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75화 (75/83)

75화. 일장춘몽2017.03.23.

……10시간 전, 검찰청.

서울지검 특수1부.

주양이 블라인드 사이를 들춰냈다.

12층 부장검사실 아래.

냄새 맡은 기자들 몇이 진을 치고 있었다.

특수1부 부장검사 강규웅이 말했다.

“아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셨습니다. 검찰청 정문을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입장하시다니요. 아시잖아요. 상주 기자들, 하루 종일 검찰청 입구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 출입하는 사람 중에 아는 얼굴 있으면 바로 기사 올라갑니다. 연락이라도 따로 주시지 않고요. 지금 아래서 난리입니다. 곧 자수하신 내용, 바깥으로 샐 겁니다.”주양이 시치미 떼고 있자 강규웅이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노골적으로 물어온다.

“정상참작을 노리시는 겁니까? 변호사가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해요?”주양이 찾아온 건 물론 자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찰의 움직임이 수상한 탓도 있었다.

“검사님 요새, 바쁘다면서요? 한신 계열사 먼지 털리는 소리 들립니다.”“예. 제가 뒤끝이 좀 셉니다. 그때 아주 호되게 물을 먹어서, 다시 그런 실수 안 하려고 몸 사리고 있습죠.”백운당 성매매 건으로 주양에게 악감정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강규웅이 지휘하는 특수부에서 한신을 찌르고 다닌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도.

주양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물먹은 것치고 대검 반부패부의 수사 지원이라니. 너무 예쁨 받는 거 아닙니까?”“오늘 아침 회의 내용이었는데 벌써 그 귀에 전달됐습니까?”강규웅은 무섭군, 하고 한신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미 검찰은 주양 몰래 정보 수집을 하고 다녔다.

신영원이란 여자가 병동에 감금당한 것.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이중모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자마자 한 일은 주양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주양은 이중모에게 동반자이기 전에 눈엣가시였겠지.

김 회장 이상으로. 주양은 이중모의 약점을 틀어쥔 사람이었다.

한때 이중모가 말했다.

‘대선 고비만 넘기자구. 내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날이 자네가 한신의 왕좌를 차지하는 날이 될 테니.’아니. 이중모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날이 바로 숨기고 있던 가시를 꺼내는 날이다.

주양이 원하는 건 고비를 같이 넘길 동료가 아니라 ‘충견’이었다.

손이 닿는 곳에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가 목줄에 잡아당기면 반항 없이 끌려올 수 있는 개.

이중모가 그 꼴을 용납할 리가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물고 물릴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이중모 역시 ‘개’가 되지 않기 위해 주양의 약점을 캐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리고 찾아냈겠지.

주양이 지난겨울 내내 했던 일들을.

이중모는 주양을 ‘개’로 길들이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양이 선수를 쳤다.

자수라는 방식으로.

만약 주양이 자수하지 않았어도 세상에 터트려질 일이었다.

주양은 점잖게 검은 속내를 감추며 물었다.

“선처 부탁하면, 나, 비웃음 당합니까?”“선처요? 강규웅이가 하하! 웃어재꼈다.

주양의 입에서 들을 말일 줄 몰랐다는 듯, 얼굴에 기쁜 감정이 떠올랐다.

“그건, 담당 검사한테 가셔야죠.”주양도 마주 보고 웃었다. 뻔한 말장난이었다.

특수부는 주로 기업형 비리만을 다루므로 약취 감금 정도는 형사과 일이었다.

그러나 강규웅이가 만든 작품 걸 모를 줄 아나.

주양이 냉소했다.

“뭘 믿고 까부는데?”“뭐, 툭 까놓고 말하자면, 한신그룹이란 곳, 검사로서 기획 수사로 해볼 만한 데 아닌가.”“해볼 만해?”“높은 분도 좀 높은 분이셔야지. 비리야 파면 나오는 거고.”“그리고?”“살인일 수 있으니까.”강규웅이가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했다.

책상을 돌아 가져온 서류묶음을 강규웅이 주양에게 내밀었다.

“형사과 부장한텐 아직 토스 안 했는데, 재미있는 제보가 들어왔어요.”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였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주양이 정신병원에 멀쩡한 사람을 감금시켰다는 것.

근데 그게 알고 보니 사돈처녀였다는 것.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

신부가 바뀌었다는 것.

정신병원 간호사의 증언과 죽었다고 알려진 신영원이 사실은 신해수였다는 폭로.

이중모는 주양을 굴복시키려는 셈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오점을 남기셨어요.”강규웅이 스산하게 껄껄댔다.

*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은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아닙니다.”“슬픈 꿈을 꾸었느냐.”“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中

*

“진짜 신부는 정신병원에 처박아두고 자매 사이를 오간 남자라. 이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면 혼란은 대중의 몫이죠.”저열한 진짜 의도를 감추고 능청을 떤다. 검찰이 이렇게 비뚜름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우리 쪽 상황이 어지러운 거 아시죠?”강규웅이 말했다.

“민노총에서 각하의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이 내일 모레 열립니다. 한신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의 돈 거래 정황도 수두룩해서, 문건이 공개되면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현재 정치권 문제로 이중모 정권은 첫 출발부터 시끄러운 상태였다.

친인척 비리를 덮기 위해서 이슈가 필요했다.

마침 터진 것이 한신그룹 신부실종 사건.

“민노총 손에 들어갔다는 그 문건입니다,”주양이 문서를 훑었다.

이중모의 비리가 적힌 회계장부였다.

현재 한신중공업은 구조조정에 있고 아직도 파업 중이다.

이중모는 이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구조조정을 철회해달라고 했지만 주양이 거절하지 않았나.

최혜란을 장모로 받아들인 후 그들은 불편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그 정도 때문에 이중모가 이렇게 나오는 건 아니었다.

주양 쪽에서 실책이 있었다.

“민노총이 입수한 분식회계 자료에 한신 로고가 찍혀 있죠? 한신 전략실에서 샜다는 얘긴데…….”강규웅의 핵심적인 지적을 들으며 주양이 파일을 덮었다.

문서가 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유출시켰느냐는 거였다.

강규웅은 그런 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다리를 꼬았다.

“내가 먼저 인터셉트해서 망정이지…… VIP께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 실수를 만회하실 겁니까.” 이 문건이 민노총에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의 강성 노조 파업이 시작됐다.

이중모도 나름 계산기를 두드린 후에 내린 결정일 터다.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받겠다는.

주양의 약취 감금은 진짜 감춰진 진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친인척 비리를 덮기 위해, 가짜 신부의 내막을 들춰 국민들 시선 좀 돌리겠다는 거다.

검찰은 신부의 비밀을 막 터트리려던 참이었다.

그걸 미리 알고 주양이 선수 치듯 자수를 해왔으니 검찰이 당황할 만도 하다.

하지만 주양이 밝힌 죄는 고작 감금약취의죄. 아직 더 많은 진실이 남아 있다. 강규웅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말인데 서로서로 피곤해지지 않게, 조용히 끝낼 수 있는 타협점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대산 김 회장의 죽음도 석연치가 않았어요. 타살 의혹이 있었거든. 근데 진주양 씨를 위해 우리가 서둘러 마무리 했었습니다. 상부상조…… 아닙니까.” “…….”“A급 톱스타 스캔들? 요즘 씨알도 안 먹혀요. 근데 대 한신그룹의 후계자, 그것도 얼마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범죄에 가담했네? 근데 결혼도 사기극이었네? 하필 신부가 그 여동생이었어? 어라? 사람이 죽었네?”“…….”“말하자면 국면 전환용인 거죠.”“…….”“백운당 한번 털어보려다가 그날로 총장실 불려가 저 개털 났습니다. 들어보니 이사님께서 항의를 넣으셨다고.”“소문에, 각하 사촌형제의 아들이라던가.”주양이 입을 뗀 말에 강규웅이 불에 덴 듯 움찔했다.

“여식을 시집보냈다지, 과거 그래도 강골 검사라고 불리던 양반이 어쩌다.”권력에 빌붙는 정권의 나팔수가 되셨나. 주양이 쓰라리게 보았다.

강규웅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검찰과 타협할 의지가 없다는 완벽한 거절이었다.

강규웅이 험악하게 뺨을 굳히며 으름장을 놓았다.

“VIP께서 왜 나를 이 사건으로 보냈는지 압니까?”“…….”“옷 벗는 한이 있어도 당신을 집어넣을 용기가 있는 검사입니다. 내가.”“…….”“당신은 사람을 죽였고, 그 이유가 무엇이 됐건 한 번 살인하면, 다른 이의 동정심을 구할 수 없어. 한 번 살인자는 두 번째에도 살인자야.”

*

<뉴스특보입니다. 한신그룹 후계자의 고백이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진 씨는 오늘 오후 3시쯤 6시간의 짧은 조사를 마치고 귀가조차 됐습니다. 아직 뚜렷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검찰은, 진 씨를 불구속입건하여 범죄의 동기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지난 XX일, 신 양은 병원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요. 검찰은 진주양 씨에게 신 양에 대한 살해혐의까지 있지 않은지, 2차 소환을 해 집중 추궁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주양이 검찰청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몇 발작 가지도 못하고 기자들에 가로막혔다. 개떼처럼 질문들이 마구 쏟아졌다.

“갑작스런 자수의 계기가 무엇일까요?”“경영승계를 앞두고 계셨던 걸로 들었습니다. 이번 일로 응당의 책임을 지셔야 할 텐데요. 한신그룹 본부장 자리에서 자진사퇴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감금하셨다고 주장한 피해자가 처제라는 얘기가 있습니다!”“부인께서도 동의하신 일입니까? 만약 부인도 범행에 가담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현재 이 사건에 국민들의 높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현재 심경 한 말씀 해주시죠!”주양이 검찰직원들의 보호를 받아 빠져나왔다.

“살해혐의가 덧붙여졌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우르르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세단에 올라탔다.

차가 인파를 뚫고 간신히 청사를 빠져나왔다.

주양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옆자리에 누군가 미리 앉아 있었다.

검은 스타킹, 매끄러운 각선미가 살아 있는 여성의 다리.

매향이었다.

*

한적한 한강고수부지.

주양이 리모컨을 눌렀다.

앞의 운전석과 뒷좌석이 사이에 차단막이 올라갔다.

도청의 틈도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대화였다.

주양이 먼저 운을 뗐다.

“예상대로예요. 이중모가 날 자기 위기를 모면하는데 이용하려고, 잔꾀를 부리고 있어요.” 나란히 독대하며 매향이 답했다.

“유출된 한신중공업 회계장부가 민노총 손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신부 실종 사건을 키워서 이중모가 이슈를 잠재울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부가 바뀐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겠군요.”주양이 엄지 손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건드렸다.

“가짜 신부 문건을 검찰에 투서한 주동자는 진두영이 확실한데.”주양은 말끝을 흐리며 매향을 봤다.

“진두영 쪽에서 심은 첩자가 누군지, 아직 소식 없습니까?”매향은 현재 공식적으로 진두영의 사람이 되었다.

탑차에서 신해수 시신이 발견 된 직후, 주양을 배신하고 진두영에게 붙은 걸로 되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덫이었다.

주양이 내부에 이중스파이가 있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실종 20일째였다.

여의도에서 만나기로 한 영원과의 1차 접촉 시도가 실패로 어그러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내용들이 자꾸 바깥으로 샜다.

한신 전략실 기밀도 바깥으로 유출됐다.

‘누군가 날 배신하고 있다.’ 주양은 역발상을 했다.

매향이라는 먹음직스런 미끼를 진두영에게 보냈다.

작은 걸 내어주고 큰 걸 얻고자하는 심산이었다.

진두영은 이중스파이라는 것도 모르고 주양의 최측근이라는 매향의 메리트에 취해 자신의 행적, 동태를 빼곡히 주양에게 읽히고 있다.

“먼저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매향이 마침내 성과를 들고 왔다.

“강호운을 뒤에서 조종한 배후를 알아냈습니다.”주양의 눈길이 매향에 가 닿았다.

“진짜 납치를 사주한 배후 말입니다.”

*

“만약 내가 신부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넌 뭘 걸래.” 진두영은 그렇게 말하며 잔혹하게 웃었다.

“두 개 다 가질 수 없어.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해.”주양은 정적인 얼굴로 마주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진두영이 반문했다.

“뭐?”“두 개를 다 가질 수 없다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진두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을 했다.

“끝까지 허세 부리겠다 이거지.”“내가 분명 조심하라 했을 텐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 말라고.”밑도 끝도 없는 주양의 경고에 진두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입을 떼는 그때였다. 김 부장이 왔다.

진두영에게 귓속말로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라고.

진두영은 김 부장이 건넨 보고서를 확인했다.

보고서가 아니었다.

아내가…… 이혼소장을 보내왔다.

*

한 호텔 객실이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귀부인이 유력 9시 뉴스 앵커와 앉아 있었다.

수첩을 든 앵커 앞엔 카메라맨이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쓰인 언론사 이름.

태평양일보.

귀부인은 사주의 딸이자, 한신그룹의 며느리였다.

자기 집안 기자를 불러다 놓고 그녀는 인터뷰했다.

카메라가 세팅됐다.

“말씀하시죠. 사모님.”귀부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양의 자백. 그 뒤에 감춰진 진짜 진실.

사실 그런 건 표피에 지나지 않고 실은 신부가 실종됐다는 것.

사실 진짜 신부는 그 여동생인 신영원이였다는 것.

그런데 그녀는 현재 납치당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기자가 놀라워했다.

“지금 말씀대로라면 남편 분께서 신부를 납치했다는 건가요?”“남편은 후계구도 싸움에서 밀린 뒤, 조카에게 복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후계자 싸움에 지고 남편은 조카에게 원한이 가득했다.

그러나 우연히 신부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으시죠?”귀부인은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남편은 신영원을 주기적으로 만나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육성과 옆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몇 개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 귀부인은 그날 일을 회상하며 실토했다.

“결혼식 직전 남편이 신부에게, 협박전화를 했습니다.”

-1년 전, 두영

진두영은 회사에게 쫓겨난 후 산에 들어갔다.

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두 계절,

가을과 겨울.

범오사에서 삼천 배를 올리면서 심신을 달랬다.

아무리 분노를 기도로 달래고 달래도 자신의 패배를 납득할 수 없었다.

놈이 조롱하던 소리, 표정, 주총에서 그 기고만장하던 모습까지.

그날은 낙엽이 흐드러지던 11월이었고, 다른 때보다 특별한 날이었다.

진두영은 박차고 불당을 나섰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아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

부처의 가르침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나아지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거친 발걸음이 성철스님의 안채로 건너갔다.

그 시각, 성철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여자 손님은 자신의 인생이 궁금했다.

“당신은 나를 알고 있지. 아주 오래전부터.”진두영은 우연히 성철과 여자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어렸을 적 너를 본 적이 있다. 네 애비 부탁으로 내 너에게 염주를 만들어주었느니라. 그것을 어찌했느냐. ……해수야.”

해수야.

그 부름이 강한 울림이 되서 진두영 자신의 가슴에 파도쳤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을 리가 없다고.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 때문일까.

어째서 자신이 주양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있던 것이리라. 그 자식은, 비밀을.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던 시작이었다.

해답은 가까이에 있었었다.

수많은 인연과, 수많은 운명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영원은 이름을 되찾기를 바랐고, 주양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로 만들고 싶었다.

두영은 비밀의 문을 엿보았다.

모두가 만장일치 되어야 이뤄질 수 있던 꿈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도 했다.

셋 중 하나가 파멸을 원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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