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58화 (58/83)
  • 58화. 실종 32일째2017.01.22.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교차로.

    경찰들이 변장을 한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떡볶이를 파는 노점상, 카페, 전화를 받는 척하는 행인.

    곳곳에 배치된 인원들이 주변을 탐색했다.

    신랑은 납치범의 요구대로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서 20억이 든 돈 가방을 들고 기다렸다.

    5시간째.

    멀리서 지휘부 쪽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두 팔로 크게 엑스 자 표시를 한다.

    ‘실패.’

    범인한테서 2차 연락이 왔다.

    경찰의 감시가 너무 티가 났다고, 장소 변경을 하겠다고.

    수사본부로 돌아온 형사들이 분장 가발을 벗으며 짜증을 냈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이런 식으로 허탕만 친 게.”“그 새끼, 우릴 가지고 노는 겁니다.”하루에도 몇 번이나 접선장소를 바꾸기 일쑤였다.

    원래 유괴의 경우,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강호운 정도의 지능적인 유괴범들은 피해자 가족들이나 경찰을 지치게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그렇게 장소를 바꿔가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괴롭히다가 방심했을 때 돈을 챙겨간다.

    보통 피해자들은 이미 살해당한 상태다.

    그들은 회의를 시작했다.

    “다음 접선 장소는 일주일 뒤 청라로 원했습니다.”부하의 말에 현기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청라? 서울에서 청라는 너무 뜬금없잖아”“범인이 이용한 대포폰 마지막 행적이 청라입니다. 오늘 현장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청라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는 거야?”역시 힘만 빼려는 수작이었다.

    “청라는 인천하고 가장 근접한 도시입니다. 마지막 발신지 가까운 곳에 인천 기지국이 있었습니다.”“인천……?”“20억을 가로챈 뒤에 바로 밀항을 하려는 가능성이 큽니다.”“자기 흔적을 너무 남기는 것 같은데. 혼선을 주려는 수작일 가능성은.”그때 후배 형사가 돌아왔다. 후배 형사가 은밀히 현기영의 귓가에 전해왔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후배 형사는 현재 장 경감과 협력하는 척 강호운의 소재를 쫓는 임무를 맡았다.

    장 경감은 설마 아끼던 후배가 자신을 배신할 거라곤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은 며칠 동안 인천에 있는 밀항 브로커들을 다 쑤시고 다녔다.

    장 경감은 경찰보다 한 발 앞서 강호운이 밀항을 시도할 거란 정보를 알고 있었고, 그 정보는 현기영에게 들어갔다.

    “현재 브로커들을 잡아들여 심문 중에 있습니다. 강호운 사진을 보여주며 거래가 있었는지 대조하고 있습니다.”“밀항이 사실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강호운이 여권을 받으러 놈들을 다시 찾아오겠군.”“접선 날짜를 알아내 매복하고 있다가 강호운을 덮치면 될 것 같습니다.”“브로커들이 순순히 협력해줄까?”“버팅기고 있긴 한데 그래봐야 우리 손바닥 안입니다. 이미 사무실에서 강호운의 가짜 여권을 찾아냈습니다. 불이익 당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선에서 협상하면, 오늘 밤 안엔 접선 날짜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후배가 증거물품을 내밀었다. 밀항에 쓰일 가짜 여권이었다.

    현기영은 무심결에 넘기다가 여권 사진을 발견했다.

    뜻밖에도 여권은 강호운의 것이 아니었다.

    신분은 이름과 국적이 다른 중국인 여성으로 되어 있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후배가 짐작한 대로 눈을 빛냈다.

    “강호운은 혼자가 아닙니다. 동행이 있습니다. 자신의 것과, 또 다른 한 명의 것.”“이 여자…….”여권사진에 박힌 여자의 얼굴.

    “네. 신영원입니다.”

    *

    -실종 32일째

    빗방울이 총탄처럼 내리쳤다.

    허억…… 허억…… 잿빛 먹구름이 호운을 따라왔다.

    그 뒤를 추격자들이 이었다.

    콰콰콰콰쾅!

    검은 양복 사내들은 점차 호운에게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호운은 남의 집 대문 뒤에 숨었다. 개가 보고 있고 짖으려고 하는 걸 호운이 쉬. 막았다.

    “발이 빠른 놈이다. 그래도 얼마 못 갔을 거야.”“넌 저쪽 골목을 뒤져. 난 이쪽으로 가볼 테니까.”검은 양복들이 흩어졌다.

    호운은 주양에게 신부의 목숨값 20억을 요구했다.

    사람들이 많은 교차로에 신랑이 돈 가방을 들고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호운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접선 장소를 바꾸기 일쑤였다.

    지능적인 경찰들을 지치게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았다.

    허탕 치기를 수일, 경찰은 포기했지만 진주양은 끈질겼다.

    꾸준히 호운의 행적을 캐냈고, 그가 인천항에 나타난다는 첩보를 받았다.

    밀항을 도와주는 브로커들까지 매수해 호운을 덮치려고 했다.

    호운은 뛰다가 다리를 접질려 절뚝거렸다. 도망자에게 다리를 다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풀길을 걷다가 도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기절했던 그가 깨어냈을 땐 깜깜한 밤이었다.

    빗물이 들이쳤다. 호운은 얼른 일어나려고 하다가 욱, 숨을 참았다. 갈비뼈가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날숨을 내쉬며 도랑에 등을 기대었다.

    ‘미안하게 됐수다. 우리도 살아야지.’브로커가 호운에게 미리 귀띔해주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당했다.

    ‘지금 당신 잡으러 형사며, 웬 놈들이 진을 치고 있어. 시간을 벌어줄 테니 그 틈에 튀어.’  놈들은 브로커들과 호운이 여권을 교환하는 틈을 노렸다.

    여권을 챙겼지만 대한민국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들에게 추적당할 것이다.

    이 여권으로 인해 그들은 잡힐 수 있었다.

    여권도, 배편도 이제 쓸 수 없게 됐다. 사면초가였다.

    “씹. 하…… 윽.”온몸을 비를 흠뻑 뒤집어쓰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호운은 비에 젖은 쥐 신세였다.

    이 상태로는 아무도 지킬 수가 없었다.

    제 일신 하나 어쩌지 못하는 몸으로 다른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낮에 외출 준비를 하는데 영원이 호운에게 말했다.

    ‘나 아이를 가진 것 같아.’‘…….’‘그 사람 아이야.’영원과 그의 관계는 모래 위에 쌓아놓은 모래성이었다. 언제든지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호운은 그녀에게 금세 들킬 거짓말을 했다.

    여자의 몸은 그만큼 예민하다. 생리일을 따지거나 몸의 변화로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길이 등에 와 닿았다.

    어째서 거짓말을 했냐고 원망이라도 할 참인가.

    억지 미소가 그의 안면에 덧입혀졌다.

    ‘떠나고 싶다면 그래도 좋아.’‘나는 그냥…….’‘처음부터 무리였어. 식장을 박차고 나온 널 돌려보냈어야 했어.’‘내가 원한 거였어. 네 잘못이 아냐.’‘그래. 엄연히 따져 내 잘못은 아니지.’냉소 어린 어조가 그들을 긁고 지나갔다.

    알게 모르게 그들 사이에 쌓여가고 있던 고름들.

    호운은 수술 집도의처럼 썩고 곪은 부위를 말끔하게 도려냈다.

    ‘경찰은 날 납치범으로 알고 있어. 나는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됐어. 너를 위해서 내가 어떤 짓을 했는데.’ 그녀의 위로를 마음에도 없는 한낱 쓰레기로 전락시켰다.

    영원은 입 한번 뻥끗 못 하고 고개 숙였다.

    이미 전적이 있었다. 짐작은 했다. 영원이 임신한 걸 눈치챘다는 것을. 그래서 주양에게 가려고 했던 거라고.

    바다를 보고 가고 나흘쯤 됐나. 영원이 사라졌다.

    ‘그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원이 주양과 연락을 시도했다고.

    다행히 그쪽에서 미리 접선장소를 알아내 호운이 영원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또 영원도 충동적으로 저지른 거라고 스스로 후회했지만,

    주양에게 가려다가 붙잡혀 돌아온 날부터 그녀는 호운에게 죄인이었다.

    ‘미안.’그보다 가슴 아픈 말이 또 있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멀리 왔다.

    그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온전히 호운의 희생과 헌신으로서만 유지될 수 있는 모래성이었다.

    네가 그 남자에게로 떠날까 봐 두려웠다.

    정말로 떠나겠다고 할까 봐 상처가 되는 말로 비수를 꽂았다.

    생색을 내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급기야 영원이 먼저 두 팔을 내밀었다.

    ‘나를 묶어.’영원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묶고 가.’‘못 돌아올 수도 있어.’‘돌아오면 돼.’억지였다.

    그가 잡히거나, 사고가 일어나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그녀는 이 단칸방에서 정말 꼼짝없이 죽는다.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정말로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그 남자에게 돌려보내줘야 했다.

    알고 있다. 그랬어야 한다는 것.

    그 남자 곁에서 영원은 안전할 수 있었다.

    밀항을 도와주겠다고 하는 자들은 그녀의 목숨 따윈 안중에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목적에 호운과 영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밀항을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영원을 그렇게 평생 도망자 신세로 만들게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아이는?

    평생 같이 도망자 신세로 만들어서 뭘 어쩌려고?

    그런 건 하등 상관없다는 듯 영원이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제어가 안 돼서 그래. 그러니까 나를 묶고 가.’ 호운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과,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그를 믿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행위.

    후회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어느새 그는 그들과 마찬가지도 그녀를 ‘고통’이란 족쇄로 속박하고 있었다.

    호운이 신음을 삼키며 말했다.

    ‘금방 돌아올게.’그것은 다른 의미의 다짐이어야 마땅했다.

    진주양을 여기로 데리고 올 것이다.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남자를…… 만나게 해줄 것이다.

    ‘금방.’돌아올게. 기다려.

    그 남자와 올게. 네 마음을 속이지 마.

    넌 그 남자를 사랑해. 남을 배려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둬.

    네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속죄하지 않았어.

    그들은 끝까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하지 않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너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운명적으로 적대구도를 이루고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들.

    이로서 죄가 씻겨 진다면 모래성 따윈 얼마든지 무너트릴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호운이 태아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아직 형태로 제대로 잡히지 않은 아기 위로 눈물이 얼룩졌다.

    네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이 사진을 진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

    빗물이 억수 같이 쏟아졌다.

    장 경감은 우산 아래 서 있었다.

    아직 부두였다.

    경찰이 합동해 현장을 덮쳤지만 강호운을 간발의 차로 놓쳤다.

    범인이 협박 전화와 함께 본부로 보낸 신부 사진은 당연히 신해수였다.

    경찰들은 모르지만 유심히 보면,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하얀 환의였다.

    “대체 그 인간이 원하는 게 뭘까요?”곁에 있던 수진이 되물었다.

    “글쎄. 분명한 건 신해수를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킨 게 강호운이라는 거야. 그리고 요구한 20억은 도피자금으로 쓰이겠지.”신영원과 밀항을 하려면 목돈이 절실했을 것이다.

    경찰은 신해수를 진짜 신부로 알고 있었다.

    20억을 타내려면 신해수를 그 정신병원에서 탈출시켜 억류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

    이제야 딱딱 들어맞았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적막에 휩싸였다.

    장 경감은 건너편 진주양의 쪽을 살폈다.

    그의 수하들이 돌아왔다.

    빈손이었다. 장 경감은 한숨을 쉬었다.

    전화가 왔다.

    “대성기획 장영범입니다.”“총알은 장전하셨나?”“……?”“탐정이라지? ‘진짜’ 신부를 찾아다니는.”이 목소리는……

    “이제 기억하다니. 어설퍼……. 설마 또 저번처럼 총탄도 없이 설쳐대진 않겠지.”강호운이었다. 장 경감이 싸늘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안 거야.”“그게 중요하진 않을 텐데.”장 경감은 바짝 긴장했다.

    신해수가 말해줬나. 아무렴 상관없다.

    강호운이 먼저 접촉을 시도해왔다. 긍정적인 신호탄이었다.

    장 경감은 가슴팍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총알이 장전된 진짜였다. 쓸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용건은?”“협상이야. 신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지.”사내의 태도는 단도직입적이었다.

    장 경감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협상 조건은?”“도착 즉시 내가 밀항할 수 있도록 배편을 마련해놔. 경찰한테 알리지 마. 경호원도 안 돼. 진주양만 보내.”장 경감은 전화를 끊었다.

    차에 막 올라타려던 진주양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야 의뢰인에게 면목이 설 것 같았다.

    드디어 이 납치극도 끝을 볼 때가 왔다.

    *

    형사 차량 지붕에 사이렌 경광등이 부착됐다.

    출동이었다. 현기영은 뒷좌석에 앉았다.

    장영범이 경찰까지 따돌리며 신랑을 데리고 사라졌다.

    장영범의 휴대폰 통화목록을 조회했다. 범인의 대포폰과 일치하는 번호가 떴다.

    범인과 연락이 닿은 것이다.

    위치추적에 들어갔다. 부하가 언질을 넣었다.

    “인천항 제3부두입니다.”현기영은 4시간 전에 후배 형사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했다.

    ‘이 여자…….’여권사진에 박힌 여자의 얼굴.

    ‘네. 신영원입니다. 전당포 때 기억하십니까? 장영범이 범인을 숨겨주려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신랑과 장 경감 사이에 처제와의 불륜을 숨겨주는 것 이상의 뭔가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신영원은 진주양과 내연관계였다.

    그런 신영원은 현재 신부 납치범인 강호운과 밀항을 시도하고 있다.

    신영원이 신부 납치사건의 또 다른 공범이라면……

    ‘신랑이 이번 사건에 어떤 관여가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소리야?’후배 형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아예 관련이 없다하긴 애매하지 않겠습니까.’신랑은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

    장영범을 고용한 까닭이 그것이었겠지. 치정을 감추는 것 이상의 무언가.

    그리고 현재 신랑은 독단적으로 납치범인 강호운과 접촉하려 한다.

    협상인가, 아님 음모인가.

    구린내를 풍기는 진원은 범인을 잡은 뒤에 밝혀도 늦지 않았다. 일단, 범인을 생포해야 했다.

    현기영은 재빠르게 치안총감에게 연락을 넣었다.

    “접니다. 현기영.”범인은 군인이었던 특수한 이력에, 현재 총기를 소지한 상태였다.

    경찰특공대를 먼저 보내겠다고 하자 총감이 따져 물었다.

    “특공대를 보내는 건 좋아. 그런데 괜히 범인을 자극하는 행동일 수 있어. 신랑이 한신그룹 후계자야. 대통령께서 주시하고 계시네. 일이 틀어질 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해.”안 총감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현기영에게 물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 겐가.”현기영이 고심하다 입을 뗐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여기십니까.”“우리는 신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네.” 그런 총감에게 신랑이 신부 납치에 관련됐을 수 있다고 보고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보고한들 상부의 결정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원칙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섣부른 추측으로 사건을 복잡하게 키우지 마라.

    본 것도 못 본 척해라.

    모두가 노력해 오랫동안 다져온 경찰청의 평화였다.

    자신이 맡은 사건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민폐였다.

    현기영은 자신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현기영의 원칙은 정의보다, 실리였다. 냉정하다 할 만큼 현실을 추구했다.

    그에게 상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그는 원칙주의자였지만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윗선은 언제나 개인이 아닌 집단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선택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답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현기영은 결정을 내렸다.

    “만일의 경우, 강호운을 사살합니다.”안 총감과의 통화를 마쳤다.

    진주양이 ‘선’이냐 ‘악’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건 장영범 같은 삼류 흥신소를 운영하는 개인이 신경 쓸 문제였다.

    다수를 위한 선택이 현기영에겐 ‘정의’이고 ‘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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