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36화 (36/83)
  • 36화. 실종 10일째 <4>2016.11.06.

    -실종 10일째

    “으아아아아악……! 흐아악!”기태의 비명 소리가 찢어졌다.

    장 경감과 수진은 요트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저, 저기!”기태가 어딘가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요트에 뭔가를 묶어놓은 듯했다.

    수진과 그것을 배 갑판으로 끌어올린 순간, 축 늘어진 뭔가가 물속에서 올라왔다.

    장 경감과 수진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사람이었다.

    장 경감은 얼른 달려갔다.

    엎어진 사람을 앞으로 돌려 목에 맥을 짚었다.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김 회장이에요.”수진이 말에 그제야 시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들이 그토록 찾던 김 회장이었다.

    장 경감은 혼돈처럼 맞닥뜨린 상황에 침을 삼켰다.

    “죽었어.”심지어 시체는 아직 따뜻했다. 수진이 플래시로 김 회장의 손을 비췄다.

    “여기 뭘 쥐고 있는데요?”김 회장은 무언가를 꽉 움켜잡고 죽었는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직감이었다. 이건 중요한 거다.

    장 경감이 김 회장의 손을 펼치려고 했다.

    도통 굳은 주먹이 풀리지 않아 고생하는 그때였다.

    “저쪽에서 무슨 비명 소리가 났는데?”기태의 비명을 듣고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장 경감이 수진과 기태에게 먼저 가라고 눈짓으로 지시했다.

    “소장님.”“가!”주저하던 수진이 기태를 데리고 수풀로 사라졌다.

    장 경감은 미련하게 시신의 주먹을 펼치려고 했다. 비닐 팩에 USB가 동봉되어 있었다.

    김 회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무언가라면 필히 가져가야 했다.

    “이쪽이야!”경호원들이 간발의 차로 가까워졌다.

    장 경감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김 회장의 손목을 내리쳤다.

    비닐이 손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장 경감은 USB를 빼앗아 도망쳤다.

    강을 건너자 망루에서 내려온 직원들이 도로에 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들은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벤 안은 죽음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장 경감과 수진, 기태 세 사람 다 망연자실했다.

    정황을 알 리 없는 나머지 직원들이 앞좌석에서 그들 눈치를 봤다.

    기태가 입을 뗐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그러자 수진이 소리쳤다.

    “미쳤니? 지금 신고하면 우리가 그대로 독박 쓰는 거야.”“하지만 경호원들이 김 회장 시신을 봤을 거예요!”장 경감이 기태를 막아섰다.

    “그건 수진이 말이 맞아.”“소장님!”“경찰이 물으면 거기 왜 갔냐고 추궁할 텐데, 명분이 없어. 그리고 우린 무단침입이라고.”그 말에 기태도 딱히 별 수가 없는지 잠잠해졌다.

    수진이 장 경감에게 물었다.

    “자살한 걸까요.” 장 경감은 말을 아꼈다.

    자살이라. 못 할 것도 없지.

    김 회장은 보트에 고정시킨 밧줄로 자신의 목을 묶어 투신했다.

    목에 올무가 씌워 있었다.

    발에는 사람 얼굴 크기 정도 되는 묵직한 돌을 매달아 시체가 물 위로 뜨지 않게 했다.

    가정을 해보자면, 스스로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는 죽음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자살을 한 거지?

    또 ‘왜’ 자살을 한 거고?

    “신부를 죽였을까요?”장 경감의 생각은 수진과 정확히 일치했다.

    “신부를 죽였을 확률이 크겠지. 원한에 의한 살인 케이스들 중 대다수 용의자들은, 복수를 끝내고 마지막에 투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의도치 않게 신부를 죽였거나, 의도해서 신부를 죽인 뒤, 허탈감 혹은 자괴감에 자살을 택했을 거다.

    ‘그도 아니면…… 살해당했거나.’ 장 경감은 떨리는 손을 다 잡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시신이 따뜻했던 것과, 아직 경직되지 않은 점을 미루어 죽은 지 1시간도 안 된 시체였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저택에 침입할 때, 혹은 그동안에 김 회장을 처리했단 소리다.

    ‘대체 누가? 우리가 저택에 있을 때 또 다른 누군가도 함께였던 걸까?’ 그럴 순 없다. 요트 안에는 기태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각,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란 나머지 장 경감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도로의 CCTV였다.

    장 경감이 흥신소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차량 번호판을 추적했다.

    이미 형사들이 수갑을 챙기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장 경감이 파김치가 돼서 집에 도착했다. 어스름한 골목에서 사내 둘이 접근해왔다.

    “장영범 씨?”한 사내가 다가오며 바지 뒷주머니로 손을 넣는 게 보였다.

    업무적인 자세, 익숙한 기운. 장 경감은 그 모든 것들이 낯설지 않았다.

    “야심한 시각에 꼭 그런데서 기어 나오냐……. 으윽!”불식간에 그들에게 잡혀 장 경감은 담벼락에 머리가 처박혔다. 그에게 수갑을 채운 형사가 관등성명을 댔다.

    “청진 경찰서 조재권 경사입니다. 장영범 씨, 당신을 김정길 회장 살인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도로 CCTV인가. 장 경감은 저항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시를 따랐다.

    *

    취조실은 형사 출신인 장 경감에게 놀이터였다.

    형사들이 이것저것 증거를 들이대며 그를 신문했다.

    장 경감은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장영범 씨가 김 회장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걸 본 목격자가 있어요.”“목격자?”“김 회장 딸이 그 시각, 도로를 지나다가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문득, 김 회장 집으로 잠입하려 할 때 강변도로에서 마주쳤던 코란도 여자를 떠올렸다.

    나이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 초중반 사이. 포니테일 머리에 미인형 얼굴.

    그녀가 김보경이었나.

    김 회장 집으로 가려면 그 도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내가 김 회장을 살해했다는 증거는 없어.” “김 회장 보트에서 당신의 지문을 발견했어요.”안일한 수법이었다. 웃음만 나왔다. 긴급체포는 48시간은 묶어둘 수 있다.

    정확한 증거를 잡아 검사에게 적어도 36시간 내에 구속영장 신청을 해야 할 테니 꽤 빠듯할 터였다.

    “물론 발견했겠지. 요트 아래에 가라 앉아 있는 김 회장 시신을 끄집어 올린 게 나니까.”“김 회장이 요트 아래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그 집엔 왜 들어간 거죠?”“난 범인이 아니야.”“글쎄요. 그건 증거가 말해주겠죠.”“김 회장 같은 거물이 죽었으니, 똥줄이 타는 건 이해해. 작은 시골마을에서 꽤 큰 사건이겠지. 위에 보고서는 올려야 하고, 사건경위서에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는 걸 자네들도 피력해야 할 테니까.” “장영범 씨. 사건과 상관없는 사담은 사양하겠습니다.”“압박감에 무리하게 날 잡아온 거지? 이해해. 당신이 궁금한 건 내가 왜 그곳에 있냐는 거겠지.”“장영범 씨!”“김 회장 죽음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그들은 이미 아는지도 몰랐다. 장 경감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김 회장이 죽은 시각과 그와 수진이 요트선착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시간들을 조합해 CCTV를 확인해보면 나올 것이다.

    장 경감이 수갑 채워진 두 손을 책상에 올리며 형사에게 허리 숙였다.

    “발상의 전환을 해봐. 나도 목격자인 거야.” 김 회장이 죽던 그 시각, 그 장소에 장 경감이 있었다.

    목격자라는 걸 최대한 피력해서 유리하게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형사들에게 그도 목격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했다.

    장 경감은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들이 직접적인 증거를 들이밀지 못하는 걸 보면 자신이 살해했다는 증거 역시 못 찾았단 거다.

    신문은 아무 성관 없이 12시간이 흘렀다. 2차 심문이 시작되려는 때였다.

    형사과장이 오더니, 형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형사가 허탈하게 한숨 쉬며 수갑을 풀어줬다.

    “나가시죠. 조사 끝났습니다.”“김 회장 사인이 밝혀졌나? 자살이야? 타살?” 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취조실을 나가자 현기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다더니. 장 경감이 삐딱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경찰서 복도에서 둘은 마주 보고 섰다.

    “여기 너희 본청 관할도 아닌데, 웬일이냐?”“누구 때문이겠어?”“내가 풀어난 게 네 덕분이라는 거야?”“대체 왜 이런 일이 휘말린 거야?”현기영이 짜증스럽게 다그쳤다.

    장 경감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마치 장 경감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투였다. 사고치고 다니는 말썽쟁이를 혼내는 투.

    서로 사이가 안 좋지만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장 경감은 이상한 상황에 뜻밖의 우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우스웠다.

    현기영이 딱딱하게 말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널 풀어주라는.”“내가 왜 그 현장에 있었는지 안 물어보는 거 보니, 뒤에서 이미 높으신 양반들끼리 쇼부 쳤나 보군.”“청장부터 검찰총장까지 전화 명령 하는데 쟤들이 무슨 빽이 있다고?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시체에 타살 흔적이 없어. 전형적인 목맴사야.”시신의 부검이 벌써 끝난 것이다.

    “목맴사라면 폐에 물이 차 있어야 할 텐데?” “부검했고 폐에서 물이 나왔어.”살해당한 뒤에 물에 담가진 거라면 숨을 쉬지 않았을 테니 기도까지 물이 넘어갈 일은 없다.

    “호흡곤란이 올 때 물을 많이 들이마신 거야. 정황으로 따져도 자살이 맞아.” “구체적으로 납득시켜봐.”“김 회장이 경영 압박으로 우울증을 앓았대. 교도소에 있을 때도 수시로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았다더군.”“위장 살인일 가능성은?”“배에서 김 회장 자필유서가 발견됐어. 필적 감정해서 맞았고, 딸 김보경이 김 회장 필체가 맞다고 인정했어.”“김보경과 김 회장은 사이가 나빴어. 왜 하필 그날 김 회장을 만나러 온 거지?”“며칠 전부터 집에 좀 들르라고 했대. 이 핑계 저 핑계대고 피했는데, 딸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봐.”특이 케이스이긴 하지만 평소 낚시를 좋아했다는 김 회장이니까.

    본인 시체가 유실되지 않게 밧줄로 몸을 묶어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아마, 그날 딸에게 전화한 것은 딸이 발견해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장 경감은 문득, 금고에서 발견했던 문서가 생각났다.

    그것을 전해주려 했던 의도는 아니었을까. 손에 쥐고 있던 USB.

    그러나 경찰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USB는 자신이 훔쳤으니까.

    현기영이 예리하게 촉을 세웠다.

    “왜, 김 회장이 살해당했을 거라고 추측할 뭔 건덕지라도 있나?”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현기영도 장 경감이 그곳에 왜 갔는지 굉장히 수상쩍게 여길 것이다.

    신부 실종 사건과 맞물려 있을 거라고…….

    장 경감이 딴곳을 보자 현기영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체, 왜들 네게 이렇게 공을 들이는지 알 수가 없군.” 진주양의 힘이었다. 김 회장이 자살했다면 99프로 그건 진주양 때문이다.

    “날 봤다는 목격자 말이야.”현기영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어. 마침 저기 오네.”형사들과 어디론가 가는 여자를 보였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울고 있었다.

    “김보경, 김 회장의 막내딸.”“저 여자가 김보경이라고?”장 경감은 뭐지 싶었다. 김 회장 저택을 가던 길에 마주친 여자가 아니었다.

    분명 그 여자는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처럼 한껏 뒤로 넘기고 있었지만 김보경은 짧은 단발이었다.

    그럼 그 여자는 누구지? 그냥 아무도 아니었나?

    현기영이 혀를 찼다.

    “딸이 마약 복용으로 추방당하게 생겼는데 살고 싶었겠어? 나였어도 자살했을 거야.”“그게 무슨 소리야?”“쟤, 미국시민권자야. 곧 추방명령 떨어질 거야.”“추방?”“회사는 망해, 아들은 도박으로 돈 다 탕진하고 타지에서 비명횡사, 딸은 상습적으로 마약에 손을 대.”“마약을 제조라도 했대?”“몇 차례 투약한 것치고 좀 심하긴 해.” 마약을 판매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매수했다고 추방은 심했다. 보통은 몇 번 정도는 집행유예로 봐주기도 했다.

    삼진아웃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의아했지만 남의 개인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장 경감은 흥신소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장 경감이 떠나고 현기영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기 금연입니다. 과장님.”현기영이 후배를 노려봤다. 눈치 없는 후배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수상해.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야. 분명 신부를 찾는 건 경찰인데, 우리가 따돌림 당하는 기분이야.”“신랑과 장영범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말입니까?”신랑만 해도 그렇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고 있다. 반쪽을 잃은 사람치고 너무 잰다.

    보통 체면 불구하고 경황없이 버선발로 달려와 경찰에게 사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랑하는 여자인데.

    “장영범 뒤 좀 밟아봐. 실시간으로 나한테 보고해.”현기영이 재를 툭툭 털었다.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누구와 접촉하는지. ……신부 실종 사건에 왜 개입된 건지.”

    *

    흥신소로 돌아오자 수진과 기태가 눈물 바람으로 달려왔다.

    “경찰들이 한차례 와서 쑤시고 갔어요.”“잘 해결된 건 겁니까?”서로가 앞다투어 물었다. 골이 아파 일단 얼음물부터 손짓했다. 기태가 빠릿빠릿하게 대령했다.

    “김 회장의 사인은 자살이야.”“그럼 신부는요?”수진이 되물었다. 장 경감도 그게 걱정이었다.

    정말 신부를 살해하고 박탈감에 목을 맨 건가?

    경찰에서 이미 부검까지 끝난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긴 그렇지만, 찜찜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일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거 같다.

    짜맞춘 것처럼.

    장 경감이 수진에게 물었다.

    “참, 내가 넘겨준 USB는?”“암호가 걸려 있어서 푸는데 좀 시간이 걸렸어요.” 그들은 김 회장이 남긴 USB를 열었다. 폴더 이름은 <대외비>였다. 동영상 파일이었다.

    동영상 파일을 수진이 클릭했다.

    화질이 안 좋은 어둑한 화면이 나왔다. 처음엔 한 중년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지직 - 간간히 말소리 같은 것들이 들렸다.

    고급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으로 추정되었다. 잠시 뒤에, 중년 남성의 방으로 한 여종업원이 들어왔다.

    성추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여종업원에게 서슴없이 어깨동무를 한 중년이 그녀에게 술을 먹였다. 테이블이 엉망진창이 된 건 그때였다.

    여종업원이 반항하다가 도망을 쳤다.

    영상은 거기서 뚝, 끊겼다. 장 경감이 마땅히 결론을 찾지 못하고 양미간을 구겼다.

    “이게 다야?”“화질 높일 순 있는데. 영상 속 남자 누군지 알아볼까요?”짜증이 밀려와 장 경감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김 회장이 죽는 순간에 이걸 그토록 필사적으로 남기려 했던 걸까?

    장 경감은 휴대폰을 뒤적였다.

    “김 회장 금고에서 문서가 나왔어. 내가 사진으로 일일이 다 찍어놨거든?”그 비밀문서를 확인하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했다.

    장 경감은 샅샅이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내용을 읽어갈수록 그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장 경감이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자 답답한 마음에 수진이 빼앗아 액정을 봤다.

    내용은 이러했다.

    5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며칠 전에 백운당 연못에서 여종업원 하나가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종아리와 팔등에 상처들이 한가득했다.

    한겨울, 썩은 연꽃 줄기들이 팔다리에 얼기설기 얽혀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형사들은 사인을 실족사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여종업원은 자살 직전 백운당 손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사료된다.

    바로 L모 의원이 한국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L모 의원은 우리나라 권력 실세라는 한국당 출신 김한식 전 총리의 신임을 얻고 있던 터라, 그 일이 터지면 대선에도 걸림돌이 될 게 뻔했다.

    그는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깨끗한 정치인이라 호평 받고 있었다.

    토사구팽 당할 거란 두려움이 있었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종업원은 다음 날 새벽, 백운당 연못에서 엎어진 채 물에 둥둥 떠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문제는 여종업원을 성추행했다는 게 아니라 여종업원 위에서 최음제 성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최음제 중 한 종류인 감마 하이드록시 뷰티르산…….

    “일명 ‘물뽕’이라고 하지.”장 경감이 말을 끊었다.

    “데이트 강간할 때 많이들 쓰인다는 마약이야.”수진이 다시 읽어갔다.

    L의원은 오래전, 군대 현역시절에 다리에 총상을 입어서 후유증이 심했다.

    그는 진즉부터 지인의 추천으로 양귀비를 조금씩 맛보다가 마약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 마약 스캔들이 까발려지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사건을 덮었어야 했고, 대산 김정길 회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다행히 백운당 최혜란 사장이 경찰에 돈을 찔러줘 그 여종업원 죽음을 실족에 의한 질식사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쯤이 한신그룹 장손 J모 씨가 김 회장과 L모 의원을 갈라놓은 시점이다.

    파일은 거기서 끊겼다. 뒷내용은 없었다.

    백운당, 여종업원, 김 회장, L모 의원…… 그리고 한신그룹 J모 씨. 진주양.

    그러니까 원래 L모 의원과 김 회장이 짝짜꿍했는데 백운당 여종업원이 죽은 사건 이후 주양이 등장하면서 둘은 갈라졌다.

    진주양과 김 회장 사이에 있는 한국당 L모 의원.

    장 경감이 생각날 듯 안 날 듯하는데 기태가 불쑥 의견을 제시했다.

    “L모 의원이 누군지 알아내는 게 어때요?” 수진이 기태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알아내서?”“김 회장의 죽음을 밝혀내야죠. 소장님은 김 회장이 타살 당했다고 의심하는 거잖아요.”   장 경감은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태가 채근했다.

    “소장님. 빨리 뒷조사 시작하죠!”김 회장을 잘 아는 동시에 진주양의 도움을 받은 같은 편.

    “이렇게 넋 놓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소장님!”그러자 장 경감이 기태에게 윽박질렀다.

    “너 지금 사태 파악 안 돼? 우리 뭘 알아버렸는지 아냐고.”지켜보던 수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L모 의원이 누군데요?”“L모 의원. 검찰총장 출신에 독립투사의 후손. 그리고 김 총리 파벌에 있었던 사람은 한국당에 딱 한 사람뿐이야.” 5년 전, 한국당 정책위의장이었던 사람. 이중모 의원. 그리고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야.” 그 순간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

    처음엔 진주양이 신부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곧 김 회장이라는 새로운 용의자가 나타났고 김 회장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됐다.

    김 회장이 죽는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USB에는 이 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양반의 추악한 이면이 담겨 있었다.

    장 경감에게 <김인택 살인 음성파일>을 건네고, 김 회장에게 다가가게 빌미를 제공한 건 진두영이었다.

    진두영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신부의 죽음과 이게 무슨 상관이라고. 자신은 그저 주양을 자극하려는 미끼인가?

    장 경감은 초인종을 눌렀다.

    딱딱하게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고용인을 따라 내실로 안내되었다. 진두영이 창가에 서 있었다.

    지금 장 경감이 도움을 청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김 회장이 어젯밤 죽었습니다.”장 경감이 먼저 말문을 뗐다. 진두영은 조금 침묵한 뒤에 말했다.

    “김 회장이 욕심을 부린 건 사실이지. 그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에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