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41화 (41/83)

41화.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2016.11.24.

-1년 전, 두영

바람은 가는 곳이 길이다. 길을 잃지도, 헤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간신히 임신을 했으나 이번에도 딸인 게지.”노승은 진두영의 비통한 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로서 확인사살했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지만 왕후가 될 관상은 따로 있소이다. 그 처자는 왕후의 관상을 타고 났으나, 사주가 좀 셉니다.”노승이 두영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여자의 사주를 내밀었다.

“지지에 인(寅), 신(申), 사(巳), 해(亥)를 모두 갖추었으니, 사맹격, 왕이 될 사주입니다. 사주에 천기가 가득하나 이런 귀격사주는 대운과 불운이 파도처럼 휩쓰니. 좋은 집안에서 좋은 대접받고 자라면 귀한 사람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손에 피를 묻힐 사주입니다.”피를 묻힐 사주…….

“한 번 칼을 뽑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입니다. 칼에 묻은 피를, 피로 씻어내는 사주란 말입니다.” 그런 여자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노승도 진두영의 얼굴에 드리워진 의구심을 발견했는지 착잡해했다.

노승은 툭 까놓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재복과 더불어 많은 걸 타고났지만 왕의 재목이 아니라고.

아마 그 남자 탓이겠지. 조카라는 남자.

진두영의 거뭇거뭇한 눈에서 초조함이 읽혔다.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함.

둘 다 비슷한 대운을 타고난 사주에 관상 또한 귀상인데 두영은 기운이 약했다.

뱀의 혓바닥 앞에 선 쥐처럼 주양의 위세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이 사내는 타고나길 그 남자에게 모든 걸 빼앗길 운명이었다.

다만, 노승은 진두영의 어머니인 신씨와 인연이 깊었다. 첩이 아들을 낳은 것에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던 여인.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던 것을 저버릴 순 없었다.

“처사님. 왕후를 아내로 맞이하면 그 남편은 제왕이 될 게 아닙니까.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라는 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남자야말로 큰 그릇을 가진 아내를 맞이해야 기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사주불여상(四柱不如相))이라.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좋은 관상만 못합니다. 사주는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누구는 재벌이 되고 누구는 거지가 되지만, 상은 귀할 사람, 천할 사람, 정확하게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소승, 이제껏 타고난 관상을 거스르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왕의 재목을 가진 사맹격 사주에 왕후의 관상이라.

분명 귀한 분이 될 것이다. 이 처사가 타고난 약한 부분도 있고, 그 여인의 관상이 처사의 위기를 돌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령 빼앗길지언정 마지막 희망이라면 이 남자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사람의 욕심이란 채워지지 않는 우물 같아서 끝을 보지 않고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전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그제야 진두양이 고개를 들어 노승을 보았다.

“무엇입니까.”“그 여인을 만나게 되는 순간, 지금의 아내와의 인연이 끊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노승은 제일 중요한 대목을 마지막 순간에 풀어놓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영이 욕심을 내려놓기를. 사람의 도리를 선택하기를. 아내와의 세월에서 길을 찾기를.

진두영은 종이를 무연히 응시했다.

마흔이 다 되도록 딸을 셋이나 사탕처럼 줄줄이 낳아준 아내를 저버리는 일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승의 바람과 달리 두영의 선택은 망설임 없이 종이였다.

여자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네모나게 접어 품에 넣고 그는 나갔다.

인간의 연약함을 한탄하며 노승은 눈을 감았다.

두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선택해버렸으니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번민이 교차해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까 한없이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이라면,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사찰을 등지고 얼마쯤 걸었을까. 노승이 내린 경고가 뼈에 깊게 새겨 박혔다.

‘난 자업자득이란 말이 있다고 믿소. 당신이 한 선택에 벌을 받을 거요.’숲에서 불어 닥친 바람이 그를 위태롭게 흔들었다. 거침없는 바람이 부러웠다.

그는 땅에 박힌 그림자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없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

인생은 초콜릿상자와 같아서

열어보기 전까지

무엇을 집을지 알 수 없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中

- 1년 전, 영원 26세

“이번에도 기억 안 난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줄에 널린 빨래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해질녘, 울타리 주변에 속한 모든 광경들이 뱅글뱅글 돌았다.

대단한 서프라이즈도, 훌륭한 감정적 재회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영원은 말문 막힐 만했다.

“당신은…….”“여기 살았어요?”뜻밖이라는 감정이 밴 진두영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놀란 건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야?”“하하. 재미있네요. 우연이 계속 겹치는 게.”진두영이 반갑게 인사를 청하려다 상대의 반응을 인지하고 굳었다.

영원은 바짝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스토커 취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두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 재빨리 해명했다.

“아뇨, 그쪽을 따라온 게 아니라.”“집은 어떻게 알았어?”“그게 사실.”“초인종 소리도 못 들었어.”“눌렀지만 반응이 없었어요. 본론만 말하죠. 여기 혹시 신해…….”  “나가.”진두영이 놀라서 그녀를 봤다. 영원은 불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가.”“신영원 씨.”“내 이름도 알아?” 영원은 식겁했다. 피가 발밑을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뒤로 물러나다가 발밑에 놓은 빨래 바구니를 깜박했다.

물체에 닿은 발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 옆으로 쏠렸다.

엎친 데 엎친 격으로 아득한 빈혈까지 겹쳐왔다.

잠깐! 진두영이 그녀를 잡으려다가 같이 딸려왔다.

다리와 다리가 복잡하게 얽혀 두 사람은 풀밭에 엎어졌다.

숨 막힘보다 무겁게 덮쳐오는 진두영의 몸이 영원을 더 당혹스럽게 눌러왔다. 위를 점령당한 채 그와 눈이 맞대어졌다.

“미, 미안해요.”진두영은 급히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멈췄다.

영원의 얼굴을 본 유순한 눈동자는 처음엔 혼란스런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실감을 되찾아간 두영의 얼굴에 놀란 감정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게 느껴졌다.

기묘한 떨림이 이는 표정은 영원에게 익숙한 반응이었다.

경멸, 혐오, 충격, 영원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가림막이 사리진 안면이 헛헛했다.

일어나려 했지만 진두영이 비켜주지 않았다. 이성이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천박한 년! 천박한 년!

계모의 성화가 저주같이 퍼부어졌고 시야가 빨갛게 피로 물들었었다.

심장이 파열될 것 같았다.

영원은 손을 더듬어 주먹만 한 돌을 집었다. 그대로 진두영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진두영은 두개골을 강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뻗었다.

“난 이제 죽었다.”일은 저질러 버렸고 손쓸 수 없게 되었다. 수습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

본가를 찾아온 것을 보면 분명 계모의 손님일 테지.

높으신 양반을 돌로 내리쳤으니 그녀는 이제 산 목숨이 아니라 해도 무방했다.

“저 인간들이 계속 기다릴 텐데.”영원은 대문 밖을 염탐했다.

진두영이 대동하고 온 수행원들이 차를 대기시켜놓고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간간히 손목시계를 보며 진두영이 나오길 기다린다.

“일단 이 남자를 깨우는 게 우선이야.”영원은 수레에 진두영을 일단 앉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집 안까지 끌고 갔다.

대충 거실 카펫에 눕혀놓고 그의 재킷을 벗겼다. 얼음과 수건을 준비해 간호해주었다. 빨리 깨어나길 빌면서.

계모가 들이닥치기 전까지 무사히 깨어나야 하는데, 잠깐 기다린다는 게 너무 노곤해서 잠이 들었다.

영원은 부스럭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새 깬 진두영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양복을 상의 한쪽 팔을 끼우며 그가 수행원에게 안부를 전했다.

“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요.”그가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은 영원의 것이었다.

“미안. 깼어요?”진두영이 깨어난 영원에게 햇살 같은 웃음을 건네었다.

저것은 침 뱉기 전에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페이크일까?

그가 빌려 쓴 휴대폰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휴대폰 좀 썼어요. 생존신고 너무 오랫동안 안 해주면 바깥에 있는 직원들이 문 부수고 들이닥칠지도 몰라요.”영원은 불안하게 동공을 움직였다.

왜 내게 웃어주는 거지?

온갖 생트집을 잡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놔도 시원찮을 텐데.

“머리는 괜찮아……, 요?”영원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존댓말에 두영이 멍한 얼굴을 했다.

“고…… 고소하지 마요.”점점 목소리가 주눅 들었다. 이미 김보경 때 사고를 쳐서 영원은 계모에게 경고 카드 하나를 받은 상태였다.

옐로우 카드 두 장이면 퇴장이다.

남은 심각해 죽겠는데 진두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대목에서 그를 웃긴 건지 뭐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돌을 맞아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진두영이 감정을 추스르며 고개를 저었다.

“흠흠. 초인종도 안 누르고 들이닥친 내 잘못이 컸어요. 신경 쓰지 마요.”“그 말은…….”“고소 안 해요. 맹세해요.”이게 다 신성원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술 취한 신성원이 주폭으로 초인종을 부수는 바람에…….

하는 행동이나 표정을 보니 앞에서 입 바른 말 하고, 뒤에서 비열하게 뒤통수 칠 남자로는 안 보였다.

영원은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풀고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금세 의기양양해져서 책임 비율을 정확히 꼬집었다.

“뭐, 남의 집에 불쑥 찾아온 그쪽 과실도 어느 정도는 있지.”“그렇다고 다시 반말하라는 건 아닌데.”비열하게도 진두영이 갑자기 얼굴색을 바꿨다.

얼마든지 널 흔들 약점을 틀어쥐었다는 듯 목소리를 심각하게 깔았다.

영원은 과도하게 움찔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녀의 반응에 진두영이 대소했다.

장난이었다. 후, 누가 한신가 사람 아니랄까 봐. 완전 샌님인 줄 알았는데 능구렁이였다.

사람을 손바닥 뒤집듯 가지고 논다.

“이분은 누구죠?”두영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해수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사진 속에는 긴 소파에 앉은 계모와 해수, 그리고 뒤에 선 성원과 영원이 있었다.

네 여자 중 예뻐 외모로 단연 돋보이는 해수였다.

영원은 입을 삐죽였다.

“해수. 내 호적상 언니야.”해수라는 말에 어째선지 진두영이 심각해졌다.

“역시 이분이…….”영원은 심드렁해졌다.

그러고 보니 진두영은 왜 우리 집을 찾아왔지? 해수 손님인가?

아무렴 어떤가. 신해수를 추종하는 세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관심이 식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돼요?”“해수? 26살인데.”하지만 그가 돌아본 건 영원이었다.

“아니요. 신영원 씨요.”영원은 생각의 지표를 잃었다.

이제껏 순수한 호기심은 모두 해수의 몫이었다.

해수를 아는 사람들에겐 영원에게까지 관심을 뻗어줄 여력이 없었다.

이미 해수의 향기에 흠뻑 취해 온통 해수만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어째서 내 나이 따위를 궁금해 하는 건지 의아했다.

“동갑인데.”꼬치꼬치 캐물으면 고소한다고 마음을 바꿔 먹을까 봐 순순히 답해줬다.

그가 새삼스레 까마득한 나이차를 깨닫는 듯했다.

“어리네요.”어딘가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부러워서 그런 건가? 아직 싱그러움이 마르지 않은 젊음이.

이해했다. 한신가라는 위세 등등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간 얼마나 많은 특권을 누려왔을까.

한 살 한 살 나이를 까먹는 게 미치도록 안타까울 것이다.

그래도 액면가만 따지자면 이 남자도 무시 못 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두영은 진짜 젊어 보였다.

“야…… 큰일 났어!”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신성원이 들이닥쳤다. 영원과 진두영은 굳었다.

성원은 느닷없이 낯선 남자를 거실에서 맞닥뜨렸다.

영원은 잔뜩 긴장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진두영이 오늘 있었던 일을 입 뻥끗할까 봐 간이 졸아들었다.

성원은 다행히도 진두영에게 금세 관심을 껐다.

낯선 남자가 거실에 와 있는 것보다 더 급한 사안인지 영원에게 ‘큰일’을 빠르게 전했다.

“해수가 옷을 벗었다. 별채에 진 이사 왔거든? 해수가 옷고름 풀었대.”  “그게 무슨 소리죠?”그 말에 진두영도 관심을 가졌다. 진두영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성원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누구요? 누구한테 뭐를 해요?”“고매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런 법이 어디 있냐?”성원이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다 문득 진두영에게 “혹시 진 사장님 아니세요?” 하고 관심을 돌렸다.

진두영이 다급하게 성원의 어깨를 잡고 채근했다.

“무슨 소리냐고요!” 사나운 고함 위로 생뚱맞게 옥구슬 같은 웃음소리가 덧칠됐다.

영원은 배를 잡고 터져 나오는 즐거움을 억눌렀다.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영원을 돌아봤다.

실성했냐는 듯 보는 성원의 호박 같은 얼굴이 영원은 갑자기 귀여워 보였다.

“신해수가 옷고름을 풀었다고?”영원은 마른 웃음을 삼키며 잔혹하게 소파에 늘어졌다.

올해 들어 최고의 유머였다. 최고의 결말이었다.

“그랬단 말이지. 그 신해수가. 그 사람 앞에서 옷을 말이지.”신해수는 이로써 끝났다. 영원은 마음속으로 정중히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 사람은 영원이 잘 안다.

어쩌나. 진주양이란 남자는 몸뚱이로 해결 붙이려는 여자를 최고로 경멸하는데.

*

영원은 느긋하게 목욕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가 잠자기 전에 의식처럼 하는 행위가 있었다.

“이게 어디 갔지?”서랍이 열려 있었다. 별채에 저금통을 숨기지 못한 뒤로 쭉 보물들을 서랍에 보관해왔다.

몽블랑의 우아한 금색 버튼이 사라졌다.

보물 상자에 주양이 준 오백 원은 있는데 금단추만 없어진 게 이상했다. 금단추만 사라졌다.

영문을 알 길 없다.

단 한 명, 의심 가는 사람이 있긴 했다.

늦은 저녁, 영원은 고위관직들의 접대가 한창인 백운당을 헤쳐 들어갔다.

계모와 해수가 주양을 배웅하고 있었다. 입구 가로등 아래서 그들을 지켜봤다.

“참, 전해드릴 것이 있어요.”신해수가 저고리에서 알록달록한 복주머니를 꺼내어 주양에게 건네었다. 불길한 예감이 실려 왔다.

“저희 직원이 주웠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잃어버리지 않으셨나 해서요.”주양은 복주머니에 든 것을 손바닥에 털어 꺼내었다. 정교한 돋을새김이 그려진 몽블랑 단추였다.

바로 영원이 잃어버린. 눈앞이 시뻘게졌다.

그가 떠나자마자 영원은 혼자 있는 해수에게 다가갔다.

“누가 멋대로 내 물건에 손대래.”다짜고짜 와서 따지는데 놀란 기색도 없이 신해수가 받아쳤다.

“네 물건이 아니지. 진 이사님 물건이지.”신해수는 적반하장 무척 당당했다. 오히려 영원에게 도둑 누명까지 씌웠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네가 훔친 물건, 사고 안 일어나게 내가 자연스럽게 돌려드린 거야.”“훔친 거 아니야. 주운 거야!”“그날 일로 별채 출입은 금지된 걸로 아는데, 대체 저건 언제부터 가지고 있던 거야?”김보경과의 일이 있고 영원에게는 별채 출입이 금지되었다.

저 단추는 그보다 훨씬 전인 4년 전에 주양이 영원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영원이 울부짖으며 엉망진창이 돼서 해수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그건 안 돼……! 진짜 그건 안 돼……!”“신영원!”돌연 어디선가 나타난 성원이 영원을 떼어놓았다.

“미쳤어! 앞으로 해수가 누가 될 줄 알고!”바닥에 패대기쳐진 영원이 하얗게 얼굴이 떴다.

안 돼. 안 돼……, 멍청하게 되뇌는 영원을 두고 두 사람이 실랑이를 했다.

“얘한테도 말해주자.”“언니. 아직 비밀이란 말이야.”“됐네요.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원이 물었다.

“뭐가 기울었다는 거야?”성원이 팔짱을 끼며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영원을 가련하게 보았다.

“해수는 한신그룹의 여주인이 될 거야. 진 이사가 해수의 고백을 받아줬대. 둘이 정식으로 교제한대.”청천벽력 같이 소리가 떨어졌다.

“차인 거…… 아니었어?”“얘 뭐래니?”성원은 자기가 해수인 마냥 기고만장해져서 떠들어댔다.

“한신 중공업 사장 진두영 알지? 그 사람 숙부. 내일 그분한테 직접 인사시킬 거래.” 눈앞이 뿌예졌다. 입안이 까맣게 타들어갔고, 근사했던 이 밤과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저주스러워졌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행동에는 반드시 반응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만약 어떤 인물에게 특정 행동을 했고, 특정 반응을 끌어냈다면, 그건 그 인물이 가진 고유의 가치관이 된다.

그렇다면 주양에게 있어 김보경과 신해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김보경과 신해수는 똑같은 행동을 했지만 다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답은 하나다.

신해수니까.

신해수, 니까.

인생이 초콜릿 상자라면, 내가 집은 초콜릿은 아주 쓴 초콜릿이었을 거다.

달콤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늘 내 뒤통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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