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층 - 지구 -->
관악산 깊은 산 속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정환 일행은 레벨2 검은 인간과 맞닥뜨렸다. 검은 인간은 병력 들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막으려는 듯 길 정 중앙을 가로막고 팔을 늘려 공격해왔다.
- 쌔액!
팔 끝을 칼날처럼 변형시켜 십여미터를 늘려 공격해 들어오는 것은 마치 채찍과도 같아서 그 주변에 있는 두꺼운 나무들이 종이처럼 베어져 넘어갔다.
- 쿠쿠쿠쿠!
가장 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정환은 그 움직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쳐다보다가 방패를 들어 막았다.
- 쩡! 쩡!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정환은 팔이 저릴 정도였다.
“경호야!”
“네! 다 됐어요!”
관악산에서 사냥개나 검은 인간을 죽이는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건 경호였다. 마나를 머금은 화살을 쏘는 족족 한 방에 핵을 맞췄기 때문이다.
“쏩니다!”
- 쌔액!
- 퍽!
[아아…….]
핵을 맞춘 검은 인간의 몸이 재처럼 변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경호는 다가가서 마정석을 주우면서 다가오는 정환을 바라봤다.
“형 방금 들었어요?”
“뭐를?”
“방금 검은 인간이 소리를 냈던 거 같은데.”
“난 못 들었는데. 잘 못 들은 거 아니야?”
경호는 분명 검은 인간이 죽어가면서 냈던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들었는데…….”
경호는 승원이 사라진 이후 리더가 된 정환에게 방금 잡은 검은 인간의 마정석을 건넸다. 그러자 멀찍이서 그걸 지켜보던 클라이머 한 명이 다가왔다.
“원더풀! 훌륭합니다!”
뱁새같이 눈이 찢어진 깡 마른 남자 하나가 다가오며 박수를 쳤다.
그에 정환 일행이 모두 불편한 기색으로 바라봤다.
딱 봐도 클라이머로 무슨 의도로 접근하는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레벨2 검은 인간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클라이머는 우리나라에 채 100명이 안 될 겁니다. 그런 분들이 정부소속 공무원으로 있다니요. 우리 길드에 들어오신다면 저 3팀장 하정일의 추천으로 간부 월급 2천부터 시작할 수 있답니다.”
현재 관악산에는 정부 소속 클라이머 뿐만 아니라 일반 길드 소속 클라이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을 노리고 오는 것도 있었지만, 쓸만한 클라이머를 영입하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리더가 부재중이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그 리더 분이라는 분은 어디 가셨죠? 그분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정환은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명함을 주시면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
하정일은 정환 일행이 내로라하는 길드들의 제안도 거절했기 때문에 중형 길드인 자신 길드에 들어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구라 까네. 지가 리더면서.’
하정일은 웃는 낯으로 정환 일행과 헤어진 이후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야! 강태식.”
“네.”
“너 최면술 그거 한 번 써보자.”
“네? 일반인도 아니고 클라이머한테 쓰다가 잘 못 걸리면…….”
최면술 스킬을 가지고 있는 강태식은 그 스킬 덕분에 금목 길드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정확히는 하정일이 그를 발견하고 데리고 온 것이다.
“전투 스킬도 변변찮은 네가 지금 월 천만원 받으면서 우리 길드에 들어온 거 다 내 덕분인 거 알지. 할 거야 말 거야?”
“……하겠습니다.”
강태식은 하정일과 지구로 돌아온 이후 최면술 스킬로 홍대 클럽에 가서 여자를 꼬셔 원나잇을 즐기는 데 톡톡히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이 정신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클라이머 중에는 정신력이 강한 이들이 있어 최면술 스킬을 클라이머에게 쓰는 것은 지금껏 꺼려왔던 것이다.
“약물은 어떻게 먹일 생각이십니까?”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최면술 스킬은 그냥 다가가서 쓴다고 통하는 게 아니었다.
술에 취하거나 수면제를 먹어 정신이 비몽사몽할 때 써야 스킬이 먹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저것들을 내 밑에만 둘 수 있다면.’
하정일은 정환의 옆에 있는 예원과 지현 그리고 아영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
정환 일행이 관악산 정상 부근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클라이머들과 군인들이 다수의 검은 인간과 사냥개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산 정상은 나무와 흙이 없고 바위가 크게 기울어져 있어 전투를 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막아! 막으라고!”
“으아악!”
레벨2 검은 인간과 레벨3 검은 인간은 그저 레벨 하나 차이일 뿐인데 그 강력함의 차이는 크나 컸다. 레벨3 검은 인간을 잡고 명성을 올리려는 성격 급한 클라이머들이 서둘러 다가갔다가 검 한번 섞어보지 못하고 목이 잘려 죽은 숫자가 두 자리에 달했다.
“클라이머분들 레벨3 검은 인간을 잡는 동안 우리들은 레벨2 이하 괴물들을 잡는다!”
군인들은 자신들의 화력을 생각해서 레벨3 검은 인간이 다른 검은 인간과 융합하는 것을 막는데, 온 힘을 집중했다. 반면 레벨3 검은 인간을 막아야 하는 클라이머들은 이미 난다긴다하는 클라이머들을 모두 쉽사리 죽은 녀석에게 접근하는 것을 꺼렸다.
“이봐! 에고 길드 너희가 어떻게 좀 해봐!”
“뭐라는 거야? 언제는 우리보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양보하라더니!”
“젠장! 레벨3가 저렇게 강할 줄 알았나!”
산 정상은 비좁았다.
주변에 잡을 나무도 없고 공격을 피하기 위한 장애물도 없었다.
그곳에 정환 일행이 어렵지 않게 올라오자 대기하고 있던 클라이머들이 그들을 바라봤다.
“당신들은?”
“지원하러 왔습니다. 정부소속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오정환이라면?”
길드 소속 클라이머들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봤다.
보통 어중이 떠중이들이 들어가는 정부소속에 제법 실력자가 들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정환의 이름이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자네가 제법 강하다고 해도 자만하지 말게. 저 녀석 강해. 우리 길드 넘버 원부터 쓰리까지 한순간에 갈려 나갔으니까.”
“……알겠습니다.”
정환도 바짝 긴장하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
무공을 배워 누구보다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정환에게 있어 레벨3 검은 인간의 강력한 기운이 뼈 속 깊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단 내가 시선을 집중시키는 동안 경호 네가 뒤로 돌아가서 약점을 노려볼래? 그게 안 통하면 나하고 예원이랑 지현이가 달려갈게.”
“네, 알겠어요.”
경호가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야에서 벗어나 뒤로 돌아가려는 계획이다.
정환은 가만히 멈춰 있는 검은 인간을 보며 근처에 있던 다른 클라이머에게 물었다.
“녀석은 왜 가만히 있죠?”
“모르겠어요. 공격하지 않으면 반격하지 않습니다. 범위 안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어요.”
“혹시 다른 검은 인간들을 기다리는 걸까요?”
“그럴 지도요.”
정환은 예원과 지현에게 눈짓하고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다른 클라이머들이 숨을 숙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경호가 자리 잡았군.’
뒤로 돌아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경호를 발견한 정환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 쌔액!
준비를 마친 경호가 마력을 머금은 화살을 쏘았다.
지금까지 레벨2 검은 인간도 백발백중 핵을 맞춰 한 방에 죽인 공격이었다.
- 쩡!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날아드는 화살의 기운을 느낀 검은 인간이 서둘러 왼손을 뻗었지만, 화살은 그 손까지 관통하며 핵을 노리고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안돼…….]
순간 검은 인간의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몸 안에 손을 집어넣어 핵을 이동시킨 것이다.
“어?”
경호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피하는 검은 인간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이다.
“지, 지금 검은 인간이 말하지 않았어?”
“어, 안된다고…….”
클라이머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검은 인간을 바라봤다.
핵을 파괴당하지 않은 검은 인간은 곧바로 날아간 왼손을 수복했다.
“경호야! 피해!”
살기를 느낀 정환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 인간의 오른손이 칼날로 변해 30미터는 떨어진 옆 바위에 올라서 있는 경호에게 날아들었다.
“우, 우앗!”
경호가 놀라서 서둘러 몸을 굴렸다.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한 경호는 일단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위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가자!”
정환은 검은 인간이 등을 돌린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달려나갔다.
그 왼쪽에는 지현과 오른쪽에는 예원이 따라붙었다.
“오빠! 느낌이 좋지 않아! 우리도 빠지는 쪽이…….”
“저대로 뒀다가 다른 검은 인간과 합쳐지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지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귀에 끼고 있는 무전기에서는 군인들이 검은 인간들이 정상으로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아아아아앗!”
순간 정환이 들고 있는 방패에서 빛이 났다.
그대로 부딪치면 바위도 산산조각이 나는 강력한 공격을 머금은 쉴드 어택이었다.
[느껴진다…….]
‘정말 말을 했어?’
이번에는 더 또렷이 들렸다.
정환이 크게 놀랐지만, 이미 공격은 들어갔다.
검은 인간은 의외로 접근을 허용하고 공격을 받아들였다.
- 쾅!
[느껴진다!]
검은 인간이 두 손을 뻗어 정환의 방패를 막아섰다.
두 힘의 충격에 산 정상 부근에 충격파가 터지며 주변에 서 있던 클라이머들이 비틀거렸다.
‘큭! 오우거의 완력 스킬을 썼는데도!’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몸이 터져나가는 게 정상이건만, 검은 인간은 멀쩡하게 방패를 잡고 버텼다.
“오빠! 물러나!”
예원과 지현이 검은 인간의 사각지대 양옆에서 나타나 그의 몸 안에 있는 핵을 노렸다.
[……조금만 더.]
검은 인간은 방어하거나 뒤로 피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대로 정환의 방패를 내리누르며 위로 뛰어올랐다.
- 쿵!
“어어?”
검은 인간은 정환, 예원, 지현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 클라이머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착지했다. 그 바람에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클라이머들이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우아악!”
“도, 도망쳐!”
“멍청이들! 도망치지 말고 싸워야지!”
비명을 지르는 자. 도망치려는 자. 싸우려는 자가 한데 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정환은 서둘러 몸을 돌려 다시 검은 인간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오빠! 위!”
지현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정환이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위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두두두두두두두!
“뭐, 뭐야? 추락하는 거야?”
추락한다고 보기에는 마치 정상이 목표인 양 빠르게 하늘을 날며 내려오고 있었다. 단지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
정환은 하늘을 보며 몸이 굳은 예원과 지현을 잡아끌었다.
그런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지현은 헬리콥터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헬리콥터 좌석에 앉아있는 조종사의 표정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치기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 콰쾅!
헬리콥터가 검은 인간에게로 추락했다.
누군가 본다면 검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헬리콥터가 자살 공격을 시도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헬리콥터는 군용도 경찰용도 아닌 일반 헬리콥터였고 갑작스런 추락에 몸이 굳어 사고에 휩쓸린 클라이머들도 몇몇 있었다.
- 쿠쿠쿠쿠쿠쿠쿠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눈치 빠르게 뒤로 달려 헬리콥터의 폭발 범위에서 벗어난 클라이머 하나가 불에 타고 있는 검은 인간과 그 옆에 추락한 헬리콥터 잔해를 바라봤다.
- 쿵! 쿵! 쿵!
“어?”
추락해서 찌그러지고 불에 타고 있던 헬리콥터 문을 여러 차례 두드리더니 결국 문을 부수고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거, 검은 인간?”
헬리콥터에서는 온몸에 불이 붙은 검은 인간들이 쏟아져 나와 레벨3 검은 인간과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클라이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검은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이 피부에 느껴져 따갑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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