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70화 (70/83)

70화. 의무가 있는 복수 <3>2017.03.05.

허억, 허억……!

안면으로 비바람이 들이쳤다.

영원은 백운당을 달렸다.

‘너도 믿어? 백운당에서 죽은 여자가 밤마다 운다는 소리.’영원의 물음에 매향이 무심히 곰방대를 물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난 인간이 더 무섭더라.’‘난 매일 듣는데.’‘뭐?’‘난 매일 들어. 울음소리.’쏴아아아- 바람이 긁고 지나갔다.

‘매일 날 찾아와.’매향이 알 수 없는 눈길로 옆모습을 깊게 쳐다봤다.

영원은 연못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애가…… 널 찾아온다고?’매향은 귀신을 ‘그 애’ 라고 칭했다.

사람인양, 어째서 ‘그것’이 아니라 ‘그 애’라고 귀신을 의인화하는 거지?

매향은 빈 전각에 서서 무연히 빗줄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영원이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일기장을 낚아채려는데 매향이 빨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어. 살아남아야 했어. 고아원에선 삼시 세끼 먹여줄 테니 차라리 그 삶이 나을 거라고. 어린 동생을 버렸지. 사법연수원에 있을 쯤 동생 소재를 알게 됐어. 원장의 성을 이어받아 한 씨 성으로 살고 있었더라고. 또 한 번의 파양, 여동생은 장하게도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나 같은 언니 따윈 기억에서 지우고.”매향이 영원을 돌아봤다.

“근데 죽었더라고. 억울한 일로.”영원은 모르는 척 일기장을 빼앗았다.

“네가 나를 동생처럼 여기는 걸 알아. 고마웠어. 아무도 관심 따위 안 써주는 삭막한 백운당에서 유일하게 나를 챙겨줘서.”“…….”“하지만 도가 지나치잖아.”“내 동생, 죽은 모습이 어땠어?”영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내려앉았다.

“별로 안 놀라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죽는 순간에 어떤 표정이었니. 그 애.”“버려놓고 이제 와서 뭘 물어?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내 남자친구가 이중모의 보좌관이었어. 술김에 자기 상관의 비밀을 내게 말해줬지.”돌아서는 영원의 등에 대고 매향이 빠르게 지껄였다.

매향은 이듬해 1월이 되고서 알게 됐다.

백운당에서 죽었다는 그 애가, 자신이 찾던 동생이었다는 것.

“그게 내 동생인 줄도 모르고 나는 그러려니 했지.” 이중모는 당시, 한국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그날은 사법연수원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동생을 죽인 놈이 연수원 수료식에 왔어. 막내아들이 나와 동기래. 꼴에 검찰총장 출신이라고 수석으로 졸업한 내게 와서, 검찰 후배로 오라고 격려를 해주는데. 그 기분이 얼마나 개 같던지.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후야. 수료식 후에 날 따로 불러내더니, 내 엉덩이를 만지는 거야. 내가 여자로 보인대. 그날 백운당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지. 검사나, 기생이나. 남들 밑 닦아주는 건 매한가지 아냐?”이중모를 무너트리기 위해 김 총리의 눈에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중모는 승승장구했고 대권을 노리는 상황이었다.

증거는 없고, 진주양이란 날개를 달고 이중모는 점차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 있다.

닿지 않는 높은 곳을 향하여.

“최 사장이 이중모 뒤처리를 해준 게 아니라, 이제 보니 이용한 거네. 이중모는 자기 때문에 내 동생이 죽은 줄 알고 있을 텐데. 이중모 억울하겠네.” 매향은 웃어 보였다.

영원은 시선을 피했다.

어째서 몰랐을까.

반달로 굽어지던 그 예쁜 눈이 S와 무척 닮아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 와 뭘 어쩌겠다는 건가.

내게 복수라도 하겠다는 심산이야?

다가온 매향이 영원의 어깨를 쥐었다.

맑은 눈물이 후두둑, 비어져 추락했다.

“너한테 마음을 주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자꾸 보다 보니까 동생 같고, 안타까워서.”살벌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매향은 낙오자인 영원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자기 동생처럼 여겼다.

매향은 동생 죽음의 최초 신고자가 영원이라는 걸 알고 접근했던 것이었다.

다정한 언니처럼. 혹은 친구처럼.

그러나 가까이할수록 영원은 죽은 그 애 못지않게 불쌍했다.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런데 상대가 진주양이라니.

“덮으려고 했어? 땅 속에 너 혼자만 알고 덮어버리면 그 진실이 묻힐 거라고 생각했어? 너도 이젠 행복해질 때가 됐으니까……. 응?”영원은 두려운 얼굴로 한 발짝씩 물러섰다. 영원이 멀어진 만큼 매향이 거리를 좁혔다.

난간에 엉덩이가 걸렸다.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지척에 선 매향이 영원에게 이마를 기댔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영원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긴, 너도 살아야지.”“…….” “그래. 행복해라.”너무도 순순한 축복에 당황하는 사이 매향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미움과 애정이 마블링처럼 뒤엉키는 눈빛.

매향은 영원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으로 동생의 죽음을 무마하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겠지.

친구이자 복수해야 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섬뜩하다.

매서운 눈빛이 경고를 내렸다. 행복해……

“속죄한 뒤에.”“미안해하고 있어. 충분히 미안…….”“미안하다는 말은, 아무 사과도 안 하는 거와 똑같은 거야. 그런 논리라면 최 사장도 너한테 미안해하고 있을걸? 말로 안 했을 뿐이지.”“아. 아니야. 난 달라. 난 정말로…….”“미안하다. 그 한마디로 퉁 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한 인생이 망. 가. 졌. 는. 데.”쿵 ???! 지면이 뒤흔들렸다.

사형선고처럼 내려지는 말이 영원을 옴짝달싹못하게 묶었다.

영혼을 팔라는 악마처럼 매향이 영원의 귀에 새살댔다.

“그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매향이 영원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도 불과 얼음처럼 상반되는 감정이 영원의 안을 거칠게 오갔다.

계모를 망가뜨리고 싶어 시뻘겋게 치솟는 용암 같은 마음과, 계모를 잊고 새 출발을 싶은 빙산처럼 차가운 욕구.

그러면서도 다시금 계모를 미워하고픈 분노가 가슴에서 악을 질러댄다.

털어내기로 작정했으면 벌써 떠나야 했다.

무슨 미련에 자꾸 백운당을 찾게 되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집에 혹시 놓고 간 게 없나 해서 와봤어.’웃기지…… 마.

내가 널 몰라?

네 자신을……

영원이 죽을힘이 다해 그 집에서 버틴 게 20년이었다.

잊힐까 봐,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될까 봐 두려워한 세월이 20년이었다.

20년 만에 집에서 쫓겨났을 때 확연해졌다.

모든 의구심이.

해수가 미리 꾸려놓은 짐 가방을 던지며 말했다.

‘떠난다며.’‘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가라. 대신, 여긴 다시는 오지 마. 우리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가족회의 끝에 세 모녀는 영원을 버리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일순 마음이 이상했다.

떠난다는 섭섭함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버리다니.

버리는 것은 자신이 해야 옳은 게 아닌가?

그야 고통을 받은 것도 자신이고,

피해자도 자신인데,

어째서 저들이 마치 영원에게 선심 쓰듯 놔주겠다고 행동하는 거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도 억울할 거 없잖아. 불쌍한 처지 덕에, 진주양 같은 남자를 잡게 됐으니.’오히려 뻔뻔하게 돌아서는 해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지금은 알 것 같다.

당신들이 보일 반응은 아니잖아.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도 받지 않기로 했다. 백운당을 돌려받을 권리도 포기했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을 떠난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있어?

어떻게.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듯 나를 그렇게…… 그렇게

간단히 버릴 수 있지?

영원이 나가겠다고 하면, 그들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거였다.

버리는 쪽은 내가 되어야 하는 거잖아?

외롭고 쓸쓸하게, 당신들은 그래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떠나는 내 뒷모습을 봐야 하는 거잖아?

매향은 피를 토하듯 영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내 동생이 죽으면서까지 되찾아주려고 했던 그 이름!”“…….”“그래. 넌 신해수가 되어야 해. 그래야 내 동생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게 되니까!”영원이 미동도 없자 매향이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이마를 맞붙였다.

“가지고 싶잖아. 되찾고 싶잖아.”매향이 애원했다.

“빼앗자. 응? 빼앗자.”매향은 일기를 본 직후 이성을 잃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기가 더 안달이 나서 영원을 설득했다.

계모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동생을 죽인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

진주양이라면, 영원이 부탁하면 도와줄 테니까.

고작 몇 달 전이지만 오래전인 듯 아득했다.

언젠가 계모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찾아온 영원에게 주양이 제안했다.

‘당신 손으로 최 사장을 죽이는 것도 별미겠어.’망설이는 그녀에게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다.

‘최 사장을 사랑하나?’계모를 사랑하느냐고? 사랑했지.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줬지.

그러는 만큼 증오가 쌓여갔다.

쏟아부은 마음에 비해 돌아온 건 터무니없는 착취였다. 상대에게 오롯이 빼앗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자기 욕심만 채우는. 계모를 철저하게 응징하고 싶었다.

‘최 사장을 사랑하나?’주양이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계모를 사랑하느냐고? 그래서 죽일 수 없느냐고?

주양은 영원을 굉장히 순진하게 봤다.

그것이 서글펐다. 그렇다.

계모를 사랑했기에……

그렇게 간단히 죽일 수 없었다.

영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안하다는 말엔 아무 효력이 없다.

용서받는 사람에겐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책임을 덜어주고, 용서하는 사람에겐 사죄를 받았다는 위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을 지속적으로 미워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증오하기보다, 빨리 평온을 되찾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용서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뜬구름 같은 게 아닐까.

용서를 해줬지만 뒤가 찝찝하다.

어째서 용서라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왜 하느님은 원수가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내주라고 강요하는 거지?

강요받듯이 용서한 피해지들의 마음 한켠에 불안이 피어오른다.

‘과연 저자의 사과가 진심일까?’‘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용은 아닐까?’‘저 미안함이 언제까지 갈까?’‘앞에서 미안하다 하고 뒤로는 개그프로를 보며 웃고 떠들겠지. 문득 웃음을 되찾은 자신을 느끼고 약간의 미안함이 생기지만, 그래도, 자신은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냐며. 위안을 안주 삼으며 스스로를 그렇게 용서할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속이고 있다.

살인은 법이 허락지 않으니 용서한 척할 뿐이다.

사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새 출발도,미안하다는 사과를 받는 것도 아니다.

보상이었다.

지난날 자신이 입은 손해만큼의 적절한 변상.

자신과 똑같은 고통의 크기가 가해자에게 똑같이 맛보여졌다는 확인.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 위로도 못 된다.

똑같이. 더도 말고 나와 똑같이.

그들에게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영원은 불길이 치솟는 눈앞을 쥐어뜯었다.

아마도 신도 분노 앞에서는 자가당착에 빠진 게 아닐까?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반대쪽 뺨마저 내주라던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 돌려줘라.

원수가 고통에 처절히 몸부림치는 모습이야말로,

이 두 눈으로 확인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사죄이기 때문이었다.

*

영원은 호텔로 돌아왔다.

온몸이 비에 젖어 있었다.

거울을 응시하다 무거운 장식품을 던졌다.

와장창 ?????? !

참을 수 없는 격정이 휩쓸었다. 허억…… 허억……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과거를 잊는다.

아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새 출발도 할 수 없어.’깨진 유리에 영원의 얼굴이 비쳤다.

부서진 자아.

파열된 유리에 자신의 창백한 얼굴이 여러 개로 갈라져 보였다.

매향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너에게는 그 애에게 용서 받을 의무가 있어.’‘…….’‘네 행복은 속죄한 뒤야. 네가 행복해지는 길은, 그 애의 원한을 풀어준 후에나 가능해.’‘…….’‘그전까진 넌 멋대로 그렇게 행복해져선 안 돼.’가시 같은 말을 쏟아붓는 순간에 매향은 울고 있었다.

영원이 눈물에 손을 대려 하자 매향이 진저리쳤다.

매정하게 영원을 떼어버리고 그 힘으로 원망했다.

‘너한테는 복수해야 할 의무가 있어!’‘미안하다. 그 한마디로 퉁 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계모로 인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음으로만 뉘우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잃은 것에 비해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간편했다.

오래전에 한 여자가 죽었다.

자신의 세 치 혀 때문에.

똑바로 마주하지 않으면 새 출발을 한다 해도 지금처럼 과거에 끌려 다닐 거다.

그래서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새 출발을 하려면 이름을 버려야 했다, 내 안에서.

반대로 계모를 미워하기 위해선 이름을 되찾아야 했다.

이름을 되찾든지, 버리든지.

4년 전, 소정의 죽음은 그 양가적인 두 마음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름을 버리고 속죄하는 쪽을 택했지만 알고 있다.

웃기게도 소정의 죽음은 영원에게 새 출발도, 계모를 미워하려는 마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 인간을 죽이고 새 출발을 하려는 것은 모순이다.

한 인간을 죽인 그녀가 계모를 미워할 자격을 갖는 것 또한 모순이다.

어느 쪽이건 ‘너에겐 행복할 권리는 없어.’

소정의 사건은 그런 존재다. 영원은 계모와 다를 바가 없다.

용서를 받는 입장이나 용서를 하는 입장이나 진정성이 의심되는, 아무도 뉘우치지 않는 용서 따위, 그저 자기 편안하기 위한 위안이었다.

매향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렸다.

‘너 때문에, 너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을 너는 풀어줄 의무가 있어. 복수의 끝이 허무하다고 누가 그래.’매향이 영원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런 말은 그 인간들 피로 네 온몸을 적신 뒤에 해도 늦지 않아.’‘…….’‘복수가 허무하다는 건……! 복수를 끝마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야!’‘…….’‘어째서 그 애는 그렇게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네가 죽인 거야.’매향이 울부짖었다.

‘네가 그 애를 죽인 거야!’퍼부어지는 폭언에 영원은 정신이 혼돈스러워졌다.

그 순간 영원이 본 매향은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매향의 물기 어린 눈에 비친 잔상은, 계모에게 제발 사과해달라고 애원하던 자신의 고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발…… 내게 사과해, 줘.’‘…….’‘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흐……! 나한테 왜 그랬어!’매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추궁해야 할 사태의 중심이 영원은 아니라는 것.

죽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사죄를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매향은 누군가 그렇게 시인해주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영원이라 해도.

영원은 이마에 유리 파편을 가져다 댔다.

떨리는 손끝에서 파편이 손쉽게 살갗을 가르고 핏빛 줄이 그어졌다.

이것은 지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는 상처처럼 안일해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수모를 겪으며 살았는지.

이건 절대 지워서는 안 되는, 영원의 피와 살을 이루는 전부였다.

주양이 퇴근했다가 영원을 보고 굳었다.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피로 짓무른 눈가를 영원이 깜박였다.

울먹, 울먹, 주양을 볼 면목이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용서하려고, 잊으려고 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 피 눈물을 이루었다.

영원은 소리도 없이 울고 있었다.

“……그게 잘 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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