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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4화 (4/204)

4화. 텃세

* * *

“괜찮냐?”

“우엑……. 쿨럭… 말, 말 시키지 마.”

“얼굴이 안 좋아…….”

“마, 말… 우웩… 웩… 웩…….”

저, 저 시키……. 말 시키지 마라니까 진짜…….

숨만 쉬고 싶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런 액체를 게워냈다. 아쒸… 쪽팔리게…….

악마와의 펑고가 끝나고, 말 그대로 그라운드에 대자로 뻗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걸 나와 세트 메뉴인 수영이가 숙소로 질질 끌고 가는데 조용히 가도 될걸, 저놈의 입이 쉬질 않는다.

“대단하다. 나 같으면 펑고 받다가 기절했을 것 같은데, 진짜 대단한다. 너 보면서 나도 많이 반성했다. 나도 너처럼 열심히 할게.”

정신없는데 말 시키지 말라고!

“우… 우엑……. 웩웩…….”

한바탕 게워 냈는데도 저놈의 조잘거림에 속이 또다시 울렁거린다. 하늘에 별까지 보이는데 옆에 전봇대가 보여 무작정 붙잡고 다시 게워 냈다.

“뭐야, 미쳤어? 이 새끼가 지금 나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거지?”

“이런 어린 놈의 새끼들이 선배한테 뭐 하는 짓이야! 너 빨리 강훈 선배한테 사과 안 드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3년 차 최강훈이 띠꺼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 이게 사람이었네……. 하긴, 복도에 무슨 전봇대가 있다고. 에효…….

지나가는 선배 다리에 걸쭉하게 속을 게워 낸 덜떨어진 놈 대신 옆에 있는 큰곰이 재빨리 사과를 한다.

“서, 선배님. 죄송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 소전이가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수영이가 미처 이야기를 다 하기도 전에 선배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이 새끼는 입이 없어? 왜 네가 씨불이고 있어!”

선배의 호통에 수영이가 급히 찌그러지고 타깃이 나로 바뀐다.

“어이. 선배가 선배 같지 않냐? 너 소닉스에서 왔다며? 거긴 위아래가 없어서 네가 이러지?”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하는 게 같은 말이라도 참 기분 더럽게 얘기하네…….

이러나저러나 내가 잘못한 거, 지금은 납작 엎드릴 때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김에 무릎까지 꿇고 용서를 빌었다. 내 무릎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니 자존심 상하거나 화가 날 일도 아니다.

“어이, 어이. 죄송? 죄송하면 다야? 이 바지는? 바지는 어쩔 거야? 이 슬리퍼는? 이거 한정판인데 이거는 어쩔 거냐고!”

거. 삼색쓰레빠를 무슨 한정판까지 사서 신고 있어. 문방구 가서 삼천 원이면 사겠고만.

“제가 깨끗이 세탁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내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데 최강훈 옆에 있는 2년 차 똘마니가 헛소리를 지껄인다.

“핥아, XX야. 어디 하늘 같은 선배 옷에 토를 하고 지랄이야! 깨끗이 핥으라고, XX야!”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어이가 없어 고개를 들어 보니 위에서 짐승 두 마리가 띠꺼운 표정을 한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배님. 말씀이 너무 심하시지 않습니까! 훈련하다 힘들어서 실수할 수도 있지.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나서기도 전에 수영이가 겁도 없이 선배에게 쏘아붙였다.

이놈 이거, 순둥인 줄 알았더니 할 말은 하네.

“넌 뭐야! 어디 선배가 말씀하시는데 껴들어? 넌 어느 학교 출신이야? 아… 네가 그 강원도 산동네 출신이지? 소닉스에서 버린 새끼도 키워야 하고 시골에서 못 배운 새끼도 가르쳐야 하고……. 팀에 망조가 들었나. 우리가 무슨 재활용 센터도 아니고 팀이 왜 이 모양이야.”

누가 저 똘마니 머리에 헛소리 만드는 기계를 집어넣었나, 저 정도면 병인데?

“선배님! 재활용이요? 우리가 무슨 쓰레깁니까? 아무리 선배라지만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수영이가 버럭하자 똘마니가 슥 다가와 수영이의 멱살을 잡는다.

“선배님. 안 되겠습니다. 제가 신입들 관리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선배 무서운 거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그때 멀리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휴~ 여기 누가 이래놨어~ 복도가 죄다 엉망이네. 뭘 잘못 먹었나. 여기에 이렇게 토를 해놓으면 어째…….”

복도에 청소하는 여사님이 나타나시자 최강훈의 얼굴이 확 바뀐다. 세상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정환아. 신입들이 훈련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괜찮아. 신입들 운동 열심히 하다 보면 다 그럴 수 있어. 창피하다고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해. 창피한 건 아무것도 아니다. 프로는 열심히 해서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여기 더럽혀진 건 너희가 치우자. 여사님 청소하시는데 힘들게 하면 안 되잖아.”

뭐지? 이놈은?

이게 운동선수야, 배우야? 넌 직업을 잘못 택한 거 같은데?

“선배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눈치 없는 수영이가 영문도 모르고 쏘아붙인다.

“난 괜찮대도 그러네. 옷 좀 더러워진 거 내가 빨면 돼. 괜찮아, 괜찮아. 정환아, 나 괜찮으니까 신입들 너무 잡지 말아라. 쟤들이 일부러 그랬겠냐? 훈련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와… 저, 저놈 지금이라도 주연 배우다. 목소리 하며 발음까지 귀에 착착 감기네.

“으그~ 최강훈이네, 최강훈이. 얼굴도 잘생겨, 목소리도 좋은데 사람까지 진국이네, 진국이야. 강훈 선수 진짜 애인 없어? 내 사위 하자. 사위. 내 딸 나 닮아서 이뻐~”

내 앞에 있는 연기자가 본인의 캐릭터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 랩터스 최고 미녀 김 여사님이시네~ 저 아직 연애에 관심 없어요. 야구 하기도 바쁜데 연애는 무슨 연애에요. 저 랩터스 1번 타자 딱 되고 난 다음에 따님한테 청혼할 거니까 그때까지 딴 놈한테 시집 보내면 안 돼요.”

그러더니 옆에 있는 멍청이를 툭툭 치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특히 이놈! 박정환이같이 허우대만 멀쩡한 놈들이 더 부실하니까 조심하시고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호호~ 젊은 사람이 재밌어~ 호호~”

내가 너랑 같은 팀을 안 해서 정확히는 몰랐는데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인성 빻았다는 소문이 다 사실이었구나.

아. 너 나중에 미성년자랑 썸 타다가 조용히 사라졌다는 소문도 사실이었던 거 아니냐?

“선수들 훈련하고 피곤할 텐데 어여들 숙소로 돌아가. 내가 깨끗이 정리할 테니까. 괜히 나 청소하는 데 방해들 하지 말고 가.”

“여사님~ 저희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오늘 훈련이 너무 빡세서 오늘은 좀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가 항상 감사한 거 아시죠? 사랑합니다~”

랩터스의 대배우님은 손가락 하트를 뿅뿅 날리고는 똘마니를 데리고 사라졌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벌리고 어버버 하는 수영이 목덜미를 잡아채서 우리도 숙소로 돌아왔다.

“우와~ 저거 완전 미친놈 아니냐? 나 이중인격이라는 거 TV에서나 봤지 눈앞에서 처음 봤다. 시종일관 또라이는 숱하게 봤는데 저런 왔다 갔다 하는 놈은 처음이다.”

시공일관 또라이는 어디 가야 숱하게 볼 수 있는 거냐?

“놔둬라, 피곤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뭔 딴사람까지 신경을 쓰냐. 내 일만 잘하면 된다. 어차피 선배는 외야수, 나는 내야수. 포지션도 다른데 신경 안 쓴다.”

내 방에서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꾸역꾸역 접어 넣으며 스트레칭을 하자. 수영이도 날 따라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포지션이 달라도 한팀인데 저런 놈한테 찍히면 내내 스트레스지. 아오, 저 새끼 어떻게 복수하지?”

“야구 선수면 야구로 복수하세요. 억울하면 저 선배보다 야구 잘해. 프로는 그게 복수야. 이 판에선 야구 잘하고 연봉 많이 받는 게 선배고 할아버지다.”

내 피 같은 조언에 수영이가 몸을 멈춘다.

그렇지, 이놈아. 뼈에 새겨넣어라.

“너… 코피 나…….”

“으. 응? 코피? 아우~ XX!”

* * *

개막을 하고 4월이 지나 5월에 들어서자 난잡했던 1군 순위표가 자리를 잡아간다.

지난해 디펜딩 챔피언인 랩터스가 4위권을 간신히 유지하는 가운데 위아래로 치열한 순위 다툼이 일고 있다.

지난 시즌 우승 팀임에도 시즌 초반부터 주전들의 줄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하는 랩터스.

하루하루 1군 로스터의 피로도는 쌓여 나갔다.

1군이 삐걱거리거나 말거나 나의 일과는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언제부턴가 팀에서 나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 103번에서 걸어 다니는 좀비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난 훈련장과 훈련장을 이동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혹사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밥 안 먹었어? 힘을 내라고! 그래서 근육이 붙겠어!”

“어이. 힘들다고 준비 자세가 풀어지면 공을 못 따라가!”

“투수 퀵 모션 들어갈 때 스타트! 아니지. 리드를 더 잡아!”

“콜 플레이 확실히 해야지! 소리 질러! 1군에 가면 관중 함성에 들리지도 않아! 더 크게 지르라고!”

첫날에 이어 내야 수비 훈련을 몇 번 진행하고 나서 팀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바뀌었다.

도루를 50개씩 할 발은 아니지만 팀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발과 주루 센스.

그리고 수비. 최소한 주루와 수비는 되는 선수. 실전에 넣어는 봐야겠지만 당장 1군에 넣어도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는 선수로 인정을 받았다.

다만 1군에 넣기는 두 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으니…….

체력과 타격이다.

체력이야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 생에 해왔던 대로 긴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해결이 된다.

특히나 지금의 나는 학창 시절 체력 보강 없이 뽑아 쓸 대로 쓴 몸뚱어리를 가지고 있는 상태라 체력이라는 게 없을 뿐, 체력이 약한 선수는 아니다.

문제는 타격. 이건… 솔직히 답이 없다.

2군 개막을 눈앞에 두고 2군을 전담하는 전력 분석팀에서 나를 불렀다.

“김소전 선수. 김소전 선수는 왜 왼손으로 타격을 하는 거예요?”

“아. 그게…….”

나는 오른손잡이다. 그것도 고2에 150의 포심을 던지던 강속구 투수였다.

유소년 때부터 강한 공을 뿌리는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코치님들이 왼손으로 타격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는 스위치 타자로 경기를 뛰기도 했지만 나름 분업화가 되는 고등학교에 온 이후로는 완전히 좌타자로 고정되었다.

“수비할 때 송구는 그렇게 쭉쭉 뿌리면서 타격할 때는 왜 그리 소극적이죠?”

“아. 그게…….”

어깨를 다치기 전까지는 소극적인 타자는 아니었다. 포지션이 투수인지라 타격 연습에 온 정성을 쏟지는 않았지만 타격에 재능이 없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나무 배트로도 종종 홈런도 치고 약팀들 상대로는 4타수 4안타, 5타수 5안타도 심심치 않게 치던 강타자였다.

내 타격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역시 다 어깨 부상 때문.

어깨가 다치고 난 뒤 타격 후 팔로 스로를 끝까지 가져가는데 심적인 부담을 가졌다. 내 온 힘을 다해 스윙을 가져가지 못하니 자연스레 배트 스피드는 떨어졌고…….

고3이 돼서 당장 야수로 경기는 나가야 하는데 타격은 해야 해서 선택한 게 내 타고난 재능에 의존하는 거였다.

장타 따위는 포기하고 손목 컨트롤과 손목 힘만으로 날아오는 공을 커트해 내야만 넘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타격에 임했다.

어떻게든 경기장 안에 공을 집어만 넣으면 빠른 발을 살려서 승부를 걸었고 14년 프로 생활을 하면서 홈런 3개의 똑딱이로 살았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요…….”

“타격 코치님도 저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하십니다.”

“코치가 중요한가요, 선수의 의지가 중요하지…….”

의지? 야구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내가 지금 매일같이 토하면서 운동하는 거 안 보여?

“타격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이 없을까 봐요. 시간이 없지, 시간이.”

시간? 시간이 왜 없어? 나 지금 19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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