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층 - 지구 -->
- 쌔액!
검은 인간들이 합쳐지는 것을 지켜보던 경호는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화살을 쐈다. 웬만한 대물 저격총도 그의 궁술의 파괴력에는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 쩡!
하지만 융합되는 검은 인간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생겨 그 공격을 막아냈다. 정환이나 예원 그리고 지현이나 다른 클라이머들도 한 번씩 공격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오빠! 도망치자!”
지현이 겁을 집어먹고 정환을 바라봤다.
검은 인간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환의 의견은 달랐다.
“바로 옆이 도시야! 여기서 끝내야 해!”
“검은 인간이 레벨 몇이 될지도 모르잖아. 일단 빠져서 제정비를 하는 쪽이…….”
정환은 사람이 없고 군대와 클라이머가 모여있는 지금이 상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시가지전이 된다면 건물이 부서지고 민간인의 희생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우린 빠지겠어.”
“레벨3도 상대 못 했는데 저걸 어떻게 상대해!”
주변에 있던 클라이머들이 겁을 집어먹고 산 정상 바위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작전부에서 무전이 넘어왔다.
[클라이머분들 후퇴하면 안 됩니다. 서쪽과 북쪽은 서울이고 동쪽과 남쪽은 경기도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도시로 향하게 되니 여기서 해치워야 합니다.]
“미친! 너희는 현장에 없어서 검은 인간의 상태를 느끼지 못해서 그래! 개죽음 당하는 건 사양하겠어!”
[바디캠으로 보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현재 지원요청을 한 상태이니 시간을 조금만 끌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웃기지마!”
클라이머 몇몇은 전투를 포기하고 바위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휘부에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군인들에게 알린다. 싸움을 포기하고 내려가는 클라이머를 사살하라. 다시 한번 말한다. 싸움을 포기하고 내려가는 클라이머를 사살하라.]
무전을 들은 클라이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산에서 내려가던 클라이머들은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다.
“웃기고 있네. 무슨 후퇴 한다고 사살이야. 야! 가자!”
“정지!”
중사 한 명이 산에서 내려가려는 클라이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무전 못 들었습니까? 산에서 내려가면 안 됩니다.”
“쏠 테면 쏴보던가? 참나!”
- 탕!
말이 나오기 무섭게 중사의 총구가 화염을 뿜었다.
클라이머를 직접 맞추지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서 바닥을 맞췄다.
“너, 너 이 새끼?”
“이번엔 빗맞혔지만, 다음에는 심장을 노릴 겁니다.”
“장난치냐? 이거 다 언론에 제보할 거야!”
“저걸 막지 않으면 제보할 언론사가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중사는 융합이 끝나가는지 인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검은 인간을 바라봤다.
이전에는 마네킹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검은 인간은 조금 더 이목구비가 또렷한 검은색 피부의 인간에 가까웠다.
“젠장, 시간을 끌었더니 융합이 끝났잖아.”
도망치려던 클라이머의 말에 중사는 총구를 틀어 검은 인간을 겨누었다.
클라이머들은 도망치기 늦었다는 듯 무기를 꺼내 들고 검은 인간을 바라봤다.
“야! 저거 레벨 몇 같냐?”
“5? 6? 몰라 인마!”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검은 인간은 주변을 보호하던 불투명한 보호막이 사라졌다.
검은 인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마치 새로 만들어진 육체가 신기하다는 듯 손을 돌리며 자신의 몸을 감상했다.
“아… 아…….”
또렷한 목소리.
이 전처럼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내는 목소리와 같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몸을 갖게 됐군.”
검은 인간이 또렷이 말을 하자 클라이머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웅성거렸다. 정환은 혹시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을 걸어봤다.
“대화가 가능한가?”
검은 인간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려 정환을 바라봤다.
“여기는 어디지?”
“관악산 정상이다.”
“아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어느 나라냐는 말이다.”
“대한민국.”
“한국이라…….”
클라이머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치를 살폈다.
몇몇은 대화가 통하는 현재 상황을 보며 잘하면 싸우지 않고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반면 정환은 괴물이 나라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대체 뭐지? 왜 세계 곳곳에 나타나서 인간들을 공격하는 거야?”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검은 인간이 손을 뻗자 주변에 있던 돌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 콰드드드드득!
검은 인간이 다시 한번 손짓하자 단순한 돌 모양이었던 것이 날카로운 검처럼 변해서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 촤악!
“피해!”
클라이머 중에는 정환처럼 무기를 들어 방어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방어막을 만들어 막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방어 스킬이 없어 그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맞았다.
“아아악!”
“끄아악!”
“다 같이 달려들자!”
클라이머 한 명이 다급하게 외치며 달려들자 정환 일행도 자리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인간은 단순한 염동력 뿐만 아니라 기존의 검은 인간처럼 팔을 채찍처럼 늘려 몸 곳곳에 날카로운 돌기를 만들어내 주변을 후려쳤다.
- 콰콰쾅!
그 시각 승원은 산을 오르며 군인들과 대치 중인 사냥개나 검은 인간을 빠르게 제거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저 검 한번 휘두르면 죽일 수 있는 수준이라 그들을 죽인다고 시간이 지체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참 치열한 전투 중에 승원이 스쳐 지나가며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괴물들이 죽어 나가자 군인들은 그들이 왜 죽었는지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못 할 정도였다.
‘산 정상에서 거대한 기운이.’
산 정상까지는 정상적인 속도로 2시간이 걸리는 속도였지만 승원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잎을 밟고 나무 위에서 위로 달려가자 그 속도를 반의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더 빨리!’
메스 텔레포트 반지가 있었지만, 그건 한 번 가본 곳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승원이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 츠츠츠츠츠츠!
누군가 승원의 움직임을 본다면 몸의 궤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승원은 단전에 있는 내공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산 위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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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헉…….”
정환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가 들고 있는 방패는 이미 두 쪽이 나서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경호는 멀리서 저격을 하다가 채찍에 맞아 바위산 밑으로 굴러떨어졌고 예원이나 지현도 팔과 다리를 다쳐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힐링!”
정환의 지시에 따라 전투에서 빠져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아영은 금세 검은 인간의 목표물이 됐다.
“네년을 먼저 해치워야겠구나.”
검은 인간의 팔이 다시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아영은 서둘러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그 공격을 받아냈지만, 정환도 막아내기 힘든 공격이었다. 아영은 지팡이를 든 손바닥이 찢어지며 그 고통에 지팡이를 놓쳤다.
“아악!”
“한국에 이렇게 강한 클라이머가 있을 줄이야. 서둘러 처리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예상 밖이로군.”
검은 인간은 하늘을 바라봤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어.”
검은 인간은 아영의 머리를 노리고 손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정환이 검을 양손으로 잡고 뒤에서 소리없이 달려들었다.
“어딜!”
- 퍽!
“크악!”
아영의 머리를 노리던 공격을 그대로 정환의 머리에 내리찍었다.
정환이 서둘러 검을 들어 막지 않았다면 머리가 두 쪽이 났을 강력한 일격이었다.
정환은 그 공격을 막은 충격으로 뒤로 날아가 기절해버렸다.
“오, 오빠!”
예원이 다친 다리를 잡고 엉금엉금 기어 정환에게 다가갔다.
머리에 피를 흘렸지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잠깐, 가만 보니 너희들…….”
그때였다.
검은 인간이 고개를 홱 돌려 어느 한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쐐액! 쐐액!
보이지 않는 바람 공격이었다. 검은 인간은 손을 뻗어 그 바람의 칼날을 일일이 쳐냈다. 그러자 땅 밑에서 바위가 송곳처럼 솟아나 다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 훌쩍!
점프를 해서 그 공격을 피해 5미터 뒤에 착지한 검은 인간은 날아드는 불줄기와 물로 된 화살을 이리저리 피하며 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이 공격은…….”
정환과 예원 그리고 지현과 아영이 승원의 4대 정령을 알아보고 반색했다.
정령을 넷이라 부리는 사람은 승원 이외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훙!
산 밑에서 바위산을 훌쩍 뛰어 올라와 바닥에 착지한 사람은 승원이었지만, 정환 일행에게는 최호준의 모습으로 보였다.
“늦지 않았군.”
정환은 최호준이 승원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이후에 나타날 거라 생각하고 그 뒤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타날 사람은 없었다. 승원은 정환 일행에게 전음입밀을 사용해 자신을 알렸다.
[늦어서 미안.]
“승원이야?”
지현이 놀라서 소리치자 승원은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모르는 척해줘. 사정이 있어서 위장한 거니까.]
검은 인간은 손을 휘둘러 맞춰 정령들을 역소환 시켰다.
중급 물의 정령인 운디네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공격을 피해 재차 반격을 시도했다.
‘운디네 수고했어. 들어가.’
어차피 정령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대였기에 승원은 스스로 운디네를 역 소환시켰다.
“모습은 위장했어도 네가 누군지 알겠구나.”
검은 인간의 또렷한 목소리를 처음들은 승원은 놀랍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음, 나를 알아?”
“모를 리가 있나. 네놈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검은 인간의 두 손이 승원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승원은 좌우로 뛰어서 그 공격을 피해 거리를 좁히고 들어갔다.
‘천마신무격(天魔迅武擊)!’
승원이 아슈켈론에 마력을 불어넣자 눈부신 빛이 쏟아지며 검기가 검보다 3배나 길어졌다. 모든 것을 잘라버릴 것 같은 흉폭한 기운에 검은 인간이 놀라서 팔을 들어 막았다.
- 서걱!
경호의 마력 화살도 정환의 검기도 통하지 않았던 검은 인간의 팔이 손쉽게 잘려나갔다.
“큭!”
검은 인간은 재빨리 발끝을 송곳처럼 변형시켜 승원의 심장을 노리고 앞으로 차올렸다. 하지만 승원은 그 공격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 쩡!
그 공격은 신의 구슬이 나타나 막아냈다.
“하앗!”
방어는 신의 구슬에게 맞기고 승원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검은 인간의 허벅지 부근에 있던 핵을 베어 버렸다.
“큭!”
설마하니 심장을 노리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며 공격에 나설 줄 몰랐던 검은 인간은 싱겁다고 할 정도로 쉽게 핵이 잘려 버렸다.
“큭큭! 나는 핵이 잘린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알아. 넌 핵이 2개니까.”
이미 승원의 손에는 다른 핵이 들려져 있었다.
검은 인간은 놀란 기색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 봤다.
“아쉽구나. 하지만 신기급 아이템 중 하나가 너한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한 성과였다.”
승원은 손에 들린 두 번째 핵을 터트리기 전에 조금 더 정보를 캐낼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너 클라이머 구나. 그렇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
승원이 말없이 핵을 부쉈다.
회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정보였기에 그걸 아는 척하면 자기 스스로 회귀자라는 걸 밝히는 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보자고.”
- 파스스스
검은 인간의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지기로 이때 승원이 죽인 검은 인간은 레벨6으로 세계에서 발견된 검은 인간 중 최고 수준의 레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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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원이 최호준의 모습으로 레벨6 검은 인간을 제거한 영상은 곧바로 세계 뉴스의 첫 번째를 장식했다. 이로 인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등 강대국들이 모두 한국을 집중했다.
클라이머 세계에서도 최호준이 대체 누구냐는 이야기로 떠들썩 했는데 인증을 거쳐야만 가입이 가능한 클라이머 사이트에서는 게시판이 연신 그의 이야기로 도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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