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52화 (52/83)
  • 52화. 실종 23일째 <4>2017.01.01.

    -실종 23일째

    주양이 고민하는 투로 턱을 두드렸다.

    “시체로 발견돼주면 속편할 텐데.”“주 본부장. 누가 들어.”“신부가 사라지고 내내 그 생각뿐이더군요. 신부가 죽어서 발견되면, 하고 가정해봤습니다. 자연히 이혼이 되겠죠. 사건도 종결되고, 그간 우리, 숙부님과 저 사이를 갈라놓았던 껄끄러운 문제도 풀리지 않겠습니까?”“…….”“아무리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그깟 여자야 뭐, 대수겠습니까. 한 핏줄이 더 소중하지.”주양은 진심이었다. 진심.

    그러나 입에 담는 것,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은 언제나 거짓뿐이었다.

    한 핏줄이라니.

    그 한 핏줄에게 된통 당해 진두영은 후계자 자리에서 폐위 당했다.

    “작년이 생각나.”“…….”“믿었던 한 핏줄에게 발등 찍히고 산사에 틀어박혀 지냈지 아마?”진두영이 새삼 옛날 얘기를 꺼내자 주양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영은 작년 가을,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 범오사에 올라가 겨울 내내 내려오지 않았다.

    양평에 자리 잡은 것은 요 근래였다.

    “성철스님이 그러시더라고. 자업자득이란 말을 자긴 믿는다고.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 벌을 온전히 자신이 되돌려 받을 거래.”“…….”“너무 죄짓고 살지 마. 세상 끝난 거 아니잖아.”그깟 계집애 하나 없어졌다고. 진두영이 마지막 말을 삼켰다.

    주양이 문득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런 일이 있고도 그 땡중의 말을 아직도 맹신할 줄은 몰랐습니다.”진두영은 무슨 뜻인지 안다며 헛웃음 지었다.

    “그래. 나도 알아. 무슨 말하고 싶은지. 어이가 없었지. 아내 임신이 오진일 줄이야. 스님이 내 운에 아들은 없다고 했는데.”그가 산중에 있는 동안 아내가 떡 하니 아들을 나아왔다.

    처음엔 태아 형상이 덜 되어 오진했을 수 있지만 검사를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알았을 텐데.

    임신 기간 내내 아내는 아들인 걸 알고도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프라이즈처럼 아들을 데려왔다.

    중의 예언은 틀렸다.

    “그 땡중이 공연하게 입을 나불거릴 때부터 알아봤습니다.”“그런 말 마.”“근데, 친자 확인 절차는 거치신 겁니까?” 진두영이 싸늘해졌다.

    주양이 어둡게 그를 응시했다. 끝까지 도발했다.

    “원래, 발등은 믿는 도끼에 찍히는 법이죠.”너만 할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장본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두영의 눈앞에 있었다.

    신부가 예식장에서 도망칠 거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화장실 갔던 아내가 들어오고 대화는 중단됐다.

    그러나 두영은 주양에게 난폭하게 걸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실종된 신부, 믿는 도끼.

    그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일이라 여전히 생생하기만 했다.

    커피의 향, 심각했던 상황과 언밸런스하게 그 카페에 감돌던 따스한 공기,

    마주 보고 앉아 있던 그녀의 덤덤한 눈빛까지.

    조카가 호텔에 숨겨뒀다는 여자를 확인하러 갔다가, 영원을 맞닥뜨렸다.

    -1년 전, 영원 26세

    “내 귀에까지 들린 거 보면 알 만하군요. 신해수 씨와 교제한다고 했을 때 진즉 개소리인 줄은 알고 있었어요. 날 엿 먹이기 위해 쇼를 벌였겠죠. 다만, 그 애가 숨겨두었다는 여자가 영원 씨일 줄은 몰랐어요.”진두영은 어울리지 않게 거친 언어를 입에 사려 물었다.

    영원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무섭게 다그치듯 말하는지.

    호텔 커피숍에서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언제부터였어요?”“…….”“아니.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거예요?”진두영은 여동생을 대하듯 그녀를 뜯어말렸다.

    “사랑도 할 줄 아는 사람만 하는 거예요. 걘 사랑 같은 거, 사람 같은 거, 존중할 줄 모르는 냉혈한이에요. 두고 봐요. 영원 씨 버림받을 겁니다.”가시 같은 말을 퍼부어대며 영원을 상처 주었다.

    “같은 가족끼리 어떻게 그런 말을 해?”오히려 그녀는 그를 비난했다. 진두영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렇게 깔아뭉개면 기분 좋아져?”몇 번 만났다고 충고까지 덧붙이는 것은 오지랖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을 그에게 준 기억이 없었다.

    “저번엔, 날 이해한다고 했잖아요.”짜증스런 눈초리로 보던 영원은 진두영에게 일격을 당했다.

    그는 담담하게 차를 마셨다.

    “그새 마음이 바뀌었어요?”영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진두영은 경멸하듯 그녀를 보았다.

    “아니. 상황이 바뀐 건가?”가족을 미워하는 그를, 주양을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 하는 그를 이해한다고 했다.

    2등의 서러움……,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주양의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꾼다.

    “날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진두영이 힘겹게 말을 삼켰다.

    애처로워 보였다.

    “또 그 애한테 뺏겼네요?”영원은 뜻하지 않은 죄책감에 입을 다물었다.

    그를 이해했다. 하지만 이젠 두둔해줄 수가 없다.

    그는 주양의 적이니까.

    진두영은 자신이 받은 패배감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는지 그녀에게 또다시 상처가 되는 말을 뱉었다.

    ‘그 진주양’과 사랑놀음을 하겠다는 영원의 용기에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

    피해갈 수 없는 장애를 굳이 끄집어냈다.

    “그 애와 어디까지 갈 셈이에요?”“…….”“설마 둘이,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결혼이란 거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감히 그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를 믿어.”무게감이라곤 1g도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것을 아는 진두영이 훗, 비웃었다.

    정말?

    결혼은 현실이었다.

    그는 한신의 유력 후계자.

    그녀는 백운당의 지지리 못난 재투성이 셋째 딸.

    모든 사랑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완결 지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를 믿는다고 생각했다.

    믿지 못한 것은 초라한 내 자신이었다.

    *

    한적한 도로에서 신호에 걸려 차가 잠시 정차했다.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각.

    주양은 뻐근해진 목을 뒤로 넘겼다.

    갑작스런 해외지사 문제로 도쿄에 갔다 왔다.

    며칠 호텔에 못 가게 됐다.

    “이사님. 집으로 먼저 가시겠습니까?”“아니. 호텔부터.”연락을 줄 수 있었지만 며칠 못 가는 것 정도는 그간 대수롭지 않았기에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좋아하는 티리미슈를 사왔다.

    디저트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다.

    도쿄에서 100년 전통의 유명한 가게에서 사온 것이었다.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가던 중에 신호대기에 걸렸다.

    그는 길 건너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꽃집을 발견했다.

    영원은 꽃을 좋아했다.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꽃을 심었고 가꿨고 사랑했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베풀 줄 아는 것은 꽃 덕분일까?

    그도 저렇게 무언가에 정을 주는 법을 배웠다면 덜 뒤틀렸을까 싶었다.

    아니면 그녀처럼, 어떤 기억은 지워버리는 선택을 했다면.

    정신병원 원장의 말이 내내 신경 쓰였다.

    ‘뇌파 검사를 해봤는데, 기억을 담당하는 대뇌 부분이 좀 불안정하네요.’원장으로부터 그녀가 오랫동안 학대를 받아왔으며 몸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뼈가 상해서 금이 갔다가 제멋대로 붙은 곳이 많다고.

    ‘불안정?’‘기억이 소실되거나 자기 스스로 봉인해버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학대 피해자들의 경우, 고통스러운 기억을 리셋하는 경우가 많거든요.’폭식을 유발하는 영원의 식이장애를 의사는 심도 있게 관찰했다.

    오랜 기간 학대로 이어온 우울증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공허한 마음을 음식물로 채우는 증상.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뇌에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뇌가 망가져서 배가 부른지도 모르는 채 먹는 거라고 했다.

    ‘음식이 자제가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살다가 위를 도려내야 할지 몰라요.’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의사는 간단한 해법을 제시했다.

    ‘꽃 키워 보셨습니까? 잘 보살펴주면 무럭무럭 자라죠. 같은 원리입니다. 옆에서 애정을 주면서 관심을 쏟아주세요. 증상이 줄어들 겁니다.’ 주양은 인도 변에 늘어져 있는 꽃들을 보다 양 비서를 불렀다.

    “예. 이사님.”“화분 하나 사 오세요.”“갑자기 화분은 어디에 쓰시려고…….”“아뇨. 내가 가죠.”그는 차 문을 열고 나갔다.

    꽃집 주인은 막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다.

    꽃을 사고 싶다고 하자 주인이 늦은 시간을 확인하고 물었다.

    “연인께 선물하실 건가요?”연인. 주양은 잠시 낱말을 혀 안에서 헤아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워한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꽃집 주인이 웃으며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선물하실 분께 전하고 싶은 말을 적으세요.” 낯 뜨겁게 편지 같은 것을 써봤을 리 없다.

    카드를 땅바닥에 버리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얼 써야 하는지 그는 한참 고민했다.

    호텔까지 달려가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부푼 마음을 안고 방 앞에 도착했을 때 반응이 없었다.

    잠을 잔다고 여겼다.

    불 꺼진 방. 텅 빈 침대.

    툭, 카드가 무의미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애정을 듬뿍 줘서 잘 키워봅시다.>

    그가 시도한 첫 애정은, 시작도 하기 전에 주인을 잃었다.

    *

    “영원아…….”해수가 앞을 아연하게 응시했다.

    9월. 가출생활을 청산하고 영원은 백운당으로 돌아왔다.

    성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왔네?”성원이 투게더를 퍼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지나쳤다.

    해수는 다급하게 영원을 살폈다.

    팔, 다리, 모두 다 멀쩡하게 달려 있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그냥.” 영원은 무뚝뚝한 짧은 대답뿐이었다.

    방으로 올라간 그녀는 짐 가방을 풀며 옷 정리를 했다.

    해수가 영원에게 바싹 붙어 물었다.

    “무슨 일 없었지?”영원이 해수를 날카롭게 돌아봤다.

    “마치 무슨 일 당하기라도 했음 하는 말투네?”미웠다.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해수가.

    호텔에서 돌아온 것은 따지고 보면 해수 때문이었다.

    이 애가 주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수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상냥하게 대꾸했다.

    “아무 일 없었나 보네. 그 입, 아직 살아 있는 거 보면.”영원은 밀린 집안일부터 했다.

    설거지부터였다.

    설거지를 끝내고 물기가 흥건한 그릇들을 타월로 하나하나 닦는데 노 집사가 다가왔다.

    “왜 돌아온 거죠?”노 집사가 그릇을 집어 들며 심사를 뒤틀어놓았다.

    “짐 가방에서 못 보던 옷들을 발견했습니다. 아가씨 형편으로 그 비싼 메이커 옷들을 살 수 있었을 리는 없고. 그분과 함께였던 거군요. 왜 돌아온 겁니까. 스스로 깨달은 건가요?”영원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빡빡 그릇을 타월로 문질렀다.

    “자기의 분수. 그래서 돌아온 건가?”“아직 헤어진 거 아냐.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제자리로 돌릴 수 있어.”“그는 오지 않을 거예요.”뱀처럼 간교한 혓바닥이 영원의 본심을 찔렀다.

    순간 들킨 속마음이 화끈했다.

    “행여나 그가 찾아와 주길 기다린다면, 그러지 말라고.”노 집사가 떠났다.

    영원은 허물어지듯 쥐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진두영과 헤어지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던 길.

    진정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삼 일,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렸다.

    출장 갔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자신.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며 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신.

    문득 초조해 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호텔에 있고 싶지 않았다.

    멍청이가 되는 기분이 끔찍했다. 대책 없이 도망쳐 나왔다.

    그래. 도망쳐 나왔다는 말이 비유에 맞다.

    지금은 뜨겁고 그가 영원에게 집착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도 끝을 보이면…….

    그는 변덕스러운 남자였다.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에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다.

    그의 무관심과 냉대를 견딜 수 있을까?

    마음이 떠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도 그 사랑을 추억으로만 남겨둘 수 있을까?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백운당 동료들이 찾아왔다.

    “야, 너 뭐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그들은 불평 반 반가움 반 섞여서 투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뜬금없이 가출은 뭐 하러 한 거야?”“사장님네가 너 찾는다고 한동안 난리 났었어.” “이제 안 나갈 거지? 힘든 일 덜 시킬 테니까 여기 있으라구. 네 일까지 우리가 떠맡느라 죽는 줄 알았어.”그녀는 금세 일상에 섞였다.

    이것이 노 집사가 말한 것처럼 그녀의 분수에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는 오지 않을 거예요.’지금쯤이면 출장에서 돌아오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락이 없었다.

    찾아와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만큼이나 도도한 프라이드로 가득 찬 남자니까.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쯤은 잠시 낮춰둘 수 있는 미덕을 그 세계 사람인 그는 배운 적이 없을 테니까.

    영원은 빨래바구니를 허리춤에 붙이고 정원에 나왔다.

    대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영원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주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초라하지도 한없이 자세를 낮추지도 않았다.

    여전히 자신만의 프라이드로 도도함이 넘쳤다.

    그가 낮게 명령했다.

    “문 열어.”굳게 닫힌 호텔 방문만 바라보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시간들.

    미친 듯이 뛰어대는 그와 그녀의 심장 소리.

    영원은 그의 앞까지 걸어갔다.

    영원이 주양을 바라보았다.

    주양이 영원을 보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가 거칠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 힘에 그녀도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갔다.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

    화려한 본차이나 찻잔에 달콤한 홍차가 향내를 피어 올렸다.

    해수는 정원에 예쁜 테이블을 차렸다.

    “통 발길이 없으셔서 해외출장 떠나신 줄 알았어요.”영원은 묵묵히 쿠키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들의 차 시중을 들었다.

    해수는 영원을 곁눈질하다 보란 듯이 말했다.

    “저도 근래 곤혹을 치렀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이사님과의 관계를 물어봐요. 비밀연애가 민망해지게.”곤란함을 애써 덮듯 해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며칠 전에는 여성지 기자가 찾아와서 인터뷰를 부탁하는데, 소문이 도나 봐요. 저와 이사님이 교제를 한다는. 염문설이 사실이냐고 묻는데…….” 영원이 차를 엎지를 뻔한 그때 덥석, 그녀의 손을 움켜잡는 손이 있었다.

    주양의 강렬한 시선이 영원에게 와 닿았다.

    영원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해수가 지켜보고 있었다.

    주양은 아랑곳 않고 해수에게 통보했다.

    “연애, 오늘로 끝입니다.”그것을 위해 찾아왔다는 듯 그는 영원이 있는 곳에서 이별통보 했다.

    해수에게.

    해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고 멍해졌다.

    영원도 굳었다.

    해수의 시선이 뺨을 찔렀다. 영원은 얼른 눈치껏 돌아섰다.

    영원이 떠나고 해수와 주양만 남겨졌다.

    해수는 모욕을 씹어 삼키고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나를 좋아합니까?”주양이 해수의 눈동자를 똑바로 봤다.

    “나 좋아하지 말아요.”“…….”“나 좋아하는 것, 나 보는 것, 내 허락 없인 안 돼. 나는 누가 나한테 추잡하게 미련 떠는 거, 무척 싫어합니다.” “주양 씨.”“내가 언제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지?”주양이 완벽하게 선을 그었다.

    해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치웠다.

    계약으로 묶인 관계일 뿐, 실제로 사귀는 건 아니다.

    해수는 그의 여자관계에 대해 터치할 수 없었다.

    한쪽이 헤어지기 원하면 쿨하게 헤어지는 것.

    그게 계약연애의 장점이었다.

    해수가 애써 침착하게 되물었다.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겼나요?”비참하게 떨려오는 목소리.

    “그게…… 누구예요?”해수의 마지막 미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가 매정하게 끊어냈다.

    “당신은 아냐.”눈물이 허망하게 해수의 뺨을 적셨다.

    그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실례하죠.”그가 완전히 그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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