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64화 (64/83)
  • 64화. 냄새가 난다2017.02.12.

    냄새는 이제 백운당과 한 몸이 된 듯했다.

    매캐한 탄내가 가게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기와집, 마루, 기둥,

    곳곳에 스며 떼려야 뗄 수 없게 돼버렸다.

    성원은 백운당을 감싼 탄내를 애써 담배 냄새로 지워버렸다.

    “후…….”하지만 냄새는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그을음은 상흔처럼 깊게 새겨져,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성원은 한 모금 연기를 마시고 손끝을 떨었다.

    오래전엔 이 집에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이 집의 딸이 되려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이 집을 차지하기 위해.

    헌데, 지금은 이 백운당이 끔찍했다.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백운당은 저주에 걸렸다.

    성원도 언젠가 집어삼켜질 것이다.

    *

    -실종 39일째

    “정말…… 신영원이 맞다고?”“100퍼센트 신영원이야, 유전자의 경우 오류가 날 수 있지만 치아 구조는 불가능해. 지구상에 이런 구조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니까.”현기영이 말하며 소파 테이블로 감식 결과서를 던졌다.

    신부가 아닐 거라고 믿었다.

    강호운은 분명 신부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어. 저 시체는 죽은 지 꽤 된 시체잖아.

    장 경감은 애써 믿지 않고 부정했다.

    하지만 결과로 나왔다.

    <영구치와 치아 마모 정도를 따져 사체의 연령 추정대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으로 사료된다.

    부패가 심해서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따랐으나, 다행히 치과 기록이 남아 대조한 결과, 두 기록이 100% 정확히 일치한 것으로 결과 나옴. DNA fingerprinting 역시 신영원으로 일치함.>

    *

    -실종 41일째

    “수사를 종결하겠다니요?”장 경감은 어이가 없어 주양에게 소리쳤다.

    담당 검사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오는 길이었다. 검사도 동의했다고.

    이미 검사지휘서가 경찰청 쪽에 전달됐다.

    신영원의 장례 준비가 신속하게 밟아진다는 것이었다.

    주양은 담담히 말했다.

    “현 과장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치아로도 충분히 신원 확인이 끝났다고 하더군요.”“부검 결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사인도 알지 않고 이대로 끝낸다고요?”“땡볕에서 오래 방치되었습니다. 죽어서도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편안하게 해주고 싶습니다.”“진 이사님!”“그게 뭐가 중요합니까.”낮게 까는 어조에 장 경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미 그 시체가 영원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그녀가 죽은 것엔 변함이 없는데.

    주양은 지친 목소리로 돌아섰다.

    “그만하고 싶군요. 곧 수사 중단 통보가 갈 겁니다. 당신도 할 일은 끝났습니다.”장 경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정말, 이대로 이렇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지?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억누를 수가 있지?

    “진두영 사장을 의심하고 계십니까?”장 경감이 복도에 대고 소리쳤다.

    주양은 뒷모습만 보였다.

    강호운은 신부납치 사건의 주범이 아니었다. 그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강호운의 대포폰 통화기록을 보니, 누군가와 주기적으로 연락한 것이 나왔다.

    일을 벌이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강호운은 방랑자였다. 전국을 전전하며 몸 쓰는 일로 하루 벌어 먹고살았다.

    신영원의 계좌 역시 경찰들이 내내 감시하고 있었다. 자금운용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브로커들은 밀항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돈을 꽤 많이 요구했다.

    요구를 충당하기에 호운은 주머니사정이 나빴다.

    배후에 분명 누가 더 있을 게 분명하다고 짐작했다.

    장 경감이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실종 수사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가 있어요. 생각보다 인간은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신영원 씨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진 이사님 생각보다 많습니다.”“…….”“잊었습니까? 신영원 씨가 망가트린 사람들.”진주양이 장 경감을 돌아봤다.

    이 모든 진실을 아는 동시에 신영원을 죽일 동기가 확실한 자.

    ………내가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그년을 찾아서 죽여야 해.

    “병원에서 탈출한 신해수 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괴괴한 정적이 방 안을 휩쌌다.

    그들이 아주 잠시 잊고 있던 존재.

    병원에게 탈출한 후 신해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

    어두운 밤, 최혜란은 밤이슬을 밟고 있었다.

    성원은 밤늦게까지 클럽을 쏘다니다가 모친을 발견하고 의아함에 뒤를 밟았다.

    혜란은 음식이 담긴 쟁반과 생수를 들고 있었다.

    백운당과 이어지는 쪽문을 넘어가는 뒷모습을 보다 성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이 밤중에 저긴 왜 들어가는 거지?

    수상하게 주변을 살핀 최혜란은 뒷산 식재료 저장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최혜란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원은 쇠창살이 쳐진 컨테이너 창문으로 몰래 안을 들여다봤다.

    ‘그것’은 담요에 꽁꽁 싸매어져 있었다.

    “어서 먹어.”최혜란이 수저를 떠밀자 ‘그것’ 한참 배를 굶주렸는지 허겁지검 국밥을 삼켰다.

    귀신같은 몰골을 한 ‘그것’은 해수였다.

    ‘5호실이 비었습니다. 아는 바가 있습니까?’어제 양 비서가 성원을 찾아왔다. 몇 가지를 캐물었다. 해수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고 했다.

    성원은 필사적으로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숨겨주고 있던 것이다.

    죽임 당할 거다, 죽임 당할 거다. 그 남자가 사실을 알면 다 죽을 거다.

    해수가 기어이 자신과 엄마까지 죽이려고 여길 찾아온 거다.

    성원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양 비서의 단축번호를 누르려는 그때였다.

    “죽여버릴 거야.”독이 바짝 오른 목소리에 성원의 손끝에 차가워졌다.

    해수는 생수병을 손으로 우그러트렸다. 신영원을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야.

    음성에 서린 서늘한 한기가 마음 깊숙한 곳까지 훑고 지나갔다.

    모든 게 달라졌다.

    영원이 두 번째 가출을 끝내고 온 뒤부터.

    희번덕, 해수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림자는…… 그림자로만 남아야지.” “…….”“감히 그림자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 안 그래?”신해수라는 이름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승자의 것이었다.

    *

    장 경감은 형사과를 지나다가 부검의와 마주쳤다.

    “부검소견서 받아.” 과거 아는 부검의였기에 그녀가 먼저 장 경감에게 인사했다. 짧게 면담을 나누다가 장 경감에게 이상한 점을 말했다.

    “시신이 발견된 차량이 청과물 탑차라고 했나?”“왜, 누이 뭐가 안 좋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감식반한테서 보고 받은 사인과는 좀 다르길래.” 현장감식반은 그녀를 일반 질식사로 단정 지었다.

    컨테이너의 높은 온도에 방치되다가 죽은 게 아닌가?

    “내가 간소하게 혈액샘플을 채취했어. 사인이 일산화탄소 중독인 것 같아.”“가스중독?”“부패가 심하긴 하지만 피가 선홍빛깔을 띠고 무엇보다 일산화-헤모글로빈의 혈중 수치도 굉장히 높아, 코 상피 세포에서 그을음 성분이 검출됐어.”  탑차에 화재가 난 흔적은 없었다. 그을음이 나올 수가 없다.

    “먼지 아냐?”“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게 기도에서도 나오잖아. 시신이 부패가 안 됐으면 더 확실했을 텐데. 아마 사망자는 죽기 직전 화재 때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셨을 거야. 폐와 기도에 큰 화상을 입은 게 분명해. 직접적으로 매연에 질식했다기보단, 매연의 열기에 1차적으로 호흡기에 화상을 입었고, 그 후에 1시간 정도는 살아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질식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커.”“그게 무슨…….”“내 소견은 다른 곳에서 화재가 있었고, 차량으로 옮겨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단순 질식이라기보단 화재로 인한 질식사에 가까워.”그녀가 그럼 수고하라며 장 경감에게 어깨를 때려주고 떠났다.

    *

    해님이 붉은 속살이 드러냈다.

    장 경감이 백운당에 차를 세웠을 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어갔다.

    그을음.

    그것은 불에 새카맣게 그슬린 수상한 냄새였다.

    매캐하면서, 타고 남은 잿가루가 공기 중에 그대로 부유하는 것 같은.

    냄새는 백운당 초입부터 불길하게 흘러들었다.

    흥신소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신해수는 종적을 감췄다.

    여자가 갈 데는 모친인 최혜란이 있는 백운당뿐이었을 것이다.

    백운당 내에 신해수가 숨어 있을 만한 장소가 없나 유심히 살피는데 그 그슬린 냄새가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이 냄새가 뭘까.’강호운을 백운당에서 마주쳤던 그날도 났었다. 이 냄새.

    수상한 탄내……

    최혜란은 그 후로 두문불출이었다. 칩거 중이라 했다.

    “누구세요?”백운당에 아직 직원이 남아 있었다.

    휴업 중이긴 하지만 몇천 평 되는 가게를 관리해야 할 사람이 필요할 테니까.

    여직원은 장 경감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 경감이 코끝을 문지르며 주변을 살폈다.

    “근데 아까서부터 이 냄새가 뭐죠?”“십여 일 전에 작게 화재가 났어요.”“화재?”백문이 불여일견.

    여직원이 백운당 뒤편 창고 건물로 그를 데려갔다.

    그중 한 컨테이너가 새까맣게 소진돼 있었다.

    “어떤 인간이 담배를 피웠는지, 불씨가 남아서 창고까지 옮겨 붙었다니까요.” 여직원이 씩씩대며 말을 보태었다.

    “하필 기름 창고 옆에서 피울 건 뭐람. 빨리 끄긴 했는데, 사람이 안에 없는 게 망정이지. 통닭구이가 될 뻔했어요. 잡히기만 해봐라.”정신이 멍했다.

    여종업원이 떠나고 장 경감은 화재가 났던 컨테이너로 다가갔다.

    풀숲에서부터 번진 불길이 컨테이너까지 이어진 것이 보였다.

    그래도 불을 빨리 진화했는지 컨테이너의 반쪽은 비교적 멀쩡했다.

    그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1.5L 생수병을 주웠다.

    “사람이 이곳에 있었어.”직원들의 왕래가 적고,

    숲에 가려져 있어 몸을 숨기기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가령 최혜란이 도망 쳐나온 신해수를 숨겨주기에.

    백운당, 화재.

    불현듯 부검의와 나눈 얘기가 떠올랐다.

    ‘아마 사망자는 죽기 직전 화재 때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셨을 거야. 폐와 기도에 큰 화상을 입은 게 분명해. 직접적으로 매연에 질식했다기보단, 매연의 열기에 1차적으로 호흡기에 화상을 입었고, 그 후에 1시간 정도는 살아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질식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커.’‘단순 질식이라기 보단 화재로 인한 질식사에 가까워.’‘내 소견은 다른 곳에서 화재가 있었고, 차량으로 옮겨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잠깐.

    유전자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었지?

    DNA fingerprinting.

    신원 확인은 보통 유전자 감식으로 하게 되는데 가족의 유전자가 있어야 했다.

    가족의 유전자와 시신의 유전자를 분석해 일치하면 실종자의 신원을 확정할 수 있다.

    경찰은 신영원을 아직 최혜란의 친딸로 알고 있다. 호적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최혜란의 DNA와 대조해 결과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영원과 최혜란의 유전자가 ‘일치’했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나와야 정상 아닌가?

    만약 시신이 최혜란과 유전자 대조에서 일치한다면, 그것은 친자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신이 최혜란의 자식이어야 한다. 신영원은 최혜란의 친자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검대에 올랐던 그 시신은……

    아냐. 아냐. 비약이야.

    치아감식 결과 신영원과 일치했어.

    유전자는 오류가 날 수 있어도 치아는 불가능해.

    치아 감식을 했다면 사체의 치아 구조와 비교할 치과 진료 기록이 있을 터였다.

    영원이 치과 진료를 받았을 당시 찍혔던 것이다.

    시신이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일치할 수가 없다.

    치아의 모양과 위치, 지구상에서 그 사람만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구조니까.

    아들의 죽음과 연달아 이어진 신영원의 죽음.

    너무도 처참했던 시신을 본 탓인지 판단이 많이 흐려졌다.

    매미가 그악스럽게 울어재꼈다.

    비지땀에 번들거리는 목덜미를 닦는 그때, 장 경감의 시야에 창고에 구겨져 방치된 현수막이 들어왔다.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전에 백운당 광고를 위해 쓰였던 것인 듯 때가 타고 더러웠다.

    문구 아래에 한복을 입은 우아한 자태의 모델이 낯익었다.

    저 여자………

    그가 현수막을 들고 서둘러 식당으로 달려갔다.

    여직원도 마지막으로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현수막에 인쇄된 여자 모델을 장 경감이 가리켰다.

    “이 여자, 이 여자 누굽니까?”하고 묻는 그때였다.

    <00리 인근에서 시체가 방치된 탑차 한 대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이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던 중 한신그룹 며느리 신 모 씨 여동생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부검 결과 사인은 화재로 인한 질식사로 판명됐습니다. 신 씨는 작년 말부터 정신질환 문제로 파주인근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던 중으로, 병원에 있었던 화재로 탈출해 행방불명 된 상태였습니다. 신 씨의 시신이 발견된 차량은 병원에 청과물을 대주던 탑차로, 경찰은 신 씨가 대피하던 도중 탑차에 숨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질식사를 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탑차 기사를 상대로 현재 경찰은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TV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뉴스 속보는 신영원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화재로 인한 질식사.

    검시관이 말한 그대로가 전해지고 있었다.

    시체는 부패가 심했지만 외부적으로 훼손된 흔적은 없었다. 깨끗한 상태였다.

    현장감식반은 사인을 단순질식으로 예상했지만 부검 결과, 화재로 인한 질식사로 판명 났다.

    그러나 탑차 어디에도 화재의 흔적은 없다.

    추측 컨데, 시신은 1차 화재 장소에서 변을 당한 뒤 탑차로 옮겨진 것이리라. 부검의의 추측이 맞았다.

    그러나, 장 경감은 알고 있었다.

    정신병원 화재로 죽었을 리가 없다.

    정신병원에 있던 것은 영원이 아닌 해수 아니었나.

    저 시신이 신해수라고 해도 그녀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뒤에 흥신소로 자신을 찾아왔다.

    정신병원 화재로 누구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죽었다면, 백운당 화재가 더 일리가 있지 않나. 시간으로 따져 봐도…….

    경찰이 착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

    절묘한 조작이었다.

    왜 저렇게 거짓으로 뉴스를 흘리는 거지?

    게다가 한신그룹에서 모든 언론사를 틀어막고 있었다.

    어떻게 기사가 나가는 거야? 비밀유지의 서약이 깨진 건가?

    그 와중에 현수막을 들여다보던 여직원이 답했다.

    “매향이 모르세요? 백운당 대표 기생인데.”매향……?

    “유선민이 아니고?”장 경감이 다시 묻자 여직원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유선민? 본명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

    “영원이가 병원에 입원한 후 매향이도 가게를 관뒀어요. 두 사람이 친했거든요. 매향이가 명문대 법대 출신인데 왜 이런 데서 기생 일을 하냐고요? 어머, 세상 물정 모르시네. 여기 기생들은 웬만한 대학 간판 아니곤 명함도 못 내밀어요. 뭐 매향이 그중에서도 특출 나긴 했었지만.”장 경감은 가게를 섬뜩한 얼굴로 나왔다.

    매향이 신부의 수행비서가 된 이유를 깨달았다.

    매향, 유선민은 영원을 도와 가짜 신부의 연극을 완성한 것이다.

    지금 전파를 타는 뉴스 역시 진주양이 허락한 일인 것이다.

    뉴스에 사건을 내보내라고 진주양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뭔가…… 뭔가 아직 더 있어……

    진주양이 아직 내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더 있어.

    ‘세상한테서 부정당한 여자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던 남자의 사랑이라. 그런 사랑은 도대체 어떤 형태를 띨 수 있을까.’노 집사의 물음이 자나간 자리에 주양의 말이 차례로 스쳤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자매와 사귀는 사이였어요.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죠. 그래서 신부를 바꾸자고 생각했어요.’‘어차피 신해수라는 이름은 원래 그녀의 것이었으니까, 되찾는 것뿐이라고.’되. 찾. 는. 것. 뿐. 이. 다.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당연한 어조였다.

    장 경감은 진주양이 말해준 과거 진실에 이상함을 느꼈다.

    진주양이다.

    진주양이 마음먹은 일인데 그렇게 시시하기만 했을까?

    최혜란 모녀 역시 그렇다.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텐데.

    본부로 찾아가니 수사팀은 이미 짐을 싸고 있었다. 해산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신부가 돌아왔대.”현기영의 말에 장 경감은 굳었다.

    현기영 역시 어처구니없는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현재 신혼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대. 윗선에서 수사 중단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어. 신랑한테 아무 얘기 못 들었어?” 그런 얘가 못 들었다. 신부가 돌아왔다니……

    “납치범은 혼수상태고, 신부는 갇혀 있다가 무사히 탈출해서 신랑의 품으로 돌아왔다. 끝이지.”현기영의 말대로 신부가 돌아왔으니 사건은 종료였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시신은 바꿔치기 됐다.

    탑차의 시신은 신영원이 아니다. 신해수였다.

    정신병원에 처박혀 있던 신해수는 신영원으로 죽었다.

    신해수가 신영원으로 죽어줬으니, 영원은 비로소 이제 진짜가 될 수 있었다.

    가짜 신부가 아닌 진짜 신부가…….

    ‘그녀를 찾으면 어쩔 겁니까.’빈소에서 장 경감의 물음에 주양은 이렇게 답했다.

    ‘제대로 된 결혼식을 다시 올릴 겁니다.’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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