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층의 회귀자-171화 (171/197)

<-- 21층 - 지구 -->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태어났다.

그 지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간은 겨우 300만 년 전에 나타났을 뿐이다. 거기서도 다른 동물들과 차이를 둘 수 있는 불의 사용은 160만 년 전. 언어의 사용은 40만 년 전. 문자의 사용은 기원전 3,300년 일 뿐이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루게 해주었고, 인간은 우주로 나가 달에까지 착륙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티브이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지금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작전과 팀장 이소은 평상시 무표정한 표정을 고수하던 것과 달리 무척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CNN에서 알려드립니다. 대서양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섬에는 현 인류와 비슷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들과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십여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사람들이 그곳에서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이며 왜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대서양에 정체불명의 도시와 함께 나타난 것일까요?]

뉴스 안에 나오는 기자는 헬리콥터를 타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특종을 방송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섬 주변에 깔린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방송을 하고 있는지 밑에 있는 군함에서는 돌아가라고 경고 방송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통칭 아틀란티스라 불리는 미지의 섬은 실종자들이 도시를 구축. 믿을만한 정보원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대부분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꺄악!]

방송국 헬리콥터 근처로 아파치 헬기가 다가와서 경고 사격을 하자 깜짝 놀란 기자가 몸을 움츠렸다.

[지, 지금 미국과 영국은 항공모함을 포함 군함 40여 척으로 섬 주변을 통제하고 언론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이거 영화야?”

이소은이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확인했다.

티브이 화면에는 뉴스 채널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누가 이런 질 나쁜 장난을…….”

이소은이 주변을 둘러봤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부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억지로 웃음을 참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직장 특성상 이런 장난을 쳤다가는 중징계를 받을 텐데 그런 배포 있는 이도 없었다.

“대체…….”

국정원 안보 수사과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경찰을 아울러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는 부서였다. 80명의 사람이 같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다들 하나 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 따르르릉!

그때 사무실 전화기 중 하나가 울리기 시작했다.

- 따르르르릉!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릉!

전화기가 하나둘씩 울리기 시작하더니 사무실에 있는 전화 대부분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소은은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자신의 전화기를 보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팀장 이소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필승 통신보안 국방부 정보과 대위 김안호입니다. 혹시 이 팀장님 지금 티브이 보십니까?”

“미국 뉴스를 말하는 거라면 보고 있습니다만.”

“과장님이 본부에 연락해서 뉴스가 사실인지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본부에 있는 이소은이라고 해서 특별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 역시 방금 뉴스를 보고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일단 대기하시고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다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 보니 청와대였다. 같은 내용을 묻는 전화였다.

“저희도 아직 아는 바가 없습니다. 미 대사관에 연락을… 아니 지금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 예정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무언가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소은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요즘 정치권에 크게 제재를 받고 있는 국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부서가 사라지고 통폐합되고 과장, 부장급들이 사직서를 냈다.

‘이 일은 국정원에게 그리고 나에게 기회를 제공할 거야.’

전쟁이 나야 정부가 군대에 힘을 실어주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야 정부가 국정원에 힘을 실어준다. 이소은에게 이 사건은 정치권의 제재로 인원이 크게 줄어 막힌 줄만 알았던 진급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보였다.

**

“으으…….”

한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이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기는?’

새하얀 천장 그리고 소독약 냄새.

얼굴에 덮인 인공호흡기와 팔에 꽂혀있는 주사침은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나타냈다.

“어, 어머 특실 환자가 깨어났어요!”

간호사 한 명이 남자가 깨어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병실을 뛰쳐나갔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의사 한 명과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네.”

소리를 내어 대답했던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쉬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얼굴 표정으로 분위기를 읽은 의사는 환자를 안정시켰다.

“환자분 여기는 병원입니다. 교통사고로 입원하셨는데 머리를 다쳐서 일주일간 깨어나지 못하다가 지금 일어나신 겁니다.”

“……그렇습니까?”

남자는 인공호흡기가 불편하다는 듯 손을 들어 그것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자 의사가 직접 호흡기를 제거해줬다.

“환자분은 지갑이나 핸드폰이 없어서 가족에게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본인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정승원.”

“집 주소는요?”

“집 주소는…….”

승원은 집 주소를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역시…….’

의사 최도영은 일주일 전 들어온 이 남자가 머리를 크게 부딪쳐서 구급차에 의해 병원에 실려 온 것을 기억했다.

출혈도 많았고 몸에 상처도 많았다.

처음에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외과 과장이 대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환자의 몸은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자가 수복을 시작한 것이다. 채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몸의 상처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병원에서는 외, 내과를 포함하여 각 부서의 과장 이상급 의사들이 회의실에 모여 이 환자의 몸에 대해 몇 날 며칠을 토론한 것이다.

‘본래 환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이미 혈액검사와 세포 검사까지 끝냈지. 아무 이상한 점 없는 평범한 몸이었어.’

다행히 부원장이 입단속을 단단히 해서 이 환자에 대한 정보는 언론에 퍼져 나가지 않았다. 아마 언론이나 다른 병원에서 알았다면 병원 앞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9시 뉴스를 장식했을 것이다. 그의 몸은 현대 의학으로도 증명 할 수 없는 이상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왜 저는 제 이름 말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죠?”

“그게 환자는 앞서 말했듯 교통사고로 머리를 포함하여 전신을 다쳤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 기억 상실증일 가능성이 있는데, 그건 일시적일 수도 있고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CT촬영을 다시 한번 해봐야 하는데…….”

최도영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김 간호사를 바라봤다.

“김 간호사 잠깐 나가 있겠어? 아니 가서 과장님 불러와. 특실 환자 깨어났다고 하면 알아들으실 거야.”

“네!”

김 간호사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최도영은 문이 잘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정승원 환자는 북한산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최도영이 자신이 생각해도 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았기에 망설이다가 이야기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옆 낭떠러지로 떨어져 사고가 났습니다.”

“네?”

승원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최도영을 바라봤다.

이름 이외에 자신에 대한 그 무엇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상식적인 것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산은 저도 가본 적이 있는데 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갈 수 없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차가 산 정상에서 떨어져 제가 다쳤다는 거죠?”

“그게 구급대원이 한 말이라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저도 잘…….”

최도영은 이제 막 깨어나서 혼란스러운 환자에게 비정상적인 회복 속도에 관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 벌컥!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외과 과장을 비롯하여 다른 의사 십여 명이 병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에는 부원장이나 다른 과 과장들도 가득했다.

“환자분 깨어나셨군요!”

외과 과장을 포함하여 다른 의사들 모두 하나같이 눈이 반짝거렸다.

현대 의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체를 가진 남자의 등장으로 병원 간부진은 몇 날 며칠을 토론하고 분석하고 회의하고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다.

“환자분 뭐 기억하시는 거 있습니까?”

십여 명의 의사들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자신을 내려다보며 눈을 희번덕거리자 승원이 몸을 움츠렸다. 마치 실험실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름 말고는 기억 나는 게 없습니다만.”

“그게 무슨?”

과장 최국진은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담당의 최도영을 바라봤다.

“과장님. 환자는 아무래도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이, 이런…….”

환자의 몸은 기이할 정도로 회복력이 빨랐기에 그의 몸을 분석해서 논문을 발표하면 노벨 의학상도 떼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원 내부에 있는 모든 기기를 동원해서 80종류가 넘는 검사를 진행했지만, 혈액이든 세포 든 특이한 점이 없었다.

‘이 남자에게는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최국진은 정승원 환자에게 수액을 넣을 때를 기억했다.

주사를 꼽았다가 빼면 그 주사 구멍이 난 팔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평생에 다시 없을 기회야. 반드시 그 비밀을 밝혀내고 말겠어.’

최국진은 백혈병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자신의 딸을 떠올렸다.

그가 본디 특별한 이 환자를 더 특별하게 보는 이유였다.

**

한국일보에서 일하는 사회부 기자 김경미는 자신이 한 달간 심혈을 기울여 조사한 기사가 반려되자 단단히 화가 났다. 하지만 그 분노도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기사를 쓰레기통에 박아버린 부장이 보고 있던 티브이에서는 세상이 개벽하는 소식이 연달아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틀란티스 출몰? 초능력? 섬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몇 년 전에 사라졌던 실종자들이라고?”

자신이 부장이었어도 자신의 기사를 쓰레기통에 넣었을 것이다.

“오늘 만우절 아니죠?”

“아니야.”

“저거 영화나 페이크 다큐 그런 거 아니죠?”

“아니야. 티브이 집중 좀 하게 조용히 해봐.”

부장은 김경미의 말이 시끄럽다는 듯 티브이 볼륨을 높였다.

티브이에 나오는 뉴스 데스크에서는 아나운서와 전문가가 CNN을 돌려보며 아틀란티스의 출몰에 대해서 사실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미군 부대 내부 고발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진과 소식이 쏟아져 들어오며 아틀란티스와 실종자가 나타난 것이 기정사실로 되어 가고 있었다.

- 지이이이잉.

그때 김경미의 포켓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녀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진동은 계속됐다.

“씁!”

부장이 진동 소리가 거슬린다는 듯 노려보자 김경미는 서둘러 부장실을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차인현 소방사?’

사건이 되는 정보를 빨리 얻기 위해 김경미는 틈날 때마다 소방서에 찾아가 음료수를 주고 마음이 맞는 직원에게 회와 술을 사주고 명절마다 소고기를 보냈다.

‘뭔가 사건이 있나 본데…….’

상가에 불이 났거나 누가 자살했거나 하는 시시한 사건일 게 분명했다.

평상시라면 그것도 감사하다고 넙죽 전화를 받아 사건 현장에 뛰쳐나갔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경미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버렸다.

- 띵동!

[사진이 왔습니다.]

‘사진?’

차인현 소방사가 사진을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뭔가 싶어 서둘러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소방학교 동기가 일주일 전에 사건 출동해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오늘 받았어. 이 사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지금 뉴스에 나오는 아틀란티스인가 하는 섬에서 초능력을 발휘하는 실종자들이 나타난 거랑 뭔가 연관이 있을 거 같지 않아?]

핸드폰 화면에는 북한산 정상 낭떠러지 밑에 처박힌 검은색 머슬카 한 대가 있었다.

----------------------

0