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42화 (42/83)

42화. 실종 18일째2016.11.27.

-실종 18일째

퇴색된 담배 연기가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 어딘가 쯤에서 금세 소실됐다.

장 경감은 정자 아래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마지막 담배를 태웠다.

이미 발치엔 옛 저녁에 지져 밟은 담배꽁초들이 널려 있었다.

후드득, 빗줄기가 처마 끝을 타격해댔다.

복잡하게 얼크러진 마음에 또다시 돌이 던져졌다. 심장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폐 썩고 나서야 담배 끊으실래요?”정자 안으로 불쑥 수진이 들어오며 말했다.

그녀는 빗물을 털며 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 대.”맡겨놨다는 듯 당당한 자세였다. 장 경감이 교양 없긴, 하며 혀를 찼다.

“이거 마지막 돗대야. 그리고 무슨 계집애가 내숭도 없어? 담배를 찾게.”“맛있는 건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비꼬는 거냐?”수진이 담배 안 피운다는 걸 뻔히 아는데, 필시 장 경감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비딱하게 수진을 꼬나보던 장 경감이 피식…… 에라 모르겠다, 져주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가족보다 더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수진이 장 경감의 발아래 수북이 쌓인 담배를 걱정스럽게 보았다.

“병원에서 아직 신영원 씨 못 찾았대요.”장 경감은 말없이 담배만 뻑뻑댔다.

“소장님.”“폐암으로 죽은 내 동창. 폐 CT 찍던 날, 시커멓게 죽은 폐 보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냐? 병원 벤치에서 담배 한 대 태웠단다. 슬퍼서. 인생이 그런 거야.”장 경감이 영원을 향해 달려갔을 때 이미 병원은 소강 상태였다. 탈출한 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신영원 빼고.

병실은 텅 비어 적막했다. 말라비틀어진 꽃잎만 쓰레기통에 한 가득이었다.

장 경감은 신영원이 병실에 떨구고 간 실내화 한 짝을 외투에서 꺼냈다. 간발의 차로 놓쳤다.

그날을 떠올리자니 절로 손에 악력이 들어갔다. 실내화가 구겨졌다.

“뛰어봤자 벼룩이죠. 돈도 없을 텐데 혼자 멀리 가봐야 얼마나 갔겠어요.” 수진은 위로했지만 영원이 사라진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신부만 해도 실종 18일째였다. 못 찾는다고 봐야 했다.

장 경감은 자신이 이 사건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협박으로 시작된 의뢰였다. 돈만 챙기고 쫑 내면 그만인데,

어느 순간 불청객처럼 끼어든 사건 하나가 이젠 그의 감정 조절 장치까지 지배했다.

의뢰에 사감을 쏟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의뢰인도 장 경감이 노력했음을 인정해줄 것이다.

인정하지 못하는 건 장 경감이었다.

없던 완벽주의 성향이라도 생겼는지 실종된 신부 찾기는 그의 삶을 조종했다.

장 경감은 휴대전화에 남겨진 메시지를 계속 열었다 봤다 했다.

‘살려줘.’살려달란 말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애틋함이 배어났다.

신영원이 보낸 메시지 탓이었다.

언젠가부터 세상의 모든 살려달라는 말은 아들이 한 말처럼 느껴졌다.

유괴 당했을 때 아들과의 마지막 전화통화 내용이었다.

살려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끝으로 아들은 줄곧 뇌사상태였다.

신영원은 아들을 연상시키기 충분했다.

그녀는 아들처럼 유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됐다.

잘못한 것 없이 밀폐된 방에 갇혀 그에게 살려달라고 SOS를 요청해왔다.

하지만 장 경감은 또 구하지 못했다. 아들을 구하지 못했듯이,

또 한 발 늦었다.

장 경감이 독기를 품고 수진에게 일렀다.

“진주양 차에 위치 추적 장치 붙일 수 있나 계획 세워봐.”“위치 추적 장치요?”하필 자신이 신영원을 만나러 가는 날에 병원에 방화가 일어나고 신영원이 탈출을 했다.

정신병원에 불이 난 것은 정말 우연의 일치였을까?

불이 났을 때, 평소에 병실을 지키던 그 많던 경호원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장 경감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앙심을 품은 눈빛이 검게 짙어졌다.

역시 그 남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괴물이다.

*

-실종 20일째

“꽃은 참 신기해요. 사람을 살리는 약도, 죽이는 약도 다 꽃에서 추출한 거죠. 양귀비만 해도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잖아요…….”김보경과는 시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쪽에서 먼저 장 경감에게 연락을 취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예요. 여자로 치자면, 자궁인 거죠. 씨를 품고 퍼트리는.” “…….”“그래서 자궁을 거세당한 여자들 중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플로리스트라는 여자는 꽃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누가 마약사범 아니랄까 봐.

“제 어머니 얘기예요.”장 경감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김보경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녀는 작심한 듯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날 뭘 노리고 저희 집에 침입했는지 문제 삼지 않을게요. 흥신소라면 뻔하니까.”양심이 찔려 장 경감은 침묵했다.

“난 아버지가 자살이라는 거 믿지 않아요. 댁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겠다는 것도, 캐내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사도 아니에요. 비참한 죽음은 오빠로 충분해요. 다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고는 싶었어요.”  그녀는 4시간 뒤 한국 땅에서 추방당한다. 10년 후에 입국정지가 풀려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아마 오지 않겠지.

전형적인 불효자들의 후회 어린 모습이었다.

살아생전 반목하고 지냈던 부모가 돌아가시고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미안하지만 이미 경찰 조사를 끝냈고, 내가 아는 건 조서에 적힌 전부일 겁니다.”장 경감이 해줄 말은 없었다. 여러 모로 타살의 냄새가 풍긴 죽음이었지만, 제 코가 석자였다.

누구를 위로해줄 여유가 없다. 바쁜 와중에 장 경감이 김보경을 순순히 만나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예전에 백운당에 고소장을 날린 일이 있으시던데.”장 경감의 물음에 김보경이 핫,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까마득한 얘긴데. 그 흥신소 정보력 하나 대단하네요.”김보경이 빨대로 음료를 휘저으며 얘기를 풀어놨다.

“그 집 셋째 딸하고 좀 트러블이 있었어요.”“신영원 씨를 아십니까?”“지긋지긋한 악연이죠.”의외였다.

“사고가 있었어요. 난 그 일로 신영원이 진주양과 뭔가 썸씽이 생긴 줄 알았는데, 신해수랑 결혼하더라구요?”그 일? 김보경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듯 말해주기를 피했다.

자존심을 건드리기라도 하는 사건이었나. 김보경은 진주양에 대해 원한이 깊었다.

“그때 그 결혼 깽판을 냈어야 했는데.”김보경이 우스갯소리처럼 털어놓았다.

“사실 그날 결혼식 파투 내주려고 갔었어요.”신부 실종 당일에 김보경도 장소에 있었다는 건 뜻밖이었다.

아마 예식장 안까지는 안 들어갔나 보다. 참고인 명단에 없던 것을 보면.

김보경이 씁쓸하게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 모양 이 꼬라지인데, 잘 먹고 잘살겠다는 남자를 못 보겠어서. 막상 올라갈 용기가 안 나더라구요. 뭐, 신영원도 그런 심사로 나처럼 식장을 박차고 나온 거 아닐까요?”이 여자가 하는 말이 지금 무슨 소리인가.

“뭔가 잘못 아신 것 같네요. 신영원 씨 그날 예식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갈 수 없었죠.”“자매인데 왜 참석을 안 해요?”“모르셨군요. 이미 오래 전부터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었어요.”“아, 그래요?”김보경은 놀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데, 분명 신영원이었는데.”장 경감은 촉박한 시간을 확인했다.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비슷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장 경감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진주양의 자동차 하단에 위치 추적 장치가 무사히 부착됐다.

스케줄 패턴은 대부분 업무였다. 업무, 업무, 그리고 업무의 연장선. 쉴 틈이 없이 하루 일과가 돌아갔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이동할 때마다 경호원을 대동했으며 식사 약속조차 비즈니스로 묶인 이들과의 만남이 전부였다.

일에 파묻혀 사는 워커홀릭도 기가 질릴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잠복 2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인간 오늘은 방콕 할 모양인데요?”기태가 살았다며 피곤한 어깨를 주물렀다.

초긴장 상태에서 꼬박 이틀 내리를 진주양 뒤를 밟았다.

마침 오늘은 진주양이 집에 틀어박혀 출근하지 않았다.

“온몸 안 쑤신 데가 없어요. 찜질방이나 갈까 봐요.”고생한 기태에게 하루 쉬라고 휴가를 내줬다.

기태가 카메라를 반납하고 신 나서 흥신소를 나가고 장 경감은 달력을 곁눈질했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스케줄을 통째로 비우는 게 범상치 않았다.

그 남자의 완벽주의 성격상 무단결근은 사전에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3시쯤 진주양이 보유한 여러 대의 차 중 한대를 몰고 빌딩 입구를 빠져나왔다.

경호원도, 마누라처럼 꼭 옆에 끼고 다니던 그 비서 놈도 없이 혼자였다.

무작정 잠복하고 있던 장 경감은 얼른 자동차 기어를 올리고 미행했다.

국회가 가까운 커다란 도심 한복판의 교차로였다.

장 경감은 차에서 내려 인파 속을 헤쳤다. 한낮의 열기가 시위로 달아올랐다.

“한신그룹과 국회는 들어라!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구조조정 결사반대!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라! 인정하라!”확성기로 파업을 외치는 4만 명 노동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주위가 산만했다. 장 경감은 길 끝에서 진주양을 발견했다.

진주양은 길 건너를 응시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한신그룹 후계자께서 노동자들을 친히 위로하러 왔을 리는 없고.

‘대체 여긴 왜 나타난 거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저들은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이었다.

저들 중 하나라도 진주양을 알아보면, 개떼처럼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가 이곳에 오는 것을 수행원들이 절대로 허락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역시 그룹 차원에서는 예정에 없던 돌발행동을 진주양이 한 것이다.

진주양이 한 발짝 걸음을 떼었다.

맞은편 횡단보도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그가 노동자들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장 경감이 지켜보다 이를 악물었다.

“제길!”미쳤다. 자살행위였다. 저토록 저 남자를 앞뒤 분간 못 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장 경감은 막으려고 달려가려다 인파 속에서 한 여자를 스치듯 보았다.

빨간 옷에 빨간 머리띠를 두른 파업 노동자들과 비교되는 여자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긴 생머리…… 갸름한 얼굴…… 새빨간 입술, 낯이 무척 익었다.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과거 기억이 되짚어졌다.

‘신영원?’장 경감이 의아하게 말끝을 쳐올렸다. 가족 기록을 뒤지던 그는 종이 앞뒤를 살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사진 속 여자는 다소 음침했다.

‘이런 여자가 있었나?’그의 물음에 커피를 마시던 수진이 대답했다.

‘신부…… 아, 그러니까 실종된 신부 신해수 씨의 여동생이에요. 그 집 셋째 딸이죠. 신영원.’

신영원이었다. 정신병동에서 탈출한 뒤 행적이 묘연해졌던.

*

처음엔 그저 셋째 딸이었다.

사라진 언니의 동생이었고, 참고인 가격조차 박탈당한 정신병원에 갇힌 미친 여자였다.

사람들은 세 자매 중에 가장 못났다며 그녀를 욕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희미한 존재감을 부여잡고 엑스트라의 의무에 충실했다.

어쩌면 스치듯 등장하고 사라질 여자였다. 신영원은.

진주양과 신영원은 서로를 눈앞에 두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횡단보도 맞은편에 선 여자를 멀거니 보았다.

아스팔트가 타들어가는 열기, 격렬해지는 집회.

그러나 사위는 곧 조용해졌고 오롯이 장 경감 눈에만 그들이 세상 끝에서 서로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 경감의 마음을 술렁이는 것은 시위자들의 고함도, 대치중인 경찰들의 확성기 소리도 아니었다.

두 남녀 사이에서 교차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위안되지 못한 슬픔이 밀려왔다. 먼저 발을 뗀 쪽은 신영원이었다.

그때 그녀는 분명 주양에게 건너오려고 했다.

“와아아아아!”노조원들이 뒤로 밀려났다. 차벽을 친 경찰들이 속속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 파업이며, 즉각 철회시키겠습니다.”경찰버스들이 와서 집회장을 철거시키고 주모자를 색출해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

노조들과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안 돼…….”장 경감은 신영원을 찾으러 무의식적으로 달려들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퍼부어지는 물줄기들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장 경감은 경찰들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시위대를 헤쳤다.

없어. 없어!

그러다 빨간색 노조원 복장을 한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시위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도망을 치고 있었다.

사내의 등에 신영원이 업혀 있었다.

기절한 듯 늘어진 팔에 힘이 없었다.

장 경감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미친 듯이 사내를 추격했다.

사람들에 섞여 잃어버렸다가 빨간 옷을 입은 놈이 빠르게 골목 안으로 튀어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장 경감은 품에서 가스총을 꺼내었다. 비상시에 호신용으로 따로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다.

외진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마른 바닥에 젖은 사내의 발자국이 찍혔다.

물기는 에어컨 환풍기가 사납게 돌아가는 식당가의 허름한 건물 계단까지 이어졌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젖은 구두와 바지가 무겁게 찌걱거렸다.

놈도 장 경감의 존재를 느끼고 벽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방아쇠를 바짝 당겼다.

첫 발은 공포탄이었다.

탕!

“지금 당장 나오면 널 경찰에 넘기지 않는다고 약속해. 난 여자만 데려가면 돼!” 놈이 대답이 없었다.

협상할 의자가 없는 자에게 시간을 주는 건 도망칠 궁리의 기회만 제공하는 셈이다.

장 경감이 놈이 방심한 틈을 타 달려들었다.

놈이 항복한다는 듯 두 팔을 들었다.

하지만 옆구리에 찬 건 분명 총이었다.

총?

장 경감은 다급한 마음에 방아쇠를 당겼다.

바로 면전에서 가스를 맞은 놈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이 시작됐다.

놈의 머리채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나! 나예요! 형석이!”그는 현기영 후배였다.

“너…… 뭐야.”“아이씨.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신영원은 어딨어.”“신영원이요? 그 여자를 왜 여기서 찾아요?”자세히 보니 옷도 그 사내가 아니었다.

그때 놈이 가진 무전기가 울렸다.

[장영범 이 새끼 찾았어? 뭐야! 일이 어떻게 된 거야!]현기영의 목소리였다.

장 경감이 진주양을 미행할 때 그들도 그를 미행하고 있던 것이다.

“제길!” 장 경감은 후배 형사를 던져놓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샅샅이 주변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진주양 역시 보이지 않았다.

장 경감은 길 맞은편에 있는 낯익은 검은 벤으로 걸어갔다.

경찰들이 미행에 이용하는 CP 차량이었다. 벤 문을 다짜고짜 열었다.

그 안에서 도청과 미행하고 담당하던 몇몇들, 그리고 현기영이 당황해 했다.

“개새끼!”장 경감이 현기영을 차에서 끌어내렸다. 주먹이 날아갔다.

“날 내버려둬! 왜 자꾸 사사건건 내 일에 겐세이 놓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야 이 새끼들아 뭘 멀뚱멀뚱 지켜봐! 장영범 이 새끼 안 떼어내!”장 경감은 주둥이만 산 현기영에게 달려들었지만 금세 제압되었다.

그의 팀원들이 장 경감을 바닥에 깔고 호승줄로 묶였다.

하아… 하아……! 세찬 숨소리.

“너야말로 꿍꿍이가 뭐야.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흔들어대는 현기영의 완력을 묵묵히 견뎠다.

장 경감은 반항하지 않았다. 거친 호흡이 뒤섞였다.

핏발이 선 장 경감의 시선 끝이 신영원이 사라진 마지막 뒷모습을 쫒고 있었다.

어쩌면 스치듯 등장하고 사라질 여자였다, 신영원은.

정신병원에서 그대로 탈출한 뒤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잊어버렸을 거다.

그녀는 이제 이 사건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이젠 자신이 놓아 줄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망쳤으면서 어째서 다시 돌아온 걸까.

진주양에게서 도망친 게 아니었나?

기절한 신영원과 그녀를 업고 떠난 사내는 누군가.

그리고 그 눈빛. 그 눈빛은 무엇이었나.

신영원이 마지막 순간에 진주양을 향해 보였던 눈빛.

미안해서……

미안해서…… 고개도 못 들던 애처롭던 눈빛.

그래서야 버림은 마치 진주양이 당한 것 같지 않은가.

“신부의 실종이 단순 가출이 아닌 거지. 뭘 숨기고 있는 거지!”그 사이 현기영은 계속해서 추궁했지만 소리는 아득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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