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75화 (175/197)

<-- 21층 - 지구 -->

가족들은 금은보화에 탐욕스런 시선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승원이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소고기나 먹으러 가죠.”

승원은 아공간 주머니를 쓸어 담으며 가족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가족들의 시선이 모두 한군데로 쏠려 있었다.

“다들 어디를 그렇게 쳐다봐요?”

승원이 가족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게르엔이 당황한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원. 여기 어디야?”

“어? 네가 어떻게 여길?”

크게 놀란 승원은 게르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에는 생명체는 들어갈 수 없지만, 흑마법사 리치는 이미 죽은 목숨을 라이프 베슬에 넣어놓은 이미 죽은 존재. 즉, 무생물이다. 승원이 금은보화를 꺼내다가 라이프 베슬까지 같이 꺼낸 것이다.

“라이프 베슬이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는 만큼 너도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네.”

“그럼 여긴 다음 층이야?”

“그래.”

승원은 설명을 바란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이 탑으로 소환되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긴 했지만, 자세한 사건은 모두 생략하고 굵직한 일들만 설명했기 때문에 게르엔에 대한 부분은 전혀 알지 못 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승원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

- 우걱우걱

“우앙! 맛있어어어어어어어!”

게르엔이 꽃등심을 기름장에 찍어 먹으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촌스럽게 한 입 먹을 때마다 소리를 질러서 식당의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게르엔. 좀 조용히 먹어.”

“얘는 왜 그러니. 동료라며?”

승원이 게르엔을 타박하자 어머니가 승원을 나무랐다.

그에 게르엔은 승원이 어머니에게 꼼짝 못 한다는 것을 알고는 어머니 옆에 찰싹 붙어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님! 여기 고기 좀 드셔보세요.”

“아유. 아가씨. 고마워요.”

결국 게르엔은 탑을 오르며 알게 된 동료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

한우 고기 집에 가서 꽃등심 10인분을 시킨 승원은 24만원이라는 계산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꾸기는 효율이 좋지 않고.’

그렇다고 마법 물품을 팔 수도 없으니 결국 팔아서 돈을 얻을 수 있는 건 보석과 금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그냥 보석상에 가져가서 팔 수도 없는 노릇인데.’

승원은 탑에 가기 전에 나름 사회생활을 해봐서 금은보화를 현대 사회에서 판매할 때 어떤 순서를 밟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작은 금반지를 팔아도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 골드바 같은 큰 금이나 보석을 팔 때 보증서가 없으면 복잡한 절차와 함께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너무 많이 팔았다가는 금강원이나 국세청이나 신원조사를 하기 위해 찾아올 확률이 높았다.

‘기억이 없을 때 병원에서 이름을 말한 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데.’

기자가 냄새를 맡고 찾아왔을 정도로 승원이 자동차를 몰고 북한산에 나타난 건 확실히 눈에 띄는 행보였다.

‘중요한 건 금은보화를 팔 활로를 뚫어야 해.’

다음 층으로 가기까지 20여 일이 남았다.

그 시간 안에 최소 10억 정도의 현찰을 마련하여 부모님께 드리고 가고 싶었다.

“자! 아들 한잔 받아라.”

“네, 아버지.”

승원은 아버지가 따라주는 소주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 바로 아버지께 술을 따라 드렸다. 승원은 그 술을 고개를 돌려 마셨다.

“아들 근심이 많아 보이는구나. 무슨 걱정이 있는 거니?”

“아뇨. 이렇게 가족을 만나게 된 게 꿈만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승원은 가족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그만뒀다.

오늘 밤은 가족과 회포를 푸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고기 익었네요. 어서들 드세요.”

승원은 고기를 굽는데 집중했다.

**

한우에 쏘주를 배불리 먹고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술을 마셔서 택시를 탄 것도 있지만,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승원을 찾는데 돈을 쓴다고 가지고 있던 중형차도 팔았고 동생 지혜는 대학도 졸업을 못하고 휴학을 한 상태였다.

빌라는 투룸이나 한 방은 부모님이 들어가셨고 다른 한방에는 승원과 지혜가 누웠다. 다 큰 오빠와 한방에서 자는 게 불편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연신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돌아와서 참 좋아.”

“나도 부모님과 너를 다시 보다니 너무 좋아.”

“근데 게르엔이라는 그 아이는 어디 간 거야?”

“아, 걔는 집에 갔지.”

택시에서 내리며 정신이 없을 때 승원은 라이프 베슬을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좁은 빌라에서 게르엔까지 재우려면 공간이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오빠 나 사실 고백할 게 있다.”

“뭔데?”

지혜도 술을 한잔했기 때문에 불이 밝게 상기되어있었다.

“오빠가 나타났을 때 오빠가 다시 돌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지만, 이제 부모님이 매일 한숨 쉬는 것을 안 봐도 되고. 찾을 수 있을지 불확실해서 주변에서 다 그만 잊으라고 하는 말에 나도 동조해서 인제 그만 오빠를 잊자는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 말을 내가 입 밖에 직접 내뱉지 않아서 다행이야.”

지혜는 속에 쌓아둔 말이 많은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오빠가 사라지고 슬펐던 건 처음 석 달이었고 그 이후에는 부모님의 은행 잔고가 바닥나서 차도 팔고 집도 팔고 학비가 낼 돈이 없어 휴학해야 했을 때 참 힘들었어. 오빠도 알잖아. 우리 부모님 식당 나름 잘 되서 오빠나 나나 아르바이트 한번 안 했던 거.”

“그랬지. 나도 아르바이트했던 게 집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군대 갔다 와서 부모님께 손 한번 안 벌리고 복학 전에 한 학기 등록금 벌어보려는 거였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부모님께 돈 받아가며 다닐 생각이었으니까.”

부모님이 여유자금이 꽤 됐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1년 만에 그 돈이 다 사라졌나 했더니 술 마실 때 이야기를 들어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전국에 있는 사람 찾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 돈을 아끼지 않고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이 다 떨어지자 직접 전단지를 들고 전국을 누빈 것이다.

“나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오빠를 조금 원망했었어. 나 참 나쁜 동생이지?”

지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승원은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

미국에서는 여러 조건을 내걸고 클라이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 조건이란 탑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자신이 가진 스킬과 아이템을 모두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본국으로 가서도 정부에 신원을 공개하고 철저히 관리 대상이 된다는 조건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네?”

국정원 안보수사 팀장 이소은은 아틀란티스에 도착해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는 클라이머들을 바라봤다.

“팀장님. 듣기로는 미국에서 순순히 보내주는 거 같지만, 뒤로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면 미국 시민권을 줄 테니 미국으로 오라고 물밑 작업을 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 정도야 예상했던 범위잖아?”

“문제는 그 보상금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클라이머들의 능력에 등급을 매겨서 이민을 신청할 경우 그 포상금이 정해집니다. C급만 되도 20억을 준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서둘러 손을 쓰지 않으면 많은 클라이머들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예산이 바로바로 집행된다는 게 놀랍네. 우리나라는 그런 돈 마련하려면 세월아 네월아 몇 달은 걸릴 텐데.”

이소은은 손에 들린 클라이머 명단을 내려다 봤다.

이상하게도 한국은 중국, 미국, 러시아, 인도 보다 적은 면적의 나라에 인구도 훨씬 적었는데 클라이머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상당히 견제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틀란티스에는 검은 구가 없네?”

“그러게요. 그 검은 구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까 상당히 소름끼치더라고요. 뭐가 튀어나와도 나올 거 같은데. 잠잠하니까 더 불안해요.”

검은 구는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도시에는 꼭 나타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그 구는 연구원들이 다가가 물질 조사를 해봤지만, 그 어떤 과학 장비로도 그 구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으며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아! 비행기가 출발하려나 봅니다. 어서 우리도 타시죠.”

“그래, 가자.”

이소은은 아틀란티스의 활주로에 가득 차 있는 비행기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전 세계의 비행기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들어보면 아틀란티스에는 본래 비행기가 없었다는데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준비되어 있는 활주로라니…….’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에 앉은 이소은은 비행 공포증을 완화 시키기 위해 품에서 신경 안정제를 먹고 눈을 감았다.

**

사건이 일어난 것은 탑으로의 소환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 일어났다.

검은 구는 대도시에서 중소도시에도 나타나기 시작해서 웬만한 소도시에도 모두 나타났다고 봤을 때 그 구에게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클라이머에 관한 소식으로만 연신 도배를 하다가 괴물의 등장에 모든 뉴스가 괴물의 출현에 주목을 했다.

검은 사냥개 혹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들은 주변의 인간은 물론 자동차나 건물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에 골치 덩어리로 전락하려던 클라이머가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 뉴스 봤어?”

“어, 봤어.”

여의도에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20평대 아파트를 구입한 승원은 그 집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최고급 소파, 티브이, 침대,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식탁, 책상, 책장 등을 밀어 넣었다.

관리비만 한 달에 100만원이 나가는 이 건물은 승원이 어둠의 루트로 보석을 팔 수 있는 보석상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이라니. 여기는 괜찮을까?”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검은 사냥개는 다행히 군대의 중화기로 상대할 수 있었다.

네 발 짐승으로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서 총으로 맞추기 어려웠지만, 열 발 이상 맞으면 확실히 사망했다. 문제는 검은 인간이었다.

사람의 형체만 했을 뿐 그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없는 괴물은 검은 인간으로 불렸는데 군대의 화기가 통하지 않았다. 클라이머의 공격에만 반응을 보였는데 그 때문에 살인, 강간, 방화를 일삼는 소수의 클라이머 때문에 전체 클라이머가 욕을 먹던 것이 쏙 들어갔다.

“오빠는 정부 기관에 등록되지 않아 다행이야. 아틀란티스에서 온 클라이머들은 모두 강제 징집되서 현장에 투입된데.”

“글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클라이머 숫자는 많았지만, 검은 구에서 출현한 괴물의 숫자는 더 많았다.

단독으로 출현한 괴물은 LV.1 사냥개 LV.1 검은 인간이라고 불렀는데 문제는 같은 괴물끼리 만나면 한 쪽이 흡수를 해서 힘과 스피드가 강해 진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는 LV.2 사냥개와 LV.2 검은 인간이라고 부르며 특별 취급을 했다.

“지혜 너랑 부모님은 사건이 일단 진정 될 때까지 외출하지 말고 있어. 뭐 살 거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알겠지?”

“오빠 어디 가려는 거야?”

“아무래도 동료들이 걱정이 돼.”

정환, 예원, 지현, 아영, 경호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있을 터였다.

서둘러 그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간 만남을 피해왔던 이유는 정부와 언론기관의 과도한 집중 때문이었다. 운 좋게 아틀란티스가 아닌 한국에서 깨어난 승원은 몇 안 되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는 클라이머였기 때문이다.

승원은 이미 티브이를 통해 동료들의 얼굴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정환은 몸짱 클라이머라며 티브이에 몇 번 나왔고 지현, 예원, 아영 같은 경우는 미녀 클라이머로 방송에서 종종 언급되곤 했다.

‘최소한 언론 집중만 좀 사그라들면 연락하려고 했더니.’

통화, 이메일, 메신져 모두 도청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어?’

창밖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승원과 지혜는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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