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26화 (26/83)

26화. 실종 9일째 <2>2016.10.02.

젠 스타일로 모던하게 꾸며진 접대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대산물산 김 회장은 뜨거운 찻잔을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예리하게 올라간 눈초리가 곧 찻잔 위를 넘어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주시했다.

주양은 비명과 살육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표리부동한 장수 같은 모습이었다.

혓바닥의 뜨거움처럼, 가시처럼, 그는 이 방에 돋아 있었다.

주양의 방문은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모든 갑작스런 것은 불길하다.

김 회장은 주양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상처가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자네, 신수가 별로 좋지 못하구만.”그 말에 주양이 어두운 눈을 들어 김 회장을 담았다.

주양의 얼굴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펴 있었다.

왼쪽 광대를 뒤덮은 퍼렇고 시뻘건 상흔은 간밤에 치렀던 전투에서 얻은 흔적임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궁금하십니까?”“내가 알아야 할 일인가?”김 회장은 현재 검찰조사를 받으며 자택에 구금 중이었다.

문 밖에 형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내일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위해 수감 될 예정이었다.

경찰에선 기업회장에 대해 최후의 예의를 지켜주고 있었다.

주양은 약은 노인네가 그의 눈치를 살펴대고 있지만 봐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시치미를 떼는 노인네에게 그는 친절히 일러주었다.

“아드님이 어제, 제 안방에서 칼부림을 일으켰습니다.”“무슨 소린가. 인택이는 지금 중국에 있네.”“문서상으론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걸로 되어 있지만 한국에 있었습니다. 절 죽이고 빠져나가려고 알리바이를 치밀하게 준비해놨더군요.”노인네와는 상관없는 일인지, 그의 동공이 마구 뒤흔들렸다.

“중국에…… 있지 않다고? 그럼, 내 아들은 지금 어디 있고 자네 혼자 온 거야. 어디…… 어디에.”“중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 그 모습 그대로, 태고의 상태로.”그악스럽게 울어대며 자궁에서 나올 때 묻은 피로 온몸을 범벅을 한 채. 주양은 무료하게 손목을 들춰 시계를 봤다.

새벽에 양 비서가 ‘통나무’를 운반시켰으니 중국에서 지금 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었다. 뭔가가 짐작 가는지 노인네가 휙 주양을 노려봤다.

“내 아들을 어떻게 한 거야.”“설마 행불자 처리야 되겠습니까. 중국 공안이 우리나라 짭새들보다 나을 겁니다.” “진 이사! 네 이놈!”“명동에서 사채를 끌어다 쓰셨다구요? 요새 한류다 뭐다 하더니, 사채 시장까지 차이나 머니가 어마어마하게 풀렸다더군요. 중국 흑사회 애들과 관련되지를 말았어야지. 그러니까, 타국에서 허무하게 비명횡사하는 게 아닙니까.”“네 짓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 앤 중국에서 죽은 게 아니야. 한국에서 네가……!”쾅-! 찻잔이 소리 나게 놓아졌다.

잔을 상에 내리꽂은 주양이 어제, 피범벅 된 눈초리로 인택을 봤던 그대로 김 회장을 쳐다봤다. 김 회장이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주양이 천천히 찻잔에서 손을 들었다. 도기 파편이 손바닥에서 부스러져 떨어졌다. 찻잔은 누르는 힘에 네 조각으로 깨져 있었다.

연한 손바닥 희미하게 그어진 금이 비치더니 점차 그 모습이 뚜렷해졌다.

살갗에서 굵은 핏물이 뚝뚝, 비어져 나왔다. 금세 주양의 손이 많은 양의 피로 뒤덮였다.

“격식 차려서 점잖게 말해준다고, 제가 장유유서나 지킬 샌님으로 보이십니까?”“…….”“딸랑 서신 한 장으로 끝낼 수도 있는 일에, 직접 배웅까지 나와 줬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없어도 염치는 찾아서라도 챙겨놨어야지.”  “…….”“애초에 한신을 상대로 무모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게 아닙니까. ……4년 전에.”4년 전 일을 들먹이는 주양에게 김 회장이 대노했다.

“내 배신 덕에 자네도 입지를 넓혔어! 진두영이를 밀어내고 자네가 인정받을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나!”“기회를 만들어줘?”주양이 차게 웃었다.

“사냥할 때 포수가 먹잇감 찾아오는 거 봤나. 당신은 내 사냥개야. 개면 개답게 먹이나 물어와.” “이…… 쳐 죽일……!” “원래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삶아먹고, 고아먹고, 남은 뼈는 새로 산 사냥개한테 개밥으로 던져주는 겁니다. 나는 싹수부터 노란 종자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특히 배신자는.”주양에게서 변치 않을 확고한 의지를 읽었는지 김 회장이 공허해졌다. 하얗게 질리다 못해 죽어간 제 아들처럼 핏기가 빠져나간 것 같다.

체면도 무릅쓰고 김 회장이 가려는 주양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퍽이나 애처로웠다.

“아들이 한 일은 용서해주게. 이 의원하고 자네가 오래전부터 머리 굴린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따지고 보면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된 것도 다 자네 계략이지 않나. 아들 목숨 값으로 대신 갚았다 치고…….”“따님한테 아직 얘기 못 들었습니까?”“뭐?”“이건 따님이 본사로 찾아와서 날린 제 뺨 값이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따님이 날린 뺨값은 오빠인 김인택 사장이 대신해서 받았으니, 이제 그 김 사장이 칼질해놓은 제 얼굴값은 아버지인 회장님한테 받으면 되겠군요.”김 회장이 굳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내일부터 영장실질심사 들어가신다고요. 서울지검 구치감 밥이 그렇게 맛나다 하더군요. 교도소 들어가면 인편으로 안부 전하겠습니다.”“…….”“그전까지 잡수고 싶으신 것, 보고 싶으신 것, 다 즐기십시오. 황천길 건너면 다시 못 누릴 호사니.”김 회장과의 단판을 마치고 주양이 방을 나섰다. 손에서 핏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양 비서가 응급처지를 하려고 휴지를 들고 달려오다가 주양의 저지에 막혔다.

문득, 주양의 눈길이 그들을 배웅하러 나온 어린 메이드에게 멈췄다.

그의 피 흘리는 손을 보고 아연해하던 어린 메이드가 주양과 눈이 마지치고 얼굴을 붉혔다.

메이드가 고개 숙이자 내려트려진 앞머리가 길게 얼굴을 가렸다.

“왜 그러십니까.”양 비서가 물었지만 주양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자택을 나왔다. 이미 밖은 여름이 선뜩 다가와 있었다.

봄비가 차에 오르는 그의 목덜미를 축축하게 적셨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앞에 앉은 양 비서가 안도하는 어조로 말했다.

“김 회장도 그렇고, 신영원 씨 건도 그렇고,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신영원 쪽이 제일 골치 아픈 문제였는데, 하필 어제 일을 전혀 기억을 못해주다니.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주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들이 무심하게 차창을 스쳤다.

비에 젖은 목덜미에 여운이 가시지 않은 따뜻한 봄비가 엉겨 붙어 있었다.

어쩐지 그 온기가 달갑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볼륨을 높였다.

Domani avranno termine, domani mi amera……

Esulti pur, perfida!

Domani m'amera, la perfida! Esulti pur la barbara

…… La ra la ra!

(내일 나를 사랑하게 될걸. 나를 비웃고 있지만, 너는 내일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나를 비웃고 있지만… 라, 라,라.라.)

*

영원은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몇 날 며칠 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계모는 해수가 대외적으로 주양과 핑크빛 기류를 뿜어서 기분이 좋았다.

평소라면 가차 없었을 아프다는 핑계를 넘어가주었다.

TV에서 대산물산 아들이 중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떠들다가 더 큰 이슈에 묻혔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넷 어디에서도 한신 진주양 석 자는 찾지 못했다.

깨끗하다.

당연히 그날 일을 잊지 못했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는 영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모든 게 아득해졌다.

그 밤, 그녀와 그 사이에 있었던 난폭했던 정사조차 마치 작위적인 한 판의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상상은 아니었을까. 짝사랑이 너무도 지나친 나머지,

미친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분명하게 몸에 남아 있다.

이렇게 아직도 새겨져 있다.

격렬하고 치열했던, 몸 곳곳을, 그가 난자했던 흔적들이.

그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만나게 되기 전까지.

-실종 9일째

철썩…… 철썩…….

저수지 물살이 고요했다. 장 경감이 떠나고 진두영은 짧게 휴식을 취했다. 별안간 눈뜬 그가 주양을 찾았다.

“주양이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옆에 서 있던 수하가 답했다.

“신영원 씨가 계신 병원에 방문한 뒤로 칩거 중이십니다.” 진두영이 웃으며 미간을 쓸었다.

“걔도 참, 한결 같단 말이야. 참 한결같이…… 나를 끓어오르게 만들어.”“장영범, 그자가 우리 뜻대로 움직여 줄까요?”진두영은 낚싯대를 길게 늘어트려 놓았다. 찌가 흔들렸다.

진두영이 팽팽하게 당긴 줄을 끌어 고기를 낚았다.

이거 봐! 갓 잡아 올린 고기가 싱싱하게 파닥였다. 크나큰 크기에 진두영이 만면에 대소했다.

“대어를 낚으려면 장타를 쳐야 하지. 물때를 읽으면서 인내하다가 바닷물이 만조로 무르익기 직전, 9회 말 투아웃에 잡아 올리는 대어는, 그 맛이 대단하다지?” 진두영이 가늠하는 눈길로 물고기를 쓸며 조카 주양을 떠올렸다.

손아귀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대어가 살려고 발버둥을 쳐댈수록 힘은 더더욱 물고기를 옭아맸다.

몇 번 몸부림치던 고기는 숨이 멎어 몸피를 늘어트렸다.

“개도 맞으면 문다는데, 하물며 나 진두영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혼잣말하듯 흘려보내는 음성엔 광기에 가까운 노여움이 머물렀다.

“우리가 미끼를 던졌으니 입질이 올 거야.”

*

끼이이이이이이이익 ?? !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댔다.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이었다. 도로를 무자비하게 쓸어버렸다. 계기판 주행속도는 120km을 넘어서고 있었다.

‘납치 살인이라는 생각, 안 해봤습니까?’장 경감은 운전대를 꽉 쥐었다. 파고들 듯 손톱이 날을 세웠다.

‘나는 지금쯤 신부가 살해되었다는 데에 내 손가락을 걸죠. 당신은?’장 경감은 엑셀을 밟았다. 부우웅-! 최대속력으로 차가 앞서나갔다.

30분 전, 폭탄발언에 장 경감과 진두영은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장 경감의 생각을 그대로 꿰어 읽은 듯이 되물어오고 있다.

장 경감은 식은땀이 맺힌 목덜미를 쓸었다. 조심스레 진두영을 향해 입을 떼었다.

‘……그 말을 뒷받침할 증거라도 있는 겁니까? 당신들 권력싸움에 날 이용하려는 거라면…….’ 두려워하는 장 경감을 진두영이 안심시켰다.

‘고민하지 말아요. 의심은 필요 없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판단이 필요합니까?’그렇게 속삭이며 회유하는 진두영에게서 장 경감은 낯익은 누군가의 환영을 보았다.

진주양이었다. 닮지 않았다 여긴 둘은 닮았다. 그들은 똑같은 부류였다.

사람 잡아먹는 식인 늑대.

진두영은 녹음 파일 하나를 밀어주었다.

‘이게 도움이 될 겁니다.’자동차 한 대가 느리게 서행했다. 핸들을 틀어 거칠게 앞차를 추월했다.

미친 듯이 속력을 밟아대는 발이 불안정하게 후들거렸고, 운전대를 쥔 손에 흥건히 땀이 고였다.

정상이 아니었다.

진주양. 논리가 통하지 않는 남자인 줄은 알았지만 사람 목숨도 초지일관 파리 목숨 취급할 거라곤.

그 점잖던 모습 그대로 뭐든 시원시원한 남자였다.

진두영이 넘긴 녹음파일에는 엄청난 대화가 담겨 있었다.

대화 내용을 계속해서 의심해보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돌려보았지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당신네들은 뭐가 그렇게 쉬운 거야.”잇새로 씹어뱉었다. 미쳤다.

그때였다.

숲에서 노루 한 마리에 튀어나왔다.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 !

타이어 소음이 산새가 뒤흔들었다. 장 경감은 숨을 몰아쉬다 고개를 들었다.

유리 너머에 미동 없는 노루가 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귀가 쫑긋하더니 노루는 반대편 숲으로 깡충깡충 뛰어 들어갔다. 십년감수했다.

“제길!”동물 하나 죽이는 것도 이렇게 살이 떨리는데…….

흥신소로 돌아오자 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그를 수진이 서둘러 맞이했다.

“진두영이 왜 만나자고 한 겁니까?”장 경감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던져주었다.

수진이 녹음기를 틀며 뒤따라왔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고 장 경감이 입을 닦으며 지시했다.

“그 대화내용 진위여부 확인해봐.”“대체 뭐가 들어 있는데요? 사람 죽인 고백이라도 들은 얼굴이네요?”수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녹음기에 집중했다.

녹음된 말소리가 고스란히 그들 귓가에 되풀이되었다.

아드님이 어제, 제 안방에서 칼부림을 일으켰습니다.

내 아들을 어떻게 한 거야.

…… 사냥할 때 포수가 먹잇감 찾아오는 거 봤나. 당신은 내 사냥개야. 개면 개답게 먹이나 물어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따님이 날린 뺨값은 오빠인 김인택 사장이 대신해서 받았으니 이제 그 김 사장이 이렇게 만든 제 얼굴값은 아버지인 회장님한테 받으면 되겠군요.

수진이 장 경감을 응시했다.

천천히 지워져가는 표정…… 이내, 그 끝에 기괴한 두려움이 돋아났다.

“이거, 우리한테 불똥 튀는 거 아니겠죠.”그도 이번만은 확실하지 않았다.

아니,

이젠 무엇도 자신할 수 없었다.

*

영원은 멀거니 침대에 앉아 창살 쳐진 밖을 보았다.

해가 지고,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를 수일……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멍하니 뒤돌아봤다. 맨발로 걸어가 종이를 주웠다.

흥신소 <사람 찾기>

장영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000번지

tel. 000-0000  mobile. 010-0000-5959

작고 네모난 명함을 스치듯 보는데 노 집사가 얼른 손에서 빼앗아갔다.

“그냥 흘린 거예요.” 예민한 반응에 무안해진 본 영원이 코웃음 쳤다.

“돈 떼먹고 도망친 놈이라도 있어?”노 집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구겨서 가방에 챙겨 넣었다.

노 집사는 영원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폈다. 다행히 영원은 금세 심드렁해져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곧장 어둠이 내려앉고 노 집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네. 물론입니다. 지시하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명함을 주고 갔는데 흥신소 사람인가 봐요? 어떻게 알았는지 어제 제 번호로 전화가 왔었어요. 상태가 어떠냐고 묻더군요. 대충 둘러대긴 했는데 아무래도 좀 곤란하게 굴지 않을까요? 그 남자한테 이곳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경고하는 게……. 제가 대처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노 집사는 한층 은밀하게 목소리를 죽였다.

“제 생각에는 뭔가를 알아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꾸 아가씨께 관심을 주는 걸 보면. 아뇨, 자고 있습니다.” 노 집사가 조심스럽게 뒤돌아봤다. 영원이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는 병실을 나갔다.

“자길 찾는 사람이 바깥에 있다는 걸 알면…… 아가씨,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노 집사의 목소리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침대는 조용했다.

가슴께까지 이불을 올려 덮고 영원은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을 잤다.

색 - 색 - 완곡한 숨소리였다.

밤은 자비롭게도 고통과 번뇌를 매장시켰고, 어느 순간부터 영원은

눈을 떠,

그 어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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