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96화 (196/197)

<-- 25층 - 결전 -->

“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신의 파편 때문 아니었어?”

겨울은 승원과의 전투를 피하고자 설득에 들어갔다.

지금은 눈앞에 없지만, 그의 아공간 주머니에 마교의 3대 교주들과 두 명의 흑마법사 리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과는 싸우고 싶지 않아.’

승원 옆에 있는 붉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피부의 늘씬한 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관찰 스킬과 예언 스킬로도 어떻게 그녀가 승원 일행과 함께 다니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건 그녀가 승원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죽이고 흡수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일대일로 싸워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 옆에는 천마에게 무공을 배워 한층 강력해진 일행이 가득 서 있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라고. 너희가 나와 싸워야 할 이유가 있어? 내가 너희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없잖아.”

“흠…….”

승원이 싸우려고 했던건 그녀가 신의 파편을 순순히 내놓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건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신의 파편이 손쉽게 들어오자 정작 당황한 건 승원이었다.

“검은 구를 지구 곳곳에 소환하는 이유는 뭐지?”

“네가 원한다면 한국에는 앞으로 검은 구를 만들지 않기로 하지. 이걸로 어때?”

이유를 묻지 말라는 듯 제안을 해왔다.

승원은 겨울의 제안에 고민에 빠졌다.

[카나 어떻게 생각해?]

[응? 뭐가?]

[신의 파편이 모여서 신을 만나러 가는데 인원수 제한 같은 건 없어?]

[그건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초대하는 자가 결정하는 거지.]

[초대하는 자라는 건 신을 말하는 거지?]

[맞아.]

승원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6개의 신의 파편을 꺼냈다.

“좋아, 네 거래를 받아들이지.”

신의 파편이 모두 모였을 때 한쪽만 갈 수 있다면, 죽도록 싸워야겠지만, 들어보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굳이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협력하기로 했다.

“지금 바로 할 거야?”

겨울이 승원의 손에 들린 신의 파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그럼 저 멀리 있는 두 명도 이리로 오라고 하는 게 좋을걸.”

승원은 제임스와 경호에게 저격을 대기하던 것을 그만두고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두 사람이 활과 총을 들고 다가오자 겨울 일행도 무기를 아이템 창에 집어넣고 맨손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냥 이렇게 모으기만 하면 되나?”

승원이 카나를 바라보자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저번에 말했던 주머니야. 하나 가져가.”

카나는 자신의 품에서 붉은 주머니와 파란 주머니를 꺼내 승원에게 건넸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아?”

“아니, 아빠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거 같아. 왠지 그런 직감이 들어.”

카나가 단호한 표정에 승원은 두 개의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그럼.”

승원은 7개의 신의 파편을 하나로 모았다.

- 우우우우웅!

신의 파편이 모두 모이자 7개의 보석이 자석처럼 한데 뭉쳐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어 뿜어져 나오는 눈 부신 빛에 일행 모두가 눈을 감았다.

**

눈을 떴을 때 승원이 서 있는 곳은 순백의 도화지 같은 곳이었다.

티끌 하나 없는 공간에 선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두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라는 말보다는 나를 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겠어. 지금 이 공간에 서 있는 인간은 자네 하나뿐이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난 천야라고 하네.”

“전 마야라고 해요.”

“……!”

주변을 둘러봤다.

정환 일행은커녕 겨울 일행도 보이지 않았다.

승원과 천야와 마야 셋만 드넓은 공간에 서 있었다.

“당황할 거 없어. 다들 개인적으로 독대를 하고 있으니까.”

그 말인 즉, 일행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천야와 마야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뜻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

“…….”

승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신에 대해 일말의 존경심이라도 있는 척해야 했건만, 승원은 그런 연기를 할 수 없었다. 뭐라 해도 그들은 영문도 모르던 자신을 이세계에 내동댕이쳐서 죽을 고생을 하도록 만든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신은 그런 승원의 태도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마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해주는 게 어때?”

“흠, 나쁘지 않은걸?”

천야와 마야가 고개를 돌려 승원을 바라봤다.

“들었지? 궁금한 게 있으면 마음것 물어보라고.”

천야였다.

“나하고 다른 사람들을 탑에 소환한 이유는 뭐지?”

“그걸 설명하려면 이 세계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는데, 괜찮겠나?”

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묻지. 너는 나를 만나기 전에 혹은 탑에 소환되기 전에 신(神)이 존재한다고 믿었나?”

“아니.”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았던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니 신이라는 건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거라 생각했어.”

“바로 그거야.”

천야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신이라는 건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야. 사람들의 믿음이 에너지가 되어 신이라는 생명체가 만들어진 거지.”

“뭐?”

“쉽게 말하면 너희 인간이 과거에 믿었던 유럽의 신 제우스도 실존했었지. 지금은 인간들의 믿음이 없어져 사라졌지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거야? 그럼 단군왕검도 존재했나?”

“아니, 믿는 신도 숫자가 부족해서 실체화하지 않았어. 실체화하기에는 신도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지.”

승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짓자 천야의 설명은 계속됐다.

“우주를 통틀어 지금 존재하는 생명체는 지구가 유일해. 너희 인간들은 우주 저 머너에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 믿지만 아니야. 수억 년 뒤에는 태어날 예정이지만, 지금은 우주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생명체가 너희 인간이고. 그 때문에 그 정신 에너지는 실로 어마어마해. 신(神)을 만들어 낼 정도로.”

천야가 손을 휘두르자 순백의 도화지 같았던 주변의 모습이 순식간에 우주로 돌변했다. 발밑에는 푸른 지구가 내려다보였다.

“그럼 여기서 질문. 승원 네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무슨 신 같나?”

승원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신을 떠올렸다.

“하나님?”

“땡!”

“예수?”

“그것도 땡이야.”

“그럼 부처?”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자지. 너희가 신으로 숭배하지 않잖아.”

승원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신(魔神)이나 악신(惡神)?”

“이것 참 우리를 그렇게 보다니 서글프군.”

천야가 다시 손을 휘젓자 주변이 숲으로 변하고 나무 의자와 탁자가 나타났다.

천야가 승원보고 앉으라는 듯 손을 뻗었다.

“앉지.”

“수수께끼 신이 아니라면 속 시원히 말하지 그래?”

승원이 자리에 앉자 천야와 마야도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쌍둥이 신이야. 너도 이미 들어 알겠지만 난 천야. 이쪽은 마야.”

“그런 신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지. 우린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신이니까.”

“……!”

생각지도 못한 천야의 발언에 승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면 천야와 마야는 가만히 앉아서 그런 승원을 바라봤다.

“너희 우주를 담당하던 신은 소멸당했어. 그리고 소멸당하기 전에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누구에게 소멸당한 거지?”

“옛것. 고대의 신이지.”

“신의 이름은?”

“£¥¢Å℃.”

“잠깐, 뭐라고?”

“인간의 청각기관으로는 정확한 이름을 들을 수 없어. 인간들은 그를 크툴루라고 부르지.”

“그런 신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네가 그랬잖아. 인간의 믿음이 신을 만들어낸다고.”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모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모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크툴루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라는 사람이 쓴 소설 속 신이었어.”

“소설이라고?”

“그래, 단지 그 소설에 불과했던 이 신은 다른 작가들이 거기에 살을 붙이며 완성이 됐어. 지금은 수백 가지 컨텐츠로 재확산 되었지. 너는 몰랐지만, 지구인 상당수가 크툴루를 상상했고. 결국 그 괴물이 태어나고 말았지.”

천야와 마야는 크툴루와 백일 밤낮을 싸웠던 것을 떠올렸다.

“녀석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우리에게는 역부족이었어. 12신이 이 세계로 넘어왔지만, 모두가 죽고 남은 건 나와 마야일 뿐.”

천야의 설명은 계속됐다.

“지구는 우리를 믿는 신도가 없어 오래 있을 수 없었어. 오래 있다가는 실체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진 제우스처럼 우리도 사라질 수 있었지.”

“그래서?”

“우리는 결국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왔어. 문제는 녀석의 힘이 점점 거대해지며 여러 차원에 몸을 걸치기 시작했고. 나와 마야는 언젠가 그와 다시 싸우게 될 것을 직감했지.”

“그래서 인간들을 탑에 소환한 이유는 뭐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백 년 후에나 만나야 했건만, 마왕의 개입으로 너무 빨리 만났어.”

“무슨 말이야?”

“크툴루가 여러 세계에 몸을 걸치고 있지만, 본체가 있는 곳은 지구가 있는 곳이야. 때문에 너희 지구인들을 신(神)으로 만들어 크툴루를 제거하려고 탑을 건설했지.”

승원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을 만들어?”

“그래, 아무리 해봐야 하급 신 밖에 안 되겠지만, 그게 군대가 되면 크툴루도 잡을 수 있겠지. 그래서 너희는 탑에서 힘을 키워 신에 다다라야 한다, 원래는 신의 반열에 올라서면 메인 퀘스트로 신의 파편을 찾도록 해서 직접 만나 모든 걸 설명할 예정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지금 만나버렸군.”

승원은 천야를 빤히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승원.”

지금껏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마야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 뒤에는 빨간 문과 파란 문이 있어요.”

승원이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정말 숲 한복판에 빨간 문과 파란 문이 나타나 있었다.

“왼쪽에 빨간 문은 신계에서 보고 들은 걸 모두 잊고 26층으로 가는 문이에요. 오른쪽에 파란 문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기억을 갖고 26층부터 시작하는 문이죠. 신(神)에 다다르는 힘을 얻게 될 때까지 탑을 계속 오르세요. 그리고 때가 되면 신의 파편 7조각을 다시 모아 우리를 찾아오세요.”

인자한 미소를 짓는 마야는 마치 승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두 개의 문 모두 승원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둘 다 싫다면? 우리를 탑에서 해방해 줘.”

승원의 말에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승원.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이미 천마와 겨울은 반인반신(半人半神)의 경지에 다다랐어요. 승원도 그 목전에 도달해 있고요. 함께 녀석을 물리쳐요. 그 이후에 여러분은 지구를 통치하는 신이 될 거예요.”

신(神)이 된다는 것. 그리고 지구를 통치하는 신이 될 거라는 말은 제법 구미가 당겼지만, 그것으로 지난날의 고통을 모두 잊을 수는 없었다.

“탑에 소환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부탁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탑에 소환당해 죽을 위기를 수도 없이 겪게 해놓고 이제 와 뭐? 함께 물리쳐?”

승원이 화가 난 듯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천야가 검을 보고는 콧방귀를 끼었다.

“쯧, 마야. 내가 그랬지? 인간들하고 굳이 말 섞을 필요 없다고.”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원래 내 계획대로 인간 녀석들 머릿속에서 우리를 만났던 기억을 모두 지우고 26층으로 내쫓을 거야. 불만 없지?”

“으응.”

천야와 마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들이 앉아있었던 탁자와 식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설마 그런 쇳조각으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천야는 전투 자세를 취하지도 않고 천천히 다가왔다.

‘음?’

천야는 승원이 들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승원은 허리춤에 있는 장검을 뽑아 들지 않고 단검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극명했기 때문에 곧 그것에 대한 생각은 신경을 꺼버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