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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27화 (27/204)
  • 27화. 시범 경기

    * * *

    남자의 장기 출장으로 오랫동안 롱디 연애를 한 커플의 눈물겨운 데이트가 잠실의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구속 안 됐음?”

    “될 뻔함.”

    “재주 좋네. 난 실형 받을 줄 알았는데.”

    “신제품 테스트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양키 X선비 XX들. 기술의 발전을 위한 위대한 노력을 몰라보고 XXX들.”

    “돈도 많으면서 왜 시골 호텔에서 옆방까지 들리게 쌈박질해! 그냥 힐튼호텔 스위트를 빌려서 놀아! 그러면 호텔이 알아서 해결하잖아! 내가 구단주 기사까지 막아야겠어? 그것도 이딴 더러운 기사를 막아야겠냐고!”

    남자를 오랜만에 만난 여자의 투정이 심해지자 남자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가장 가까운 데가 거기여서 그랬어. 옆방은 몇 분 전까지 우리가 비디오로 보는 걸 라이브로 하고 있었다고. 우리보다 더 시끄러웠던 게 옆방인데 그것들이 신고할 줄 몰랐지. 신고는 우리가 해야 했다고.”

    남자의 변명에 미동도 하지 않는 여자.

    “됐고. 왜 불렀어요? 뭐, 빵에서 나왔다고 두부라도 사줘?”

    여자가 선물을 사준다는 말에 부담을 느낀 남자가 일단은 거부 의사를 밝힌다.

    “빵은 무슨! 그냥 조사! 조사 좀 받았다고. 내가 불법 행위 한 것도 아니고 방에서 현민이랑 남자 간의 우정을 좀 다졌다고 이런 수모를 겪은 것도 억울한데 두부는 무슨. 나 조사! 조사받은 거야.”

    “그럼 나 왜 불렀냐고요?”

    “김소전이 연봉 계약. 현민이가 인정 못 하겠대. 조 단장한테 연봉 계약 다시 하자고 얘기 좀 해달라던데.”

    난데없이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오자 여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오호. 그 XXX가 그딴 소리를 해요? 할 말았으면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해요. 아주 자근자근 씹어 버릴 테니까.”

    남자의 친구에게 흑심을 품은 여자가 숨길 생각도 없이 노골적으로 다른 남자를 탐한다.

    “나도 그 말 했는데, 미국에 일이 많아서 못 들어온대. 그래서 나한테 얘기를 좀 전해 달라고…….”

    “됐고. 이게 끝임? 편지 가져오는 비둘기였음?”

    졸지에 심부름꾼으로 전락해 버린 남자가 더는 말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화제를 돌린다.

    “김소전 어쩔 거야?”

    “뭘 어째요?”

    “1군에 고정시켜야지.”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요?”

    “그럼 단장한테 얘기하지, 누구한테 얘기해?”

    “감독이 알아서 하겠죠. 좋으면 쓰고 안 좋으면 안 쓰겠지.”

    “그러니까 감독한테 얘기 좀 잘해 달라고!”

    “내가 왜? 연봉 3천3백짜리 꼬꼬마를 내가 왜 신경 써?”

    자기의 부탁을 일언지하 거절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협박하기 시작한다.

    “조 단장, 그러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현민이가 조 단장 고소한다고 하는 거 내가 말리고 있다고. 에이전트와의 멀쩡한 선수 계약 파투 내놓고, 그것도 모자라 연봉까지 깎았잖아.”

    그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짐짓 점잖은 척하는 남자.

    “내가 이런 거 보면서도 선수… 그래, 김소전이 하나 잘되라고 이렇게 부탁하는데 그걸 못 들어줘? 자꾸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어. 현민이가 고소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할 거야.”

    남자의 협박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여자가 오히려 반격에 나선다.

    “고소? 하라고 해. 나도 홍지가 옛정을 생각해서 고소는 하지 말자고 말려서 안 했는데, 잘됐네! 고소해. 하자.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지 뭐. 내가 아무리 바빠도 이런 건 직접 해드려야지. 드루와. 드루와.”

    여자와의 대화 중 남자의 가슴 한편에 아련히 남아 있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들리자 남자가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조 단장이 직접 나설 거까지야 없지. 흠흠. 그건 그렇고 홍시는 소전이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어쨌길래 연봉도 깎고 에이전트 계약까지 파기시킨 거야?”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게 마음에 안 든 여자가 상대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홍시가 아니고 홍지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여홍지라고. 얘 홍시라고 부르는 거 싫어한다고!”

    “알겠어. 그래서 홍시가 소전이 어떻게 설득했냐고.”

    여자가 틀린 걸 고쳐주는 데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남자에게 더는 기대를 접고 그냥 대화를 이어 나간다.

    “설득은 무슨, 뭘 하길 했어야지. 홍시가 김소전이 불법 계약 맺은 거라고 업무용 전화번호 말고 개인 번호 주면서 자기랑 해결하자고 하면서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선물로 선글라스 사줬더니 그렇게 좋아라 하던데요.”

    말을 이어 나가던 여자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남자가 들으면 큰일 날 이야기를 꺼낸다.

    “아, 이거 해결하면서 둘이 의남매 맺었대요. 생긴 건 별론데 성격은 순박하니 괜찮다고 동생 하기 딱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련한 그녀가 남자 동생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남자가 이성을 잃었다.

    “야! 내가 홍시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남자조심 시키라고 했냐! 안 했냐! 김소전이 생긴 게 찐따 같다고 속도 그냥 찐따 같을 줄 알아! 남자는 다 늑대라고! 어디 늑대 같은 야구 선수하고 의남매를 맺어! 내가 이래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냐! 내놔! 홍시 개인 번호 내놔! 이 오빠가 가서 보살펴줘야 해! 빨리 개인 번호 내놔!”

    남자의 망나니짓에 이골이 난 여자가 한심하게 바라보며 쐐기를 박는다.

    “홍지가 여태 만난 남자가 몇 명인데 그딴 걸 걱정하고 있어. 세상 제일 쓸데없는 게 홍지 걱정이니까 괜히 힘 빼지 마시고 너 님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늦었다. 남자의 이성을 돌리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 사악한 것! 순진한 어린애를 지옥 불로 밀어 넣는구나! 홍시야~ 오빠가 간다.”

    먹고 난 커피를 정리도 안 하고 떠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 * *

    “저거 김소전 맞냐?”

    “어째 조영근보다 멀리 치는 거 같지 않냐?”

    “뭔가 이상한데 멀리 나간다.”

    “그래 봐야 연습 타격이야. 실전에는 못 쳐. 내가 어퍼 스윙으로 성공한 걸 본 적이 없다.”

    “어퍼라기엔 좀 다르긴 하다.”

    스프링 캠프가 끝나고 시범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선수들의 마지막 조율이 한창이다.

    감독이 스프링 캠프에서 다른 선수들의 시즌 사용법을 완성했지만 홀로 과외를 받고 따로 들어온 랩터스의 2년 차 만능 백업 선수는 이제야 검토를 시작한다.

    “자, 커브. 커브 던져 줘.”

    딱! 딱! 딱!

    “스윙 궤도상 떨어지는 공은 여지없겠는데요.”

    “직구도 앞에 놓고 때리는데 커브도 무시무시하게 때려 내네요.”

    과외를 받고 들어온 선수를 놓고 코칭 스텝들이 모여서 토론회가 한창이다.

    “바깥쪽에 약점이 있어 보이는데 슬라이더를 볼까요?”

    감독이 선수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이자 타격 코치가 슬라이더를 주문한다.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게 던져 봐. 아예 빠져도 좋으니까 최대한 멀리 던져.”

    코치의 까탈스러운 주문을 들은 배팅 볼 투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딱! 딱! 딱!

    “저것도 집어넣네. 저거 볼 아니야?”

    “볼이지. 볼 한 개에서 한 개 반은 빠졌잖아.”

    “저걸 어떻게 치는 거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때리고 있잖아.”

    “쟤가 팔이 길잖아. 팔도 긴데 배트도 35인치짜리야.”

    “35인치짜리가 있어? 펑고 배트 아니야?”

    “저기 있잖아. 하, 고놈. 긴 거로 배팅하면 배트가 퍼져 나올 만도 한데, 몸에 딱 붙어서 나오네. 거참…….”

    ‘신난다. 너무 신난다. 계속해서 닭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 때리다가 넓은 운동장에 나와서 펑펑 때리니까 기분이 너무 좋다.’

    “감독님, 저 정도면 라인업에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기하는 거 보면서 결정합시다.”

    * * *

    시범 경기.

    정규 시즌을 시작하기 전 각 팀의 최종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 중계방송 등도 한 해 알찬 시즌을 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실전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 2026시즌이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시즌도 10개 구단 모두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중 가장 관심이 가는 두 팀이 시범 경기 첫 경기에서 만났습니다. 대구 울브스와 서울 랩터스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 울브스, 지난 시즌 2위죠. 구단에서 아주 안타까워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외국인 선수를 잘 데려왔어요. 오늘 선발로 나오는 고메스 선수.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있던 선수예요. 아주 많이 기대됩니다.

    - 그에 반해 랩터스는 전력이 약화됐다는 평이 있습니다.

    - 랩터스는 올해도 전체 연봉 총액을 줄였죠. 고액 FA 선수가 많은 랩터스가 자 팀 FA도 안 잡으면서 연봉 총액을 줄였어요. 덕분에 4년 만에 사치세 기준액 밑으로 떨어뜨렸는데요. 대신에 그만큼 팀 전력도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어요.

    - 이번 시즌 랩터스의 순위가 떨어질까요?

    - 지난 시즌 간신히 가을 야구를 했는데 올해는 객관적으로 팀 전력은 하위권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라인업이 발표되고 선수들이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시범 경기긴 하지만 저 정신 나간 라인업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나마 나는 2루수로 9번에 들어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 대구에서 랩터스의 1회 초 공격이 시작됩니다. 시범 경기라서 그런지 신임 감독인 김민중 감독이 파격적인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1번 타자 조영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프로 야구 7관왕 출신에 그동안 랩터스에서 뛰면서 세이버 메트릭스가 뭔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힌 신임 감독이 평소 본인이 얘기하던 ‘잘 치는 놈이 1번’을 실제로 구현하였다.

    팀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대표에서 4번 아니면 쳐본 적이 없는 조영근을 1번에 넣고는 주루니, 작전이니 다 필요 없이 출루율이 최고라는 말을 남기면서 경기가 시작된다.

    - 스트라이크 아웃. 고메즈 시범 경기 첫 경기부터 무시무시한 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쉽지 않겠어요. 저 정도면 우리나라 타자들 쉽지 않아요.

    출루율이니 뭐니 다 필요 없다. 투수가 3월부터 140 후반을 던져대면 타자들이 건드릴 수가 없다.

    - 삼자범퇴. 삼진 두 개를 잡고 내려가는 고메즈. 울브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됩니다. 랩터스의 선발 투수. 제이콥 선수 올라옵니다.

    - 이 선수, 메이저 경력은 없는 선수죠. 경력 대부분을 트리플도 아니고 더블A에서 기록했어요. 자료가 많지 않아요. 구단에서는 맞춰 잡는 유형의 선수라고 했거든요. 저도 처음이라 궁금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번 시즌 전력이 별로다. 아무리 시범 경기라지만 우리 팀 최고라는 조영근도 나이 먹어서 그런지 스윙이 공을 못 따라가고 있고, 팀에 지명 타자할 선수들은 많고 수비 들어갈 만한 선수는 안 보인다.

    자주 겪어 보던 상황이라 익숙하긴 한데 기분은 영 별로다.

    - 제이콥 선수, 첫 타자부터 어렵게 가네요. 선두 타자 볼넷으로 걸어 나갑니다.

    미치겠다. 저 투수 놈. 시작부터 볼질이다. 영점이 전혀 안 잡힌다. 쟤가 우리 팀 1선발인데……. 머리 아프다.

    - 연속 타자 볼넷. 시범 경기지만 제구가 전혀 안 되는 모습입니다.

    음… 쟤가 집에 돌아가는 게 빠를까. 내가 홈런을 치는 게 빠를까. 나와의 내기를 걸어보자. 쟤가 집에 가는 게 빠르다는 것에 치킨 한 마리.

    - 볼넷. 세 타자 연속 볼넷입니다. 안 좋은데요. 시범 경기지만 안 좋습니다.

    저눔 시키. 땅볼 투수라고 그랬는데 땅볼은커녕 타자의 배트에 맞지도 않는다. 누가 저걸 뽑아온 거야?

    - 울브스 1회에 5점을 뽑으며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시범 경기지만 타자들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 시범 경기라도 승부는 승부거든요. 이기고 들어가는 게 시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1회부터 터졌다. 차라리 잘됐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좋네! 좋아.

    - 3회 초 투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소전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코어 0 대 9. 어차피 나는 내 것만 하면 되니까 마음은 더 편하다. 편하게 하고 오자 편하게.

    - 김소전 선수. 스프링 캠프에 참가를 안 했습니다.

    - 랩터스에 물어보니 따로 과외를 받았다고 하거든요. 얼마나 바뀌었는지 기대가 됩니다.

    “어이, 배트가 너무 긴 거 아니야? 맞겠어. 앞으로 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 닿게 조심하겠습니다.”

    타석에 들어서면서 배트를 두어 번 돌리자 포수가 시비를 건다. 남들보다 2인치. 대충 5㎝쯤 긴 건데. 까탈스럽긴.

    초구. 울브스의 우투수가 팔을 높게 들면서 공을 아래로 내리꽂는다.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한 투구.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낮은 쪽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맹렬히 달려든다.

    쾅!

    - 김소전, 쳤습니다. 쭉쭉 뻗어 나가는 공. 야수들 공을 향해 달려갈 생각조차 안 합니다. 울브스파크 장외로 넘어가는 공.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 주는 김소전 선수입니다.

    - 지금 151㎞짜리 직구였거든요. 그걸 힘 안 들이고 때려서 큰 타구를 만들어내네요. 무시무시합니다.

    어휴, XX. 내가 치고 내가 놀랐네.

    이번 시즌 공이 탱탱볼인가. 뭔 타구가 저렇게 넘어가?

    이번 시즌 홈런 40개 치면 홍시 누나가 선물 또 해준다고 했는데, 시범 경기도 포함인가? 이따 누나한테 전화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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