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87화 (187/197)

<-- 23층 - 신의 파편 -->

“저격이다!”

창고 안에 있던 누군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서둘러 주변에 잔뜩 쌓여 있는 나무 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 탕! 탕! 탕! 탕!

저격은 계속됐다.

“끄아악!”

총이 한번 발사될 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쓰러졌다.

대물 저격 총인 탓에 상자 뒤에 숨어도 총알이 상자를 뚫고 들어왔다.

“사야카! 저거 누구야?”

겨울에게도 총알이 날아들었지만, 그녀가 생성한 보호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

“찾아보고 있지만…….”

천리안 스킬이 만능은 아니라서 만난 적도 없는 상대를 찾아 관찰할 수는 없었다. 승원처럼 한번 멀리서라도 직접 봐야 관찰하는 게 가능했다.

“저 녀석들 동료인가?”

쿄헤이가 창고 위쪽에 작은 창문에서 총알이 날아드는 것을 확인하고는 창고 중앙에 포박되어있는 승원과 카나를 바라봤다.

“내가 나가서 처리할게.”

“조심해!”

창고를 달려나가는 쿄헤이를 보며 사야카가 소리쳤다.

겨울 일행과 여름 일행이 모두 창문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모습을 숨기자 총알은 이제 창고 천장에 달린 전등을 향했다.

- 탕! 탕! 탕!

- 쨍그랑!

전등이 깨지자 창고는 암흑에 휩싸였다.

하늘에 떠 있는 달도 구름에 가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클라이머들을 죽이고 그 능력을 흡수한 겨울에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안.’

마안(魔眼)이라는 스킬을 사용하자 창고 안이 대낮처럼 밝게 보이게 됐다. 겨울은 손을 뻗어 창고 중앙에 포박되어 있는 승원과 카나를 노리고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 스걱!

겨울의 공격에 두 사람은 시시할 정도로 쉽게 목이 베였다.

곧 동맥에서 피가 솟구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두 몸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젠장!”

겨울이 갑자기 화를 내자 옆에 있던 카즈마가 무슨 일이냐는 듯 다가왔다.

“왜 그래?”

“함정이야. 저 두 놈 가짜 몸이었어.”

“뭐야? 그런 스킬도 있었어?”

겨울은 누구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상황에서 상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자신의 손맛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지 누가 적이고 어떤 상황인지 모르면서 싸우는 것은 피하고 싶어했다.

“우린 일단 빠진다. 텔레포트 할 거야. 준비해.”

카즈마는 전투광이었지만, 그건 클라이머들간의 싸움일 때 이야기였지. 상대가 총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군인 혹은 경찰인 것 같은데 그런 자들과 싸우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 잠깐만! 쿄헤이는?”

사야카가 밖으로 뛰쳐나간 쿄헤이를 챙겼다.

카즈마와 사야카 그리고 쿄헤이는 겨울에게 고용되어 일본에서 건너온 클라이머들로 사야카는 코헤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서울의 은신처로 빠졌다가 내가 다시 돌아와서 쿄헤이도 데리고 갈게.”

“으응.”

결정이 되자 창고 안에서 세 사람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빨리 나가서 잡아!”

여름이 부하들을 닦달해서 적을 추적하라는 목소리만 쩌렁쩌렁하게 창고 안에서 울려 퍼졌다.

**

“죽었어.”

“뭐가?”

“창고 안에 있던 우리 몸 죽었다고.”

카나의 말에 승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위험요소를 배제하려는 건 당연했다.

“이런!”

“왜 그래?”

승원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하자 카나가 서둘러 그 뒤를 따라붙었다.

“저격하는 녀석 누군가 했더니 제임스였어.”

“아, 그 금발 남자?”

“그래.”

카나가 승원 일행을 떠나던 9층에서 만난 게 제임스였다.

카나도 제임스를 짧게나마 만나본 적이 있어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산 이후에 어디 갔나 했더니…….”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아무래도 승원이 납치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뒤쫓아 온 듯했다.

**

- 타다당!

“아악!”

제임스가 돌격소총을 난사하자 산을 뛰어 올라오던 여름의 부하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클라이머들이 아무리 이능력을 사용한다지만 눈으로 쫓기도 힘든 속도로 날아드는 총알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클라이머는 극소수였다.

“뭐야? 경찰이나 군대인 줄 알았더니 단 한 명이었어?”

사격을 하며 이동하는 제임스를 발견한 클라이머 하나가 동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한 명이다! 적은 한 명이야!”

“뭐? 한 명이라고?”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조심스레 뒤따르던 여름이 어이없다는 듯 앞으로 내달렸다.

클라이머들은 상대가 총을 사용하는 만큼 나무를 이용해 총을 피해서 거리만 좁히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임스 역시 빠르게 움직이는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뭐야, 저 녀석 움직임만 보면 클라이머가 확실한데, 어떻게 총을 쏘는 거지?”

10층에서 예외적으로 클라이머가 총기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클라이머는 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겨도 격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위해서 몰아붙여!”

십여 명의 클라이머들이 정신없이 산을 뛰어 올라갔다.

제임스는 그들이 한데 모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유도 사격을 하며 달려갔다.

‘됐다.’

제임스는 추격자들이 한데 모인 것을 확인하고 허리춤에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 콰쾅!

설치해 놓은 폭탄이 폭발했다.

그 폭발력이 어찌나 크던지 인근 도시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런!”

승원은 제임스가 폭탄을 터트린 것을 알고 혀를 찼다.

조용히 여름, 겨울 일행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승원이 제임스를 발견하고 소리치자 제임스가 놀란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아, 승원! 창고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거예요?”

“어떻게 된 거야?”

“승원이 납치당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 도와주러 왔죠.”

“거짓말하지 마.”

승원이 검을 들어 제임스의 목 끝에 가져다 댔다.

북한산에서 제임스와 떨어졌지만, 그 당시 퀘스트는 조국으로 한 달 내에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제임스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미국에 갔다 왔다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타이밍 좋게 납치할 때 우연히 발견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역시 승원이군요. 속여서 미안해요. 저도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무슨 입장?”

제임스는 대답 대신 신분증 하나를 보여줬다.

“CIA?”

“승원이 제게 준 총기 스킬 덕분에 미 정부에서 제 능력을 높이 사서 CIA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검은 구에 대해 단서를 추격해 가다가 여름 일행이 승원을 납치하는 것을 보게 돼서…….”

제임스도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공격한 것이다.

여름 일행과 겨울 일행은 미국에서 테러리스트도 분류된 위험도 S급 클라이머였다. 그런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받은 그가 승원을 구하기 위해 무리해서 사건이 뛰어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멍청이. 우리도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미끼를 사용한 거였는데.”

“네?”

승원은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자 제임스가 이제야 납득된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어쩐지. 인간 같지 않은 승원이 순순히 납치됐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거 칭찬이냐?”

그때였다.

산 밑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제임스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바로 발사했다.

- 탕!

상대는 이마 정 중앙에 총을 맞고 뒤로 쓰러졌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 있었네요.”

제임스가 총구에 ‘후-’하고 입바람을 불고 다시 허리춤에 넣으려 하자 승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죽었어.”

“네?”

분명 이마를 뚫고 들어간 총알이 뇌를 헤집어놔서 사망에 이르러야 했지만, 상대는 자체 회복 능력이 상당히 높은 스킬을 가졌는지 상처에서 총알을 뱉어내며 저절로 치료됐다.

“아야야.”

폭발로 인한 그을음으로 얼굴이 시꺼메서 아까는 잘 몰랐지만, 다시 자세히 보니 상대는 여름이었다. 그녀는 상처가 사라져가는 이마를 긁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라이머가 총기를 사용하다니. 이거 반칙 아니야?”

여름이 투덜거리며 강철판이 달린 너클을 들어 올려 얼굴을 보호했다.

제임스는 어떻게 하겠냐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카나 네가 처리해 줄래?”

“그러지 뭐.”

여름은 셋이 상대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귀찮은 존재처럼 서로에게 떠넘기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것들이 나를 뭐로 보고!”

여름이 카나의 얼굴을 짓뭉개려는 듯 너클을 낀 주먹으로 카나에게 달려들었다. 일반인이라면 그 주먹을 맞으면 머리가 터질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카나는 그 공격을 가볍게 흘리고 몸의 축을 돌려 여름의 옆에 섰다.

“어?”

여름은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가볍게 흘리는 사람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 서둘러 자세를 바로 잡으려 했지만, 카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 퍽!

카나의 손이 가슴을 뚫고 들어가서 여름의 심장을 빼냈다. 상대의 회복력이 말도 안 되게 좋은 만큼 카나는 어디까지 회복이 되는지 확인 차 심장을 빼낸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여름은 겨울에게 근접 전투에 관련된 스킬을 수도 없이 받았기 때문에, 몸싸움에서 져본 사례가 없었다. 근데 지금 상대한 눈앞의 여자는 싸움이라고 할 것도 없이 움직임을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

- 츠츠츠츠

“쿨럭!”

심장을 빼앗겼음에도 여름의 심장을 빠르게 수복되었다.

그걸 지켜본 승원과 제임스는 깜짝 놀랐다.

“뇌에 이어 심장을 회복해?”

이 정도 회복력이라면 유니크 스킬이 분명했다.

카나처럼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여름은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적 중 하나였을 게 틀림없었다.

“킥킥! 너희는 날 이길 수 없어!”

여름은 심장이 회복되어 다시 몸이 움직여지자 빠르게 카나를 공격했다.

카나는 그 손을 잡아 몸을 회전시켜 팔을 크게 비틀었다.

- 우드득!

“끄아악!”

고통을 느끼는 기관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여름이 비명을 질렀다.

카나는 바닥에 쓰러진 여름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 버렸다.

- 스걱!

“머리를 자르고 터트려도 회복되려나?”

카나는 여름의 머리를 허공에 던져올리고 다크 플래어 마법을 사용해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여름의 몸은 한동안 꿈틀 거리더니 목부터 다시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와, 대단하네. 내가 이 스킬을 갖고 싶을 정도야.”

카나가 회복되어 가는 여름의 몸을 발로 툭툭치며 승원을 바라봤다.

그 강인한 모습에 제임스는 카나가 누구냐는 듯 승원을 바라봤다.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군요. 누구시죠?”

“카나라고 해.”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말하자면 복잡해.”

카나가 제임스를 기억하지만, 제임스가 카나를 기억하지 못 하는 건 당연했다. 그 당시 카나가 자신의 힘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다녔기 때문이다.

“카나, 처리할 수 있겠어?”

승원은 괴물 같은 회복력을 보이는 여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심장을 빼앗기고 머리가 잘려도 회복될 정도면 어떤 수를 써도 죽을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카나는 여름을 수천 조각으로 잘라버리거나 불에도 태워 보았다. 하지만 여름은 계속 되서 회복되었다. 카나가 방법을 강구하는 동안 여름은 이제 완전한 몸을 되찾았다.

“킥킥! 내가 말했지? 너희는 날 절대 못 죽인다고.”

- 스걱!

카나는 손으로 여름의 목을 잘라버리고는 몸을 돌려 승원을 바라봤다.

“아빠, 상점 창에서 쇠 500kg만 사줄래?”

“그러지 뭐. 근데 어떻게 하게?”

승원은 상점 창에서 쇠를 500kg 구매했다.

그러자 카나는 염동력으로 그 쇠를 허공에 들어 올려 지옥 불로 녹이기 시작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카나는 쇠를 녹여 액체로 만들어버린 상태에서 다른 손으로 염동력을 발휘해 여름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 때마침 머리가 다 회복되어 정신을 차린 여름이 녹아서 액체가 되어 있는 쇠를 보며 기겁했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녹인 쇠에 집어넣고 식혀서 바다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나 보려고.”

“그, 그만둬! 끄아아아아아아악!”

고기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제임스가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여름은 고통에 겨운지 목이 터지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카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쇠와 여름을 하나로 합쳐서 원형 구를 만들었다.

- 훙!

카나가 손을 휘젓자 그 강철 구는 바다로 날아가 그 안으로 풍덩 빠졌다.

승원은 운디네를 통해 쇠와 융합된 여름의 몸이 회복되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여름은 회복되지 못했다.

“휴, 끝난 거죠? 완전히 죽은 거죠?”

제임스가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카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수백 만년 지나서 쇠가 바닷물에 마모돼서 사라지면 다시 살아날지도.”

“…….”

세 사람은 멀리서 경찰과 소방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그 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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