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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15화 (15/204)
  • 15화. 개조

    * * *

    잠실야구장 앞 조용한 커피숍. 검은 복장의 남녀가 으슥한 구석 자리에 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한병원 VVIP 특실 하나 내줘요.”

    “그게 내 거야?”

    “생색 좀 내게 내줘요.”

    “누군데? 남자야?”

    “남자면 내주고 여자면 안 내주게?”

    “아니지. 예쁜 여자면 내주고 남자면 안 내주지.”

    “여자. 그냥 평범한 동네 아줌마.”

    “왜? 조 단장 아파? 건강 검진 안 했어? 아닌데. 조 단장 지난번 건강 검진 결과에 스트레스가 높고 밤에 술 먹어서 체지방이 늘어나는 거 말고는 특별한 거 없던데?”

    “너 내 건강 검진 결과도 훔쳐봤냐?”

    “훔쳐보다니, 병원 잘 운영하나 몰래 들어가서 보다가 있으니까 봤지.”

    “XXX. 이번엔 내가 너 고소한다!”

    조용한 커피숍이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남녀의 싸움은 주변이 웅성거리자 금세 정리가 된다.

    “아줌마라고 한 건 사과해요.”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아줌마지.”

    앞에 있는 서른 넘은 여자가 주먹을 불끈 쥐자 배 나온 중년의 남자가 꼬리를 내린다.

    “미안. 사과. 됐지?”

    남자의 정중한 사과에 서른 넘은 아줌마가 이마에 손을 대며 어지러워한다.

    사과를 받고 정신을 차린 여자가 남자의 과오를 용서하고 본론에 들어갔다.

    “정리하면 드래곤스에서 34살짜리 출루율 3할 5푼에 장타율 3할 5푼, OPS 0.7짜리 중견수를 데려오겠다고 유망주를 팔아? 그중에서도 안영진을 팔고 김소전을 남기겠다? 드래곤스에서 최강훈은 안 받는다, 이런 거야?”

    “네.”

    마음에 안 드는지 구단주가 쉽사리 동의를 하지 않는다.

    “꼭 34살짜리 OPS 0.7짜리를 유망주 줘가면서 사와야겠어?”

    “안영진이 OPS가 0.56이고 최강훈 OPS가 0.58입니다. 쉬어 가는 수준이 아니라 푹 주무시고 가셔도 되는 타격이에요.”

    단장의 트레이드 브리핑을 듣던 구단주의 심기가 불편해져 얼굴을 찡그린다.

    “단장이 시즌 전부터 잘 준비했어야지. 플랜 B도 없이 이게 뭐야?”

    구단주의 불호령에 단장이 예쁜 얼굴을 확 구긴다. 그러더니 태블릿을 꺼내 낙서를 시작한다.

    “자, 봐봐요. 이번 시즌 중견수 너님이 너님 친구한테 속아서 데려온 해리스. 내가 얘 중견수 수비 안된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얘 타격도 안되는데 수비는커녕 주루도 안되지.”

    단장이 태블릿 화면을 마구 넘긴다.

    “이건 박동수 등록 일지! 박동수 부상으로 엔트리 나갔다 들어왔다만 반복하고 있지. 그러면 임선엽이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얘는 코너 백업 뛰기도 버겁지.”

    단장의 태블릿 화면이 연신 다른 선수 데이터를 띄운다.

    “남은 게 안영진이였는데 얘 올해 백업으로 준비하다 주전 들어가더니 멘탈 완전 나갔어.”

    계속해서 넘어가는 태블릿 화면.

    “그래서 2군에서 김소전이 불러왔더니 얘는 감독한테 찍혀. 최강훈이 올렸더니 얘는 3년 차가 야구는 드럽게 못하는데 겉멋만 들어서 잘하는 척만 하지. 그렇다고 성적 포기하고 탱킹할까? 엉?”

    단장의 호통에 과로하던 태블릿이 버벅거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내가 팀 꾸릴 수 있게 만들어나 주고 시즌 시작했냐고! 네가 다 팀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나한테 던진 거잖아! 그래! 안 그래!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단장의 속사포 랩이 쏟아지는데도 그걸 자장가로 듣는 구단주가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일말의 동요도 안 한다.

    “그거 하라고 연봉 주잖아. 위에서 까라면 깔 것이지. 말은…….”

    “야! 너 말 다했어? 내 연봉 말고 팀 페이롤도 다 깎아 놓고 비밀번호는 찍지 말라며! 그게 말이 돼! 너는 돈 지랄로 성적 내고 후임은 잡초 하나 없는 황무지에서 성적을 무슨 수로 내냐고! 그러니까 내가 유망주 팔아서 가을 야구라도 가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커피숍에서 자꾸 큰소리가 나니까 알바가 슬슬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하이톤의 랩을 쏟아내던 단장도 주변의 시선을 느끼더니 한 톤 낮추고 차분해진다.

    “그래서 그래요. 가을 야구 가려고. 안영진이라도 팔아야죠.”

    “최강훈이 안영진보다 두 살 더 어린 데도 싫대?”

    “둘 다 안 터진 거며 차라리 2군에서 보여준 거라도 있는 안영진이 낫답니다.”

    “그런데 김소전은 왜 나와?”

    “그게……. 드래곤스는 외야수보다 대주자가 필요한데 김소전 주루가 인상 깊었나 봐요. 발은 빨라도 주루 센스가 떨어지는 최강훈보다, 좀 느려 보여도 확률 높은 김소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 긴데…….”

    단장이 그간의 2군에서 김소전의 행적에 대해서 태블릿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소상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 옷……. 저거 꼭 저렇게 입어야 해? 보통은 위에 반바지 덧입지 않아?”

    “그러게요. 반바지도 사줬는데 저것만 가져갔다더라고요. 얼굴도 내가 아는 변태 같은 사람이랑 비슷한데, 취향도 비슷한가 봐요.”

    선수의 옷차림을 놓고 이야기를 하던 단장이 구단주를 빤히 바라본다.

    영문을 모르는 구단주는 눈만 깜빡이면서 눈으로 누군지를 물어본다.

    눈으로 ‘너’라고 대답을 하는 단장과 눈으로 욕을 하는 구단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동안에 태블릿에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헐… 저렇게 무식하게 애 팔을 꺾었다고?”

    “그러니까요. 내가 저거 보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그래도 크게는 안 다쳤나 보네?”

    “유연성이 사람이 아니에요. 저놈 어지간해서 다칠 몸이 아니에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왜 다친 거야?”

    “고2가 150을 넘게 던지는 거에 대해 어찌 생각해요?”

    “미친놈이지.”

    “1회에서 9회를 150으로 3경기를 완투했어요. 그리고 안 알려져서 그렇지, 대회 들어가기 전에 7경기 연속으로 완투를 했고요. 안 다치면 사람이 아니지.”

    “아… 그랬지. 그래서 내가 반했지.”

    “그러니까 병실 내줘요.”

    “조수아 단장의 선택은 김소전이다?”

    “노력은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재능은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요.”

    “저놈은 노력도 상급이지. 최상급 재능이야.”

    * * *

    이 팀은 미친 게 맞다.

    산적이 엄마를 책임지겠다고 하더니 호텔 방 같은 병실에 모셔가서 의사들이 검진을 했다. 3박 4일에 걸친 종합 검진.

    지금까지 받아 왔던 결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검사 결과를 받았지만 선수가 아닌 우리 엄마까지 챙겨 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지금껏 나도 딱히 특별 대우를 받아본 적도 없지만 우리 엄마까지 생각해 준 팀은 한 번도 없었는데……. 프로는 받은 만큼 일하는 건데……. 우리 엄마…….

    나 이 팀에 뼈를 묻는다.

    산적과의 상담 후 2군 감독과 면담이 잡혔다.

    2군 감독 김민중. 통산 홈런 400개에 타격 7관왕을 했던 랩터스의 전설. 타격에 있어서만큼은 한국 야구 역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과 마주앉았다.

    “어때? 어머님은 괜찮으시고?”

    “네. 구단에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선수 부모님이면 구단이 챙겨야지. 나중에 단장님 보면 감사하다고 인사 한번 해. 신경 많이 쓰셨더라.”

    “예, 꼭 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서로 웃는 낯으로 얘기가 진행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 얘기해야지?”

    사냥감을 노려보는 맹수. 그거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나를 짓누른다.

    “여기 있는 코치들 통해서 이미 들었겠지만 구단에서는 네가 좀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네가 동의했다시피 우리는 선수의 한계를 넘어서게끔 도와주려고 하고 있고. 내 말 맞지?”

    “네, 맞습니다.”

    맹수가 잡아먹기 전 사냥감에게 어떻게 잡아먹힐 건지 묻는다.

    “우리 전력 분석팀에서는 김소전 선수를 윌리 메이스나 리키 헨더슨 같은 선수로 키우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나나 코칭 스텝들은 40-40하는 알폰소 소리아노가 될 거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자네는 어때?”

    날이 더워서 그런가 이 아저씨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윌리 메이스? 소리아노? 미친 거 아니야?

    “제가 열심히 하긴 하겠지만 홈런 칠 수 있는 체형도 아니고 몸이 불면 제 장점인 수비가 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몬스처럼 편안한 내야수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 꿈은 크게 가지랬다고, 건방지지만 현대 야구 최고의 수비수인 침대신을 목표로 삼았다.

    내 타격 능력치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법. 내 장점인 수비를 최대로 극대화시키고 송구 능력을 더 살려서 강한 어깨의… 아니, 중간 어깨의 유격수만 될 수 있다면…….

    “하하. 이놈! 어디 그런 3할도 못 치는 쓰레기를 기준으로 삼아! 타자란 말이지, 매일 안타 하나씩만 치고 하루 이틀 안타 두어 개씩 몰아치면 3할인데 그것도 못하는 선수를 기준으로 삼다니!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거야!”

    뭐? 안타 두어 개? 미쳤나?

    “홈런이 부담스러우면 소소하게 이치로 같은 똑딱이라도 될 생각을 해야지.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누구? 누구요? 이치로? 안타를 260개씩 때린다는 그 이치로를 얘기하는 건 아니죠?

    본인이 타격 7관왕 했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시면 안 되지 않나요?

    “자, 그럼 결정하자. 시몬스 같은 수비에 트라웃 같은 공격. 그 정도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아? 자, 결정됐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코치들 스케줄 짜주고 관리합시다. 이상. 회의 끝.”

    저, 감독님. 어디가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으신데요?

    시몬스 수비에 누구요? 트라웃? 그게 사람인가요? 그런 선수가 뛰면 반칙으로 몰수패 시켜야 한다고요.

    * * *

    이 팀에 와서 계속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가 기회가 있을 때 탈출을 했어야 한다는 거다. 정에 이끌려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못 해서 탈출하지 못하고 눌러앉으면 바로 이런 꼴을 당한다.

    “김소전. 누가 밥을 씹어서 먹어? 삼켜. 정 질기면 두 번만 씹고 삼켜야지.”

    “너 한약 먹었냐? 먹었다고? 안 먹은 거 같은데? 하나 더 먹어. 두 번 먹어!”

    “뭐? 토해? 먹을 걸 토하면 어째! 자 토한 만큼 가서 고기 더 가져와. 밥 먹으면 한약 먹어야지. 한약도 하나 더 가져오고.”

    “먹었으면 자야지. 눈 감아. 어? 소화? 소화를 왜 시켜? 먹고 자.”

    살이 안 빠지는 사람들은 그래도 안 먹으면 빠지지만 체질적으로 살이 안 찌는 사람이 살찌우는 거는 정말 죽을 듯한 고통이 따른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토하고 또 먹고……. 속이 부대껴서 죽을 것 같은데 점심 먹고 1시간은 꼭 자야 하고…….

    “김소전! 살이 안 붙으면 근육을 붙여야 한다고 몇 번 얘기하냐? 내가 잘 때마다 이소룡 형님 광배 보라고 얘기 안 하냐? 저기 어디 지방이 있냐? 덩어리가 작으면 저렇게 붙이면 된다!”

    “아파? 원래 근육이 찢어지면 아픈 거야! 찢어진 근육이 회복하면서 커지는 거라고!”

    “뭐? 죽을 거 같아? 안 죽어! 그거 들고 죽으면 역도 선수들은 죄다 귀신이냐?”

    어떤 XXX가 3대 500을 못 치면 옷도 못 입게 했는지 매일같이 바벨에 5킬로짜리 무게가 늘어난다.

    “자, 이제 타격하자.”

    남들 야구공 잡고 뛰고 훈련할 때 기구만 잡고 낑낑대다 다들 정리하고 들어갈 무렵부터 내 과외 수업이 펼쳐진다.

    “타격을 누구한테 배운 거야? 팔로 스로를 끝까지 가져 가야지.”

    “배트가 늦게 나오잖아. 공을 끝까지 보는 건 좋은데 앞에 놓고 때려야지, 앞에. 타이밍이 너무 뒤야.”

    “아니지. 배트가 퍼져 나오잖아. 타이밍도 늦고 배트도 퍼져 나오고.”

    “프로 와서 타격 폼 바꿨다면서? 그런 습관은 어디서 생긴 건데? 다시! 매니저! 여기 한 박스 더 가져와 봐.”

    끝도 없다, 끝도 없어. 내가 14년을 해온 타격 폼을 버리고 새로 만드는 작업. 난 진짜 욕심 없이 내야만 벗어나는 타격이면 만족하는데 저 코치 놈들은 자꾸 담장을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점점 힘이 붙으니까 맞기만 하면 비거리가 늘긴 느는데, 우선 맞춰야지. 14년을 배트 반절만 잡고 때리다가 풀스윙으로 공을 맞히려니 도무지……. 눈물만 난다.

    “아프냐?”

    “으……. 아프다.”

    오늘도 피가 떡이 돼 붙은 장갑을 떼려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내가 먹다 남긴 거 몰래몰래 먹어주는 수영이가 걱정을 해준다.

    “코치님들도 독하다. 그러다 손바닥 남아 나지가 않겠다. 나한테 그렇게 시키면… 어휴……. 난 도망간다.”

    “그럴까? 도망갈까? 이대로면 야구로 성공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진, 진짜? 그렇게 힘드냐?”

    “어… 힘들어…….”

    진짜 힘들다. 너무 힘들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운동해 본 적이 없는데.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군대 유격보다 더 힘들고 산악구보보다 더 지친다.

    그냥 연봉 3천만 받고 살 것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딴 짓을…….

    손바닥을 보면서 눈물이 뚝 떨어지려는데.

    “김소전. 짐 싸라. 대전 간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매니저가 뜬금없이 짐을 싸란다.

    “저, 형……. 대전이요? 저… 혹시. 설마 트레이드?”

    짐 싸란 소리에 자동 반응을 한다. 인천 가는 건 한번 넘어갔는데 결국 대전으로 팔려 가는 건가…….

    “무슨 소리야. 내일부터 확장 엔트리잖아. 2군에서 너 추천했어. 이번엔 올라가서 끝날 때까지 버티고 내려오지 마. 여기서 너 구르는 거, 보기만 해도 징그럽다.”

    “예, 형. 이번엔 시즌 끝까지 꼭 붙어 있을게요.”

    이번엔 안 내려온다. 내 손바닥이 또 이 꼴 되는 거 무서워서라도 1군에 붙어서 안 내려올 거다. 1군 귀신이 될 때까지 안 내려온다. 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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