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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의 회귀자-183화 (183/197)

<-- 22층 - 지하 미궁 -->

“10개 다 본체라고?”

팔로스가 믿기 어렵다는 듯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마왕을 바라봤다.

10명의 카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르카디안님. 이쪽으로!”

팔로스는 혼자 동떨어져 있는 아르카디안을 잡아당겼다.

힘없이 당겨져 오는 그의 얼굴은 넋이 나가 보였다.

“영감! 왜 그래?”

“내 실수다. 네가 나타났을 때 마왕도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굳이 지금 이 타이밍에 후회해야 돼? 후회할 거면 녀석을 쓰러트리고 하라고!”

주리안은 잘린 손목을 붙잡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는 제키엘을 바라봤다. 과다출혈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모르지만 몸을 웅크리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감. 저 녀석 안 죽었으면 치료 좀 해 봐!”

“멍청한 소리! 지금 찰나의 순간의 생사가 갈린다. 집중해라!”

“쯧…….”

그때 열 명의 마왕 중 다섯 명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머지 다섯은 주문을 외우는 다섯을 보호하려는 듯 앞을 가로막았다.

“주문이 완성되는 걸 막아!”

“칫!”

주리안이 왼쪽으로 팔로스는 오른쪽으로 내달렸다.

그동안 아르카디안 역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 가장 강한 마법을 준비했다.

‘지하실이니만큼 마법 선택에 신중해야 해. 잘못하면 다 같이 매몰당한다.’

아르카디안은 문득 자신이 잘 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잠깐? 지하실에 있는 마법진이 사라지고 있어?’

지하실에 있는 수백 개의 마법진은 마왕을 제약하기 위한 장치였다. 텔레포트 금지부터 시작해서 공격 마법을 금지 시키는 마법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아, 안돼!’

아르카디안은 지하실에 있는 마법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정신을 집중했다.

“하앗!”

용사와 소드 마스터는 그 명성만큼이나 대단한 위용을 보여줬다. 10개로 몸을 나눈 만큼 힘도 10개의 몸으로 분산된 마왕을 초지일관 밀어붙였다.

- 스걱!

“큭!”

카나는 방어막을 펼쳤음에도 팔로스의 검에 의해 어깨부터 가슴까지 내려오는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분산된 힘으로 두 사람을 막는 건 무리가 있었다.

- 퍽!

또 다른 카나는 주리안의 검에 심장을 관통당하고 쓰러졌다.

“상대할 만하잖아?”

주리안은 자신이 불필요하게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하며 그다음 마왕과 검을 섞었다. 마왕의 손에는 어둠의 마나로 만들어 낸 암흑의 검이 손에 들려 있었다.

“음?”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방금 전에 쓰러트린 마왕과는 느낌이 달랐다. 조금 더 힘이 더 강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복제를 죽이면 나머지로 힘이 돌아가는 건가?’

주리안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아르카디안을 바라봤다. 그는 마왕이 마법진을 해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팔로스 백작!”

“왜!”

“이 녀석들 죽이면 나머지 녀석들이 더 강해져!”

“그걸 이제 알았냐?”

- 스걱!

팔로스가 세 번째 마왕을 쓰러트리며 검을 허공에 휘둘러 날에 묻은 피를 떨쳐냈다.

- 쾅! 쾅! 쾅! 콰쾅!

그때 복도로 통하는 문이 계속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 문으로 지옥의 수문장 케르베로스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 크르르르르르!

빛나는 붉은 안광.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끼치게 했다.

“용사! 네가 녀석을 맡아라. 내가 마왕을 상대하마!”

“용사인 내가 마왕을 상대해야지! 네가 저 괴물을 상대해!”

“칫! 지금 말싸움을 할 시간이…….”

- 크앙!

케르베로스는 입구에서 가까이 있던 팔로스에게 달려들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팔로스가 케르베로스를 상대하게 됐고 주리안이 마왕을 상대하게 됐다.

‘두 명만 더 쓰러트리면 마법을 쓰는 놈들을 막을 수 있어!’

주리안도 마왕이 마법진을 해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진이 모두 해체되면 텔레포트로 지하실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놈 도망치려는 것이냐!”

주리안이 마왕을 도발하기 위해 큰소리를 쳤지만, 카나는 묵묵히 그의 검을 받아냈다. 힘이 분산된 만큼 그녀는 용사의 검을 받아내기 버거웠다.

‘제약이 너무 많아.’

카나는 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속으로 다급해졌다. 자신은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소환당했고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기인 마법은 모두 막혀서 사용할 수 없고 육탄전으로는 소드 마스터와 용사를 이길 수 없었다.

‘케르베로스로 시간을 끌어서 마법진을 해체하려고 했건만.’

좁은 지하실에 갑자기 케르베로스를 소환하면 안 그래도 당황한 용사 일행이 정신을 못 차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당한 마력을 쏟아부어 소환한 케르베로스는 지하실의 마법진 때문에 복도에 소환되서 상대가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됐다.

“오라! 오라! 오라! 오라!”

용사는 단순하게 검을 휘둘렀지만, 그 공격은 소드 마스터보다도 빠르고 강력했다. 카나는 그 위협적인 공격에 수세에 몰리게 됐다. 소환한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방어 마법도 쉽게 깨졌다.

“크흑!”

카나의 복제가 또 다시 쓰러졌다.

이제 마법진을 해제하는 5개의 몸과 방어하는 1개의 몸이었다.

- 크아아아아아앙!

케로베로스도 중간계에 와서 마계에서 있던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팔로스에게 공격을 당해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헤헤, 마왕. 내게 쓰러져서 내 명성을 드높이는 제물이 되어라!”

주리안은 용사로 발견된 이후 비밀리에 가혹한 훈련만 할뿐.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나타날 마왕에 대비하기 위해 수련 또 수련의 나날이었다. 이웃 왕국간의 전쟁에 나가 공훈을 세울 수도 오크 족이 영토를 침범할 때 토벌을 나갈 수도 없었다.

“너만 쓰러트리면 당당하게 용사라 밝히고 공주님을 내 것으로 만들겠어!”

“흥!”

카나는 저런 단순한 용사에게 쓰러질 수 없다는 듯 용사와 검을 섞었다.

‘아빠가 사용하던 검술.’

카나는 어째서인지 갑자기 승원이 검술 훈련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검의 흐름과 궤적을 따라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고 검이 따라왔다.

“음?”

주리안은 갑자기 마왕의 검이 신묘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공격을 흘리고 급소로 날아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앗! 뭐, 뭐야?”

용사가 놀라서 뒤로 뛰어 공격을 피하자 카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마법이 막힌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나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승원의 보법을 떠올리며 발을 움직였고 어깨, 허리, 다리, 팔의 움직임을 회상하며 따라 했다.

- 쐐액! 쐐액!

주리안은 갑자기 마왕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해졌다. 다리를 노리는가 싶더니 심장으로 검이 날아들었고 팔을 노리는가 싶더니 목으로 공격이 다가왔다.

“읏!”

가까스로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검이 귀를 훑고 지나갔다.

따가운 느낌과 동시에 붉은 피가 어깨로 흘러 내렸다.

“그래, 꼴에 마왕이라 이거지?”

용사는 걸리적거린다는 듯 망토를 풀어 옆으로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마왕을 노려봤다. 약한 힘으로 여러번 검을 섞는 것 보다는 강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 크허어어어어엉!

“케르베로스를 쓰러트렸다. 용사 도와주마!”

결국 케르베로스는 소드 마스터와의 전투에서 패했다. 하지만 팔로스라고 몸이 멀쩡한 것은 아니어서 갑옷 곳곳이 찢어져 몸에서 피가 흐르고 호흡이 거칠었다.

“집어치워! 마왕은 혼자 상대한다!”

그에 주문을 외우고 있던 아르카디안이 눈을 뜨고 용사를 노려봤다.

“이 멍청한 녀석! 지금 공을 세우려고 할 때가 아니… 크헉!”

아르카디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배를 내려다 봤다. 배에 칼이 튀어나와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트리아가 주변에 있던 고문 도구 칼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약속의 신께 맹세하지 않았느냐? 사람을 공격하지 않기로.”

트리아는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아르카디안은 그녀의 협조를 얻기 위해 약속의 신의 계약서로 거래를 했다. 트리아는 마왕을 소환하면 안전히 풀려나는 것을 아르카디안은 그렇게 풀려난 트리아가 흑 마법을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을 말했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게 아니라 흑 마법을 다시는 쓰지 않기로 했지. 그리고 네가 날 풀어준 게 아니라 마왕님이 날 풀어줬기 때문에 계약이 발동하지 않아.”

트리아가 계약서에 쓴 조항은 마왕을 소환하면 안전한 곳에 가서 풀어달라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조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흑 마법을 사용해도 제약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

- 털썩

아르카디안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단순에 검에 찔린 상처 때문이 아니라 트리아가 검에 흑 마법으로 독을 발라놨기 때문이다.

“여, 영감!”

주리안이 서둘러 아르카디안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카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잠시 한눈을 판 그의 빈틈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크악!”

용사가 살기를 느끼고 서둘러 몸을 비틀었지만, 옆구리가 크게 베였다. 주리안은 뒤로 바닥을 구르며 거리를 벌렸다.

“용사! 이 멍청한 녀석!”

팔로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서둘러 용사와 마왕의 사이에 섰다.

용사가 다쳤고 리치가 전투에 끼어들었다지만, 아직 주리안과 팔로스가 더 유리했다. 트리아 역시 아주 간단한 흑마법 이외에는 지하실에 가득한 마법진 때문에 제대로 된 고서클 흑 마법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리치를 맞을 테니 네가 마왕을 맞아라.”

“영감을 어서 치료해야…….”

아르카디안은 주리안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훈련을 시킬 때는 누구보다 엄했지만, 주변에 용사라 밝힐 수 없어 수습 기사로 위장해서 매일 같이 훈련장 구석에서 훈련할 때 그를 계속 챙겨 준 건 아르카디안 밖에 없었다. 고향에 있는 그의 부모님에게 매일 상당한 양의 돈을 부쳐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전투에 집중해! 어서 쓰러트리고 치료해도 늦지 않아!”

아르카디안에게 다가가려던 용사가 우뚝 멈춰섰다.

‘기세가 바뀌었어?’

용사의 몸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주변 공기가 왜곡되어 일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네놈! 죽어!”

아르카디안의 검이 향한 곳이 마왕이 아닌 트리아였다. 블링크 마법도 쓸 수 없는 그녀는 용사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뒷걸음질 쳤다.

- 스걱!

용사의 검 단 한방에 머리부터 다리까지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트리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 츠츠츠츠

하지만 불멸의 리치인 트리아가 일반적인 공격에 사망할 리 없었다. 몸이 다시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 네년 리치였지. 어디 보자 라이프 베슬을 여기에 뒀던 걸로 기억하는데.”

주리안이 고문 도구를 올려놓은 선반 위를 바라봤다. 팔로스는 혹시나 마왕이 움직일까봐 그녀는 유의 주시했다. 카나로서는 트리아를 구하는 것 보다는 마법진을 해체하는 쪽을 택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뭐야. 어디 갔어? 백작! 라이프 베슬 못 봤어?”

주리안이 팔로스를 바라봤다. 그는 마왕과 대치하고 있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그 선반 위에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없다니까?”

트리아의 몸은 금세 회복되었다. 고통이 없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피를 토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우욱!”

“너 딱 기다려. 라이프 베슬을 네 눈앞에서 산산이 부숴줄 테니까.”

“킥킥!”

트리아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마법진 때문에 회복도 더뎌서 기력이 없는 그녀는 지하 감옥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웃긴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으며 웃고 있었다.

“웃어?”

트리아가 천천히 손을 들어 지하 미궁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트리아를 보고 있던 용사와 카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팔로스는 눈동자만 굴려 아까 케르베로스가 부수고 들어온 입구를 바라봤다.

“카나, 오랜만이야.”

입구에 서 있는 승원의 손에는 트리아의 라이프 베슬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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