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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7화 (7/204)
  • 7화. 할 수 없는 플레이

    * * *

    13 대 13 무사 주자 2루.

    뜬금없이 들어온 신인의 주루 플레이로 역전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들어간다.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오르는 포수. 엘리펀트의 벤치에서도 투수 코치가 올라온다.

    “안녕하십니까.”

    데뷔전에 2루를 밟은 신인 선수가 상대 팀 2루수와 유격수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상대 2루수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는데 유격수가 쓱 하고 뒤로 다가온다.

    “어디 출신이냐? 처음 보는데?”

    “신인입니다. 백두고 졸업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첫 경기인데 인사성은 있다고 얘기 들어야지. 처음부터 싸가지 없다고 소문나면 고달프다.

    “백두고? 새로 생겼다는 백두고? 작년, 재작년 빤짝했다더니 벌써 프로도 배출하고, 대단하네.”

    반짝이라니요! 전국 대회 우승했다고요. 우승!

    뽀록이긴 했지만……. 그리고 프로도… 제가 처음입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네가 그래서 야구를 X같이 하는구나. 조심해라, 야구 그렇게 하면 다친다.”

    내가 야구를 X같이 한다고? 내가 뭘 했다고 시비야!

    가슴 속에서 욱하는 게 치밀어 오르려는데 경기장이 정리되고 마운드에 코치와 포수가 내려간다.

    경기에 집중할 시간. 2루 베이스에 붙어 3루 코치를 주시한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3루 코치의 사인. 적당히 하시지. 뭔 가짜를 저리 많이 섞어……. 벨트 만지고 팔꿈치……. 저거 다…….

    좌투수가 주자를 2루에 두고 포수와의 사인이 길어진다.

    좌투수 뒤에서 움직이는 주자가 슬금슬금 3루 베이스를 직선으로 두고 리드 폭을 넓혀나간다.

    초구. 투수가 투구 모션에 들어가자마자 타자가 번트자세를 취한다. 예상했다는 듯 3루수와 1루수가 앞으로 전진해 들어오고 유격수는 3루, 2루수는 1루로 달려든다.

    무조건 3루는 안 보내겠다는 압박 수비. 내 등 뒤에 유격수가 3루로 중심이 쏠리는 걸 보고 같이 스타트를 시작한다.

    내가 번트 수비를 몇 년을 했는데. 2루가 비었다 이거지?

    그러면 맘 놓고 달린다.

    몸쪽에 바짝 붙어 들어오는 공. 타자가 억지로 배트를 가져다 대보지만 배트 손목 쪽을 맞고는 뒤로 포수 뒤로 넘어가는 파울 타구가 나온다.

    ‘아… 3루까지 거의 다 왔는데. 앞으로 흘려만 줘도 사는데……. 아효, 숨차.’

    * * *

    “감독님, 보통이 아니네요. 2군에서 누가 가르쳤을까요?”

    “신인이 1군 첫 경기에 수비수가 보여? 그냥 달린 거잖아.”

    “그렇지? 아무 생각 없이 달린 거겠지? 감독님, 그럼 어쩔까요? 엘리펀트도 번트 쉽게 안 대줄 거 같은데. 잘못하다 주자 날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벤치에서 수석 코치와 타격 코치가 신인의 주루 플레이를 놓고 자기들끼리 나름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다가 다음 작전을 감독에게 묻는다.

    “그냥 가지. 한 번 더 대봐.”

    * * *

    다시 나온 보내기 번트 사인. 이제 타자가 시작부터 번트 자세를 잡고 공을 기다린다.

    2루 주자를 한참 동안 눈으로 견제하던 투수가 바깥쪽 높은 곳을 향해 빠른 공을 쏘아낸다.

    타자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밖으로 흐르는 공. 타자가 배트를 내밀어 보지만 닿지 않는다.

    투구와 함께 1루수와 3루수가 앞으로 달려든다. 아니다. 1루수만 달려든다. 앞으로 달려들려던 3루수가 두어 발만 들어오고는 전진을 멈춘다.

    그리고 2루수는 1루로, 그리고 유격수가 2루 베이스를 향해 몸을 움직인다.

    타자의 배트를 피해 멀리 도망간 공을 낚아챈 포수가 그대로 2루로 뿌린다.

    2루 베이스 위로 정확히 들어가는 송구로 베이스 근처에 흙먼지가 일어난다.

    다시 나온 번트 사인에 3루를 최단 거리로 리드를 잡았다. 나를 계속해서 노려보는 투수와 눈싸움을 하다 보니 눈이 자꾸만 찌푸려진다.

    카메라에 잘 나와야 하는데……. 웃자, 웃자…….

    포수와의 사인을 마치고 투수가 셋포지션에 들어가는데 포수의 오른발이 슬금슬금 바깥쪽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옳거니, 바깥쪽이구나.

    투구와 스킵을 크게 하면서 3루수를 확인한다. 달려들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추는 3루수.

    3루수가 자리에 멈추는 걸 확인했는데 배트에 공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쩐지 오늘의 운세에 사기꾼을 조심하라는 말이 써 있더라니…….

    타석은 바라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2루로 손부터 밀어 넣어본다. 2루로 미끄러지는 동안 위에서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

    슬라이딩하느라 가슴팍이 아파 죽겠는데 글러브로 내 머리를 내리친 유격수가 내 등으로 넘어진다.

    “세잎!”

    무슨 한국 시리즈도 아니고 야구를 이리 죽자 살자 해. 살살합시다, 살살.

    엘리펀트가 계속해서 빡빡한 수비를 걸어옴에도 정현기가 기어이 공을 1루 쪽으로 굴리는 데 성공한다.

    그사이 투수와의 치열한 눈싸움을 하면서 리드를 길게 잡고 있던 주자가 편안히 3루에 도착을 하고 다음 타자의 우익수 깊은 플라이에 홈까지 들어오면서 13 대 14, 앞서가는 점수를 만들어낸다.

    “와아아~ 신입 잘하네.”

    “고생했다.”

    “수고했어. 자! 파이팅하자, 파이팅!”

    랩터스가 승기를 잡자 시합 시작 전 축 처져 있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그래. 이래야 야구장 같지. 신난다~

    거친 숨을 고르며 슬쩍 이온음료를 마시는데 수비 코치가 날 부른다.

    “어이~ 김소전. 센터로 들어가!”

    저, 저기요……. 센터라니요? 나 뭐 포메이션 알려준 것도 없이 그냥 수비 들어가라고요?

    그것보다 나 아직 물 한 잔도 다 못 먹었는데 이닝이 끝났어? 아웃카운트 하나 남았잖아?

    * * *

    - 김정하 초구 건드려서 1루수 파울플라이로 아웃. 공수 교대됩니다. 이번 이닝 랩터스가 두 점을 뽑아내며 한 점 앞서갑니다.

    - 두 번째 점수는 김소전 선수 발로 만든 점수였습니다. 신인 선수인데 주눅 들지 않고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어요.

    - 아, 김소전 선수. 중견수로 들어갑니다. KBO에는 내야수로 등록된 선수거든요? 프로 와서 포지션이 바꿨을까요?

    - 고등학교 때는 좌익수와 2루수를 보던 선수로 기억을 합니다만, 2군 기록이 없어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프로 와서 바로 포지션 변경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 팀에서 선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변경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5월에 내야수로 등록된 선수가 중견수로 변경이라……. 그것도 신인 선수가요 이례적인 것 같긴 하네요.

    * * *

    부랴부랴 글러브를 챙겨 들고 외야로 뛰어가는데 시합 내내 중견수를 보다 졸지에 우익수로 자리를 옮긴 안영진이 옆에 붙어서 몇 가지를 통보한다.

    “신입. 좌익수에 경철이 형이 수비 범위가 좁아. 그러니까 그쪽으로 다섯 발 정도는 옮겨 놓고 있어. 그리고 우중간은 내가 커버할 테니까. 우중간 타구는 백업만 해. 괜히 동선 겹치지 말고. 타구 절대 무리하지 마. 애매하면 원바운드로 잡고 넥스트 플레이 신경 써. 그거면 돼. 안전하게. 안전하게 플레이해. 나머진 나 믿고.”

    “예, 선배님.”

    안영진이야 뭐……. 타격에 기복이 커서 그렇지 수비야 평균 이상은 하는 수비수니까. 내가 거기까지 걱정은 안 합니다요.

    좌익수 황경철이 문제지. 만세만 부르지 마라, 제발…….

    9회 초 엘리펀트의 공격. 첫 타자부터 볼넷을 골라내며 출루에 성공한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낸 역전 점순데… 저 투수 XX가 진짜…….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하자 엘리펀트도 보내기 번트를 댄다. 투수 앞에 떨어진 공을 마음이 급한 투수가 세 번을 더듬고는 넘어졌다.

    무사 주자 1, 2루. 이거… 뭔가 잘못됐다.

    마운드에 투수 코치가 올라온 사이, 덕아웃에서 수비수들을 향해 당기라는 사인이 나온다.

    한 점도 줄 수 없다는 랩터스의 굳은 의지…인 건 알겠는데……. 다음 타자 1루수 김해영인데…….

    심기일전한 투수가 3번 타자 김해영을 상대로 씩씩하게 공을 뿌린다. 김해영도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면서 침착하게 공을 커트해 낸다.

    파울라인 바깥으로 관중석을 넘어가는 큰 타구. 지금 수비 라인을 당겨놓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큰 타구를 맞은 투수가 아랑곳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운다. 포수의 도망가는 사인을 계속 거부하는 투수. 결국 포수에게 직구 사인을 끌어낸다.

    위험하다. 저 배터리, 지금 김해영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다. 포수가 미트를 타자 어깨높이에 가져다 대자 투수가 기합을 불어넣으며 148의 빠른 직구를 쏘아낸다.

    슬금슬금 앞으로 내놓았던 발을 뒤로 옮겼다. 빼려면 타자 눈앞에 던져놓거나 완전히 바깥으로 뺏어야지, 저딴 높이로는 타자에게 먹잇감이나 다름없다.

    투수의 공에 타자의 배트가 반응을 한다. 슬금슬금 움직이던 발이 본능적으로 빨라진다. 서너 발이나 뒤로 갔을까 청명한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우선 뛴다. 그나마 바깥쪽 높은 공을 밀어쳤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밀어친 타구에 힘이 얼마나 실리겠어. 따라가 보자!

    기세 좋게 떠오른 타구가 내야를 넘고는 살짝 힘이 꺾인다. 그래도 앞으로 당겨진 좌중간을 가르긴 충분해 보이는 타구. 2루 주자, 1루 주자가 모두 스타트를 시작한다.

    3루를 보고 크게 돌려던 주자를 엘리펀트의 주루 코치가 막아선다. 무슨 일인지 깜짝 놀란 주자가 급하게 멈추면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달린다. 달린다. 저 공 보인다. 잡을 수 있다.

    공을 옆으로 보고 따라가면서 속도를 붙인다. 간다. 간다.

    돌아오기 전에는 타구 판단이 돼도 더 이상 반응 속도가 모자라 못 쫓아갔을 타구를 지금은 따라붙을 수 있다. 아직 근육이 영글지 못해 중심이 조금씩 흔들리는 게 느껴지지만 그런 거 고민할 때가 아니다.

    저 공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 김해영 2구. 좌중간~ 좌중간을… 중견수가 잡아냅니다. 중견수 김소전! 30미터를 달려와서 큰 타구를 잡아냅니다.

    걸렸다. 마지막에 점프를 했더니 글러브 끝에 걸렸다. 정말 끝에 살짝 걸려서 잡힌 공. 매일매일 글러브 손질한 게 아깝지 않은 순간이다.

    날아오른 발을 땅에 디디면서 주자를 살핀다. 3루에 거의 다 가서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2루 주자와 2루를 막 밟으려는 1루 주자가 보인다.

    보통의 수비수라면 2루로 던져야 한다. 송구만 정확하면 아마 저 2루 주자는 귀루하기 전에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선택은 3루다.

    - 김소전 파인플레이가 나왔습니다. 대단하네요. 신인 같지가 않습니다.

    - 잘 치고 잘 잡았습니다. 김소전 선수가 잡는 것까지는 완벽했습니다만 이어지는 플레이는 조금 아쉽네요. 지금은 3루가 아니라 2루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아니! 세컨! 세컨! 저놈 야구를 어디서 배워온 거야! 세컨에 던져야지 왜 서드로 던져!”

    “애잖아. 정신이 없겠지. 너 신인 때 저런 거 잡기나 해봤냐? 자질은 있으니까 네가 이제부터 잘 가르치면 되겠네.”

    “나 신인 때 뭐! 나 신인 땐 에러가 하나도 없었어! 내 수비가 어때서!”

    “신인 때 10이닝은 수비했냐? 10이닝 뛰고 에러하면 죽어야지.”

    “형, 나 몰라? 나 수비하는 거 못 봤어? 나 박철엽이야.”

    “예, 예. 알겠으니까. 저놈 중계 플레이나 알려줘. 운동 능력은 좋은데 야구는 못 배웠다.”

    “그러게. 내가 바쁘겠어. 허허.”

    수석 코치와 수비 코치가 헛소리를 늘어놓는 동안에도 감독은 미동도 없이 중견수만 바라본다.

    “신입 잘했어. 잘했고, 다음부터는 내가 송구 방향 찍어줄 테니까 나 보고 던져!”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3루로 가는 공을 중간에서 커트한 커트맨 유격수 박재호가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내게 다음 플레이를 알려준다.

    나도 알아요. 아는데… 그게… 좀…….

    공을 잡는 순간 2루에 귀루하는 주자를 잡아야 한다는 건 알았다. 문제는 내 어깨. 내 어깨가 그 거리를 던질 자신이 없다.

    공을 잡는 순간 유격수는 3루와 중견수 사이에 커트맨으로 들어와 있고, 1루수는 홈으로 가는 중간에 커트맨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면 2루를 보고 직접 던져야 하는데 내가 그나마 사람같이 던질 수 있는 거리의 한계는 40미터. 그 이상부터는 야구 선수라고 하기 민망한 송구인지라 가장 가까이 있는 유격수에게 공을 뿌렸다.

    하… 이걸 뭐라고 설명은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기도 힘들고……. 참 힘들다.

    9회 초 1사 주자 1, 2루. 아직 아웃카운트는 두 개나 더 남았다. 내 데뷔전에 질 수는 없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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