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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18화 (18/204)
  • 18화. 인터뷰

    * * *

    감독이 심판과 쌈박질을 하면서도 우여곡절 끝에 비디오 판독에 들어간다.

    판독 시간을 꽉꽉 채우고 나온 결과는 아웃. 원심 유지.

    - 아웃입니다. 주자 2루에서 아웃. 공수 교대됩니다.

    - 2루수가 베이스를 전부 막지 않고 조금 열어 줬다고 본 거거든요. 아웃은 됐어도 위험한 플레이였어요. 서로 조심해야 해요.

    ‘이게 아웃이라고? 미치겠네.’

    비디오 판독 결과가 나오고 감독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항의를 이어 나간다. 감독 퇴장.

    비디오 판독에 항의하면 무조건 퇴장이니 감독이 항의를 끝내고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왜 나만 나오면 경기가 이러냐. 나 이렇게 존재감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피가 나는 정강이에 붕대를 감아준 트레이너에게 헬멧과 보호 장구를 건네주고는 글러브와 모자를 기다렸다.

    손목도 좀 시큰거리는 기분이 들지만 이 정도 아프다고 경기에서 빠질 수는 없고, 이 경기를 어찌 이겨야 할지 그것만 머리에 가득하다.

    랩터스의 수비수들이 그라운드에 올라오는데 중견수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2루수도 있고 3루수도 있는데 왜 네가 그걸 가져와.

    중견수 최강훈이 내게 다가와 웃는 얼굴로 글러브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무 말 안 하기도 뭐 하니 인사치레를 했는데, 웃는 얼굴이 내 귓가로 다가온다.

    “걸리적거리니까 나대지 말라고.”

    ‘얘는 왜 자꾸 나한테 이 지랄일까.’

    정색을 하고 바라보자 특유의 느글거리게 웃는 얼굴을 하고는 외야로 뛰어간다. 내 야구 하기도 바쁜데 자꾸 건드리니까 신경 쓰이네.

    스코어 1 대 0, 3회 말 재규어스의 공격. 7번 타자가 선두 타자로 나오자 마운드에 올라와 있는 랩터스의 선발 투수가 편안하게 자세를 잡는다.

    포수와의 간단한 사인 교환. 사인을 보기나 한 건지 투수가 바로 자세를 잡고 투구 동작에 들어간다.

    빡!

    - 전승민. 어깨에 맞았습니다.

    - 아, 양 팀 선수들 뛰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면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 이건 아니거든요. 이시윤 선수, 의도가 있었어요. 이러면 안 돼요.

    - 선수들 흥분했습니다. 마운드에 선수들이 모였습니다.

    - 진정해야 해요. 관중들이 보고 있거든요. 어린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이러면 안 돼요.

    투수의 팔 회전이 이상하다. 이건, XX. 느낌이 딱 왔다. 벤치에서 시킨 거 같지도 않은데.

    빡!

    아무리 봐도 상대 타자 머리를 노리고 던진 거 같은데, 저기다 던져 본 적이 얼마 없어서 그런가 타자 어깨를 맞힌다.

    쓰러진 타자. 1루 쪽에서 재규어스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벤치 클리어링.

    이럴 때 외야수여야 선수들이 엮여 있을 때 천천히 들어가면서 뒤에서 친목질이나 하는 게 개꿀인데. 지금 내야에 있기도 하고 이 사건의 발단이 나부터 시작된 거기도 하니 숨어 있기도 좀 그렇다.

    ‘난 괜찮은데, 왜 사람한테 공을 던지고 그래.’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하면 보통은 덩치가 큰 1루수가 투수 앞을 막아서면서 타자로부터 보호해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타자가 쓰러져 있으니 1루수가 덕아웃에서 나오는 상대 선수들을 일당백으로 막아섰다.

    우리 쪽 선수들이 달려오는 걸 확인하고는 내가 먼저 마운드로 올라가 투수 옆에 섰다. 한국에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선후밴데 벤치 클리어링 일어난다고 주먹다짐하는 것도 아니고, 생색은 내야지.

    “비켜, 종이 인형.”

    “투수는 지켜야지요.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타자를 지키는 건 투수다. 종이 인형 따위한테 보호받을 거면 죽어야지. 비켜.”

    이놈이 원래 자기애가 강해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식할 줄이야. 투수는 다치면 안 된다고, 멍청아.

    얼마 지나지 않아 양 팀 선수들이 마운드에 모였다. 최전방에서 만난 양 팀 주장들. 서로 간의 설전이 오간다.

    “XXX. 야구 X같이 할래? XXXX!”

    “적당히 하고 들어가세요. 여기까지만 할 거니까!”

    “뭐 XX야. 적당히? 빈 볼을 던지고 그게 할 소리냐!”

    “그러면 다음엔 대성이 허벅지를 찍어드릴까요? 선배가 수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어요?”

    “야! 말 다했어! 죽고 싶어!”

    “알았으니까 들어가세요. 여기까지 합시다.”

    주장치고는 어린 랩터스의 라정안이 한마디를 안 지고 꼬박꼬박 대들자 재규어스의 주장이 성질을 내기 시작한다.

    “꼴찌 하던 XX들이 요즘 성적 좀 난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이 XX들 제대로 된 선배가 없으니까 너희가 이 모양인 거 아니야? 라정안 너도 시골이지? 어디 근본도 없는 XX들이 야구를 해가지고!”

    심판이 중간에 끼어들어 떼어놓으려고 해도 역부족일 그때, 주장들 뒤로 큰 그림자가 나타난다.

    “박일권. 넌 어디 출신이길래 말이 그따위야? 하준이가 그따위로 하고 살아도 그냥 두냐? 선하준! 선하준이 어디 갔어. 너 이리 안 와?”

    “아, 영근이 형. 왜 형이 애들 싸움에 왜 끼어들어요?”

    “애들 관리 안 하냐. 내가 외야에서 여기까지 와야겠냐?”

    “영근이 형. 맞추면 좀 사과도 하고 해야지, 얘들 봐요. 이게 맞추고 할 짓이에요?”

    “너흰 어린애 맞추고 스파이크로 찍어놓고 사과는 했고? 내가 가만있으니까 선배들이 다 우습지? 경기 끝나고 집합해.”

    “무슨 집합을 해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집합을 걸어요.”

    “개기냐? 이제 머리 컸다고 개기는 거지?”

    재규어스의 고참급인 선하준과 같은 학교 한 학년 선배인 조영근이 나서서 갈구자 정리가 된다.

    “아, 진짜. 다들 들어가. 정리하고 들어가. 저 형까지 미치면 감당 안 된다. 이쯤 했으면 됐다. 들어가자.”

    양 팀의 최고 고참급들이 몰려나왔던 선수들을 되돌려 보내자 선수들 가운데서 존재감 없던 심판의 모습이 보인다.

    “투수 퇴장!”

    벤치 클리어링까지 만들어낸 투수가 아무 말 없이 마운드를 내려온다. 1 대 0의 팽팽한 투수전에서 3회에 에이스를 내린 랩터스 무게추가 재규어스로 확 기운다.

    - 이시윤 선수, 오늘 잘 던지고 있었는데 마운드를 내려가고 김지명 선수 올라왔습니다.

    - 갑자기 올라와서 몸이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이시윤이 보복구를 던지는 순간부터 준비했지만 아직은 몸이 좀 덜 풀린 김지명이 계속해서 어깨를 풀면서 밸런스를 잡아본다.

    주자 1루에 두고 올라온 구원 투수가 조심스럽게 공을 던져 보지만 좀처럼 제구가 잡히지 않는다.

    - 볼. 김지명 선수 공 두 개가 많이 빠졌습니다. 몸이 덜 풀린 것 같습니다.

    - 제구가 좋은 선수거든요. 우선 스트라이크 하나 던져 보면서 감을 잡았으면 좋겠어요.

    투수가 포수가 원하는 대로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 밸런스가 잘 잡히지 않는 듯 마운드에서 불편한 모습을 표현한다.

    ‘집중해야겠는걸.’

    더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 배터리가 떠밀리듯 공을 한복판에 밀어 넣는다.

    딱!

    우타자가 잡아당긴 공이 유격수 옆으로 총알같이 날아온다.

    빠르다. 빠르긴 하지만 주자랑 타자 모두 발이 느리니 조금 깊게 잡아놓은 수비 위치. 두 발을 떼고 몸을 날렸다.

    턱!

    걸렸다. 글러브에 공이 확실히 들어왔다. 잔디 위에서 몸을 돌려 일어나면서 글러브 안의 공을 오른손으로 넘긴다. 들어오는 2루수를 향해 가슴 높이로 송구. 그다음은 민수경 선배가 할 일이다.

    - 쳤습니다. 김소전. 6-4-3. 6-4-3으로 이뤄지는 더블 플레이. 멋진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잘 치고 잘 잡았습니다. 빠진다고 봤거든요. 김소전 선수 수비 범위가 굉장히 넓네요. 2루로 연결하는 동작도 완벽했습니다. 군더더기가 없네요. 랩터스에 좋은 신인이 나타났어요.

    나이가 어려져서 그런 건지, 2군에서 구른 게 효과가 있는지 실전에서 반응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진 기분이다. 공을 따라가는 동체 시력도 더 좋아진 것 같고. 이 정도면 우리 팀 주전 유격수 박재호랑도 해볼 만할 것 같은데.

    다음 타자가 평범한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가고 이닝이 교대된다.

    아웃 잡은 공을 재규어스 3루 코치에게 전해 주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데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투수 김지명 선배가 기다렸다가 내 엉덩이를 툭 쳐준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얻어맞은 나를 위해 보복구를 던져준 선발 투수, 나 때문에 일어난 벤치 클리어링에 외야에서부터 뛰어와 사태를 정리시켜준 최고참 좌익수. 파인 플레이에 기다렸다 칭찬해 주는 중간 계투.

    항상 팔려 다니느라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으로만 친한 척하면서 살아왔는데 여기는 하루하루 몸은 힘든데 마음이 점점 포근해진다.

    점점 이 팀에 진심이 돼가는 듯하다.

    “아이고, 목이야. 김소전 물 좀 가져와 봐. 너 때문에 내가 여기저기 입 털고 다니느라 목이 다 아프다. 잘 좀 하자, 후배님.”

    ‘저… 저 XXX만 빼고.’

    내가 어이가 없어 물을 떠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다음 타석을 준비하려고 구석에서 몸을 숙이고 장비를 착용하던 주장이 내 쪽을 바라본다.

    “최강훈.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나한테 거만한 목소리로 떠들던 최강훈이 주장이 거기 있던 걸 몰랐다는 듯이 흠칫 놀란다.

    살짝 구겨졌던 얼굴을 금세 웃는 얼굴로 바꾼 최강훈이 주장에게 살가운 목소리로 애교를 떤다.

    “농담입니다, 농담. 우리 친해서 장난 좀 쳤습니다. 그렇지 소전아? 우리 2군에서부터 친해서 그렇잖아.”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혓바닥을 놀리냐.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아.’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사이 타석에 나가야 하는 주장이 최강훈에게 확실하게 경고를 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최강훈. 내가 너 보고 있다. 귀에 자꾸 얘기가 들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조심해.”

    “선배님, 잘하겠습니다.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쓰레기의 호언장담에 그라운드로 올라가려던 주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매섭게 노려본다.

    주장의 눈빛에 급히 몸이 움츠러든 쓰레기가 연신 고개를 꾸벅이자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주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놀린다.

    “뭘 보고 서 있어. 꺼져.”

    ‘아이고, 머리야. 이 XX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오늘 나한테 홈런 한 방을 맞고는 완벽한 투구를 보여준 재규어스의 고병석이 5회까지 전력투구를 하고는 일찍 마운드를 내려간다. 랩터스도 산발적인 안타를 맞긴 했지만 꾸역꾸역 무실점 경기를 이어 간다.

    전혀 다른 의미의 팽팽한 투수전. 양 팀이 벤치클리어링을 벌일 만큼 치열한 경기지만 내용 자체는 지루하다.

    6회 말, 세 번째 타석. 고병석이 내려가고 나온 중간계투를 상대로는 타이밍이 안 맞는다. 여신의 버프는 고병석한테만 가능했던 듯 바뀐 타격 폼으로 상대의 변화구까지는 전혀 대응이 안 된다.

    - 김소전, 삼진. 떨어지는 공에 허공을 가르고 맙니다.

    - 직구에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변화구 대처는 아쉽네요.

    6회에 이어 9회 또다시 타석에 들어섰지만 상대 커브에 시원한 선풍기를 돌리고는 삼진.

    내가 강하게 때리지를 못해서 그렇지 컨택 하나는 어디 가서 빠지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바뀐 타격 폼으로는 도저히 직구를 기다리다 떨어지는 공에 타이밍을 맞추질 못하겠다.

    ‘예전에 선배들 얘기하던 게 이제 이해가 좀 되네. 실전 들어가면 연습 때처럼 변화구 못 친다고 한 게 내 얘기가 될 줄은 진짜 몰랐어.’

    내가 타석에서 헤매는 것과는 상관없이 랩터스의 벌 때 불펜이 안타를 8개나 맞으면서도 1회 초 선두 타자 홈런을 끝까지 지켜내며 1 대 0 승리를 가져온다.

    6회 재규어스와 승차를 2경기로 벌리며 5위 사수. 어찌 됐던 이기니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팀 승리에 일조했다는 뿌듯한 기분에 장비를 챙기고 있는데 매니저가 나를 찾는다.

    “김소전 준비해. 수훈 선수 인터뷰다.”

    “네? 뭐요?”

    “몰라? 수훈 선수 인터뷰? 경기 끝나고 하잖아. TV 안 봤어?”

    ‘봤지. 봤는데 내가 전생에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어서 와. 방송국 놈들 기다리는 거 제일 싫어해.”

    ‘자, 잠깐만요. 나 메이크업이라도 시켜주고. 조명, 조명도 좀…….’

    - 김소전 선수 나와 있습니다. 오늘 1회 초 선두 타자 홈런이 결승 타점이 되었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감.사.합.니.다.”

    ‘헤드셋이 고장 났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톡.톡. 여보세요? 톡.톡. 여보세요?’

    - 하하. 김소전 선수 인터뷰가 처음이라 많이 떨리시나 봅니다. 신인인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1군에서 홈런을 치고 2군으로 내려가 준비 기간이 길었는데요. 2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훈.련.열.심.히.했.습.니.다.”

    ‘헤드셋이 고장 났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톡.톡. 여보세요? 톡.톡. 이게 들리다 안 들리다 하네.’

    - 하하. 훈.련. 열심히 하셨겠죠. 하하. 위원님 질문 없으십니까?

    - 김소전 선수. 시즌 초와 타격 폼이 바꿨어요. 바꾼 이유가 있어요?

    “손목으로 컨택 위주의 타격을 하다가 몸을 이용해서 장타를 늘리라고 감독님이 명령하셔서 바꾸게 됐습니다. 안 바꾸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킨다고 하셔서 바꿨습니다.”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하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매니저 얼굴이 사색이 돼서 팔로 엑스 자를 만들고 있다.

    ‘응? 왜요? 매니저 형, 저 뭐 잘못했어요?’

    - 하하. 양상도 감독님이 김소전 선수 2군 보내시면서 싸울 준비를 하라고 하신 게 이런 의미셨군요. 하하!

    ‘아니, 방송국 아나운서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리지. 어디 안 좋으신가?’

    “아니요. 양상도 감독님은 1군 와서도 저한테 별말 없으시고 2군 김민중 감독님이 안타는 쓰레기라고 하시면서 똑딱질할 거면 팔아버리겠다고 하셔서 타격 폼 바꾸게 됐습니다.”

    - 김민중 감독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네요. 안타는 쓰레기……. 이거 방송에 나가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희 PD 웃었다 울었다 하고 있어서 인터뷰 더 길게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한 말씀 하시죠.

    “엄마! 나 TV 나왔어!”

    내 앞에 있던 매니저가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보면서 내 첫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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