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신데렐라의 언니2016.08.07.
“혹시나 신경 쓰인다면,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고.”고백과도 같은 말에 심장박동이 산산이 부셔져 내렸다. 영원은 그와 눈을 맞대었다. 그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무척 힘들어.’ 그렇게 말했을 때와 같이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욱.”영원의 허리가 폴더처럼 반으로 접혔다. 창자가 꼬이고 욱, 토악질이 치밀었다. 아무래도 아까 먹은 음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저기 내려야겠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빠. 빨리…….”매달렸지만 불구경하듯 그는 매정하게 방관할 뿐이었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팔은 으스러트릴 것처럼 세어졌다.
욱, 위가 부풀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귓가에 그의 습기 어린 음성이 닿을락 말락 했다.
“죄책감 걱정당할 만큼 선한 인상은 아닌데.”“…….”“위로도 받고.” “…….”“내가 그래도 아직은 먹히나 봅니다.”간교한 음성은 뱀의 혓바닥 같이 온몸에 꽁꽁 똬리 틀었다.
그가 영원을 봤다. 눈동자는 건방지게 충고하는 풋내 나는 어린 계집을 섬뜩하게 담았다.
헉. 그러나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영원에겐 없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당장 구역질이 시급했다.
시원한 향을 휘감은 가슴팍에 젖은 이마를 기대었다.
“그냥 당신 옷에 토해도 돼……?”주양은 마스터키로 빈 객실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VIP 회원에게 주워지는 특권이었다.
영원은 화장실에서 토를 하다가 널브러졌다. 흐릿하게 눈을 뜨니 찬 수건이 이마에 대져 있었다. 침실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손님?”호텔 객실 책임자가 옆에 와 있었다.
“내가 왜.”“기절하셨어요. 급체를 한 모양입니다. 의사가 다녀갔습니다.”어느새 돌아온 주양이 문지방에 서서 농담했다.
“화장실에서 죽은 줄 알았어요.” 영원은 별 해괴한 꼴을 다 보여 면목 없어 뺨을 긁었다.
“그렇게 볼 거 없어. 별일 아니니까.”“그간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있었습니까?”“늘상이지.” 갑자기 폭식을 하더니 토악질을 했다. 정상은 아닌 그녀를 주양이 심각하게 여겼다.
“글쎄 별거 아니라니까? 식탐이 좀 심해야지. 뒤룩뒤룩 옆으로 퍼지지 않은 거 보면 용하다나.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배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봐.”살이 안 찌는 게 당연했다. 먹는 족족 다 게워내니까.
하지만 어쩔 땐 채워도 채워도 배가 고플 때가 있었다.
비가 오는 울적한 날이나 특히, 계모의 학대가 있는 날은 미친 듯이 위에 음식물을 쑤셔 넣어야 겨우 속이 달래졌다.
위를 게워낸 데다가 체기가 안 내려가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급격히 피곤해져서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아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검은 세단 안에서 영원은 한 이솝우화가 생각났다.
한 농부의 이야기였다.
“옛날에 농부가 있었어.”“…….”“농부는 길을 가다가 독사에게 공격 받고 있는 독수리를 봤어. 독수리는 그대로 독사의 먹잇감이 될 뻔한 상황이었어.” 주양은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농부는 독수리를 안타깝게 여겨, 독사를 목에서 떼어주었어. 독수리의 목숨을 구했지. 하지만 먹잇감을 빼앗긴 독사가 복수심에 농부의 물통에 독을 흘려 놓은 걸 알아채지 못한 거야. 농부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어. 길을 걷다보니 목이 말랐고, 가지고 있던 물통을 떠올렸어. 물을 마시기 위해 입을 데려는 순간, 농부가 구해주었던 독수리가 그 물통을 낚아채갔어. 그리고 농부가 찾지 못할 곳에 버렸대.” 영원은 희끄무레하게 미소 지었다.
“꼭. 우리 이야기 같다.” 영원은 눈을 감았다. 영원은 그의 목숨을 구했고, 그도 오늘 영원을 구했다.
깜빡 졸았던 것 같았다. 영원은 꿈속에서 그에게 사실 진짜 소원이 있다고 고백했다. 대산물산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모든 걸 훌훌 떨어버리고, 계모와 두 딸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였다.
*
해뜨기가 무섭게 김보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그 남자를 움직인 거야?” 김보경은 영원에게 지금 당장 만나자고 제안했다. 하루 만에 상황이 역전됐다. 이제 안달 내는 건 그쪽이었다.
“자금 압박이 바로 해결됐어. 기간이 연장됐다고! 대체 어떻게 그 남자를……!”뚝. 귀찮아서 영원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약속대로 백운당에서 쫓겨나진 않겠지.
전화 코드를 뽑고 속 시원하게 돌아서는데 간만의 휴일에 잡지를 넘기던 신해수가 물었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뭘?”“밤 10시 다 돼서 들어왔잖아. 어머니한테는 일찍 잔다고 내가 거짓말했어. 어제 너 데려다 준 차, 어떻게 된 거야?”“누가 날 태워줬는지가 궁금한 거겠지.”차가 아닌 차주인.
양쪽으로 나뉘었던 잡지 페이지가 탁- 하나로 닫혔다. 신해수는 자못 심각했다. 무척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함부로 차 얻어 타지 마. 요즘 그런 외제차로 여자 유혹하는 인신매매범들 많아.” 싸늘하게 기분이 바닥을 쳤다. 해수는 상냥한 낯짝으로 항상 가르치려 들었다.
그러니까 인신매매범 말고 멀쩡한 남자는 날 태워줄 리 없다 이거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에 영원은 이를 갈았다.
그러나 보다 넓은 마음씨로 신해수를 봐주기로 했다. 영원의 얼굴에 순간 악질적인 계획이 스쳤다.
“누가 날 태웠는지 알면 기절할 텐데.”해수는 그마저도 귀엽게 봐주겠다는 듯 온화하게 웃었다.
“그래. 대체 누군데?” “너도 되게 잘 아는 사람이야.”무료한 낯짝이 질투심으로 뭉개지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진주양.”이날을 위해 이때껏 온갖 수모를 견뎌온 것이리라.
화등잔만 해진 계집의 눈을 보자 엄청난 희열이 등줄기를 전율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 같다.
“엄청 비싼 특급호텔 가서 식사도 했어. 아까 전화통 불난 거 봤지? 그 사람이야.”“그분이…… 왜?”“남녀가 호텔을 무슨 볼일로 갔겠어?”영원은 뻐기듯 주양과의 관계를 부풀리고,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처럼 통쾌하게 퇴장했다.
“멋대로 상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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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세 모녀에게도 신속하게 들어간다. 백운당 사장실에서 영원을 뺀 가족회의가 열렸다.
“신영원이 베갯머리송사로 진주양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거네?”첫째 딸의 말에 최혜란이 과민 반응했다.
“베갯머리송사는 무슨. 어디 그럴 주변머리나 되는 애야, 걔가? 그냥 식사 한 번 했다잖아.” 그러나 성원은 듣지 않았다. 거대한 소파에 드러누우며 다시 봤다는 듯 감탄했다.
“휴! 그 말병신. 크게 한 건 했네.”영원이 그 진주양을 만났다는 것도 기겁할 일인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성사시켰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어째서 진주양은 신영원에게 백마 탄 왕자가 되어준 걸까. 성원은 미치도록 궁금했다.
“잡음 하나 없는 재벌 4세……, 애초에 판타지지.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어. 나고 자란 환경부터가 이미 딴 세계 사람인데. 게이 아니냐는 소문도 무성했잖아.”성원이 쐐기를 박았다.
“진 이사 취향이 그런 쪽 아니겠어?”“그런 쪽?”최혜란이 날카롭게 성원을 되돌아봤다. 첫째 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침대 위에서 과격한 플레이를 즐긴다든지, 아니면 미의 기준이 남다르다든지. 왜 페티시 중에 비곗덩어리 단 여자한테 성적 흥분을 느끼는 특이 케이스들 있잖아.”“그게 말이야 막걸리야?”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최혜란이 진저리쳤다. 주양을 대체 어디다가 갖다 붙이는가. 성원이 헛기침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그거지. 솔직히, 신영원 걔가 하고 다니는 꼴이 정신 사나워서 그렇지 때 빼고 광내면 볼만할걸? 엄마도 알잖아. 걔 머리카락 안에 감춘 얼굴, 해수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훨씬 더…….”“그만!”최혜란이 딸의 말을 끊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이 방 안을 채웠다.
영원의 얼굴은 집에서 금기어처럼 여겨졌다.
숙여야 할 때를 잘 아는 성원은 조용히 몸을 낮췄다.
주먹 쥔 혜란의 손에 핏줄이 돋았다. 분노의 화살이 해수에게 꽂혔다.
“뭐 느끼는 바 없니?”최혜란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해수를 힐난했다. 해수는 팔짱을 끼고 앉아 침묵 중이었다.
“널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구두 주인이냐고 제 발로 굴러들어온 남자한테 아니라고, 잘난 척하더니 꼴이 이게 뭐냐. 어째서 영원이 걔가 진 이사와 안면을 튼 건데!”고집이 세서 아니다 싶으면 대쪽같이 제 뜻을 관철시키는 딸이었다.
지금도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최혜란은 속병 나지 싶어 바깥으로 나갔다.
기회만 엿보던 성원이 그 틈을 타 해수에게 바짝 다가갔다.
“너 너무 자신만만해 있는 거 아냐?”그 말에 해수는 냉소했다.
“난 누구랑 달리, 남자 하나 잘 물어서 팔자 고칠 꿈같은 거, 안 꿔.”해수가 성원을 보며 말했다.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눈빛에 담길 때면 성원은 자신이 굉장한 속물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닌 척 자신을 깔보는 계집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곧 무언가 떠올라 야비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 말고 그 남자.”
예상대로 멈칫, 해수가 동요했다.
“네가 꼬신다고 넘어오긴 한대냐?”“꼬실 마음도 없어.”“지금처럼 콧대 높게 굴면 재미없을걸?” “…….”“그 남자, 연비 좋은 스포츠카야. 디자인도 새끈하게 잘 빠졌고, 마력도 빵빵해. 옆자리는 공석이야. 모든 여자들이 그 차에 올라타고 싶어 해.”“그래서?”“백운당에서야 네가 세상 전부인 줄 아는 양반이니까, 엄마는. 오냐오냐 잘났다고 추켜 세워주지만, 바깥에선 넌 그저…….”“그 남자 발꿈치도 못 미친다고?”되묻는 목소리 끝에 희미하게 노기가 서렸다. 해수가 정색하자 성원이 얼른 카멜레온처럼 얼굴색을 바꾸었다.
“나야 물론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하기를 바라지. 알잖아. 신영원 그 계집애 완전 내 껌이었던 거. 걔한테 굽실대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휴. 나는 별로 바라는 거 없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으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내 목표야.”성원이 해수의 손을 잡아들어 지긋이 손등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우린 공동 운명체야. 꼬깝게 듣지 말고 충심이니까 넣어둬. 원래 꿀도 약이라면 쓰대.”해수는 그런 성원을 경멸스럽게 봤다. 도마뱀처럼 얍삽하고, 종잡을 수 없는 부류였다. 한 배에서 나온 자매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자신이 잘되길 바란다는 말이 진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잘되길 바라는 마음 뒤에 잘 안 되길 바라는 마음도 공존한다는 것이었다.
해수는 엄마인 혜란의 장점을 다 물려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성원은 외모를 얻지 못했다.
장녀지만 해수에게 인생을 건 엄마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언제나 우습게 남자들을 거절하는 해수가 건방지다고 느꼈을 것이다.
한 번 크게 당하는 걸 은근히 바란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해수는 모르는 척 외면했다. 어차피 떼어낼 수 없다면 눈을 감는 수밖에.
더 이상 복잡해지 싶지 않았다.
진주양의 문제도 같은 원리였다.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녀는 귀를 닫고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다.
한심한 여자들이 부질없는 짓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남자에 기대어 살지 않는 자주적인 삶을 이룩할 거라고 해수는 비장하게 마음먹었다.
차차 가족회의 내용이 희미해져 갈 쯤이었다.
머리를 말리다가 헤어드라이기가 고장 났다. 영원은 새벽부터 일찍 백운당에 출근하고 없었다.
불행한 유년 시절로 성격이 삐뚤어졌지만 부지런한 아이였다.
가끔 이 애의 긍정과 천진난만함을 배우고 싶었다.
해수는 연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영원의 서랍을 뒤지다가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분명 이 구두는 그날 주양이 갖고 갔는데? 나머지 한 짝은 의문의 여자가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여기 있다는 것은…… 해수는 구두를 떨리는 손으로 그러쥐었다.
‘이 구두, 제가 한 달 전에 버렸거든요.’‘몇 번 안 신은 새 신발에 메이커니까, 아마 누가 주워서 신었을 수도 있어요.’“네가…… 그 남자가 찾던 생명의 은인이었어?”그때 엔진 소리가 멈췄다. 해수는 창밖을 봤다.
럭셔리한 광택이 흐르는 메르세데스가 집 앞에 서 있었다. 백운당에서 자주 봤었다.
진주양의 의전차량이었다.
주양이 차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마침, 점심밥을 먹으러 사가로 돌아오던 영원이 그를 맞닥뜨리고 멍해졌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방해가 된 건 아니겠죠.”영원을 들여다보는 주양의 눈빛이 퍽 다정했다.
해수는 머릿속이 잠시 공황상태에 빠졌다.
2층에서 해수는 마주 보고 있는 그들을 말없이 보았다.
왕자와 하녀.
절대 어울릴 일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붙여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성원의 우려가 비웃듯, 귓가에 쟁쟁했다.
‘너 너무 자신만만해 있는 거 아냐?’
*
대산물산은 이미 그 외에도 부실채권을 남발해서 회생이 불가능했다.
결국 각 언론사와 뉴스에서 먼저 알아채고 발 빠르게 대산물산 건을 보도했다. 회사는 더욱더 경영난에 처했고 파산했다.
대산물산 김 회장은 단골이자 백운당의 주주였다.
직원들이 그 일로 백운당에도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냐고 어수선했다.
“사장한테 너 뭐 들은 거 없어?”동료 1이 직계가족인 영원을 떠봤다.
“알아도 너한테는 말 안 해.”동료 1이 머리를 쥐어박을 듯 주먹을 치켜들다가 후, 분노를 삭이고 돌아갔다. 안 그래도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는 길이 심란했다.
백운당은 아버지가 일군 영원의 유산이었다.
백운당이 넘어가면 이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그보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영원은 목석이 되었다.
“방해가 된 건 아니겠죠.”“여긴 어떻게…….” 혹시 해수에게 조금 부풀려서 자랑질 한 게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나.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 허옇게 떴다.
“그냥 밥 먹었다고밖에 말 안 해, 했어. 정말이야.”“……?”“내, 내가 해수한테 자랑한 거 따지려고 온 거 아냐?”주양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영원은 아뿔싸,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뒤집어 자빠진다더니. 괜히 질겁해 다 나불거릴 뻔했다.
“그러고 보니 확인을 하지 않아서요.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따지고 넘어가는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뭘?”“구두.”바람결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고요한 음성은 뒤 숲에서 시끄럽게 날리는 나뭇잎 소리를 제압하고 곧장 영원에게 헤쳐 왔다.
“구두를 확인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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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문제 될 건 없지만.”영원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사라지는 영원을 지켜보던 주양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전화를 받았다. 양 비서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지라시의 발화점을 찾았습니다.”“내가 궁금해 한 건 그게 아닐 텐데요.”백운당이라는 건 이미 알고 덮은 일 이었다. 양 비서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기자 말로는 익명의 제보자한테 돈을 받고 지라시를 샀다고 합니다. 근데 그 익명의 제보자가 아무래도 내부자가 아니냐는 게 기자의 추측입니다. 현장감 있게 별채에서 있던 모든 말까지 생생하게 재연한 것을 봐서, 직접 그 일을 목격한 사람은 분명한데, 그럼 별채 일을 아는 사람은 김보경을 포함한 신영원 딱 두 명으로 좁혀집니다. 얼마 전 백운당에서 있었던 조리 실수도 그렇고, 신영원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대산물산 일에 개입한 것도 그렇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주양은 천천히 전화를 끊었다. 신영원이 내려왔다. 어쩐지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찾았습니까?”주양이 정중하게 물었다.
“이, 이상해. 분명히 서랍 안에 잘 숨겨놨는데.”“그래서, 못 찼습니까?”“구두가 없어졌어.” “그렇군요.”주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아니기를 바랐다. 양 비서의 우려가 단순 기우에 지나기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 신영원이란 여자, 덮어놓고 믿기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구두 주인이라는 것도 확실하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