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실종 41일째2017.02.19.
-실종 41일째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음성은 마취약같이 느릿느릿 얹어졌다.
장 경감은 기류 하나하나를 읽으며 생각했다.
광기. 광기에 가까운 복수.
그 순간 의식에 초록불이 켜졌다. 정체돼 있던 감각들이 신호정지 상태에서 벼락 치듯 출발했다.
굼뜨던 주양의 음성도 한꺼번에 몰려와, 장 경감을 덮쳤다.
“뭐가 보입니까.”“…….”“저게 뭐 같습니까.”주양은 전망 좋은 자신의 집, 거대한 창 아래를 보며 물어왔다.
깨알 같은 자동차. 그저 사람들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졸개……였습니까?”돌아보지 않는 등을 응시하며 장 경감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대답하시죠.”“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인간의 마음속은 모른다더니.”그래. 모르겠다. 당신의 마음.
“경찰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한테 의뢰한 것도, 경찰에게 신부를 바꾼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신해수가 죽은 채 발견된 것도……. 아주 잠시 깜박했어. 당신이 어떤 남자였는지.”사건을 종결하려고 신해수를 죽인 것이다.
“모두를 갖고 놀았어.” 진주양은 처음부터 장 경감을 신부를 죽일 계획에 이용했다.
경찰들의 주위를 분산시키는 졸개 역할.
현기영의 라이벌 의식을 자극해 장 경감 때문에 사건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수사 내내 그가 보여 왔던 수상한 행동들.
비인간적일 정도로의 침착함과 냉정함.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남자지.” 누가 봐도 범인이다.
장 경감은 그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거다.
그리고 진주양은 저렇듯 언제나 깊고 모호한, 알 수 없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장 경감은 흠칫, 물러섰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맞받아쳐오는 물음.
진주양이 유리에 몸을 느슨하게 기대었다.
너무도 손쉽게, 성가시다는 태도로 장 경감을 발아래에 둔다.
“덤빌 건가.”차갑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지만 분명 장 경감이 본 것은 진심의 한 조각이었다.
꽤 친해졌다고 방심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했던 동지라고. 서로를 이해한다고 여겼는데.
그 순간 주양의 입술 끝이 치솟았다.
장 경감의 믿음 어린 표정을 읽은 듯, 철저하게 부수었다.
“우리가, 친구는 아니잖아요?”……졸개였다.
“친구가 되기엔 우린 서로를 너무 모르지.”누구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섣불리 장담해선 안 된다.
신해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양이 부인했다면 장 경감은 믿었을까?
그것을 주양은 복습시켜주는 것이다.
*
‘그래도, 변명이란 게 있잖아. 사람을 죽여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는데. 설득하면 혹시 아나? 내가 납득해줄 수도…….’장 경감은 쫓겨나기 직전까지 끈질기게 주양을 붙들었다.
주양이 손가락을 맞부딪히자 검은 하수인들이 다가왔다.
이만 나가주실까? 하는 위압적으로 잔뜩 힘을 준 몸뚱이들이 장 경감을 에워쌌다.
장 경감이 이를 악물자,
‘다음에 올 땐 나를 감동시킬 정도의 수준은 탑재하고 와요. 그땐 한 번 고려해보죠. 설득.’주양이 돌아서 복도 어둠으로 사라졌다.
장 경감은 도로 변에서 54층 타워를 올려다봤다.
그는 지금 신영원의 복수극을 하고 있는 건가?
이것도 신부의 복수극인가? 여전히 복수의 연장선인 거야?
정말 신부가 집으로 귀가했다면 이 모든 게 그녀의 복수극이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신영원의 복수극이었다면,
김 회장의 죽음은 또 뭐지?
유선민, 매향은 어째서 김 회장을 살해했을까?
진주양이 명령해서?
아니야. 매향은 진주양의 사람이라기보단 신영원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영원을 위해서 일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회장을 죽이는 것이 왜 신영원을 위한 일인 거지?
신영원과 김 회장 사이에 뭔가 있었던 걸까?
김 회장은 당시 이중모를 협박하기 위해 백운당에서 죽은 여종업원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불현듯 잊고 있던 것이 번뜩였다.
백운당 여종업원 사망 날짜와, 5년 전 신영원이 자살하려다 주양을 만난 시기가 비슷하다.
여종업원이 죽은 것이 5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며칠 전.
그리고 신영원이 자살을 기도한 것은 크리스마스이브 날.
진주양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종업원의 죽음과 신영원의 자살시도엔 연관성이 있다.
그래. 일기장의 뒷부분.
<그리고 내가 22살이 된 올해였다. 내 인생에 반환점을 가져다준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일기에서 언급하는 ‘그 사람’이 진주양일 거라고 착각했다.
신영원이 진주양을 만나서 어떻게 둘이 엮이게 되었는지, 연애내용이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진주양이 아니다.
일기는 5년 전 신영원이 자살을 결심하고 쓴 유서다.
그러니까 이 일기는 진주양을 만나기 전에 쓴 것이었다.
‘그 사람’을 만난 22살과 진주양을 만난 22살 크리스마스 겨울 사이엔 어떤 공백이 있었다.
그 안에 매향이 대산 김 회장을 살해한 이유와 신영원이 왜 자살하려 했는지 그 이유가 들어 있다.
장 경감은 외투 안주머니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일기장을 펼쳤다.
내용을 읽어갈수록 안색이 굳어갔다.
*
장 경감은 늦은 밤이 되서야 관할 경찰서를 나왔다.
5년 전, <백운당 여종업원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이미 딴 곳으로 발령이 난 상태였지만 사건파일은 보존되고 있었다.
<여종업원은 실족사 한 것으로 추정됨. 그녀의 혈액에서 마약류 GHB가 검출. 사망 시각 당일 23시쯤. 최초 신고자 신영원……>
여종업원이 죽은 걸 최초 신고한 사람은 ‘신영원’이었다.
사건 파일에는 여종업원의 전날 행적을 기록해놨다.
여종업원은 전날 경찰서에 가서 학대신고를 했다. 그 대상이 무려 백운당 최혜란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1시간도 안 되서 해프닝에 그치고, 여종업원은 당일 백운당 연못에서 실족사 했다.
실족사.
최혜란을 학대로 신고한 뒤 곧바로.
시신을 처리한 것은 최혜란과 대산 김 회장이었다.
시골 마을 경찰은 유착관계가 심했다. 시신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돈을 먹이고 사건을 은폐한 것이다.
최혜란은 마치 여종업원이 이중모 때문에 죽은 것처럼 꾸몄다.
여종업원의 죽음은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
신영원과 연관이 된 타살이었다.
여종업원은 신영원이 최혜란에게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학대를 알았다면, 어쩌면 아이를 바꿔 키운 사실도 알았던 게 아니었을까?
여종업원이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가 죽임을 당한 거라면, 그래서 신영원이 죄책감에 자살하려던 거라면…….
여종업원이 자신을 도우려다가 살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영원은 굉장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여종업원이 죽은 며칠 뒤, 신영원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살시도를 했다.
신영원은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
신영원은 결혼식장에서 돌연 사라졌다.
그리고 신영원의 친구인 매향은 여종업원 죽음에 관련된 김 회장을 살해했다.
이것은 신해수를 향한 복수가 아니었다.
계모. 최혜란을 향한 핏빛 복수극이었다.
최혜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망가트리는.
강호운. 신해수. 그 백운당마저도.
밤새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장 경감은 흥신소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홀연히 담배를 피우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곧장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시체, 사실 영원이가 아니야. 해수야.” 그 말에 여자를 알아봤다.
“전직이 경찰이라고 했지. 자수하면 정상참작 돼서 형량이 좀 덜어지나?”백운당 첫째 딸, 성원이 접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살아남기 위해 자매를 정신병원에 넣는 것을 묵인한 여자.
여동생이 죽고 나니 상황 파악이 된 걸까.
아님, 죄책감을 좀 덜어보려고 하는 건가.
그런데 그 이유 역시 자신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기 위해서였다.
정상참작이라니. 동생이 죽었는데.
장 경감이 경멸하듯 성원에게 등을 돌리는 그때였다.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고백.
“해수를 죽인 건 나야.”타들어간 담뱃재가 부스러졌다.
“내가 죽게 했어.”최혜란과 신해수.
성원은 두 모녀의 지성과 미모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실패작 같은 여자였다.
*
-첫째 딸의 진술 내용
: 경찰서까지 오시는 길이 불편하진 않으셨습니까? 신성원 씨.
: 유쾌하진 않군요. 형사님. 취조는 빨리 끝냈으면 해요.
: 신해수 씨가 결혼식 직전에 실종된 것 아시죠?
: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 신부가 실종되던 시각 무얼 하셨습니까?
: 저는 신부의 언니예요. 당연히 결혼을 축하하러 참석했었죠. 분명히 신부 대기실에 있는 걸 보고 왔는데, 실종되었다니 충격입니다. (의혹 어린 눈길로) 누가 ‘납치’를 한 건가요?
: 아직 수사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평소 신해수 씨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요?
: 원한이요? (웃음) 해수는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는 아이였어요.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상냥했고 똑똑하고, 모두가 그 애를 칭찬했어요. 하긴, 그런 해수를 질투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수 있겠죠.
: 질투?
: 아,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별 시답잖은 이야기예요.
: 혹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여동생, 신영원 씨를 말하는 건가요?
: (머뭇거리다가) 동생을 욕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네요. 아, 우리가 의붓자매들이란 건 아시죠? 우리는 원래 두 자매에서 세 자매가 되었어요. 그래요. ‘세 자매.’ 자매라는 건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죠.
정말 복잡 미묘한 관계가 바로 ‘자매’예요. 제일 먼저 축하해주다가도 누구보다 배 아파하는. 상상이 가세요? 나보다 더 월등한 자매를 지켜봐야 하는 삶이 어떤 건지. 사실 난 그 애가 이해가 가기도 해요.
: 더 자세히 말해줘 봐요.
: 영원이는 해수와는 정반대였어요. 모든 사람이 그 애를 싫어했어요. 음침하고 괴팍하고, 사람을 끌어 모으는 해수와 달리 영원이는 사교적이지 못했어요. 해수와 모든 면에서 비교되었죠. 그 애는 해수를 미워했어요. 해수를 증오했어요.
: (웃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언니 분이 더 신해수 씨를 미워한 것 같은데요.
: (침묵) ……말했잖아요. 난 영원이의 심정을 이해했다고.
*
장 경감이 성원을 응시했다.
여자 손끝에서 담배가 타들어갔다.
그녀는 가늘게 눈을 뜨며 그날을 회상했다.
아마 바닥에 흐른 기름에 담배 불씨가 날아간 듯했다. 분명 다 피운 담배를 지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안 되서 불이 번졌다.
“고의가 아니었어. 담배를 피운다는 게 그만 컨테이너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됐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왜 불을 마귀에 비유하며 ‘화마’라고 일컫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자신도 악마가 된 것이리라.
“악마 같더란 말이야. 그 순간엔 이성도 인간성도 다 상실했어. 그저 살겠다는 본능뿐이었어.”해수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성원이 문을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양 비서에게 넘겨야 하는데 혹여 밤새 말도 없이 사라지면 곤란하니까.
인간이란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가.
담배를 입술에 가져다대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해수를 죽인 것은 담배가 아니었다. 인간의 추악한 마음이었다.
“당신…… 복수에 미친 인간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알아?”성원은 한때 해수를 부러울 만큼 질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멸했다.
남의 눈물과 고통으로 쌓아올린 영광 따위.
그런 주제에 항상 저는 고고한 척 나를 업신여겼지.
나를 속물인양, 진짜 속물이 누군데?
인간의 민낯은 추악할 뿐이다.
성원은 해수를 양 비서에게 넘기려고 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뒤늦게 혜란이 안에서 해수를 꺼냈지만 이미 죽어가고 있던 상태였다.
직원들에게 해수를 들키지 않았다.
가게는 영업을 중단했다.
화재를 탓으로 돌렸지만 원인은 최혜란의 붕괴였다.
“제정신이 아니었어. 썩어가는 시신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눕혀놓고 살아 있는 양 해수를 주무르고 물을 먹이려 했다.
분명 죽었는데, 온기가 식어 파래지고 있는데,
딸이…… 해수 하나는 아니잖아! 나도 있는데.
해수에게 모든 기대를 쏟아부은 탓이다.
해수가 죽으니까 자신의 꿈마저 몰락한 기분이 드는가? 꼴좋다.
성원은 혜란을 실컷 비웃어주었다.
얘기를 듣다가 장 경감은 멈칫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다구.” 성원이 괴로운 듯 입술을 물었다.
장녀지만 엄마의 관심과 기대에서 멀어져서 살았다. 공부도 못했고, 손재주도 나빴고, 얼굴도 못생겼다. 할 줄 아는 것은 돈 쓰는 재주뿐이다.
시작부터 울퉁불퉁 꼬일 성격일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성원은 영원을 미워했다.
해수를 대놓고 질투하고, 한때 혜란의 사랑을 미련스럽게 갈구했던 영원이 그래서 싫었다.
구질구질해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닌가. 치가 떨리는 계집을 자신의 손으로 구하다니.
“그날 불이 나지 않았으면 영원은 죽었겠지.”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해수는 영원을 죽이겠다고 복수를 다짐했다.
해수는 영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죽였을 거다.
분명 죽였다.
누가 죽든 상관없으나 영원이 잘못되면 진주영이 가만히 있을까?
몰살이다. 몰살.
그즈음 호운이 찾아왔다.
해수를 탈출시킨 게 호운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됐다.
호운은 해수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죽은 걸 알고 굉장히 당황해했다.
뭔가 일이 틀어졌다.
호운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걸 엿들었다.
어처구니없는 해수의 죽음.
“시신을 계속 집에 둘 수가 없었어.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의심할 테니까. 호운이 시신을 수거해갔어.” 성원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장 경감은 턱을 문질렀다.
탑차에 시신을 넣은 것은 강호운이었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줘 밀항시간을 늘리려고 그 시신을 신영원으로 위장했다. 어쨌거나 신원을 판독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때 영원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하지만 강호운의 마음이 바뀌면서 모든 게 꼬인 거야.
신영원은 원래라면 주양에게 돌아가야 했다.
진주양은 왜 신해수를 마치 자신이 죽인 것처럼 말했지?
아니. 자신이 죽였다고 말한 적이 없다.
믿어주지 않은 건 장 경감이었다.
‘친구가 되기엔 우린 서로를 너무 모르지.’진주양은 그를 버린 것이다.
인간의 간사함을 경멸한 것이다.
장 경감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래서, 진주양은 신영원을 찾아낸 건가?
성원이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해수 시체가 발견되고서 진주양이 날 찾아왔지. 우리가 해수를 숨겨주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었어.”“신해수의 위치를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고?”그럴 리가. 그는 신해수를 죽이려고……
“몰랐을 리가 없잖아. 해수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해서 갈 데가 집밖에 더 있겠어? 처음엔 죽이려고 했던 거 같아. 해수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사건을 끝내려고. 근데 어째서인지 생각이 바뀌었어.”“왜 바뀌었지?”“내 생각인데. 배후를 알아낸 것 같아. 호운 뒤에 있는 배후. 우리도 호운이 영원을 데리고 있는 줄 몰랐어. 말해주지 않았으니까.”강호운 뒤에 또 다른 공범이 있다는 것은 장 경감도 의심한 바였다.
진두영.
“진주양, 아직 신부를 찾고 있는 것 같아.”그제야 장 경감은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정리됐다.
진주양은 아직 신영원을 찾. 지. 못. 했. 다.
진주양은 신해수가 어디에 숨어 있고,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신해수가 백운당 화재로 죽었다는 것도 미리 전해 들었겠지.
강호운이 그 시신을 처리한 것도.
그래서 강호운이 덫을 놓은 시신이 발견됐을 때 주양은 그게 영원의 시신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어.
머리 좋게 역이용한 거야.
어차피 죽은 시체, 신해수를 영원으로 둔갑시키고 사건을 종결시킨 거지.
강호운이 혼수상태인 지금, 신영원은 다른 누군가가 데리고 있다.
신영원은 정말 납치가 되긴 한 것이다.
성원의 말대로 진주양이 사건의 배후를 알아냈다면, 지금 치밀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다.
추측하건데, 진주양은 사건을 종결시키려 하고 있고, 납치 배후는 이 사건을 키우려 하고 있다.
강호운에게도 신해수의 죽음은 계획에 없던 사고였다.
어쩌면 강호운은 전화 통화를 한 그 ‘납치 배후’에게 신해수를 데려가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대가로 밀항의 도움을 약속 받은 것이다.
납치 배후는, 가짜 신부 스캔들을 온 세상에 까발려서 주양을 흠집을 내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납치 배후가 진두영이라는 건 너무 상식적이고 뻔해.’ 범인을 아는데 진주양이 신부를 못 찾아서 쩔쩔맬 리가 없다.
배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할, 주양의 수사망을 벗어난 다른 인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주양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짜 신부의 내막을 전부 다 상세히 알고 있던 인물.
“매향. 그년이 나타나고 모든 게 꼬였어.”장 경감은 멈칫했다.
“몰랐어? 시체가 발견되자마자 숙부 쪽으로 갈아탔다구. 지금 진주양의 사람이 아냐.”매향, 유선민……?
“하지만 그 여잔 진주양의 심복…….” 매향은 신영원의 편을 자처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양이 믿고 그녀에게 일을 맡겼다.
영원을 누구보다 끔찍이 여기는 여자니까.
영원의 복수를 도와준 친구.
김 회장을 살해하면서까지 영원에게 헌신한 친구.
성원이 앙심을 품고 거칠게 말했다.
“기분 나쁘다고. 해수는 그년을 무척 싫어했지. 속을 알 수가 없는 타입이긴 했어. 누구를 닮았어. 아, 그래. 그 남자…… 진주양처럼.”누구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진심으로 말하기 전까진 섣불리 장담해선 안 된다.
열 길 물속을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을 장담할 수 없다.
의심하고 의심하라.
그러나 그러는 사이 미처 지켜야 할 것들은 떠나보내게 되고 만다.
의심 역시 장담의 한 종류다.
주양이 신해수를 죽였다고. 어느 순간 자신은 장담해버리고 놓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땐 몰랐는데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어서 백운당에 온 거 같아.”성원이 장 경감에게 똑바로 시선을 박았다.
장 경감은 불길해졌다.
“생각해보니까 그년이 영원이를 부추겼던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