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30화 (30/83)

30화. 실종 10일째 <2>2016.10.16.

-실종 10일째

시곗바늘이 여러 번 테두리 원을 완주했다.

중천에 걸려 있던 해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장 경감은 도시 외곽을 달렸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김 회장의 저택 근처에 미리 애들이 잠복 중이었다.

장비를 준비시켜놓고 장 경감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김 회장이 신부를 납치한 게 맞다면, 신부가 저택 안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오느라 장 경감은 현장으로 뒤늦게 출발했다.

저택을 눈앞에 두고도 장 경감은 집을 그대로 지나쳤다.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근처에 서 있던 벤에 탑승했다.

“상황은?”장 경감이 차에 올라타자, 안에는 이미 요원들이 꾸려져 있었다.

수진이 의자 하나를 엎어놓고 테이블처럼 썼다. 김 회장 저택 도면을 펼쳤다.

“김 회장의 집은 강 상류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목적대로 집이 요새입니다. 앞면은 커다란 상류 강으로 가로막혀 있고, 도로와 맞닿아 있는 정문은 길이 1.5km, 높이 5m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장 경감도 오면서 담을 지나쳤다. 구렁이같이 길고 거대한 담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대지 300평에 100평짜리 저택. 수영장이 딸려 있고, 요트 선착장까지? 캬, 망해도 삼대라더니. 팔자 좋네.”장 경감이 감탄했다.

낮 동안 주변을 탐문해본 다른 직원이 브리핑을 이어 받았다.

“저택은 일반인들이 전혀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입구에 경호원 2명이 배치되어 있고, 3명의 경호원이 정원을 수시로 교대로 순찰 돕니다. 집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3명 있는데. 밥과 청소를 담당 1분이 상주하고 있고 2명은 출퇴근입니다. 안에서는 전혀 사람 인기척 안 느껴지고요.”장 경감은 망원경을 받아 바깥을 염탐했다. 야간에도 선명하게 주변을 담아내는 적외선 망원경이었다.

초록빛 시야에 정문 입구가 보였다. 건장한 경호원 둘이 무전기를 들고 서 있었다.

담장 위를 살펴봤지만 본채는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있어 집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지 사이로 문득문득 보이는 창문들은 불이 꺼진 상태였다.

“하루 종일 저 상태란 말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군.”장 경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낮 2시쯤에 식료품과 생필품이 배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달원은 들어가지 못하고요. 입구에서 물품박스만 내려놓고 경호원들이 일일이 체크한 뒤에 물품만 들여보냈습니다.”“음식이 들어가는 걸 보면, 안에 사람이 있긴 한 것 같은데.”장 경감이 턱을 쓸며 수진을 봤다.

“배달된 물품 중에 여성용품은 없었나?”장 경감의 물음에 수진이 눈을 빛냈다.

“역시…… 신부가 안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제일 의외인 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지.” 김 회장은 부인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딸은 진즉에 독립했다.

만약 안에 신부를 가둬놓고 있다면 생리대라든지, 전에 쓰지 않던 여성용품이 필요할 것이다.

사전에 준비를 해놓았든, 어떻든.

“배달할 때 물품 목록이 있는데, 배달원에게서 확인한 결과 여성용품은 없었어요.”그렇다고 신부가 저 안에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집 안에는 김 회장 이외에는 아주머니 3분이 일했고, 출퇴근이 가능한 아주머니가 두 명이나 되었다.

얼마든지 신부의 물건을 조달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었다.

물론, 신부가 저 안에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우의 수였다.

보통, 피해자를 자신과 동떨어진 곳에 떨어트려 놓는 게 유괴범들의 일반적 습성이었다.

범인은 자신이 범인이기 때문에 의심을 사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미리 살해를 해놓고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며 가족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유괴는 영리 충촉이냐, 원한이냐로 나뉘는데, 이 경우 돈이 목적은 아니니 문제는 피해자였다.

피해자가 살아 있냐는 것이다.

영리가 목적인 유괴는 금전 요구 때문이라도 피해자를 살려두지만, 원한은 피해자가 목적이 아닌, 피해자의 가족을 향한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려고 납치하고 바로 죽이기도 한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김 회장이 2달을 칩거하는 것이 수상했다. 저 집에 뭘 숨겨놨길래 틀어박혀 안 나오는 거지?

“이웃주민들 탐문은?”“김 회장이 가끔 강에 요트를 정박해놓고 낚시하는 것 말고는 딱히……. 이웃주민들하고 왕래가 없어요. 하루 중에 낚시 빼곤 칩거래요. 이대로 계속 잠복할까요?”“아니. 무의미해. 2달 동안 틀어박힌 양반이야. 언제 나올 거란 보장이 없어.”“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쉬운 인물도 아니고요.” “저 집에 들어가야지.”장 경감 곁에 있던 기태가 물었다.

“어떻게요? 정식으로 초인종 누르고 그 안에 신부가 있냐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수진이 기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언제 우리가 절차 지키면서 일했어? 합법, 불법 따져가며 어떻게 일할래?”역시 수진이었다. 수진이 경찰시험 때려 치고 흥신소에서 일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경찰은 용의자가 안에 있어도 정식으로 영장 받아야 쳐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장 경감은 시니컬하게 웃으며 행동 개시했다.

“장비 챙겨. 잠입한다.”

.

.

.

기태가 빽! 소리를 질렀다.

“예에!?”장 경감이 얼른 놀라서 얼른 기태의 입을 막았다.

밤이라 강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에 도리어 들통 날 판이었다.

“얌마. 귀청이 찢어질 뻔했잖아!” “으아읍. 퉤퉤. 소장님. 제정신이세요?”“엄살 피우지 마. 그래봐야 강 건너는 것뿐이야.” 그들은 강 쪽 도로에 서 있었다.

김 회장의 저택은 커다란 상류 강을 끼고 있었다. 담장이 있는 곳이 아닌 반대편 강이 있는 쪽 도로에선 저택이 그대로 보였다.

문제는 집 사이에 큰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웬만한 좀도둑놈은 들어가도 못 하는 요새로 불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담을 넘는 건 경호원들 때문에 불가능해. 그리고 담장 곳곳은 CCTV도 많고, 담을 넘는 순간 비상경보가 울리고 경찰이 들이닥치겠지.”김 회장의 집 입구는 이미 경호가 삼엄했다.

그러나 완벽한 밀실은 없다.

이 집의 최고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 강이었다.

강이 있는 쪽은 경비가 상대적으로 허술했다.

강을 넘을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보안은 뚫는다. 문제는…….

“대체 이 강을 어떻게 건너게요? 강폭이 몇 미터인지 아세요? 밤이라 보트 타면, 모터 소리에 옆 동네까지 다 깨요. 우리가 남파간첩도 아니고, 최정예 UDT 대원도 아니고. 헤엄칠 건 아니죠?”간곡히 부탁하는 기태를 수진이 치고 지나갔다.

“네 덩치는 장식이냐? 흥신소에서 제일 커다란 게, 몸은 제일 사려요. 그래서 셜록 홈스 발바닥이나 쫓아가겠어?”수진이 고무줄로 질끈 머리를 동여매며 말했다.

어느새 그녀는 스쿠버 다이빙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였다. 길고 잘 빠진 그녀의 몸매가 드러났다.

“누나, 제가 동경한 건 탐정이라고요. 도둑이 아니라!”  “탐정? 소장님. 순진한 애 데리고 사기 친 겁니까? 우리가 하는 게 탐정일이라고?”수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태는 해명해 달라는 얼굴로 장 경감을 보았다. 장 경감은 먼 산을 응시했다.

그때, 산속에서 환한 점이 움직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곡선으로 꺾어지는 어두컴컴하고 외진 도로를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신형 코란도가 점차 이쪽으로 다가왔다.

장 경감은 기태의 머리를 눌러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코란도 운전자가 천장 조명을 켰다. 내부가 환하게 보였다.

여자였다.

달걀형 얼굴에 머리를 한껏 뒤로 묶은 포니테일.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미인.

장 경감은 자동차가 지나가는 2~3초 안에 여자의 인상착의와 얼굴을 빠르게 파악했다.

직업병이었다. 이런 계통 일을 하다 보면 평상시에도 관찰 훈련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이 늦은 밤에, 이런 외딴 도로는 보통 불륜을 저지르는 커플이 이슥한 모텔을 찾기 위해 다녔다.

여자 혼자 차를 끌고 다니는 건 몹시 이례적이라 인상 깊게 봤다.

차가 그대로 쌩- 하고 지나갔다.

무전이 울렸다.

지- 지지직.

[여기는 빅터. 여기는 빅터. 들리십니까.]장 경감은 여자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무전기에 대고 교신했다.

“오냐.”[현재 위치, 목표지점에서 2km 떨어진 건물 5층입니다. 시야 깨끗하고 전파 이상 무. 스탠바이 합니다.] 수진과 기태 이외에 망을 보게 한 나머지 직원 2명이었다.

김 회장 자택 근처에 공사 중단된 폐건물이 하나 있었다. 직원 두 명을 그곳으로 미리 보내었다.

한 명은 높은 지대에서 저택 정원을 감시하게 하고, 다른 한명은 김 회장 댁 보안직원들의 무전기 주파수를 맞춰서 도청하라고 시켰다.

그들이 뭔가 침입자의 낌새를 눈치채거나, 위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는지 알아놔야 먼저 저택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더욱이 정원에서 마주치지 않기 위해선 저들의 동선을 파악해놔야 했다.

흥신소는 돈과의 싸움이었다. 장비가 좋을수록 의뢰받은 일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소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수예요. 밤이고, 상류라서 아래 물살이 얼마나 험한데요. 누나 죽으라고 등 떠민 거 후회하지 말고 그만둬요.”“여긴 상류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상류에서 중류가 되는 지점이야. 경사가 급하지도 않아. 강폭이 일단 넓어 유속이 빠르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아주 적절해. 지난해부터 날이 가무는 바람에 수위가 많이 낮아졌어. 한풀 기세가 꺾였을 거야. 승산 있어.”그러는 사이 수진은 수중 라이트와 산소통을 짊어 맸다. 검은 물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다이브 나침반도 잊지 않고 챙겼다.

장 경감이 겁먹은 기태의 어깨를 잡았다.

“쟤가 우리 흥신소 일당백이잖아. 수영 전국체전 금메달. 무예타이 4단. 그 스펙에 눈 돌아서 쟤 신림동 시절부터 영입하려고 고시원 바라지를 얼마 했는데. 이 정도 강은 껌이지.”스쿠버 다이버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한 수진이 천천히 물속으로 입수했다.

수진이 출발하고 그들은 서둘러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얼마 뒤, 강 건너편에서 신호가 왔다.

손바닥으로 막았다 떼었다 하며 손전등 빛을 깜박거렸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수신호였다.

그리고 뒤이어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건너와도 된다는 시그널이 보내졌다.

장 경감과 기태는 미리 공기를 주입시켜놓은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노를 저어가면서 조심스럽게 강을 건넜다.

중간 부분부터는 물살에 떠밀리려 했다. 케이블을 연결한 권총형 석궁을 쏘았다.

지면에 박힌 화살을 수진이 빼서 나무에 단단히 맨다.

그들은 줄을 잡고 안전하게 보트를 땅에 대었다. 고무보트는 산 뒤쪽에 숨겨놓고서 저택에 잠입했다.

김 회장의 요트 선착장에서 현장 지형을 살피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CCTV를 피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기태와 수진이 카메라를 챙겼다. 수진이 캠코더를 켜서 긴박한 현장을 담아냈다.

“의미 없는 것은 없어. 사소한 단서 하나가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니까. 놓쳐선 안 돼.”  흥신소 일의 반은 관찰이었다.

장 경감은 정원 CCTV에 얼굴이 남지 않게 작업복 옷깃을 높이 세웠다.

마지막으로 모자를 깊게 눌러 쓰며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본채 건물로 접근했다. 저택으로 들어갈 침입구가 될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수진이 오랜만에 프로페셔널한 모습인 기태를 턱짓하며 놀렸다.

“하여튼 포즈는 1등이야.”기태는 집 주변 이곳저곳을 찍어내기 바빴다.

장 경감이 웃으며 말했다.

“몸 쓰는데 어설퍼서 그렇지, 사진 하나는 기똥차게 잘 뽑는다니까. 어린놈이 앵글이 좋아. 불륜 의뢰의 80퍼센트는 사진이 먹고 들어가는데. 모텔 들어가는 사진, 나오는 사진, 얼굴 각도마다 희로애락은 또 얼마나 절묘하게 잘 잡는지. 감탄했어.”그때, 5층 건물 관측소에서 블루투스 무전기 이어폰을 통해 전해왔다.

[10시 방향에서 보디가드 1명 접근.]기태가 무전을 듣지 못하고 사진 찍는데 열중해 있었다.

장 경감이 기태의 뒷목을 낚아채서 건물 뒤로 끌고 들어왔다.

그들은 얼른 각자 몸을 숨겼다.

그때, 기태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소, 소장님.”장 경감은 기태를 보았다.

기태가 텅 빈 손을 떨고 있었다. 손에 있어야 할 카메라가 없었다. 카메라는 잔디에 떨어져 있었다.

정원을 순찰 중이던 보디가드가 접근해왔다.

보디가드는 휴대용 플래시 불빛을 검은 강가에 비추었다. 고요할 뿐이다.

장 경감은 카메라를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보디가드가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두 발 자국만 더 걸어오면 카메라를 밟는다.

그러면 정체가 발각될 것이다.

그들은 숨을 죽였다.

보디가드가 카메라 바로 앞에 선 그때였다. 놈의 무전기가 울렸다.

보디가드가 짧게 답했다.

“그냥 들짐승인 것 같다.”보디가드는 교신한 뒤에 가려고 발을 틀었다.

그때 강에서 물고기 소리가 났다.

놀란 보디가드가 순간 뒤돌았고, 기태가 바닥에 떨어트리고 간 카메라를 건드렸다. 오작동한 플래시가 터졌다.

번쩍?? !

빛에 놀란 보디가드가 소리를 쳤다.

“침입……!”그와 동시에 수진이 달려 나갔다. 매끈한 다리로 보디가드를 돌려 찼다.

“허억!”놈이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하지만 여자가 당해내기에 그 덩치가 너무 벅찼다.

보디가드가 수진의 발목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수진이 땅을 구르며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보디가드가 주먹을 메다꽂으려는 그때, 기태가 놈의 등을 덮쳤다.

놈의 머리채를 뒤로 한껏 잡아당겼다. 놈이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전기충격기로 목덜미를 지졌다.

드드드드드-

하지만 놈의 머리털을 쥔 기태도 같이 감전되었다.

드드드드 -

둘 다 기절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수진과 장 경감은 순식간에 일어난 어이는 모습에 서로를 응시했다.

수진이 경악하는 눈빛으로 대화했다.

“소장님. 얘한테 사용법 안 알려주셨어요?”장 경감도 빠르게 보디랭귀지로 답했다.

“야, 전기 통할 땐 상대방 잡으면 안 된다는 건 상식 아냐?” 보디가드를 물리친 건 가상한 일이지만,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장 경감은 경호원을 묶어서 놈의 친구들이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가둬놨다.

기태도 다른 놈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요트 안에 눕혀놓고 천으로 덮었다. 돌아갈 때쯤엔 깨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놈의 주머니를 뒤졌다. 열쇠가 나왔다.

“어디 열쇠일까요?”수진이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다.

“현관 열쇠는 아닐 거야. 정문은 보안 때문이라도 디지털 도어록이나 지문인식으로 해놨을 거야.” “창고가 있던데. 저택 뒷문으로 이어지는. 거기는 아닐까요?” 열쇠의 쓰임은 수진의 추측대로 창고가 맞았다.

그들은 저택 뒤편으로 갔다.

자물쇠를 따고서 집 안에 몰래 침입했다.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세탁실과 부엌이 바로 나왔다.

그때, 잠에서 깬 아주머니가 나와 물을 마셨다.

그들은 테이블 아래에 숨었다. 아주머니가 떠난 걸 확인하고 거실로 나왔다.

수진의 손에는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그는 수진과 손가락 사인을 한 뒤에 2층 계단 앞에서 헤어졌다.

“난 1층을, 넌 2층을 수색한다.” 서로 수신호를 보내고 갈라졌다.

장 경감은 1층 김 회장 침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김 회장이 없었다. 침실 창문만 휑하니 열려 바람에 펄럭거렸다.

장 경감은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이번엔 서재였다. 역시 없다.

무심결에 나가려다가 그는 다시 서재를 돌아봤다.

서재 벽을 손바닥으로 훑으면서 벽면을 두드려보았다. 바깥에서 보았던 실평수에 비해 서재가 작게 느껴졌다.

장 경감은 벽면을 노크하면서 귀를 대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구별되게 눈에 뛰는 벽면을 발견했다. 인테리어를 아날로그 풍으로 벽돌로 해 놓았다.

그는 한쪽 벽에 귀를 대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이 벽 뒤편에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는 벽돌을 눌러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했다.

벽에 걸려 있던 장식품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지그재그로 배열되어 있던 벽돌들이 삐지면서 하나의 문이 되었다.

삑. 블루투스 이어폰이 울렸다.

[여기는 빅터. 포지션 확인 바랍니다.]장 경감이 대답이 없자 다시 교신해왔다.

[빅터. 빅터. 소장님?]장 경감은 이어폰을 눌렀다.

“김 회장 1층 서재. 혼자다.”[안에서 뭔가 수확이 있습니까?]장 경감은 감탄하며 눈앞의 광경을 봤다. 그의 동공에 주홍빛이 반사되어 일렁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밀 지하실을 발견한 것 같다. 오버.”

지하실로 통하는 비밀통로였다. 통로는 은은하게 주홍빛 불이 밝혀져 있었다.

김 회장은 이 안에 들어간 건가?

이런 저택에 비밀 지하실이라니. 신부를 이곳에 가둬놓았다면 경찰이 집을 수색해도 절대 발견할 수 없으리라.

그때, 안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Non !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누군가 외쳤다.

김 회장?

“Balayes pour toujours(영원히 쓸어 버렸다구요)!” 아니,

여자 목소리다.

“Je repars a zero(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예요).”……신부?

장 경감은 비밀통로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상대를 붙잡고 들어달라는 호소력 짙는 목소리. 비명 같기도 하고, 외침 같기도 했다.

불어 따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자의 외침은 마침내 절정에서 터져 올랐다.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내 삶과, 내 행복은,

이제부터 당신과 함께 시작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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