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79화 (79/83)
  • 79화. 대단원 <2>2017.04.06.

    -실종 47일째

    또각- 또각-

    높은 하이힐이 검찰청 복도 바닥을 그었다.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이었다.

    검찰이 살인교사를 인정한 주양을 기소하기로 했다.

    매향은 주양의 변호사로서 오늘 이 자리에 왔다.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하고 오는 길이었다.

    담당 검사와도 인사할 겸 들렀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재판에 회부되면 모든 건 그녀가 계획했던 대로였다.

    주양의 명령을 받고 진두영에게 접근했던 일을 떠올렸다.

    ‘김 회장을 살인한 게 너였어? 뭘 믿고 설쳐대는 거야.’매향은 진두영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주양은 모르지만 진두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선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적의 적은 내 편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진두영은 진주양과 손잡을 일이 없을 테니까.

    ‘가진 자들이 합세해 나약한 한 인간을 죽였으니까!’‘김 총리가 직접 주양이한테 소개했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 죽은 여종업원의 유가족이라는 걸 그 애는 모르나 보지?’영원은 주양에게 매향의 정체를 숨겨줬다.

    그리고 매향은 그걸 이용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진주양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

    매향, 유선민은 바로 그런 점을 노렸다.

    영원에 의해 변해간 그의 태도들.

    그 틈새를 교묘히 파고들었다. 영원을 끔찍이 위하는 척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지. 그 남자한테 접근하기 위해서였어. 김 총리 정도의 추천이면 아무 의심 없이 써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알다시피 워낙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 부족했어. 반쯤 포기하고 있는데 신영원이 그 남자와 엮인 거야.’영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최혜란의 비밀을 파내기 위해.

    그런데 영원이 진주양이란 대어를 물어다줄 줄이야.

    처음엔 영원이 주양과 엮인 것을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아닌가.

    이중모에게 접근하는 사다리가 됐으니.

    ‘그 여종업원 죽음에 걘 직접적인 원인이 없어.’‘그래. 진주양은 따지고 보면 제3자지. 이중모 주연에 김 회장, 최혜란 시니리오 각본 연출. 그에 비하면 아무 잘못이 없어. 그냥, 사건을 이용해 자기 입지를 다지는데 썼지. 더 괘씸해.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면서도 덮었어!’매향은 진두영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당신한테 별로 유감 없어. 난 진주양이 징역 몇 년 살아주면 돼. 내가 어떤 계획을 꾸미는지도 모르고 제 손으로 살인고백을 하게 되겠지. 후계 자리는 공석이 될 테고, 이사회에서는 당신을 필요로 할 거야. 서로 윈윈하는 일 아냐?’변호인 접견실에 이미 주양이 와 있었다.

    매향은 후임 변호사로서 방에 입장했다.

    주양은 자정이 넘는 추가 조사까지 끝나고 홀로 남겨졌다.

    매향이 핸드백을 옆자리에 내려놓으며 주양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는 길에 담당 검사를 만났는데, 아주 득의양양해져 있던데요. 그런다고 지들 생계에 뭐 보탬이 된다고.” “구치소 가기 전에 짧게 얘기나 나눌까 해서 불렀습니다.”“본격적으로 기소가 되면 여기저기 불려가 들볶일 겁니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기소중지를 이용할까 생각 중입니다.” 매향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고급 와인병에 담긴 계당주였다.

    투명 글라스 두 잔도 가져왔다. 병마개를 땄다.

    글라스에 술을 채워 매향이 주양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럼 축배를 들까요?”주양이 술의 향을 맡았다.

    “꿀향이 나는군요.”“계피를 꿀에 4년이나 절였다가 담근 술이래요. 꿀맛이 안 날 수가 없죠.”주양은 문득 말했다.

    “예전에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누가 음식에 장난질을 쳤거든.”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걸 이용한 거니까. 매향이 손목을 들췄다. 시간이 촉박하다.

    “현재 시각 새벽 3시입니다. 동의도 받지 않고 자정이 넘도록 피의자를 심문하는 건 분명 문제소지가 있어요. 재판에서 따질 겁니다.”“이런다고 감형이 될까요?”“미리미리 포석을 깔아두는 거죠. 긴 싸움이 될 거예요. 당장 구치소 생활도 불편할 텐데, 빠져나갈 구멍은 많이 만들수록 좋은 겁니다. 걱정 마세요. 이중모도 이 정도 쇼맨십은 이해해야죠. 한신과 인연을 끊을 순 없을 테니까.”주양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10분, 20분, 매향이 시간을 가늠했다.

    주양이 숨 쉬기를 답답해하며 타이를 끌었다.

    30분. 손에 들고 있던 잔이 추락했다. 쨍그랑 - !

    주양이 쓰러졌다.

    매향이 술을 끝까지 다 들이켜고 컵을 치웠다.

    그리고 주양에게 고개 숙여 말했다.

    “좋은 병원을 알아보도록 하죠. 편안하고 안락한 수감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다급하게 바깥으로 나간 매향이 문을 지키고 있던 당청 직원을 불렀다.

    “여기! 여기! 119를 불러줘요! 의뢰인께서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셔서!”그 소리에 수사관들이 들어왔다. 수사관 두 명이 주양을 살폈다.

    “뭐죠? 분명 조사 때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공황발작입니다. 여기 병원 진단서예요.”매향이 어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종용했다.

    수사관이 욕설을 삼켰다.

    바깥에 기자들이 있었다. 이 상태로 나가면 분명 과잉수사라는 구설이 나올 게 뻔했다.

    검사가 문책 당하면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가 있었다.

    때마침 담당 검사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수사관이 곧장 검사에게 소리쳤다.

    “피의자가 쓰러졌습니다.”“아니! 그쪽이 아냐. 저 여자야!” 검사가 가리킨 쪽은 매향이었다. 매향이 이해하기도 전에 건장한 사내 셋이 들이닥쳤다.

    “뭐해. 신랑 빨리 의무실로 옮기고 저 여자 빨리 조사실로 옮겨.” 상황이 급변해서 돌아갔다.

    그들이 매향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담당 검사가 단호하게 통보했다.

    “유선민 씨. 당신을 살인미수 및 납치 용의자로 긴급체포 합니다.” 뭐? 매향이 얼떨떨하게 보았다. 매향이 다급하게 주양을 돌아보았지만 주양은 힘겨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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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향은 조사실에 앉혀졌다. 그야말로 현행범이 되었다.

    검찰청에서 간 크게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혐의까지 뒤집어썼다.

    변호인에서 범죄의 가해자 신분으로 한순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유선민 씨, 언제부터 범행을 꾸민 겁니까. 한신 법무팀에 근무한 뒤? 아님 백운당에서 일했을 때? 그때 신부를 납치하고자 마음먹었습니까?”“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군요.”“그럼 제가 알려드리죠. 신부는 현재 납치 중에 있습니다. 신랑은 범인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어요. 신랑, 그러니까 당신 의뢰인이, 당신이 신부 납치에 연루된 걸 알아차리자 음독시키려 한 것 아닙니까?”“말했잖아요.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자 했을 뿐입니다.”“그러니까 술에 들어간 꿀 성분이 의뢰인에게 치명적이라는 걸 알면서, 의도적으로 먹였다는 소리군요.”“곡해가 심하군요. 전 그분의 변호인입니다.”“변호인으로 접근한 거겠죠. 당신 외에 누가 더 신부 납치에 가담했습니까?”검찰은 매향이 한신의 변호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신부를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혐의를 만들어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신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매향의 눈길이 검사를 지나 등 뒤에 있는 사내에게 가닿았다.

    사내는 벽에 느긋이 기대어 조사 내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팍에 부착한 배지, 국정원이었다.

    매향의 동공이 지진 날 듯 뒤흔들렸다.

    ‘덫’에 걸렸다.

    매향이 매직미러 바깥의 검찰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사관을 교체해줘요. 조사실에서의 진술엔 비밀유지 항목이 있지 않나? 저 인간은 검찰직원도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잖아!”검사가 코웃음을 쳤다.

    “어디 이 녹취록을 듣고도 그 얘기가 나오는지 봅시다.”검사가 가지고 있던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낯익은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재생됐다.

    김 회장을 살인한 게 너였어? 뭘 믿고 설쳐대는 거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지. 그 남자한테 접근하기 위해서였어.

    김 총리 정도의 추천이면 아무 의심 없이 써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부족했어. 워낙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 반쯤 포기하고 있는데 신영원이 그 남자와 엮인 거야.

    검사가 녹취록을 껐다.

    “지금 상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안 잡혀요?” 녹음된 내용은 자칫 그녀가 신부를 납치했다는 걸 자백하는 내용처럼 들렸다.

    영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증거자료로 쓰이게 될 수 있다.

    “어떻게.”어떻게 진두영과의 대화가 검찰 손에 들어와 있는 거지.

    매향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두영이 녹음을 했다 쳐도, 어째서 그것이 검찰 손에…….

    조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거 안 놔!”매향이 반항하는 그때였다.

    잠시 후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검사와 국정원 직원이 알아서 빠져나가줬다.

    그는 주양이었다.

    ‘덫’에 걸렸다. 진주양의 덫에.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진 각본에 의해 연출된 연극이었다.

    *

    주양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느긋이 다리를 꼬며 매향을 봤다.

    조사실 영상 녹화 카메라가 꺼졌다.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했지.”매향이 침묵했다.

    시계초침 소리가 한동안 차올랐다.

    긴 정적 끝에 주양이 매력적으로 웃었다.

    “패를 다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적어도 최종 보스를 자극하면서까지.”넌 아주 큰 실책을 남겼어. 김 회장을 죽인 것.

    .

    .

    .

    그들은 서로를 의심했다.

    서로가 김 회장에게 유감이 있었다.

    주양은 이중모를, 이중모는 주양을. 진두영은 주양과 이중모를.

    그래서 김 회장이 죽었다고 했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그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그리고 제일 덮으려고 노력했던 이는 주양도 진두영도 아니었다.

    제일 켕기는 게 많은 자.

    이중모.

    이중모가 자존심을 내세우며 버텼다면 주양은 매향의 손을 잡아줬을 것이다.

    하지만 늙은 정치인에게 배울 만한 점이 있다면, 적군과 아군을 구분 짓지 않는 좋은 비위였다.

    이중모를 꿰어내는 데 아주 좋은 미끼였다, 매향은.

    “여기저기 일을 벌리고 다닌 주범이 유 변이라는 건 어림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쭉 유 변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지난 3월, 대외비 기밀 자료가 분실됐다.

    내부 자료가 새나가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영원에게 보인 신의 등등 함부로 의심할 수 없었다.

    김 총리의 사람이라는 데에도 가산점이 붙었다. 김 전 총리는 이중모의 스폰서.

    “이중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리가 없다. 아주 큰 판단 미스였어요.”주양이 찌푸리자 매향이 미친 듯이 웃었다.

    “날 기자들 앞에 세워놓을 용기는 있고?”김 회장을 살해한 것으로 매향을 엮진 못할 것이다.

    김 회장은 자살로 판명이 났고, 타살이라면 어째서 타살을 당했는지 그 모든 과정을 끄집어내는 꼴이 될 테니까.

    결국 신부 납치로 엮어야 하는데, 매향은 아무 증거도 안 남겼다.

    “이건 모함이야. 녹음파일?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그런 걸론 신부는커녕 지푸라기조차 잡을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내가 신부를 납치했다는 증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주양이 초음파 사진을 책상 위로 밀었다. 매향은 비웃었다.

    “내 얼굴도 아니고, 네 애가 박힌 사진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사진 상단에 있는 영어로 된 코드 말입니다. 병원 이름과 날짜라죠.”매향이 멈칫했다.

    “여의사가 유 변을 알아보던데.” 영원이 임신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당시였다.

    갑작스럽게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의료보험 없이 진찰해줄 병원으로 데려갔다.

    여의사에게 직접 돈을 건네었으니 매향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병원 CCTV를 안 지웠던가?

    주양이 깊은 시선을 매향에게 고정했다.

    알듯 모를 듯 묘한 웃음기를 입가에 매달고 그가 말했다.

    “설마 한 거지. 병원까지 잡아낼까 하고, 방심한 거지.”이로써 매향이 영원의 납치에 가담했음을 확실시 해주는 증거가 생겼다.

    주양이 눈을 내리떠 굳은 얼굴의 매향을 더듬었다.

    강호운이 초음파 사진을 줄 때는 그도 몰랐다. 단순히 아이의 존재를 알리려 한 것뿐이라고 여겼다.

    매향이 똑같은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을 때 깨달았다.

    강호운은 배후를 알리려 했던 것이다.

    매향이 물었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나? 전국민을 상대로?”국정원에 가짜 신부 이야기를 투서한 사람과 민노총에 이중모의 친인척 비리 문건을 투서한 인물은 동일 인물이었다.

    그리고 김 회장을 살해한 것도 같은 인물이었다.

    이 세 사건의 연결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중모.

    주양이 매양을 깊게 응시했다.

    이 계집이 원하는 건 주양이 아니라, 이중모 그의 목숨줄이다.

    이중모는 주양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각하. 각하께서 공격당하지 않는 건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벽이,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죠.’‘…….’‘근데, 지금 혼자 살아서 도망치겠다고 자기를 지켜주던 성벽을 허물면, 뱀의 아가리로 돌진하는 꼴이 아닌가.’경각에 처한 목숨. 이중모가 다급해졌다.

    ‘나와, 협상을 하세.’다급함에 바짝 열이 올라 이중모가 매달려왔다.

    ‘자네도 이 사태를 빠져나가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잖나.’주양을 발로 굴릴 것처럼 굴더니 바짝 엎드렸다.

    매향을 변호인으로 삼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이중모에게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이중모는 이제 이 계집을 뒤탈 없이 처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었다.

    긴 침묵이 지나갔다.

    매향이 숨을 헐떡였다. 마지막 보루를 쥐고 협박해온다.

    “내가 처음 그 앨 발견했을 때 거의 죽어가고 있었어. 사흘을 굶고 컴컴한 방에 갇혀 있었지. 보고 싶지 않아? 어디 있는지……!”  “왜 또 이중모일까. 너와 손을 잡고 이중모를 무너트릴 수도 있었을 텐데.”“하……아, 하아…… 당신 숙모라는 여자, 제정신 아냐. 지금 나 가지고 이럴 시간 없어. 남편이 마음 뺏긴 여자를 가만 놔둘 거 같아?.”“배신한 인간은 상종하지 않는 주의지만, 하필 네가 아닌 이중모의 손을 다시 잡아보기로 한 이유는 딱 하나야.”주양이 꼰 다리를 풀었다. 백짓장처럼 창백해져가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섬뜩하게 말을 박아 넣었다.

    “넌, 너무 말이 많아.”매향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매향은 이중모와 주양을 충분히 갈라놨다고 여겼겠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착관계란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었다.

    믿음이란 것보다 훨씬 담백하고 확실한 보증이 돼줬다.

    신부가 바뀐 것?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중모는 다르다. 정치인은 잘해도 본전치기라지.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생명과 직결되지. 대통령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양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상종 못 할 것들이지. 청렴결백한 척, 뒤에서 호박씨 까는 것들. 정치인.”“내가 잘못됐다는 낌새를 눈치채면 신부를 처리하려 들 거야. 자기 혼자 빠져나가려고.” “그럼 세상에서 제일 흔들기 쉬운 건 뭘까?”  주양이 대답을 듣는 척도 않고 바로 말을 챘다.

    “딸 가진 아버지.”매향은 혼을 잃은 듯 멍해졌다.

    진두영의 장인이자 한신의 사돈인 태평양일보 사주.

    사위 진두영이 신부 납치를 꾸민 것 같다고 하니까 바로 반응이 왔다.

    따님도 가담한 게 아닌가 의심을 보이자 조 회장이 펄쩍 뛰면서 발뺌했다.

    주양이 돌아간 후, 조 회장은 염려되는 마음에 딸의 뒤를 캤을 것이다.

    진두영이 아닌, 자신의 딸이 진범의 배후인 것을 알게 되었을 터다.

    주양이 손쓸 일 없이 숙모가 일을 벌일 낌새를 보인다면 사건이 더 커지기 전에 조 회장이 자기 선에 알아서 조치를 취해줄 것이다.

    이제 매향을 구해줄 동아줄 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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