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51화 (51/83)

51화. 실종 23일째 <3>2016.12.29.

-실종 23일째

“선배. 신부 찾을 거 같아요.”장 경감은 굳었다.

정신병원에서 돌아오는데 후배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기영의 견제가 심해져 경찰 내부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후배 형사를 포섭해놓았다.

진주양에게 받을 의뢰비의 30퍼센트를 나눈다는 조건으로.

신부를 찾을 거 같다니.

“뭐가…… 나왔어?”“수배 돌렸던 장물이요.”신부가 착용하고 사라진 나머지 구두 한 짝, 거기에 박혀 있던 보석들……

“보석을 팔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인천이랍니다.”장 경감은 인천으로 날아갔다.

경찰이 오기 전에 먼저 영상 확보를 해야 했다.

전당포 주인이 그를 반겼다.

“1시간 전에 연락주신 형사님이죠?”장 경감을 형사로 오해해 수월하게 협조해주었다.

“워낙 알도 크고, 이런 데서 취급할 수 있는 게 아닌 고가의 보석이라서 눈여겨봤지. 근데 남편이 모아둔 수배지 거랑 똑같은 게 아니겠어?”“보석 감정가를 알고 싶어 했다고요?”“목돈이 필요한 모양이더라구. 근데 여기 보면 신고자한테 포상금도 준다는데. 이건 어디 가서 말해?”전당포 내부를 찍은 카메라 영상을 살폈다.

진주양의 의뢰는 경찰이 신부가 신영원인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다.

어쨌거나 의뢰인 이상 그는 철저하게 신영원임을 숨겨야 했다.

다행히 신영원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게 빌미를 제공할 만한 영상은 아니었다.

보석 감정가를 물은 남자는 경찰수사를 아는지 의도적으로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키가 훤칠했지. 어깨가 넓은 거 보니 180 이상은 되는 건장한 체격이었어.”“나이는요? 목소리가 젊던가요?”“20~30대 초반이 아닐까 깊은데.” 영상 하단에 적힌 날짜는 신부 실종 17일쯤이었다.

신영원이 국회도로에서 진주양과 짧은 만남 뒤에 사라지기 며칠 전이다.

노조원들의 인파에 휩쓸려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뒤태만 봤지만 그때, 기절한 신영원을 업고 가던 자일까?

그렇다면 신영원은 쭉 이 남자와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게 신영원인 줄 알았을 땐, 진주양이 탈출한 영원을 유인해 납치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계파가 아닐까 싶다.

‘신영원은 처음엔 자발적으로 결혼식장을 걸어 나갔어.’ 그러다가 제3자에 의해 납치가 되고, 몸싸움을 하다 구두 한 짝을 떨어트렸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 새끼는 대체 누굴까?

누군가가 부리는 하수인일까?

진두영 쪽 사람?

그때 삐빅 - 메시지가 떴다.

-도착하기 5분 전.후배의 연락이었다.

장 경감은 얼른 동영상을 메모리칩에 옮겨 담았다.

뛰쳐나가듯 계단을 올라갔다.

“이봐요, 포상금은!”“형사들 곧 올 겁니다.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요!”간발의 차로 형사 셋이 들이닥치는 걸 보고 장 경감은 숨을 몰아쉬었다.

*

가랑비가 추적- 추적- 어깨를 적셨다.

늦은 밤.

장 경감은 낡은 흥신소 건물 아래에 차를 주차했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동네 대형쓰레기수거함 뒤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과 건물 틈이었다.

환풍구들과 전선들이 얽혀 있는 좁은 통로는 철창으로 막아놓고 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둠으로 다가갔다.

금세 두꺼운 철창에 가로막혔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었다.

“고양이인가?” 야옹- 야옹-

고양이가 어둠 속 철장 너머에서 파란 눈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밤중에 만난 고양이.

기분이 나빴지만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이젠 귀신 할아버지가 와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발길을 틀었다.

부스럭-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끼얹어졌다.

“장영범 씨?”골목 어둠에 고양이 말고 다른 존재가 있었다.

장 경감은 주춤, 재킷 안의 가스총부터 찾았다.

고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사람의 인영이었다.

“누구십니까.”검은 그림자가 한 발자국 가로등 불빛으로 걸어 나왔다.

감히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당신…….”여자가 깊게 눌러쓴 우비를 벗었다.

초췌한 얼굴,

귀신 같이 길게 헝클어진 머리,

쫓기듯 초조함과 불안이 서린 눈초리,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여자……

쾅! 철장을 움켜잡고 그녀가 으르렁댔다.

“살려달라고 했잖아. 왜 안 왔어.”……신해수였다.

.

.

.

장 경감은 신경이 팽팽하게 날 섰다.

신해수는 잠도 못 자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숨도 잘 못 쉬는 폐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라 같이 푹 파인 광대,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윗입술 아랫입술 온전한 부위가 없었다.

“병원에 있었으면 그대로 죽임 당했을 거야. 쥐도 새도 모르게…… 그 남자가 원하는 대로.”그녀는 살해당할 위협에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방에 걸려 있던 커다란 사진 속 모습과 많이 달랐다.

많이 야위고 상해 있었다.

더 이상 그때의 꽃 같은 아름다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흐윽……, 난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면 장 경감은 아무 말도 준비할 수 없었다.

“죽이다뇨. 진주양이 당신을?”신해수는 이렇게 된 자기 처지를 믿을 수가 없는지 울먹였다.

손톱을 깨물던 그녀가 갑자기 돌변했다.

“아니. 아니지. 내가 먼저 죽여버리는 거야.” “…….”“날 죽이기 전에 내가 두 연놈을 심판하는 거야. 신영원, 그 계집부터 먼저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야.”“이, 이봐요.”가두어지고 극단적으로 몰아붙여진 상황들에 여자는 정신까지 황폐해져 있었다.

정말 정신병자가 같았다. 논리와 비논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살인을 하겠다는 건가?

그녀의 분노는 이해했지만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의뢰를 받은 일이니 장 경감은 경찰에게 숨기고 있지만 신해수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나랑 자세히 얘기하죠.”신해수가 번뜩 안광을 날카롭게 세웠다.

흠칫 장 경감은 뒤로 물러섰다.

“내가 당신의 뭘 믿고.” “…….”“당신은 그 인간의 사람이잖아. 아냐?”진주양의 사람이 된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거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철창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보호 장치였다.

괜히 그 뒤에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장 경감은 무안해졌다.

“차라리 경찰에 알려서 사건을 끝내요.”“경찰? 그것들이 뭘 해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뭘 했는데.”“적어도 지금 당신이 하려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당신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 권력을 틀어쥔 인간들 말이야. 법 위에 선 인간들. 그들은 정의로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냐.”법으로 싸울 수 없는 자들이었다.

진주양과 같은 부류들은.

그러니까 신해수는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신영원을 죽이려는 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법전의 논리로.

신해수는 숨을 헐떡이며 자꾸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걸까.

장 경감은 영문을 알 수 없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신해수는 자꾸 시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해수 씨. 진주양의 사람이란 걸 알면서 날 찾아온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겠죠.”도움 청할 데가 그밖에 없는 것이다.

“도와주고 싶어도 무작정 죽임 당할 거라고만 주장하면, 나도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요.”“날 도와주겠다는 거야?”“무슨 근거로, 진주양이 당신을 죽이려는 건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봐요.”그도 처음엔 진주양을 의심했다.

여자가 쓸모없어지자 헌신짝처럼 버리고 정신병원에 가둬뒀다고.

국회도로에서 신영원을 납치한 것도 그일 거라고.

하지만 결국엔 모두 억측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아들 건강까지 챙기지 않았나.

데려가도 좋다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의뢰받는 과정에서 생긴 마찰로 그 남자가 비호감이 되긴 했지만 굳이 신해수를 죽일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된 마당에?

진주양은 신해수를 신영원의 이름으로 정신병원에 처박았다.

죽일 수 있는 많은 기회에도 그러지 않았다.

뭐, 거슬리니까 해치울 순 있지만 자의식과잉이 아닌가 싶었다.

신해수가 병원에서 조용히 살아주기만 하면 진주양이 신해수를 건드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죽이려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신해수는 죽이려고 했기에 병원을 도망쳐 나왔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진주양이 그토록 집요하게 신해수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지?

“날 신영원으로 만든 건 그 자식이었어.”신해수는 떨리는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부가 사라지자, 며칠 뒤 날 찾아와서 제안했지.”신부 실종 며칠 뒤……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썩을 것이냐. 웨딩드레스를 입고 다시 신해수가 될 것이냐. 죽느냐…… 사느냐….”정신병원에서 살다 죽을 것이냐, 웨딩드레스를 입고 살 것이냐, 의 선택인가?

장 경감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모두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진주양은 왜 신해수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히려고 했을까?

신부는 신영원인데.

순간 장 경감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신해수는 비릿하게 웃었다.

“죽느냐, 사느냐……. 죽는 건 어느 쪽이지? 정신병원? 웨딩드레스? 어떤 선택을 해야 내가 살 수 있지? 웨딩드레스라고 생각했지? 방금.” 혼돈이 장 경감을 휩쌌다.

아니.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신해수는 죽는다.

지옥 같아도 정신병원에서 평생 썩는 것이 어쨌든 사는 선택이다.

교묘한 함정이었다.

신해수는 끔찍한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내가 다시 신해수가 되기를 바라.”“…….”“이 사건을 어떻게든 끝내려 하고 있어.”신부가 돼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신해수더러 신영원의 빈자리를 다시 채우라는 말의 목적은 한 가지뿐이었다.

“나한테 신부의 옷을 입혀 사람들 앞에 선보일 생각인 거야.”“…….”“싸늘한 주검이 되어 나타난, 신부의 최후를.”

*

우아한 클래식 선율이 감돌았다.

주양은 잘 벼려진 칼끝을 살폈다.

샹들리에 빛에 반사돼 윤기가 흐르는 칼끝은 생선 비늘처럼 번뜩였다.

그는 신중하게 칼을 고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두영이 마침내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나이프 무슨 문제가 있니?”주양이 칼끝에서 진두영에게로 섬뜩한 시선을 옮겼다.

진두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주양이 고기로 칼을 내렸다.

“이래서야, 살점이 제대로 썰리지 않을 것 같군요.”그리고 천천히 썰었다. 모나지 않게. 예술적인 솜씨로,

핏물이 새는 살점을 갈랐다.

숙부 내외와 오랜만의 식사였다.

숙모가 화장실로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주양은 진두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진두영이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

“어때, 수사에 진척이 있니?”이미 뻔히 아는 사실이지만 진두영은 굳이 캐물었다.

주양의 표정에서 회의감을 읽어 내보이겠다는 듯이.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주양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공개수사를 할까 싶습니다.” 진두영이 짧게 침묵했다. 그는 곧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신부가 오래도록 안 나타나긴 했지. 근데 공개수사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제가 찾고 있는 걸, 뉴스로 보겠죠.”굴종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이었다.

주양이 숙부인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볼 때마다 두영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주양은 와인 잔을 테이블에 붙이고 돌렸다.

“아시잖아요, 신해수, 저 그 여자하고 마음에도 없는 결혼한 거.”주양은 단도직입적으로 두영을 비웃었다.

“아들 낳아줄 관상만 아니었으면 굳이 여기까지 안 왔습니다.”“결혼은 선택이야.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기왕 한 거,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라구.”진두영은 나이프를 꽉 쥐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뱉었다.

주양이 짐짓 고민하는 투로 턱을 두드렸다.

“이미 결혼은 했고, 무를 수 없으니 어쩐담. 시체로 발견돼주면 속 편할 텐데.”“주 본부장. 누가 들어.”“신부가 사라지고 내내 그 생각뿐이더군요.”신부가 죽어서 발견되면, 하고…… 주양이 속삭이듯 말했다.

“자연히 이혼이 되겠죠. 사건도 종결되고, 그간 우리, 숙부님과 저 사이를 갈라놓았던 껄끄러운 문제도 풀리지 않겠습니까?”두영은 답답하게 목을 죄는 타이를 잡아당겼다.

“아무리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그깟 여자야 뭐, 대수겠습니까. 한 핏줄이 더 소중하지.”주양은 진심으로 웃었다. 진심으로.

*

“숨바꼭질 알아?”신해수는 천천히 과거를 더듬었다. 한때 빛났던 자신을.

“찾는 거 하난 내가 또 귀신같지.”“…….”“그 계집이 어디 숨어 있건, 난 찾아낼 수 있어. 항상 게임의 승리는 나였으니까.”장 경감은 신해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해수는 자신만만했다.

“진주양을 만나면 전해. 내가 너보다 신영원을 먼저 찾아낼 거라고. 찾아내면, 3일 굶은 개새끼들한테 그년을 산 채로 던져줄 거라고. 그래서, 시체도 못 찾게 만들 거라고.”섬뜩했다. 그 둘을 향한 증오가, 광기가 넘쳐흘렀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지 신해수가 나른하게 입매를 풀었다.

“이보다 그 남자한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또 있을까?”신해수는 확고하게 목소리를 되새기고는 돌아섰다.

“자, 잠깐……!”장 경감은 앞으로 가려다 철창에 가로막혔다.

철창 구멍으로 팔을 욱여넣었다. 신해수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지 말고 나하고 얘기를 좀 더 해……!”그때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빗물 웅덩이를 짓밟는 둔중한 소리들.

“추격자들이야…….”신해수는 사색이 됐다.

장 경감은 얼굴이 빨갛게 터지도록 철창에 몸을 욱여넣었다.

“아직 할 말이 더 있어!”신해수에게 팔을 뻗었다.

그녀가 완전히 돌아섰다.

씨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려 했지만 모래알처럼 느슨히 빠져나갔다.

그녀의 염주만 손에 남겨졌다.

그녀가 골목을 빠져나가자 사내들이 그녀를 추격했다.

쏴아아아 - ! 장 경감은 빗속에 혼자 남겨졌다.

그녀를 뒤쫓는 사람들은 익히 봐왔던, 진주양의 부하들이다.

처음 신부의 실종을 경찰에 알린 건 진주양이 아니었다.

그는 혼자서 신부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진두영이 경찰에 신고를 해버렸고 일이 커져버렸다.

진주양은 이 사건을 빨리 끝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식적인 신부는 신해수였다. 경찰은 신해수가 신부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는 건, 신해수가 나타나면 사건에 대한 수사도 끝난다는 소리다.

신해수가 나타나면……

신해수가…… 시신으로 나타나면.

신해수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녀는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진주양은 시체를 노리고 있다.

진주양은 신해수를 죽여서, 이 사건을 빨리 종결지으려는 건가.

신해수는 경고했다.

‘그 남자를 절대 믿지 마. 그 남자한테 진실은 하나도 없어. 다 거짓말이야.’‘하지만 그는…….’‘그가 잠깐 베푸는 서푼짜리 친절, 스치듯 내비치는 슬픈 얼굴.’장 경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신해수가 말을 끊었다.

‘당신도 어떤 가면에 속고 있을지 몰라.’‘…….’‘신부를 잃은 가련한 신랑?’하하! 히스테릭 하게 그녀가 웃음소리를 높였다.

‘신영원은 그럼 왜 도망쳤을까?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인데.’손톱 같은 것이 장 경감의 뇌를 날카롭게 긁었다.

‘또 모르지, 어떤 가면을 감추고 있을지.’신해수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여.’이 도시를 장악한 어둠이 장 경감을 꽁꽁 싸맸다.

‘그는 <악인>이야.’이미 판은 유리하게 짜였다.

신부가 죽으면 진주양은 새 신부를 잃은 비극의 인물이 되어 언론의 동정을 받을 것이다.

권력가들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타살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때쯤에 신부가 도망친 이유가 연일 보도될 것이다.

신부에게 내연남이 있었고, 평소 부도덕한 여자였다고 언론이 빗발치면, 진주양이 사랑에 속은 순진한 남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외면하고픈 진실엔 무관심하다.

사건은 잠시 질질 끌다가 그대로 묻히겠지.

어느 순간 신부의 사인은 자살로 판명 나 있는 거다.

‘당신 누굽니까?’그 물음에 진주양이 대답했다.

‘신랑.’진주양이 스치듯 보인 인간적인 면모들, 슬픈 척하는 얼굴, 잠깐 베푼 친절.

혼자 상상하고 혼자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해버렸다.

그 남자가 사랑한 건 신영원이었다.

그 남자가 신영원을 사랑했던 거지, 타인에게는 여전히 가차 없는 살의를 발현할 수 있는 자라는 걸 간과했다.

이젠 그의 폭력은 타인에게 전염되어, 신해수는 그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진주양을 만나면 전해. 내가 너보다 신영원을 먼저 찾아낼 거라고. 찾아내면, 3일 굶은 개새끼들한테 그년을 산 채로 던져줄 거라고. 그래서, 시체도 못 찾게 만들 거라고.’진주양은 신해수를 죽이려 하고, 신해수는 신영원을 죽이려고 한다.

얽히고 얽힌, 먹히고 먹히는 아귀다툼.

이기적인 인간들의 욕망이 서로를 뜯어먹고 맞붙어 선명하게 충돌했다.

장 경감은 지독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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