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60화 (60/83)

60화. 실종 33일째 <2>2017.01.29.

호운은 미끄러지려는 권총을 힘주어 쥐었다.

핏물이 총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내 마음은 죄책감일까, 한풀이일까. 내가 못 다한 걸 대신 그 애를 통해 보상 받고 싶었던 걸까.”호운은 딱딱한 총구를 주양의 뒤통수에 바싹 붙인 채 말했다.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그가 목소리를 떨었다.

“나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어떤 형태의 사랑이건, 그 애가 행복했으면 하는 건 사랑과 원리가 같으니까.”그 애가 행복했으면 싶었다. 나도…… 그 애도 유년 시절이 외롭고 불행했으니까.

한 인간 때문에 우리는 똑같이 불행해야 했고,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다.

아버지는 호운을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여기며 죽는 날까지 냉대했다.

호운은 외로움 속에 구박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죽고 마침내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다시 또 다른 가장을 파탄내고 그 집 안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체성에 관한 딜레마는 끝까지 호운을 괴롭혔다.

자신은 어디서부터 났는가. 어디에 뿌리를 둬야 하는가.

그들은 사랑을 했고, 멋대로 호운을 만들어놨지만 누구도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았다.

그때 그 애를 만났다.

자신보다 더 비참한 녀석.

녀석은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인간적으로 상종 못 할 질 나쁜 부류였다.

어미가 아니라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타락했다.

혜란은 그 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래서 그 애와 결혼할 남자만큼은 평범한 남자이기를 바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평탄하게 자란 남자.

그 애의 고통을 감싸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어째서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이런 남자인가.

왜 이런 남자에게서 위안을 얻으려 했는가.

자신보다…… 더 내면이 황량한 인간을.

그 애는 위로받는 존재여야 했다. 누구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침묵이 흘렀다.

“왜 돌아온 거야.”주양이 등 뒤에 있는 호운에게 물었다.

“밥을 숟가락으로 떠 먹여줘도 못 받아먹나.” 기껏 영원이 자신을 떠나줬는데, 너에게 가줬는데 왜 다시 돌려주려 하는가.

호운이 총구를 더욱 바싹 붙였다.

“너야말로 왜 안 묻는 거지. 아무것도.”“…….”“신부에 대해서 한 번도 묻지 않고 있잖아.”“…….”“신부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아?”신부를 정말 찾고 싶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으면 곧바로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말해줄 수 있다는 데도. 그렇게 애타게 찾아댔으면서도.

주양은 힘겹게 입을 떼었다.

“신부는, 잘 있나?”웃긴 남자였다. 그러나 주양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호운은 그가 잘난 척하는 게 싫었다.

“넌 그 애를 행복하게 할 수 없어.”“…….”“넌, 누굴 행복하게 할 재주가 없어.”하지만 그 말에 주양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양이 아니고 영원을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호운이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주양이 말했다.

“넌 좋은 사람이야.”의외의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야.”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감히 넘보지 말라는 위협.

호운이 허탈하게 웃는 그때였다.

탕! 총알이 갑판을 튕겨나갔다.

등 뒤였다.

일순 모든 동작이 정지했다.

군화 소리가 무더기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12층 갑판을 중심으로 14층 일대를 SWAT이 포위했다.

이미 위층과 배 반대편에 자리 잡은 저격수들은 MP5 기관단총을 호운에게 조준했다.

그의 몸 곳곳에 빨간 레이저 포인트가 찍혔다.

타격대가 속속들이 자리를 잡았다.

순식간에 퇴로가 차단됐다. 호운이 포위됐다.

호운은 이 상황을 설명하라는 듯 주양을 돌아봤다.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주양은 무표정했다. 그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호운의 눈에 배신감이 들어찼다.

“……날 잡으려는 함정이었어?”진주양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무관한 입장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말해. 아니라고.”“…….”“신부를 돌려주려 했어. 내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지 마. 경찰을 부른 게, 네가 아니라고 말해!” 주양은 오히려 흥분하는 호운을 의아해하는 눈빛이었다.

무정한 남자가 툭 내뱉은 일격이 호운의 분노를 차갑게 잠재웠다.

“그럼, 살려고 했나……?”그 말에 호운은 갈피를 잃었다.

“……뭐?”“사랑을 위해 목숨 따위 바칠 수 있다고 말하던 패기는 어디 갔어. 여기까지 오면서 네 목숨줄 챙겨가려 했던 거야?”“말 돌리지 마. 경찰과 네가 짜고 친 고스톱이라 이거 아냐.”“그게 중요한가?”주양이 실망스럽다는 듯 눈을 내리떴다.

“신영원을 위해 죽을 수 있다던 말, 허세였나.”죽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돌아오질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까 미리 경고했다.

‘잡히지 마라.’‘잡히면, 너 죽어.’잡히지 말라고. 잡히면 죽는다고.

그래서 물었다.

왜 돌아왔느냐고.

도망치거나 죽거나. 호운은 둘 중 하나여야 했다.

그가 경찰에게 잡히면 잡히면 신부를 바꿔치기 한 것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누구도 무엇도 납득시킬 길이 없었다.

경찰은 집요하게 호운을 심문할 것이다.

가짜 신부의 내막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진짜 신부 신해수는 정신병원에 처박혀 있고 형부와 결혼을 했다.

세상을, 아니 당장 사건을 담당하는 저들에게 그걸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는가.

그러니까 죽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돌아오지를 말았어야 했다.

진주양은 현실적인 판단이 빠른 남자였다.

경찰이 올 것을 예상했건 못 했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도출한다.

진주양은 돌려서 말할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네가 살면, 신부가 죽어.”“…….”“근데 네가 죽으면, 신부는 살아.”“…….”“신부의 명예를 네가 지켜라.”저렇게 냉정한 인간이, 한 인간에 관해서만은 수단과 목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주양의 와이셔츠 깃에 다 가려지지 않은 흉터가 보였다.

영원은 간혹 정신을 놓고 주양에 대한 말을 하곤 했다. 호운은 흉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망설임 없이 그어버렸다고.

주양 역시 다르지 않았겠지. 만약 자신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영원을 위해 주저 없이.

주양의 빠른 판단력이 사형 선고처럼 내려졌다.

“자살해라.”갑판 위에 대형 플래시 라이트가 비추었다. 멀리서 최후의 경고가 전해졌다.

“나는 KNP868.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소속 대장 이준명이다. 무모한 짓은 관둬라. 너는 포위됐다. 지금 투항하면 사살은 하지 않겠다.”퇴로는 막혔다. 투항의 길뿐이다.

경찰은 총기를 버리라고 요구했고, 주양은 자살을 명령했다.

호운은 최대치로 압력을 받았다.

심장이 파열할 듯 펌프질 했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그는 갈등했다.

그때였다.

“찾아내. 반드시.”주양이 안심하라는 듯 시선을 맞췄다.

안심하고 죽어.

“넌 좋은 사람이니까.”좋은 사람.

아무것도 아닌 그 한마디가 가슴을 크게 울렸다.

한 인간의 생애에 걸친 비극까지 관심 가져줄 여력이 사람들에겐 없다.

대중은 신문 기사에 굵은 글씨로 나오는 짧은 제목 하나로 전체를 판단한다.

‘알고 보니 신부는 여동생이었대.’ ‘형부를 꿰었대.’윤리에 어긋나는 결혼을 저지른 악녀.

매스컴은 영원을 마녀로 난도질하고 정신적으로 죽일 것이다.

그것은 산 게 아니다. 산다고 할 수 없는 인생이다.

어째서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째서 그런 일까지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사람들은 즐기는 건 자극적인 사건의 팩트였다.

언니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형부를 가로채 결혼한 여자.

그들이 원하는 스토리는 그것이다.

그러나 호운이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진주양이란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영원을 찾아낼 것이다.

영원은 무사히 그의 품에 돌아갈 것이다. 비밀은 지켜진다.

영원은 행복할 수 있겠지.

영화에서 보면 죽어야만 하는 역할이 있다. 좋은 역할이지만 막판에 죽게 된다.

그들이 죽음으로서 갈등이 해소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호운은 죽어야 하는 배역이었다.

납치범이 죽으면 사건은 끝난다.

호운은 영원을 경악할 만한 스캔들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펄럭거렸다.

진주양이 다시 한 번 오만하게 명령했다.

“죽어라. 강호운.”네 가난한 사랑을 증명해라. 죽음으로.

“그 애를 위해.”돌이킬 수 없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호운의 뺨 위로 눈물이 고통스럽게 흘렸다.

호운이 권총을 들었다.

총구의 방향은 진주양을 겨눈 채였다.

호운이 속죄해야 할 것들은 두 가지.

첫 번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죄.

두 번째. 어머니의 아들이기에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죄악들.

멀리서 장 경감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안 돼! 기다려!”“…….” “총 쏘지 마!”호운이 방아쇠를 미세하게 당겼다.

*

밤하늘이 올려다보였다.

사위가 무겁게 호운을 짓눌렀다.

온몸이 부서져라 두들겨대는 총성, 소음마저 침묵으로 탈바꿈시키는 비극.

폭죽처럼 퍼부어진 총성에 고막이 찢어졌는지 이명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검지 끝에 힘을 주는 순간 위층 갑판에 엎드려 있던 스나이퍼가 총의 초점을 호운에게 맞췄다.

한 치의 오점도 허용하지 않는다.

호운은 주양 어깨 너머로 비스듬히 총을 쐈다.

그 순간 스나이퍼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총알이 튕겨나갔다. 총알이 공회전하며 빛의 속도로 호운의 어깨를 뚫었다.

피가 짧고 굵게 터져나갔다.

장 경감이 덮치듯 달려왔다. 주양을 감싸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그것과 동시에 총들이 호운을 벌집으로 만들어놓았다.

탕탕탕탕ㅡㅡㅡㅡㅡㅡㅡ!

호운은 비틀거리다 뒤로 쓰러졌다.

쿨럭……! 피가 멈추질 않았다.

호운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던가. 슬프게도 하늘엔 별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주양이 엎드린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호운을 절대로 시선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금방 돌아올게.’호운은 그녀에게 약속했다.

‘금방.’돌아올게. 기다려.

진주양을 데리고 올게.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남자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너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네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이 사진을 진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호운은 조끼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피 묻은 손에 사진 한 장이 딸려 나왔다.

총구멍이 난 팔이 시렸다.

주양이 기어왔다. 사진을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런 평안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속죄라는 평안.

주양의 손끝이 마침내 사진에 닿으려는 순간, 장 경감이 호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호운은 사진을 놓쳤다.

사진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구르고 짓밟혔다.

“신부 어딨어.”장 경감이 숨을 헐떡였다.

핏발이 불그죽죽하게 그어진 야차 같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신부, 어, 디, 있, 어.”장 경감이 미친 듯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신부 어딨어! 신부 어딨는지부터 말하고 죽어!”호운이 힘겹게 입을 떼었다.

“……ㅎ…….”뭐라고? 장 경감이 귀를 바싹 붙였다.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호운의 관자놀이를 적셨다.

그녀의 곁에 오래 남는 방법을 택한 거라면 탁월한 방법이었다.

죄책감이란 이름으로 그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

강호운은 신부를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이다. 신부의 죄책감이 커질수록 호운은 그녀의 곁에 오래도록 있을 수 있다.

죽어서도…….

가혹하리만치 생명은 누구에게나 엄정했고 평등하게 주어졌다.

허억…… 허억……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숨소리,

그 애가 슬퍼해줄까? 그것이 호운의 마지막 말이었다.

“해수…….”깜박깜박, 가로등이 생명을 다하고 꺼졌다.

침침하던 얼굴에 끝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허무한 개죽음을 목도하고 장 경감이 굳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었다. 이런 것은 말도 안 됐다.

아직 죽어선 안 됐다. 누구도 강호운의 죽음을 허락해선 안 됐다.

신부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진…….

아직은 안 돼.

“신부 어딨어.”끝내 비탄이 검은 바다를 집어 삼켰다.

장 경감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신영원 어디 있어?????!”그 망망대해 아득한 바다 위에서 영원은, 영원히, 사라졌다.

*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나날들을 만날 수 있다면

햇빛 같은 웃음이 나올 텐데

-시인 김승일

*

희끄무레하게 푸른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수술실 복도를 장 경감은 묵묵히 지켰다. 피에 푹 잠겼다 꺼내진 것 같다. 옷이 더러웠다.

모두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출혈량이었다.

강호운은 간신히 숨이 붙어서 병원까지 이송됐다.

급소는 피했지만 총이 여러 장기를 뚫어서 살 가망이 낮았다.

수술 중.

표시등에 불이 켜지고 3시간째였다.

등 뒤에서 현기영의 걸음이 느껴졌다.

장 경감은 조용히 물었다.

“사살 명령, 네가 한 거냐.”“그래.”“너 인간이 왜 그렇게 매정해. 네 목숨 아니다 그거야?” “총을 발포했어. 신랑을 죽이려고 했어.”“저 자식을 죽이면, 신부를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신랑이…… 공범이라고 생각했어.”현기영이 쓰디쓴 실책을 인정했다.

“강호운이 신영원을 병원에서 탈출시켰더군. 둘은 공범이었어. 알겠지만 신영원과 신랑은 내연관계였어. 신랑과 신영원, 그리고 강호운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어……. 뭐, 결국엔 아니었지만.”강호운은 신랑을 죽이려고 했다.

진주양이 신부 납치의 배후였다면 강호운이 주양을 죽일 리가 없다.

“어쨌든 신영원이 남았어. 신영원은 공범이 확실해. 신부는 신영원이 데리고 있을 거야.”확신에 찬 음성에 장 경감은 웃음만 났다.

“아, 신영원.”그런 건가. 강호운이란 납치범이 죽어도 신영원이란 또 다른 공범이 살아 있으니 진주양의 안전을 위해 죽여도 상관없다 이건가.

여러 인간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결과 내려진 답이었다.

경찰의 무능하고 지리한 수사, 그 과정에서 신랑이 범인에게 살해, 혹은 상해를 입는다면 매스컴이 관심을 가질 테고 시끄러워진다. 여러 명이 옷을 벗게 될 수도 있었다.

보고서에 성의를 보였다는 걸 표하기 위해 범인을 사살하는 공이라도 세워야 한다.

현기영 같은 또 다른 입장들은 진주양이 신부 납치에 깊게 연루되어 있다고 의심했던 거다.

그것이 불거지길 원치 않아 알아서 그 싹을 제거해준다.

강호운이란 싹을.

그런데 이들의 논리엔 커다란 오류가 있었다.

진주양은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신영원은 공범이 아니라 그들이 찾고 있는 진짜 신부라는 거였다.

그래서, 공범 같은 것은 없고,

강호운이 알려주지 않는 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몸도 아파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였다.

이로써 정말 신부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신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모두를 위한 선을 추구하다, 모두를 더 위험에 빠트렸다.

“근데 장소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신랑하고 사전에 미리 얘기가 된 거였어?”강호운과의 접촉 장소는 주양과 장 경감, 두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장 경감의 허탈한 물음에 현기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신랑은 자기 경호원들한테도 장소를 숨겼어.”“그럼 어떻게? 휴대폰 위치추적은 불가능했을 텐데.”“강호운 걸음걸이로 찾아냈어. CCTV 보행 분석 프로그램 돌렸어. 청라와 인천 기지국에 대포폰 위치가 마지막으로 뜨더군. 운이 좋았어. 강호운이 다리를 삐었는지 절뚝거리는 바람에 특정이 쉬웠어.”그때 병원 복도를 한 여인이 걸어왔다. 신발 한 짝도 잃어버리고 볏단처럼 흔들거렸다.

최혜란이었다.

연락받고 왔는지 여자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딸이 실종돼도 백운당 장사까지 했던 대단한 여자였다.

그런데 강호운이 중태라는 말에 최혜란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하늘이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천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걸 느낀 사람처럼 최혜란은 무너졌다.

여자는 어깨를 덜덜 떨었다.

수술실 복도에 주저앉아 억울하게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항변했다.

“계모가 의붓딸 미워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계모는 원래 악역이야.”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런 최혜란을 현기영이 비웃었다.

“의붓딸 때문에 자기 애인이 죽게 생겼다고 화내는 거야? 아무리 정부한테 홀딱 빠져도 그렇지, 딸을 납치한 놈인데. 저 집안도 참 막장이야. 역시 계모는 계모야.” 장 경감은 먼저 복도를 빠져나왔다.

병원 밖에 비치된 흡연부스에 엉덩이를 붙였다.

라이터를 켜는데 옆에 시끄러웠다.

상대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최혜란을 병원까지 데려온 운전기사인 듯,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됐다.

“글쎄 해수 아가씨가 납치를 당했다는 거야. 그 납치범이 강호운이래. 그래, 최 사장 애인. 그놈이 지금 중태인데, 최 사장이 그 납치범 새끼 때문에 초상났다는 거 아냐. 아무리 최 사장이 해수 아가씨를 친딸처럼 키웠어도 계모는 계모야.”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장 경감은 슬프게도 운다 싶었다.

“재수도 없지. 재벌가에 시집간다 해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해수 아가씨만큼 복 많은 사람도 없어. 죽은 사모님 닮아서 얼굴 하나는 기똥차지. 계모도 그런 계모가 어딨어. 최 사장이 차별 없이 애들은 잘 키웠지. 의붓딸을 자기 친딸보다 더 애지중지 키웠으니. 난 처음 백운당에 왔을 때 해수 아가씨가 최 사장 친딸인 줄 알았다니까?”“…….”“말은 안 해도, 지 딸내미가 해수보다 못한 거 볼 때마다 그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겠어. 그래서 막내딸한테 더 모질고 잔인하게 대했는지도. 영원이 삐뚤어진 게 그것 때문인지도 몰라. 잘난 언니에, 남들과 비교당하는 것도 모라라, 친엄마 사랑을 해수 아가씨한테 다 빼앗겼다고 생각하고도 남아.”장 경감은 하얗게 피어오르는 담배도 잊은 채 허공을 쳐다봤다.

필연적으로 너는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고,

나는 너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었다.

그래. 빼앗아보니 어떻든가.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았나.

영원에게 물었지만 돌아올 만무한 대답이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맺혔다.

비는 무심하게 지상으로 제 한 몸을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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