 입장이 참 난처하게 되었다.

    - 김을배 감독, 퇴장합니다. 1회 초부터 소닉스 힘들어집니다.

    - 지금 좀 애매하긴 해요. 주자가 안쪽으로 뛰긴 했지만 포수도 주루 라인을 막았다면 막았거든요. 심판은 포수가 먼저 길을 막았다고 본 거 같습니다.

    경기장이 어수선한 가운데 2루에 있는 랩터스의 타자가 갈굼을 당하기 시작한다.

    “야구 X같이 하라고 누가 시키디?”

    “들어가면 포수 조심하라고 해라. 아주 발로 찍어버릴 거니까.”

    “대답 안 하냐? 너 오늘 유격수지? 조심해. 형 스파이크 갈고 나온다.”

    “아이고. 다음이 영근이 형님이네. 요즘은 허리 괜찮으신가 모르겠네. 나이 먹고 뼈 부러지면 붙지도 않는데 어쩔꼬.”

    우이 씨…….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소닉스의 유격수와 2루수가 번갈아 와서 무서운 소리만 늘어놓는다.

    형님들 왜 저한테 그러세요……. 그런 건 가해자한테 하셔야지…….

    - 아, 조영근 선수 맞았습니다. 랩터스 선수단 분위기가 험악해지는데요. 조영근 선수가 선수단을 만류하고 있습니다. 내색하지 않고 1루까지 걸어 나갑니다.

    - 야구는 정상적으로 해야 해요. 야구를 기분대로 하면 안 되거든요. 양 팀 다 진정했으면 좋겠어요.

    저 미국놈, 노리고 던졌다. 타자가 알고 안 아프게 맞았으니 다행이지. 그냥 맞았으면… 어휴…….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소름 돋는다.

    1회부터 지저분한 경기를 상대적으로 분위기를 다독인 랩터스가 6 대 3으로 가져가면 시즌 첫 번째 맞대결에서 승리를 기록한다.

    오늘의 수훈 선수. 1회 초 희생 플라이 상황에서 발로 결승점을 만들어내고, 7회 도망가는 2루타를 쳐낸 최강훈이 인터뷰를 시작한다.

    - 1회 초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조금 무리한 주루 플레이가 나왔고 소닉스 장현표 선수가 교체되는 상황이 있었는데요. 1회부터 적극적인 플레이를 한 이유를 말씀해 주실까요?

    “선수가 언제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움직였고 그 정도면 충분히 홈에 들어갈 수 있어서 뛰었습니다. 특히나 그 타이밍에 들어가지 않으면 4번의 조영근 선수나 5번의 강정상 선수의 타격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가야 해서 들어갔고 살 수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상대에 대해서 말을 내뱉는다.

    “본의 아니게 교체되신 장현표 선수께는 안타깝지만 주루 선상을 막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자의 진로는 안 막게 훈련하셨으면 합니다.”

    5년 차. 남들은 보통 슬슬 1군에 자리 잡아가는 연차에 일약 스타가 된 선수가 13년 차 베테랑 포수에게 조언질을 하고 나섰다.

    첫 질문을 세게 던지고는 미안한 마음에 잘한다고 우쭈쭈해 주는 질문을 잔뜩 준비했던 캐스터가 침을 꿀꺽 삼킨다.

    헤드폰을 통해서 속사포 랩을 쏟아내는 PD의 말을 순간적으로 정리하며 우선순위를 나눈다.

    이제 1차전일 뿐이다. 내일, 모레 두 경기를 여기서 더한다. 다음 두 경기 시청률이 오늘 질문에 달려 있다.

    심호흡을 크게 한 캐스터가 먹잇감을 노려보는 육식 동물의 눈을 하고는 마이크를 고쳐 잡는다.

    - 최강훈 선수. 최근 타격에서…….

    -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2루 슬라이딩…….

    - 타이탄스와의 경기에서 수비 시에…….

    이긴 경기 수훈 선수 인터뷰를 보고 있던 랩터스 단장이 집어던진 리모컨에 벽에 걸린 대형 TV가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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