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신데렐라-20화 (20/83)
  • 20화. 실종 8일째2016.09.11.

    -실종 8일째

    “앞으로 여러분들과 동고동락하게 되실 사설탐정이십니다.”장 경감의 등장에 형사들이 술렁였다.

    한신의 변호사는 배려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소문이 퍼질까 경찰청에 수사본부를 꾸리지 않고 서울 시내 상가 2층을 빌려 평범한 사무실처럼 본부를 차려놓고 철야작업 중이었다.

    “고작 삼류 흥신소 소장하고 합작이라……, 웃어야 하는 겁니까?”그 말에 현기영은 별로 놀란 눈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이럴 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헐렁하게 웃는다.

    변호사는 현기영과 눈을 똑바로 맞대었다.

    괜히 한신에서 높은 수임료를 먹는 게 아님을 증명하듯, 변호사는 거침없는 독설로 형사들을 후려갈겼다.

    “경찰이 고작 가출 사건 하나를 해결 못 해 진을 빼니, 위에서 이런 지시가 내려오는 것 아닙니까.”어린애도 아니고 일일이 챙겨줘야 알아먹습니까? 하는 투였다.

    안 그래도 수면부족으로 날이 설대로 선 그들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현기영이 치기 어린 형사들을 막았다.

    변호사는 그 틈을 타 아랑곳 않고 제 할 말을 고집했다.

    “저희 입장도 이해해주시죠. 실종 수사에 뛰어난 기량을 갖추신 베테랑 형사였다고 들었습니다. 친분도 있다 하니 두루두루 형제처럼 지내면 좋으시겠네요.” 시팔. 형제는 얼어 죽을. 장 경감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고기를 사주면서 살살 달래도 시원찮을 판에 밥상에 오줌을 갈긴 꼴이었다. 중간에서 입장만 곤란해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연락이 와 어딜 데려가나 싶더니, 겨우 이런 데뷔인가.

    누구 하나 반겨줄 이 없는 외로운 무대였다.

    한신 변호사가 바쁘다고 덜렁 그를 놓고 떠난 뒤, 현기영이 다가왔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악수나 하자.” 죄여오는 손아귀 힘에 원한이 서려 있었다.

    “네가 먼저 선 넘은 거니까 누구 탓할 거 없다. 그래. 같이 일해보자. 아주 재미있을 거야.”현기영이 떠났다. 그는 혼자 남겨졌다.

    몇몇 눈에 익은 놈들이 있었다. 한 솥밥 먹던 동생들이었다.

    외진 복도. 피곤에 절은 후배가 CCTV 복사본을 팔 슬쩍 밀어주었다.

    경찰이 당일 채증한 호텔 로비 CCTV영상이었다.

    영장 없이는 내줄 수 없다고 거절당해 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약속하는 지키는 겁니다. 수진이랑 미팅시켜주는 거.” 장 경감은 CD케이스로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알았어, 알았어. 이빨이나 닦고 나와. 그때처럼 또 그 꼴로 나오면 뒈진다.”“아, 진짜. 가오 안 살게. 애들 봅니다. 내 짬밥이 몇 년인데. 그땐 잠복 때문에 늦은 거고. 어쨌든 정보 공유하고 내가 준 거 비밀입니다. 현 과장 알면 나 죽어요.”증거를 잡으면 경찰이 먼저 발표하겠다고, 쉽게 말해 공을 가로채겠다는 약조를 받은 뒤에 영상 복사본을 내주었다.

    장 경감은 오랜만에 후배와 담배를 나눠 피웠다.

    “수사는 어디까지 진척됐냐? 현 과장이 파주에 내려갔다는데, 백운당 셋째 딸은 만나봤어?”“내가 그날 운전수 노릇했잖아요.”무엇 때문인지 후배는 기가 막힌 얼굴로 고개를 살짝 비틀어 내렸다.

    “망상치매라는 게 골 때리는 병이더라구요. 치매라면 단순히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정도에 그치는 줄 알았는데, 정신분열까지 겹치니까 과대망상이라는 것도 한다지 뭐예요?” “과대망상?”“자신이 위에서 감시를 당하고 있다느니, 경찰이 지시 받고 자신을 합법적으로 죽이러 왔다느니, 욕실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느니, 확인해보니 그런 건 없었어요. 오히려 환자 안전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위?”“예전에, 뉴스 생방송에 갑자기 쳐들어와서 자기 귀에 도청장치 있다고 한 사람 있었잖아요. 뭐 그런 거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그런 자신을 정부에서 주요 인물로 감시하고 있다고 망상에 빠진 거야. 무엇보다 정신분열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말에 두서도 없고, 어눌해서 알아먹지도 못해서, 제대로 진술도 못 했어요. 뭐 기대하지도 않았고.”“신영원이 신랑을 짝사랑했다는 소문은 어떻게 생각해.” “마을 사람들 탐문하다 들은 거죠? 우리도 거 다 조사해 봤습니다. 뭐 앉아서 콧구멍이나 후비고 있는 줄 아시나.”후배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막상 물어보면 다들 직접 본 것은 없대. 한 다리 건너 옆집 여자한테 들었네, 또 그 옆집 여자는 마을회관 총무 윤씨한테 들었네. 윤씨는 또 누구한테 들었네. 신빙성이 없어요. 신빙성이…….”“가출한 것은? 언니를 질투했다잖아?”“제정신이 아니라니까? 과대망상 환자라고. 빨개 벗고 거리 활보하는 사람들 뉴스에서 못 봤어요? 태반이 정신분열이야. 피해망상에 타인에게 적개심도 강하고, 또 남들에게 질투심이 많아진다고. 아무래도 가족이 가장 접근성이 쉬우니까, 언니가 타깃이 될 수 있죠. 무엇보다 시골이 그렇잖아요. 남의 집에 숟가락 몇 개 놓는 것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안 그래도 마을과 교류도 안하는 백운당을 고깝게 보는 시선이 많았는데 잘됐다 싶은 거지. 갑자기 그 집 딸이 정신병원에를 가고, 재벌 사위 들이고, 배는 아프겠고, 욕은 해야겠고, 이러쿵저러쿵 얘기가 와전된 거예요. 설령 짝사랑을 했든, 그 사랑이 그 여자한테 가당키나 한 겁니까?”“그렇지?”경찰도 같은 결과였다.

    그러나 장 경감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양혜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 머리에 꽃을 단 미친 여자 말까지 들어줄 여유도, 이유도 찾지 못한 것일 터다.

    양혜는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증명해줄 유일한 목격자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양혜가 장 경감의 발목을 잡는다.

    양혜는 마을에서 유명한 미친 여자였다.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신영원과 같이 정신도 온전치 못한 여자 이야기를 믿고 이 난장을 피운 게 된다.

    후배 말은 일리가 있었다. 노 집사와 같은 맥락이었다.

    신영원을 직접 만나본 게 아니기 때문에 후배의 추론도, 자신의 추론도 장담할 수 없지만 무엇이 끈덕지게 그를 물고 안 놓아주는 걸까.

    신영원을 신부 실종에서 배제한다 해도, 그럼 신랑은 무엇 때문에 신부를 찾지 않는 걸까.

    신부는 왜 사라진 걸까.

    수수께끼를 풀면 다른 수수께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흥신소로 돌아온 장 경감은 수진에게 보고를 받았다.

    “예식장이 있는 2층은 당일 고객들 프라이버시 문제로 대부분의 카메라를 꺼놨대요. 걔들도 골치 아파하더라구요.” 장 경감은 땀에 전 양말 냄새를 맡다 진저리쳤다.

    “감히 누가 자기들을 감시하냐 이거지. 재벌들 하는 말이. 근데 하필 그게 문제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거야.” 어우 씨. 수진이 코를 부여잡으며 이어 설명했다.

    “여담이지만 당일 예식이 있는 1~3시 사이에 호텔 입구에 검사대까지 설치했답니다. 워낙 하객들이 저명인사들이라 외부인 출입도 철저하게 통제했대요.”  경찰이 채증한 CCTV 영상은 신부가 빠져나가는 모습이 찍힌 2층 대기실 복도 1대뿐이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한 여자가 나오는 걸 목격한 보안팀 직원의 증언과, 신부가 사라진 10분 사이를 종합해서 딱 한 명의 여자가 그 복도를 그 시간대에 지나갔다.

    “더 웃긴 건요. 그녀가 신부라는 걸 알아낸 게 경찰이 아니라 한신그룹 경호팀 직원들이었대요.” “경찰이 아니라고?”“경찰들은 이미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고 있는 실정인 것 같아요.” 하긴. 경찰이라고 한신의 경호팀보다 나을 리 없다. 한신그룹 정보력은 이미 국정원을 능가했다는 소문까지 있으니까.

    한신에서 아무 조치를 안 취한 게 아니라, 취하다가 자체적으로 해결이 안 되겠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며 경찰에게 손을 벌렸겠지.

    “대기실에 들어간 적 없는 여자가 거기서 나왔으니, 당연히 신부일 수밖에 없죠. 예식 40분 전에 벌어진 일이라,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영화 한 편을 찍었답니다. 그 인상착의로 보안팀 직원들이 호텔 전체를 뒤졌다니까.”  “…….”“다행히도 1층엔 CCTV가 많아서 신부가 호텔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잡혔어요. 호텔 로비에만 CCTV가 회전식하고 고정식 합쳐서 14대가 넘습니다. 그중에 신부가 잡힌 건 7대인데, 예식장이 2층이기 때문에 신부는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고, 로비를 통과해서 호텔을 유유히 제 발로 빠져나갔습니다.”“그러니까 경찰이 괜히 단순 가출이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란 말이지?”“중간중간 직원들이 신부를 마주쳤어도 하객처럼 옷을 갈아입었으니, 알아보지 못하고 엇갈렸을 가능성이 큽니다.”“10분 사이에 그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웨딩드레스가 무슨 내복 벗듯이 벗어던질 수 있는 거였어?”신부의 드레스는 어깨를 과감히 드러낸 오프 숄더의 벨라인 타입으로, 까르띠에 보석으로 치장된 중량이 약 6kg 정도 무거운 드레스다.

    “신부의 체형에 최적화된, 지퍼 가공 방식의 실용적인 디자인입니다.”“지퍼라면 혼자 벗을 수는 있겠군.”“아무리 그래도 통상 완벽하게 환복하는데 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여직원이 마지막으로 신부를 살핀 게 36분. 대기실 복도에 신부 모습이 찍힌 게 8분 뒤, 신부가 8분 사이에 웨딩드레스를 벗고, 다른 옷을 갈아입고 빠져나갔다?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요. 그 웨딩드레스는 코르셋이 필수입니다. 코르셋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푼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갑니다. 뒤에서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 않고서야.”“대기실엔 뱀허물처럼 웨딩드레스만 널브러져 있었어. 구두 한 짝과 함께.” “코르셋을 벗지 않았다면…… 가능하겠네요.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고, 위에 다른 옷을 걸치면 안 보일 테니까.”“이 경우, 두 가지 가정을 세울 수 있어. 코르셋을 벗지 않은 이유. 코르셋을 벗을 새가 없었거나.”수진이 날카롭게 눈빛을 빛났다.

    “벗을 필요가 없는 거죠.” “다시 돌아올 마음이 있었던 거야.”동생과 신랑의 치정을 알고도 묵인한 여자였다.

    오롯이 돈과 야망을 위해서 선택한 결혼은 신랑이 아닌 한신그룹을 택했다는 그녀의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여자가 느닷없이 결혼식장에서 도망을 친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

    더군다나 결혼을 사랑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강한 재벌과의 결합엔 많은 것이 오고갔고 약속받았을 터였다.

    그중에는 백운당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도망침으로써 뒤에 벌어질 일들을 가족들이 감당해야 한다면, 이번 가출이 신부에게 인생을 내던질 정도로 메리트가 있는 것이었을까?

    굉장히 찜찜한 추론이었다.

    잠깐 볼일을 보고 돌아오려 했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코르셋만 입고 있는 상태면 웨딩드레스야 금세 착용할 수 있다.

    신부 대기실에 있는 파우더 룸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하객인 줄 알고 바깥 직원들은 아마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고. 간발의 차로 신부가 사라진 걸 알았어도 일반인들 틈에 섞여 있는 신부를 알아채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다시 돌아오려 했다는 가정은 무척 열린 가능성에 불과했다.

    자신이 그려놓은 범죄의 밑그림에 끼어 맞추려 하다 보니 자꾸 그쪽으로 의심이 뻗는 것이다.

    처음부터 신랑을 용의선상에 올려놓는 건 중립적이지 않았다.

    햇병아리도 하지 않는 수사 기본 철칙을 어기고 있는 건 알지만 덧대어진 선입견은 무섭다.

    장 경감이 독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진주양이 보인 일련의 행동들.

    “몽타주는 딱 용의자인데.”찌든 담배 냄새로 입안이 텁텁했다.

    CCTV 영상을 반복적으로 돌려보는데, 아까서부터 신부 근처에 얼쩡대는 벨보이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벨보이는 한껏 멋 부린 여자 하객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한 여자 뒤로 다가갔다.

    치맛단 아래에 팔목을 슬쩍 집어넣었다. 손목시계 같았다. 전형적인 몰카범들이 쓰는 질 나쁜 물건이었다.

    “어쭈, 이놈 봐라.”“뭐가요?”“아니. 아무것도.”그는 다시 벨보이 옆을 바로 지나가는 신부에게 집중했다.

    문득 장 경감은 화면을 되감기하고 정지시켰다.

    다시 되감기,

    정지.

    다시 재생하고, 신부가 벨보이 옆을 스쳐가는 그 순간, 신부의 바짓단 밑에 삐죽하고 나와 있는 것.

    “그래. 구두야…….”“네?”“구두였어.”수수께끼를 풀면 또 다른 수수께끼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해결되기 마련이었다.

    무엇이 끈덕지게 그를 물고 안 놓아주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바로 이런 타이밍들이었다.

    땀을 쥐고 참게 하는 이런 희열들.

    신부는 대기실에 구두 한 짝을 떨구고 갔다.

    대기실에 구두 한 짝을 흘리고 갔다는 신부는, 화면 안에서 두 쪽 다 신고 있었다.

    *

    CCTV상의 신부의 걸음걸이는 무척 안정적이다.

    구두 굽이 10센티가 되고, 대기실에 한 짝을 두고 왔다면 균형을 맞추지 못했어야 한다.

    옷을 미리 준비해둔 철저함이니 신발도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다.

    구두를 한 짝만 들고 간 것은 그래도 생애 첫 결혼이었는데, 기억 속에 간직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신부는 구두를 ‘신고’ 나갔다. ‘신부대기실’ 밖으로.

    “물론 신부가 구두를 신었긴 하지만, 이게 그 구두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그러니까 확인이 필요해. 그녀가 신고 있는 구두가 웨딩구두인지 아니면 여벌옷과 함께 준비해놓은 다른 구두인지.”“현재 이 화질로는 판독 불가합니다.” “아니, 방법이 아주 궁하진 않아.”장 경감은 화면 안의 벨보이를 아주 기특하게 두드렸다.

    “이 새끼를 족쳐봐야겠어.”바로 호텔을 찾아갔다.

    형사 생활 청산한 지도 꽤 되는데 아직도 냄새를 못 버린 걸까.

    장 경감의 얼굴을 보자마자 벨보이가 낌새를 눈치채고 튈 준비를 했다.

    “씨팔!”도망치는 놈을 수진과 흥신소 남자 직원 기태가 막아섰다.

    호텔 뒤편 으슥한 곳에 끌고 갔다. 벨보이가 무릎을 꿇었다.

    “이거 호텔에 알려지면 나 모가지예요.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단 말이에요!”장 경감이 벨보이의 어깨를 친근하게 쥐었다.

    “걱정 마. 내가 형사였다면 넌 철창행이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거든. 뭐 이쁘다고 그 새끼들 실적 쌓아줄 일을 해?” “약속할 수 있어요?”“대신, 조건이 있어.”“뭔데요?”장 경감은 느긋하게 까칠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네 그 은밀한 범죄를 내게도 공유해주지 않으련?”뭉그적거리는 놈을 몇 번 더 족쳐서 시계를 빼앗아냈다. 노트북에 연결해서 영상을 확인했다.

    벨보이가 여자 다리를 찍을 때 신부가 바로 놈의 곁을 지나갔다.

    혹시 몰카에 신부 구두가 찍히지 않았을까 싶었건만, 예상이 적중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였다.

    다리가 빠르게 지나갔고, 근접한 위치에서 찍힌 영상은 구두를 선명하게 담아냈다.

    “역시, 소장님 예상대로 신부는 웨딩 구두를 두 짝 다 신고 갔네요.” “근데 어째서 구두 한 짝이 신부대기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죠?”수진의 말에 남자 직원 기태가 의문을 표했다.

    신부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었나?

    아니다. 그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구두가 신랑 손에 다시 들어왔다는 건 중간에 신랑이 신부를 찾았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때였다. 호텔 시계탑이 댕…… 댕…… 정각을 알렸다.

    ……12시 종이 울리자 신데렐라는 왕국을 도망쳐 나왔다.

    왕자는 당장 사람을 시켜 신데렐라를 추격했지만 그녀는 이미 성을 떠난 뒤였다.

    왕자는 구두 한 짝을 줍는다.

    그녀가 흘리고 간 구두가 꼭 버림당한 자신의 처지 같았다.

    왕자는 호소한다. 자신은 버림당한 거라고. 피해자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왕자의 변(辨)일 뿐이었다.

    아직 신데렐라는 찾지 못했다.

    “구두 한 짝이 대기실에서 발견되었다고 누가 그래?”“경찰이…….”“아니지. 경찰도 그렇게 전해 들은 거겠지.”경찰이 단순 가출로 단정 짓는 건 모든 안정적인 정황 때문이었다.

    신부는 제 발로 걸어 나갔으며, 700만 원 상당의 보석이 박힌 구두 한 짝을 챙겨가는 약삭빠른 준비성까지 갖추었다.

    현재 신부의 모든 은행계좌는 추적을 당하고 있다.

    가출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현금이 바닥나면 구두에 박힌 보석을 팔 것을 예상하고, 전국 금은방과 전당포에 도난품 수배를 돌린 상태였다.

    그런데 신부는 그 구두를 신고 갔고, 그쯤부터가 신부가 증발한 순간이다.

    호텔 이후의 행적이 전무하다. 인근 CCTV를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경찰이 한신 경호팀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말끝을 흐린 장 경감은 손가락을 소리 나게 맞부딪혔다.

    “사전에 모든 증거들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도 돼.” 3일이란 시간은 증거를 감추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가출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금을 얻으려는 용도라면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기 위해 흠집나지 않게 했어야 한다.

    구두를 두 쪽 다 팔아치울 사람치고 무신경한 행동이다. 쇼핑백에 담아가는 게 인간의 기본 생리다.

    즉, 팔려는 마음이 없었다.

    신부는 분명 구두를 신고 나갔다.

    그러다 구두 한 짝을 바깥 어디선가 떨어뜨릴 만큼 급박한 상황에 부딪쳤다.

    그녀가 떨어뜨리고 간 구두를 주운 ‘신랑’은 마치 그녀가 대기실에 놓고 간 것처럼 거짓 연출을 했다.

    무언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

    그리고 두 자매 사이에서 신랑은 치정 관계를 이루고 있다.

    “신부는 가출을 한 게 아니야.” 신부는 증발한 지점에서 이동수단을 탔을 가능성이 크다.

    택시 같은 거라든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제3자의 개입이라든지.

    “만약 신부가, 다시 돌아오려 했다면……?”신부가 결혼식을 할 마음이 있었다면 자의로 이동수단을 탔을 리가 없다. 예식까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그러니까 타의에 의해 억지로 태워졌다는 가정이 더 근접하다.

    “어쩌면 이 사건, 가출을 빙자한 납치 사건일 수도 있겠어.”

    *

    장 경감은 벨보이에게서 더 뜻밖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기자가 몰래 신부대기실 들어갔대요.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삼류잡지 기자라던가. 그 남자가 왔다 가고 신부가 사라졌다느니 소란이 있었는데, 해프닝으로 끝났어요. 결혼식 무사히 잘 끝났고, 귀가 조치됐대요.’‘기자? 너 이거 누구한테 들었어?’‘이 얘긴 아무도 몰라요. 나도 보안팀 형님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거라. 경찰도 모를걸요?’경찰이 모를 수밖에.

    신부대기실에 왔다 갔다면 대기실 복도 CCTV에 잡혔어야 하는데, 영상 안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직원 외에 누구도 왔다 가지 않았다.

    벨보이에게 듣지 못했다면 자신도 깜박 속을 뻔했다.

    영상도 조작한 건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맨눈으로 미세한 편집을 잡아내긴 힘들다.

    게다가 움직이는 화면도 아닌, 정지된 채 텅 빈 복도만 비춘다면 이어붙이기는 더더욱 쉽다.

    다행히 로비 CCTV에 기자가 잡혔다. 신부가 지나가고 몇 분 뒤쯤이었다. 아는 기자였다.

    형사 시절, 신입기자들이 사건 잡으려고 경찰서 숙직실에서 죽 치고 있을 때 음료수를 사주곤 했었다.

    ‘한신그룹 결혼식 특종 잡으러 온 건가?’신부대기실에를 들어갔단 말이지…….

    물어물어 그는 기자가 근무한다는 잡지사와 연락이 닿았다. 기자를 접촉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해외이주요?”[로또라도 맞았는지 사직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더라구요. 이쪽도 절차라는 게 있는데 다 무시하고, 엄청 어이가 없습니다.] 어이가 없는 건 장 경감도 매한가지였다.

    요즘 해외이주가 유행인가? 노 집사 아들도 외국으로 이주했다더니, 이 집도?

    야밤에 도주하듯 떠나야 할 이유가 뭐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문득, 장 경감은 따가운 무언가를 느꼈다.

    도로로 시선을 던졌다. 또 그 차였다.

    새벽에 노 집사를 만났을 때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그 검은 세단이었다.

    따라다니는 건가.

    대체 진주양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건가.

    자신을 믿지 못해 감시자까지 붙이는 건 너무했다.

    장 경감은 주먹을 그러쥐고 차도를 가로질렀다. 검게 선팅 된 유리를 두드렸다.

    “거 말로 합시다.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하라고!”검은 세단이 갑자기 움직였다. 장 경감은 놀라서 엉덩방아 찧었다.

    앞으로 쏠렸던 차바퀴가 장 경감 쪽으로 갑자기 후진해왔다.

    그는 순간적으로 팔로 방어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자동차 뒷바퀴가 코앞에서 멈췄다.

    “하아…… 하아…….” 부릉? ! 차는 하얀 쪽지 하나를 던져주고는 매끄럽게 도로를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다가왔다.

    “이봐요, 괜찮아요?”장 경감은 쪽지를 주웠다.

    <양평 향리저수지 부교 17>

    위치였다. 무언가를 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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