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74화 (174/197)

<-- 21층 - 지구 -->

북한산 정상 인근에 위치한 자동차 추락사건 현장에 도착한 승원은 반파 된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정도 충격을 받았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자동차가 질주하던 속도 그대로 낭떠러지에 때려 박았으니.’

승원은 차량에 다가가 내부를 훑어봤다.

차가 거의 반으로 찌그러져 있었는데 구조대원들이 자신을 빼낸다고 강제로 문을 뜯어낸 흔적이 있었다. 보조석에는 제임스의 피로 보이는 혈흔이 남아 있었다.

‘아아…….’

승원은 사고를 당할 때를 떠올리며 뒤죽박죽되었던 기억이 정리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실프. 제임스를 계속 찾아봐.’

기억을 모두 되찾은 승원은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그 전에 그는 뒤에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경미를 바라봤다.

“당신 클라이머죠?”

인간이면 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속도를 체험한 경미는 승원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승원은 손을 내밀었다.

경미는 그 손을 바라보며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봤다.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

“……네.”

서둘러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낸 경미는 승원에게 건넸다.

그것을 소중히 받아든 승원은 물끄러미 명함을 바라봤다.

“경미 씨. 기억을 되찾게 도와준 이 은혜 잊지 않고 갚을게요. 먼저 연락드릴게요.”

“네? 잠깐만요!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품 안에서 녹음기를 꺼낸다고 고개를 숙였던 경미는 바람이 세차게 불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승원이 서 있던 곳은 낙엽만이 남아 있을 뿐 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승원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니 그는 이미 저 멀리 나무를 밟고 하늘을 훌훌 날 듯 산을 내려가고 바라봤다.

“허…….”

경미가 놀랍다는 듯 저 멀리 점처럼 작아진 승원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따르르르릉!

경미는 핸드폰을 꺼내봤다. 부장이었다.

“부장님…….”

“야! 너 어디야?”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저 지금 취재 나와 있어요.”

“너 벌써 원형 구 사건 현장에 나가 있어?”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원형 구라뇨?”

경미는 통화를 스피커 폰으로 바꾸고 서둘러 실시간 인터넷 뉴스를 찾아봤다.

거기에는 중앙 방송국에서 한 기자가 생중계를 나가 있었다.

[세계 곳곳에 커다란 원형 구가 올림픽 공원에도 나타났습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는 막대기로 찔러봐도 아무런 저항 없이 안으로 들어가지는데요. 시민들은 도심에 나타난 이 구 때문에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는 아틀란티스의 출현과 연관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

“저도 현장에 갑니다!”

경미는 서둘러 핸드폰을 끄고 산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승원은 북한산 밑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경기도 용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택시 요금이야 상점 창에서 현금을 100대 1의 비율로 살 수 있었다.

이 현금이 위조지폐인지 아니면 정말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정식 지폐인지 알 수 없는 건 둘째치고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200만 포인트가 20억이라는 건데, 200만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생각해 보면 포인트로 현금을 사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급히 갈 곳이 있으니 일단 사둔 것이다.

‘병원에서 달력을 확인하기로 1년이 지나 있었어.’

승원은 처음 탑에 소환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끌려갔으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탑에 있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이 달라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세월이 덜 흘러갔다는 것이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네.”

북한산에서 용인까지 택시를 타고 오자 택시비가 4만 6천원이 나왔지만, 미리 상점 창에서 포인트로 10만원을 구매해놨기 때문에 택시비를 내고 5만 4천원을 거슬러 받았다.

- 탁

택시 문을 닫고 내린 승원은 부모님과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올려다 봤다.

20층짜리 아파트에서 9층에 살고 있던 승원의 집은 밑에서 올려다 보니 커튼이 쳐져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보면 얼마나 놀랄까.’

승원은 지금 이 순간은 헤어진 동료들을 잊고 가족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매만졌다.

‘후우…….’

9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섰다.

승원은 심호흡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 딩동!

초인종 소리가 집안 내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승원은 기감을 확대했다.

집 안에는 나이든 여자 한 명과 강아지로 느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그사이에 외로우셔서 강아지를 한 마리 들이 셨나?’

집 안에 있던 사람은 신발장으로 걸어 나와 문을 열었다.

“어? 누구시죠?”

문을 연 것은 모르는 아줌마였다.

“어?”

승원은 뒷걸음질 치고 문에 적혀 있는 호수를 바라봤다.

901호로 자신의 집이 맞았다.

“여기 106동 901호 아닌가요?”

“맞는데, 누구시죠?”

“여기 황은자 댁 아닌가요?”

“아니요. 그런 사람 없는데…….”

“아주머니 언제부터 여기 사셨어요?”

“6개월 정도 됐죠.”

“그럼 그 전에 살던 사람은요?”

“이 집 아들이 실종 되서 그 아들 찾는다고 두 분이 식당도 그만두고 전단지며 흥신소며 돈 쓰다가 부족해서 집 팔아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계속 찾는다고 알고 있어요.”

아주머니의 말에 승원이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떨리는 손을 감추려는 듯 승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혹시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나요?”

“아, 네. 혹시나 이 집 아들이 찾아오거든 주소를 알려주라고 쪽지를 하나 남겨놨는데. 혹시?”

아주머니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승원을 바라봤다.

승원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제가 그 아들 정승원입니다. 주소가 적힌 쪽지를 제게 주시겠어요?”

“아?”

아주머니가 놀라서 승원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자 승원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아, 그래요. 내 정신 좀 봐.”

쪽지는 다행히 신발장 안에 보관하고 있어서 바로 받을 수 있었다.

사정이 궁금했는지 계속 물어보려고 하는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며 서둘러 인사를 마친 승원은 아파트를 뛰쳐 나왔다.

‘걱정하시고 계실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생업도 제쳐두고 나를 찾아 나설 줄은…….’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던 부모님이 그 일도 접고 전국을 누비며 자신을 찾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둔전리로 이사 가셨구나.’

다행히 집은 같은 경기도 용인이었고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빌라에 위치해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자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던 승원은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층 빌라 건물에 꼭대기 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어?’

승원은 어머니가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5층까지 매일 오르고 내릴지 걱정했다. 어머니가 평상시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혜?”

승원은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지친 얼굴로 계단을 올라가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여동생 지혜가 서 있었다.

“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지혜가 고개를 들어 승원을 바라봤다.

“오, 오빠?”

지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승원을 바라봤다.

1년 전에 오빠가 실종되고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전단지를 붙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밤낮 없이 오빠를 찾아 나섰었다.

항간에는 실종자들이 조직폭력배들에게 납치되서 장기만 빼고 바다에 버려진다는 소문도 돌아서 부모님과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었다.

“오빠… 정말 오빠야?”

지혜가 떨리는 손으로 승원의 볼을 매만졌다.

승원은 손을 들어 동생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줬다.

“다녀왔어. 늦어서 미안해.”

“……진짜 돌아왔구나.”

지혜가 무너지듯 주저앉자 승원이 무릎을 꿇고 그녀는 보듬어줬다.

한참을 울던 동생은 10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승원은 끈기 있게 그녀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줬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집에 계셔?”

“어머니는 어제까지 전단지 돌리다가 더위 먹으셔서 집에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시내에 나가서 전단지 돌리다가 지금 점심 식사하러 집에 와 계셔. 어서가자!”

“……그래.”

승원이 원해서 탑에 간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단 한 순간도 정체되어 있어 본 적이 없었지만, 부모님이 이토록 애타게 자신을 찾고 있는 줄 알았다면 더 빨리 돌려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승원은 무거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 삐비비빅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자 잠금장치가 열렸다.

지혜가 먼저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엄마! 아빠! 어서 나와봐!”

“지혜 너 또 몰래 아르바이트 갔다 왔지? 너 안 그래도 된다고 이 엄마가…….”

몸을 추스르고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거실로 나왔다가 지혜와 승원을 보고 우뚝 멈춰섰다.

“아아…….”

반갑게 맞아주거나 울면서 다가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승원을 보자마자 눈에 흰자를 드러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식탁 안쪽 의자에 있던 아버지나 신발장에 있던 지혜가 놀라 눈이 커지는 동안 승원은 안으로 박차고 들어가 쓰러지는 어머니를 붙잡았다.

“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3미터가 넘는 거리를 좁혀가서 어머니를 안아 든 것이다.

그 때문에 아들이 나타났음에도 아버지는 놀라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든 그대로 굳어서 승원을 바라봤다.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

“……그렇게 해서 돌아온 겁니다.”

두 시간 동안 승원은 쉬지 않고 이야기해서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두 시간이 아니라 이틀을 허비해야 설명이 되는 그 긴 시간은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위험한 부분은 빼고 시스템적인 부분만 설명을 했다.

거실에서 이야기 하는 동안 어머니는 누워서 승원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들었고 아버지와 지혜는 소파에 앉아 진득하게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구나.”

아버지의 첫 마디였다.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냥 단독으로 지구로 돌아왔다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미친놈 취급을 당하고 정신병원으로 직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와 이능력을 가진 클라이머 관한 뉴스가 매일 뉴스 메인을 장식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전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생했구나.”

아버지가 승원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과묵하신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대견하다는 듯 바라봤다.

반대로 지혜는 궁금한 것이 무척 많은 모양이었다.

“근데 오빠는 왜 아틀란티스가 아니라 한국에서 바로 나타난 거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시공간이 융합될 때 그 경계선에 서 있던 게 문제가 아닐까 싶어.”

승원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실신했을 때 맥을 짚어 봤는데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아주 조금의 마력을 불어넣어 원기를 회복시켜줬다.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의 혈색이 좋아 보였다.

“근데 오빠 정말 믿겨지지 않아서 그런데. 그 능력이란 거 볼 수 있어?”

승원은 손을 뻗어 도구창을 열고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허공에서 갑자기 주머니가 나타나자 지혜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도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사라진 저를 찾는다고 가족들의 희생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승원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금은보화 수백kg을 끄집어냈다.

좁은 빌라의 거실은 반짝이는 보석과 금으로 금세 가득 차서 더 이상 꺼낼 수도 없었다.

“이건 아주 일부분이에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승원이 많이 야윈 가족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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