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46화 (46/83)

46화. 실종 22일째2016.12.11.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주양은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후계구도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친아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결혼을 할 수 없지만 가지고 싶었기에 사랑했던 여자를 첩이란 오명으로 얽매어두고.

바람난 사위의 내연녀를 살해하고.

심지어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익히 보아온 것들로 자신의 모럴 역시 무뎌진 것은 아닐까.

주양은 때때로 스스로가 지닌 폭력성이 아이러니 했다.

구석진 주차장은 어두웠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영원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양 비서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매섭게 몰아붙일 마음은 없었다.

“내가 분명 차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그의 물음에 영원이 꾸밈없이 대답했다.

“그게, 오줌을 참기 힘들어서……. 화났어?”낭랑한 목청이 밝았다.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전혀 예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화낼 줄 알면서 말을 안 듣는 건, 날 우습게 보는 건가?”냉정한 태도에 영원은 황망해했다.

문득 왜 자신이 화장실 다니는 것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짜증이 난 듯했다.

그녀가 반항심 깃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제일 잘 아는 것 같지만 제일 몰랐다.

그녀에게만은 그가 얼마나 참아 주고 있는지.

자신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고도 무사한 것은 영원뿐이었다.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저런 얼굴을 할 수 없었다.

“입.”“나,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하는 로봇이 아니야.”“로봇이 되라 하지 않았어.”“이게 로봇이 되라는 거랑 뭐가 달라?”영원은 완강히 저항했다.

주양이 순간적으로 뻗은 팔에 그녀는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때린다고 생각했나. 이런 반응만 봐도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못 보는지가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주양은 영원의 입술을 꾹 눌렀다.

힘이 들어간 엄지 손끝에 잔뜩 뒤틀린 심사가 담겨 있었다.

찐득찐득하게 음료수가 남아 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그가 명령했다.

“함부로 아무거나 주워 먹고 다니지 마.”“넌 매일 날 죽일 생각밖에 안 하지?”영원이 왈칵 분노가 치민 얼굴로 쏘아붙였다.

고작 팔백 원짜리 음료수를 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화를 내는 그에게 영원이 서럽게 말했다.

“나…… 나는 아니야. 나는 네가 매일 그럴 때마다 네가 미워져.” “그것 말고 우리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하는 건데.”그는 또 그럼 이렇게 영원에게 상처가 되는 말로 되받아쳤다.

“난 확실한 게 좋아. 원하는 걸 정확하게 말해. 돈? 아니면 그 쥐꼬리만 한 밥집에 네 직책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좀 더…… 다, 다정하게 대해줘.”“뭐라고?”“다정하게 말해줘……, 다정하게.”진두영처럼, 진두영의 반의반만큼이라도. 그런 뉘앙스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속에 쌓아두고 있던 응어리를 거침없이 터트렸다.

“나는 다정한 남자가 좋아.”자신의 취향을 확고하게 밝히는 모습이 예뻤을 것이다. 만약 이 대화가 아니었다면.

인간성의 상실이 재차 그를 괴롭혔다.

다정함은 인간다움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인내심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다정한 남자가 좋다고?”“그래.”“좋아.”주양이 순순히 응해주자 영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넥타이를 조금 비틀어 내리며 씹듯이 뱉어 말했다.

“다정하게 해주지.”“정……말?”그는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매번 그 기록은 갱신되었다.

주변 상황들로 모럴이 무뎌진 게 아니라, 그의 프로그램엔 모럴이 입력돼 있지 않았다.

저장되지 않은 영혼처럼.

그는 다정하게 대해주리라 다짐했다.

다정하게. 나름의 방식대로.

“무섭다고 울지나 마.”

*

8월로 접어들던 무렵, 영원은 ‘가출’을 했다.

“네 말대로 당분간 집에 안 들어갈 거라는 쪽지를 남겨놨어.”주양의 옆에서 영원은 신이 난 듯 쫑알쫑알 거렸다.

자동차는 파주에 접어들었다.

“강남이 기술이 좋다고 하지만 뭐. 네가 대단한 곳이라니까. 근데 쌍꺼풀 수술하고 원래 입원하는 거야?”그녀는 주양의 소개로 성형을 받는 줄 알고 따라나섰다.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의 인생도.

주양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모든 게 달라질 거야.”영원이 그를 봤다. 주양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 받아 놓은 병원 직원들이 나왔다.

영원은 특실병동으로 안내되었다. 원장이 주양에게 귀띔했다.

“5호실의 보안은 어디에도 새 나가지 않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주양은 영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자 그녀가 돌아보았다.

강아지 같은 순한 눈망울에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달려와 그의 팔을 끌어당겼으면 어땠을까.

들어가려는 그녀를 그가 막았을지도 모른다.

영원은 어른스러웠다.

두려움 속에서도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를 향해 조금 웃어 보였다.

자기가 들어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주양은 그날 기억이 희미했다.

그때 자신이 어떤 얼굴을 했는지.

입꼬리를 뺨으로 간신히 당겨보았지만 그게 웃는 거였던가?

치미는 혼란을 참아내던 거였나.

잊고 싶었다.

-실종 22일째

구형 스타렉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른 흙을 비벼 밟으며 장 경감이 차 문을 닫았다.

자동차는 백운당 뒤편에 주차됐다.

‘그 집을 찾아가겠다고요?’수진이 놀라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신부의 방을 둘러본 적이 없어. 제일 중요한 부분이잖아.’신부의 일기장이나, 그녀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을 만한 단서가 분명 나올 텐데 말이다.

백운당과 이어지는 담벼락에 최혜란 사장의 사가가 붙어 있었다.

장 경감은 사택을 올려다보았다. 방문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이미 지평선 끝까지 번지기 시작한 석양은 유난히 선명한 색깔을 발했다.

그 탓에 들풀들은 불길에 휩싸인 성냥 같았다.

누군가 자꾸 그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당산나무였다.

언덕 빼기에 서서 검은 망자처럼 장 경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이 노한 거야. 이 마을에 곧 재앙이 닥칠 거야.’칠십 먹었다는 늙은 무당의 귀기 어린 목소리가 생생했다.

‘원래 폭풍전야가 더 조용한 법이지.’돌고 돌아 결국 원점으로 와버렸다.

장 경감은 그것을 무시하며 울타리를 밀고 들어갔다.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오싹하니 기분이 싫었다.

“계십니까?”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이 계속 열려 있었다.

삐걱거리는 오래 된 가옥으로 장 경감은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음식을 준비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도마에 썰다 만 두부가 놓여 있었다.

그는 부엌을 지나쳐 2층 계단을 밟았다.

신부의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신해수, 그러니까 신부의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꽃 같은 자태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하는 신부는 아름다웠다.

그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방엔 온갖 레이스가 가득했다.

구두를 신발장이 아닌 방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신부가 그런 타입이었다.

명품 구두들이 가방과 함께 완벽한 드레스 룸을 이뤘다.

장 경감은 구두를 뒤집어 봤다.

“240.”정확히 ‘그것’과 맞아떨어지는 사이즈였다.

지난밤, 장 경감은 호텔 로비 영상을 미친 듯이 살폈다.

회전용하고 고정식 합쳐서 호텔 로비에만 CCTV가 14대가 넘었다.

그중에 경찰이 채증한 신부가 잡힌 CCTV는 7대,

호텔 로비 천장이 높다보니 녹화영상이 너무 어두웠다.

4대는 행인들 통행만 구분할 정도고, 나머지 3대도 뒷모습 아니면 화면 사각지대에 잡혀서 너무 순식간이라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신부의 이동경로에만 주력했기에 그 얼굴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신부라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실수가 시작됐다.

‘뭐, 신영원도 그런 심사로 나처럼 식장을 박차고 나온 거 아닐까요?’‘아닌데, 분명 신영원이었는데.’장경감은 신영원을 봤다는 김보경을 추적했다.

로비에서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하객들을 전부 샅샅이 살폈다.

김보경을 뜻밖의 곳에서 찾아냈다.

바로 벨보이가 몰카를 찍었던 여자가 김보경이었다.

김보경의 앞을 신부는 간발의 차로 스쳐갔다.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김보경이 신부를 알아본 듯한 모습을 할 때였다.

벨보이가 김보경의 스커트 아래에 몰카 시계를 들이밀었다.

벨보이, 김보경, 신부……

한꺼번에 가중된 혼돈이 머리맡에서 끊임없이 리플레이 됐다.

영상을 아무리 뒤져봐도 김보경은 그날 신영원을 만나지 못했다.

김보경은 신부 대기실이 있는 2층에 올라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영상만 보자면 김보경이 본 것은 신영원이 아닌 신부였다.

신부, 신해수는 김보경의 앞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김보경은 제 입으로 신영원을 봤다고 했다.

어째서 이럴 수가 있을까.

정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정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장 경감은 녹음기를 꺼내 귀에 붙였다.

목격자들의 생생한 목격담이 흘러나왔다.

‘결혼식 전날까지만 해도 해수랑 신랑 될 사람하고 팔짱끼고 산책했는데. 둘이 사이좋았다는 건 여기 사람들 다 안다.’‘진 이사인가 하는 그 사람은 매일같이 집에 찾아오고 그 치하고 마을을 산책했지. 두 사람 얼마나 보기가 좋던지 팔짱을 끼고 매일 붙어 다녔는데…….’분명 그들을 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진주양이 신해수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마을 주민 대다수가 증언했다.

다시 되감기했다.

‘결혼식 전날까지만 해도 해수랑 신랑 될 사람하고 팔짱끼고 산책했는데. 둘이 사이좋았다는 건 여기 사람들 다 안다.’‘진 이사인가 하는 그 사람은 매일같이 집에 찾아오고 그 치하고 마을을 산책했지. 두 사람 얼마나 보기가 좋던지 팔짱을 끼고 매일 붙어 다녔는데…….’계속해서 되감기를 했다.

‘진 이사인가 하는 그 사람은 매일같이 집에 찾아오고 그 치하고 마을을 산책했지. 두 사람 얼마나 보기가 좋던…….’옷장 깊숙한 곳에 팔뚝만 한 뭔가가 돌돌 말린 채 쌓여 있었다.

싹뚝, 싹뚝, 장 경감은 뇌 회로가 오싹하게 절단되는 걸 느꼈다.

어떤 예감이 세포 하나하나 깨어났다.

손을 뻗었다. 감춰져 있던 진실로 접근하는 순간이었다.

“누구세요?”장 경감의 손끝이 허공에서 멎었다.

돌아온 직원이 문지방에 서 있었다.

허락도 없이 구역을 침범한 낯선 손님을 그녀는 바짝 경계했다.

*

와이퍼가 무거운 빗물을 쓸어버렸다.

서울로 내려오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장 경감은 한신그룹 본사까지 차를 몰았다.

백운당의 최혜란 사택에서 마주쳤던 여자는 식당의 매니저였다.

노 집사가 집을 비운 동안 집을 관리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녀가 경계했지만 장 경감이 잘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이 신부를 찾고 있는 탐정이며 신부의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고.

‘최 사장님께 해수 아가씨가 결혼식장에서 사라졌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경찰이 찾고 있다는 것도요.’최혜란 사장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그녀는 담담했다.

장 경감은 신해수의 방에서 팔뚝만 한 크기에 둘둘 말린 양산을 집어 들며 물었다.

‘신부가 양산을 자주 쓰고 다녔나요?’매니저는 우물쭈물하다가 답했다.

‘해수 양은, 양산을 쓰지 않곤 밖에 못 돌아다녀요. 햇빛 알레르기가 심해서. 피부가 뒤집어지죠.’‘평소에도 심심찮게 이 양산을 쓰고 다녔겠군요?’‘네.’장 경감은 집을 나왔다. 마을 논두렁에 아직 잔업을 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신랑과 나란히 산책하는 신부를 봤다고 증언했던 주민들이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그는 진흙을 밟고 들어갔다. 신해수의 민증 사진을 들이밀었다.

‘그날 신랑하고 있던 여자가 사진 속 이 여자가 맞습니까?’‘이 양반이 벼를 다 밟네!’‘신랑하고 신부 모습을 봤다고 했잖습니까. 신부가 혹시 양산을 쓰고 다니지는 않았나요?’결혼 직전까지도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마을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던 다정한 연인.

증언을 했던 마을 주민들은 처음엔 장담했다.

그러나 그것이 신해수인지 확신하냐는 물음엔 우물쭈물했다.

‘이 촌구석에서 이런 예쁘장한 양산 쓸 젊은 처자가 어딨어. 이 양산, 그 집 둘째 딸이 만날 쓰고 다니던 건데…….’역시 장 경감의 생각대로였다.

신부는 양산을 쓰고 다녔다.

속임수였다. 아주 간단하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쉬운 트릭.

장 경감은 붉게 물들어가는 논을 바라봤다.

멀리서 한 남녀가 팔짱을 끼고 산책하고 있었다.

남자는 진주양이었다.

주양의 옆에는 그의 연인이 있었다.

여자는 긴 머리카락에 하얀 원피스,

그리고 꽃 자수가 입혀진 아름다운 양산을 쓰고 있었다.

둘은 사이가 무척 좋아 보였다.

불현듯 길을 가던 여자가 멈췄다.

그녀가 장 경감을 돌아보듯 얼굴을 이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양산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마침내, 드러났다.

그녀는 신해수가 아니었다.

*

장 경감은 진주양의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이미 밖은 깜깜한 밤이었다. 진주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늦은 시각까지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이사님. 장영범 씨가 오셨습니다.”이미 들이닥친 장 경감을 비서가 당황해서 말했다.

“들이세요.”장 경감은 천천히 구두를 들고 진주양에게 다가갔다.

소매가 빗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장 경감은 조용히 책상에 신부의 구두를 올려두며 물었다.

“신부가…… 바뀐 겁니까?”사라진 신부의 구두와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영원의 실내화.

두 신발은 사이즈가 달랐다.

각각 다른 사람의 것일 테니, 크기가 다른 것이 당연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실내화 하단에 적힌 숫자는 240. 정확이 240이었다.

그에 반해 신부의 구두는 245.

조금 전 신해수의 방에서 발견한 그녀의 구두 사이즈는 신부의 구두가 아닌, 정신병원에서 발견한 실내화와 정확하게 크기가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건 신영원이 아니라…….

그러고 보면 정신병원에서 신영원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가려놓아서 당연히 그녀인 줄 알았다. 가까이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그건 경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정신병원 그렇게 보안이 삼엄했는지. 왜 사랑했던 여자를 병원에 가둬둬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정신병원에 가둬둔 건 신해수였다.

신부는 신영원이었다.

사라진 건, 신영원이다.

신해수를 정신병원에 가둬두고서, 신영원은 그녀의 이름으로 결혼을 준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진주양과 신영원은 쇼를 했다.

누구도 의심치 않는 결혼을 만들기 위해서.

이 결혼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남들이 다 보는 촌동네를 매일같이 산책을 다니면서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진주양이 실종 수사에 탁월한 자신을 찾아온 것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경찰의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라면 오히려 자신에게 의뢰한 것이 더 이상하다.

그림자 신부의 진실을 알고도 열성을 다해 그 신부를 찾아줄 만한 사람……,

돈을 밝히지만 정의감이 남아 있으며, 쉽게 경찰에게 협력하지 않을 자.

진주양이 금이 입혀진 만년필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신부가 바뀌었냐고 채근하는 장 경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남자에게는 물 흐르는 듯한 유연함이 배어 있었다.

주양은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장 경감에게 말했다.

“의뢰 내용을 바꾸겠습니다.”의뢰가 바뀐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가 원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이제야 본게임을 시작하겠다는 듯, 명령한다.

“이제, 신부를 찾아내세요.” 신부를 찾는 것.

그가 찾고자 하는 신부는 오직 ‘거짓’을 눈치챈 자만이 찾을 수 있는 신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